등산&산행기/산행후기(종합)

무룡산 ~ 동대산 ~ 삼태봉 ~ 토함산 산행

질고지놀이마당 2007. 5. 10. 11:04

◈ 동대산 방향에서 바라본 무룡산

지난 토요일(8. 7) 오랫동안 별러왔던 무룡산∼토함산 종주(종주라는 표현이 맞는지?)를 다녀왔다.
11시간 코스라고 하기에 내심으로는 9∼10시간이면 주파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오히려 1시간 늦어진 12시간이 꼬박 걸렸다.
그것도 도중에 차질이 생겨서 토함산까지는 못 오르고 석굴암 주차장에서 멈춘 기록이다.

오래 전부터 꿈꾸던 산행

무룡산∼토함산 종주는 오래 전부터 꿈꾸던 것으로 올 봄에 일정이 잡혀 있었다.
전에는 길을 제대로 찾을지 자신이 없어서 엄두를 못 내다가 전문 산악인들이 간다기에 길눈 밝은 그들을 따라가면 되는 안전한 산행이었다.
그러나 무룡산 산불이 나서 시민헌수운동 일정과 겹치는 바람에 함께 떠나지 못했다.
따라서 꼭 가보고는 싶어도 미루어 오던 차에 하루 남은 여름 휴가에 기억에 남는 일을 하고 싶어서 혼자 훌쩍 떠난 산행이었다.

금요일 저녁 테니스 동호회원들과 어울리면서 내일은 종주 산행을 해야겠다고 입소문을 냈으나 늦도록 어울리다보니 01시가 넘어서야 귀가했다.
아내는 화난 얼굴로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기가 죽어 눈치를 살피는데 나를 기다린 이유가 따로 있었다.
봉숭아물을 들이려고 손가락마다 봉숭아꽃 으깬 덩어리를 붙이고 있었으니 잠자기 전에 비닐로 싸고 실로 매어줄 손길이 필요했던 것이다.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이 고맙기 그지없어서 정성을 다해 마디마디를 싸매 주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02시가 넘었다.
'내일 산행은 물 건너갔구나'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바가지 안 긁히고 넘어간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잠자리에 들었다.
하긴 누구랑 약속한 것도 아니었으니 산행 여부는 자고 일어나 봐서 결정해도 될 일이었다.

그런데 아침 일찍 잠에서 깨었고 몸도 가뿐하다.
됐다, 떠나자!
아무런 준비를 해 놓지 않은 탓에 마음이 급해진다.
다행히 산행을 다니면서 터득한 경험이 있어서 준비물 챙기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산행에 필요한 도구와 간단한 여벌옷과 간식을 챙기는 한편, 아내를 깨울 염치가 없어서 물을 끓여 식은 밥을 말아 김치로 아침을 해결한다.
점심을 어떡하나 궁리하고 있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 아내가 미안한지 김밥을 싸줄까 한다.
준비도 안된 걸 뻔히 아는 터라 아무래도 상할 것 같으니 그만두고 대신 미숫가루나 좀 뻑뻑하게 타 달라고 했다.
냉장고에 남아있던 과일과 얼린 물을 챙겨 넣고는 출발이다.


헌수운동으로 되찾은 새 생명의 푸르름



아침 7시 10분 연암동 배수지 밑에서 출발이다.
숲이 잘 우거졌던 이곳 등산로는 산불이 난 후 이팝나무를 심은 구간이다.
등산로 초입 구청 직원들 식목 구간에 이어 벽산아파트 식수 구간이 길게 이어지고, 산딸나무 길과 만나는 삼거리에서부터 왼쪽은 엘지 진로 아파트, 오른쪽은 한우리 아파트 구간이다.
엘지진로 아파트 주민들은 그사이 자신들의 식목구간에 'LG진로아파트동산'이란 돌비석을 세웠다.
주민 참여의 본보기를 보는 것 같아서 흡족하다.
99% 수준의 높은 생존상태를 보여주는 이팝나무 길을 상쾌하게 올라 매봉재에 이르니 물주머니를 하나씩 둘러멘 나무들이 여름 가뭄과 싸우고 있다.
가뭄 피해를 줄이고자 무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물을 주기 위해 고생하는 산림담당 직원들의 손길이 느껴진다.
산을 오르는 시민의 휴식처로 세운 파고라 밑에 무더기를 이루는 쓰레기가 거슬린다.
내처 무룡산까지 숨가쁘게 올라 시간을 재어보니 한시간이 채 안 걸렸다.
기분 좋은 출발이지만 무더위에 오버하는 것 아닌지...

