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산행기/영남알프스

통도사 환종주 2 / 시살등~영축산~출발점

질고지놀이마당 2010. 12. 29. 23:58

<앞 산행기에 이어서~>

 

통도사환종주 산행기 2편은 시살등에서 영축산까지 이어지는 암릉구간이다.

남쪽에서 북쪽으로의 이동이니까 한피기고개-죽바우등-채이등-함박재-함박등을 거쳐야 비로소 영축산 정상에 닿을 수 있다.

 

마루금 오른쪽으로 내려다 본 풍경

통도사를 중심으로 佛國淨土라 부를만한 지역이다.

 

오룡산에서 시살등을 거쳐온 마루금

 

죽바우등 부근에서 한쌍의 산객을 만났다.

가급적 한적한 산길을 고른다고 가지산을 피해 이곳 영축산 한바퀴를 택했는데 예상은 적중했다.

시살등을 지나 966봉 근처에서 한사람을 만났고, 이번이 두번째다.

결론적으로 함박등 쪽에서 아이들 데리고 온 한가족, 영축산 정상에서 내려가는 세명의 여성일행을 마주친 것이 전부였으니까.. 

 

 

서편에 재약산에서 코끼리봉-재약봉을 거쳐 향로산으로이어지는 산군이 오후햇살을 받아 힘이 넘쳐보인다.

 

중앙능선과 만나기 직전 전망바위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죽바