천혜의 경관이 조망되는 무룡 임도(林道)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내리막을 거쳐 걷는 무룡산 임도는 고즈넉하다.
임도와 등산로를 넘나드는 코스가 신작로와 같은 임도의 단조로움을 덜어 준다.
중간에 산불 방지를 목적으로 한 '방화선' 오르막 코스를 제외하면 평평한 구간이다.
임도가 끝날 즈음 다시 산길로 접어드는데 이때 안내리본이 붙은 산길에서 약간 좌측으로 틀면 차가 다니기는 어려운 좁은 임도가 남아있고, 꽤나 넓은 분지가 나타난다.



옛날엔 화전 민가가 있었던 곳으로서 아주 외지면서도 아담한 분위기의 분지라서 휴양시설을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여기서 희미한 임도를 따라 계속 내려가면 '도둑골' 입구를 거쳐 창평마을로 연결된다.
마침 농사일을 하고 있던, 중구 반구동에 산다는 나이 지긋한 부부를 만나 수인사를 나누고 소개받은 옹달샘에서 목을 축였다.

임도가 끊긴 숲 속 분지와 능선길

분지를 가로질러 다시 능선으로 올라선다.
전에 이곳에서 길을 잃은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지금은 시그널도 붙어있고, 능선길만 제대로 따라가면 길 잃을 염려는 없다.
동대산자락으로 올라서는 능선 길은 제법 가파르다.
무룡산 임도와 동대산 임도가 이어지지 않는 구간이다.
그래서 임도가 연결되지 않은 것이지만 몇 번 이곳을 답사한 결과 자연파괴를 최소화하면서 임도를 연결하면 여러모로 활용도가 높은 길목이다.
마침 어디선가 중장비 굉음소리가 들려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지나면서 보니까 임도 개설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올해 일부구간을 개설하고 내년까지 공사를 마치면 마침내 무룡 임도와 동대산 임도가 이어지게 된다.
무룡산∼동대산 일대는 도심에서 가까워서 접근성이 좋고, 동해바다를 비롯한 울창한 숲 등 주변 경관을 조망하기 좋아서 산악자전거, 산악마라톤, 산림휴양시설 등 도시인을 대상으로 한 산악레포츠 시설에 아주 적합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무룡산∼동대산은 산악레포츠의 보고(寶庫)

거친 숨을 헐떡이며 가파른 능선을 올라 동대산 임도와 접속되는 곳에 이르니 정각 10시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간식을 먹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곳부터 기령재 구간은 뙤약볕아래 그늘하나 없는 고달픈 길이다.
무더운 날씨 탓인지 동대산 정상에는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한나절 내내 청룡암쪽에서 막 올라 온 한 부부를 마주쳤을 뿐 한낮의 임도는 고즈넉하기만 하다.
학성 이씨 문중에서 짓고 있는 납골당 공사 소음이 요란하게 들려왔다.
제법 웅장한 규모인데 임도에 바로 붙어 짓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조금만 더 안쪽으로 들어갔으면 서로가 좋았을 것을.
허가를 받는 사람이나 내 주는 공무원이나 그만한 생각이 없었을까...?

실종된 시민의식으로 신음하는 자연

잔 자갈을 깔아 놓은 임도 구간을 걷기는 매우 불편하다.
도중에 갈증을 풀고 휴식을 취할 겸 신발을 풀어서 달아오른 발바닥 열기를 좀 식힌다.
다시 길 재촉을 하는데 지나던 트럭이 급정거를 한다.
'상 거지꼴'을 한 내 모습을 알아본 산림계 직원이었다.
임도 공사장에 가는 길이란다.
무더위에 현장 행정을 펼치는 모습을 보니 대견스럽다.
신흥사와 갈림길 입구에 임도 출입을 통제하는 바리케이트에 공익요원 두 명이 하릴없이 앉아 있다.
이들 젊은이를 배치한 이유는 차를 몰고 온 일부 몰지각한 주민들이 바리케이트를 밀쳐내고 안으로 들어와 자연을 어지럽히는 바람에 민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곳곳에 고기 굽고 술 마시던 흔적들, 온갖 쓰레기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머물던 자리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그리 어려울까?
    
기령재∼삼태봉, 관문성을 지나는 감회


관문성

이윽고 기령재 갈림길에 다다른 시각은 11:35분, 연암동 출발지점 부터 4시간 반 걸렸다.
점심 도시락을 싸오지 않은 탓에 포장마차에 들어섰다.
내 차림새가 좀 그래서 모를 줄 알았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준다.
시원하게 말은 국수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출발(12:00)이다.
골프장 입구 경비초소에 있는 안내간판을 보니 삼태봉까지 4,850여m로 되어있다.
이곳 등산로는 전체 구간에서 가장 편안한 길이다.
관문성 성벽과 얼마간 나란히 이어지던 등산로는 능선으로 이어지면서도 가파르지 않고 울창한 숲이 터널을 이루고 있어서 연인이 정담을 나누며 걷기에 어울릴 듯 하다.
성(城)이라고는 하나 대개 무너진 돌무더기 수준의 관문성은 사적으로 지정돼 있으나 복원은 엄두를 못 내고 있다.
호시탐탐 침략을 일삼던 왜구들과의 옛 격전지였을 성곽을 따라 걸으면서 이곳 축성을 위해 부역을 나서야 했을 민초들의 고단한 삶이 떠오른다.
장비가 변변치 않았을 그 시절, 산꼭대기까지 돌을 날라야 했던 것은 오직 백성들의 등짐이 아니었을까!

개발, 발전과 환경파괴의 두 얼굴

잠시 상념에 젖어 걷다보니 도중에 누워있는 소의 엉덩이와 몸체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아기공룡의 옆모습으로도 보이는 너럭바위가 있어서 쉬어갈 겸 걸터앉았다.
숲이 울창해 기대했던 만큼 주변 경관이 잘 보이지는 않는다.
언 듯 비치는 동해안 경관은 더위를 식혀 줄만큼 호쾌하다.
그러나 오른쪽 발아래 펼쳐진 '마우나오션 골프장'과 그 일대 개발이란 이름 하에 진행되는 자연 파괴는 착잡한 마음이 든다.
왼쪽 역시 모화∼외동까지의 산허리 군데군데가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농공단지 개발 때문이다.
이렇게 개발이란 이름으로 광범위한 자연을 파괴해도 되는가 하는 마음과 다른 한편, 어차피 개발이 불가피하다면 우리 지역에 유치하여 지역 발전과 지방세수 증대에 도움을 꾀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끌림도 있는 것이 가난한 지방정부 살림을 맡은 단체장의 고민이다.

봄날 같은 순풍이 끝나고 밀려온 격랑의 파도


원원사

삼태봉까지 이런 길이라면 한시간이면 족하겠다 싶었는데 생각보다 멀다.
헬기장 두 곳을 거쳐 삼태봉에 다다른 시각은 13:06분, 포장마차에서 한시간이 더 걸렸다.
내친걸음에 쉬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하여 원원사로 내려가는 갈림길 지점을 통과한 시각이 13:30분, 그런데 여기까지가 봄날이었다.
다가올 불행을 예상하지 못한 채 순풍에 돗을 단 듯한 순항은 여기에서 끝났다.
등산로가 좋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예단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잡풀이 무성하여 등산로를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
간간이 안내리본을 의지하면서 대강의 방향을 짐작하게 되는데 방향표시도 시원찮고 짐작하는 방향이라는 것이 때로는 전혀 엉뚱하다.
한 시간 여 잰걸음을 달려 이제는 입실-양남 간 도로상의 고개가 나타날 법한데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숲이 울창한 탓에 주변 산세를 살피기도 여의치 않다.
이윽고 시야를 확보할만한 봉우리에 올라섰을 때 난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발아래 펼쳐진 모습은 고개 마루가 아니라 외동읍 정경이 아닌가!
고개를 돌려 방향을 가늠하니 내가 목표로 한 양남으로 넘어가는 고개는 북동쪽으로 가물가물하게 보일 뿐이다.
돌아가기에 너무나 멀리 와버린 위치였다.

순간의 방심으로 자초한 중도포기의 위기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억울한 생각이 드는 것은 그때까지도 산길을 안내하는 리본이 간간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누굴 원망 할 처지가 아니라 내가 감당해야할 몫이다.
왜 좀 더 찬찬히 살피지 않았나 후회 막급이었지만 이미 저질러진 일이었다.
산행을 계속하려면 뒤돌아가든 내려가서 다시 시작하든 둘 중의 하나를 결정해야 했다.
일단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내려오는 길도 어려운 것이, 희미한 등산로는 내려올수록 흔적이 없어지더니 나중엔 아예 없어지고 말았다.
추측컨대 누군가 나처럼 길을 잘못 들어 도중에 탈출한 사람들의 흔적이었을 것이다.
일단 계곡으로 내려서서 없는 길을 찾아 탈출하는 내내 자책과 후회를 거듭하면서 울산으로 돌아가나 차를 얻어 타고라도 고개까지 가서 다시 도전할까 갈등했다.

중도 포기할 수 없다는 오기로 다시 시작

입실 도로 가에 내려선 시각이 15:35분, 울산으로 돌아가면 딱 알맞은 시간이지만 그냥 포기하고 말기엔 너무나 안타까웠다.
언제 다시 도전할 기회를 만들 것인가?
그보다도 중도에 포기하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기 어려웠다.
다시 도전하기로 결심하고 지나는 차마다 태워달라는 사인을 보냈지만 번번이 허탕이다.
산 속을 헤매다 내려온 차림새라 더 경계심을 갖는것 같아 차림새와 선글라스에 생각이 미쳤다.
얼른 옷 매무새를 고치고 안경을 바꿔 쓰자 그게 주효한 것인지 하여간 빨간색 승용차가 멈춰선다.
그런데 이게 웬일? 젊은 여성운전자 혼자라서 내가 외려 조심스럽다.
그래도 마음 변하면 어쩌나 싶어서 최대한 정중하게 용건을 말하니 얼른 타지 않고 뭐하냐는 표정이다.
걸으면 30분도 더 걸릴 길을 차를 타고 오르니 5분도 채 안 걸린다.
연신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울산 오면 차라도 한잔 대접하겠다며 내 신분을 밝히면서 명함을 건넸더니 사인을 해 달래서 "참 좋은 인연입니다"라고 적었다.

험난한 가시밭길은 신의 경고를 무시한 대가(?)

양남으로 가는 고개 마루에서 다시 산행을 시작한 시각이 16:00
길을 잃었던 탓에 1시간 반 정도를 지체한 것 같다.
시간은 늦었고 갈 길은 멀어 마음이 급한데 상황은 갈수록 어려워진다.
마치 산신령이 있어서 '그만 내려가라고 계시를 했는데 왜 돌아왔느냐'고 힐난하듯이 무성한 잡풀과 가시덩굴이 앞길을 가로막는다.
길을 분간하기도 어렵다.
도중에 웬 묘지 군이 그리도 많은지 사람이 지난 흔적이 있어서 길인가 하고 따라가면 대개는 묘를 찾아간 흔적이어서 낭패를 당하기 수 차례.
긴 바지에 긴 팔 남방을 입은 것이 천만다행이었지만 찔래, 야생 복분자, 산딸기넝쿨 등등이 얽히고 설킨 데다가 키를 넘는 억새로 인해 악전고투의 연속이다.

또 하나의 함정, 임도의 유혹

등산이 아니라 길을 찾아 밀림을 헤매는 고생 끝에 희미한 임도를 만나고, 이어서 잘 닦여진 임도를 얼마간 따라 걷다보니 지하수를 개발한 관정이 나타나면서 좋은 길은 끝이 난다.
능선에 웬 관정(?)일까 하는 궁금증보다도 이 길이 맞는지가 더 걱정이다.
다시 산길로 들어서 길을 찾아 헤매기를 반복하다 기지국 중계탑이 보이는 곳에 이르러 제대로 된 신작로를 만나니 이제는 고생 끝이구나 안도감이 생긴다.
어렵사리 찾은 임도에서 기지국으로 향하는 산길로 안내리본이 붙어있다.
산길로 가는 것이 지름길인 줄 뻔히 알지만 밀림과도 같은 가시덤불에 혼이 난 터라 좀 돌더라도 잘 닦여진 임도의 달콤한 유혹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런데 그것이 또 한번의 낭패였다.
길은 좋은데 아무리 가도 멀리 나타나야 할 토함산 봉우리가 보이질 않는다.
임도 삼거리에서 내심 북쪽이다 싶은 방향으로 갔는데 그 길은 양북으로 빠지는 길이었다.
얼마간 가다가 방향이 아닌 것 같아서 다시 돌아나와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접어드니 아무래도 서쪽방향이라 찜찜하긴 마찬가지다.
두 굽이쯤 돌자 아까 보았던 기지국 안테나가 보인다.
길은 제대로 찾았지만 그새 20분 이상 알바를 하고 말았다.
대충 짐작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거의 맞더라도 한번 빗나가면 엄청난 낭패를 당하는 것이 산행에서 얻는 뼈저린 교훈이다.

목가적 풍경에서 만난 프로정신

이윽고 포장길이 나타나면서 눈에 익은 목장이다.
넓은 초지 위에 한가로이 풀을 뜯는 한 무리의 소 떼가 목가적인 풍경이다.
하지만 이미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길손에겐 그걸 감상할 여유가 없다.
타박타박 걷는 발걸음이 천근 무게로 느껴지고 물집이 생긴 발바닥은 걸음을 디딜 때마다 통증으로 고통스럽다.
길가 그늘에서 커다란 뭔가를 펴놓고 목장을 내려보는 젊은이 한 쌍이 눈에 들어왔다.
목장 풍경을 화폭에 담는 낭만파 연인인가 싶었는데 다가가 보니 그게 아니다.
펼쳐놓은 것은 화폭이 아니라 지적도 도면이었다.
인사를 건네며 무엇을 하는 중인가 묻자 부동산업을 하는데 현장 확인을 나온 길이란다.
아무렴 무슨 일을 하든 저런 프로 정신이 있어야 성공할 일이다.
시각은 이미 여섯시가 넘었다.


토함산 일출

토함산까지 목표로 했던 시각인데 아직 토함산은 까마득히 멀기만 하다.
이쯤에서 날 데리러 올 효섭씨에게 지금 출발하라고 전화를 걸었다.

무아지경에서 내딛는 발걸음

아스팔트길을 강행군하려니 99년 여름 이맘때 반핵 깃발을 들고 울산에서 서울까지 걷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오늘 고행을 겪어보니 다시 그 때처럼 걸을 수 있을지 자신이 서지 않는다.
이제 걷는 것은 무아지경이다
중간 중간에 산길로 안내하는 리본이 고단한 길손을 손짓해 부른다.
지친 상태지만 아스팔트길보다는 산길이 제격이어서 올라가 보지만 이 구간 등산로도 가시덩굴 우거짐은 비슷하여 혹시나 하던 기대는 역시나 하는 실망으로 남는다.
불국사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 팔각정을 지나 다시 산길로 접어들어 섰을 때 효섭씨한테서 전화가 왔다.
내가 목장 초입을 걸을 때 울산에서 출발하라 했는데 벌써 주차장에 도착한 모양이다.
그러나 내게 남은 길은 아직도 2km 이상이다.
차로는 2분 거리지만 지친 몸으로는 빨리 걸어도 20분은 걸린다.
다시 아스팔트길로 내려서 마지막 피치를 올리는데 주차장까지 700m 남았다는 팻말을 보고서도 한참이나 걸린다.

자신의 의지에 대한 확인과 성취감은 무형의 자산

스쳐 지나치는 차창 밖으로 호기심으로 내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누가 나에게 왜 걷느냐고 묻는다면 그냥 걷는 것이 좋아서 걸을 뿐이라고 말하리라.
누가 요구하거나 의무감에 따른 것이라면 아마 힘들어서 못할 것이다.
스스로 좋아서, 자기 자신의 의지를 확인해 보고 싶은 자신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고행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마침내 해냈다는 성취감은 무슨 일을 하는데 있어서 커다란 마음의 자산이다.
걸으면서 북구의 발전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무엇이든 넘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덥고 힘든 순간 지난 99년 여름 서울까지의 도보행군을 회상한다.
구청장 취임 후 첫 직원 연수에서 25분간 항아리 자세로 버티던 순간도 떠오른다.
무더운 날씨에 특공여단에서 복무하는 아들과 네바다 사막 가까운 무더운 도시에서 알바로 생활비를 벌어 공부하는 딸아이 등 소중한 가족들의 고생도 생각한다.
지독한 추위와 힘겨움에 조난 당할 뻔했던 소백산 심설(深雪)산행, 눈 속에 빠져 중간 탈출했던 지리산 삼정봉 산행, 도중에 잠시 쓰러졌던 수도산∼가야산 종주, 다리를 끌다시피 내려왔던 지리산 종주 등 힘들었던 기억들은 시간이 흘러도 또렷하다.
이처럼 소중한 가치와 힘들었던 산행 기억들은 힘든 순간을 지탱해주는 디딤돌이다.
또한 할까말까 망설여지는 순간에 도전할 용기와 자신감을 갖게 한다.

산행의 '사부님'한테 배운 산행의 묘미와 경험

실은 혼자 걷는 긴 산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를 무궁한 산행의 묘미에 빠지게 이끈 '박兄'이란 분이 있다.
다섯 살 손위인 그 분은 산행과 여행에 관한 한 존경스런 '사부님'이다.
정보와 경험 면에서 그렇고, 오지를 찾아 혼자 불쑥 떠나는 여행을 즐기는 매니아다.
앞서 예를 들었던 극한 경험을 한 산행은 모두 '사부님'과 동행했었다.
그리고 이곳 무룡산∼토함산 종주를 8시간에 주파한 기록을 갖고 있다.
사실 그런 사부님의 기행(?)을 마음속으로 동경하면서도 따르기에는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혼자 불쑥 출발해서 힘겨운 여정을 무사히 마쳤다.
내심 누군가 길동무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으나 혼자 떠나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어설픈 동행은 서로에게 짐일 뿐이다.
길을 잃고 헤맬 때 동행이 있었다면 더 쉽게 찾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지만 나보다 독한 동행이 아니고는 도중에 포기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인생 항로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다.
50고개를 바라보는 인생 길의 진정한 사부님은 있는지 자문해 본다.
나는 또 누구에게 어떤 가르침을 줄만한 준비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윽고 석굴암 주차장 도착, 오후 7시 12분이다.
막 일몰이 된 탓에 어둡지는 않았지만 불과 30분 거리의 토함산 정상을 눈앞에 두고 12시간의 행군을 아쉽게 마친다.


산행 시간표

연암동 배수장 아래 출발(07: 10)∼매봉재(07 :35)∼무룡산 정상(08: 04) ∼송정 저수지 상단(09:04)∼동대산 임도 접속(10:00)∼기령재 포장마차(11:35)∼점심식사 후 출발(12:00)∼삼태봉(13:05)∼원원사 계곡 갈림길(13:30)∼길 잃고 입실로 내려옴(15:35)
입실∼양남간 고개 정상까지 카풀로 이동
고개 출발(16:00)∼희미한 임도(17:00)∼목장 입구 포장길(18:00)∼석굴암 주차장(1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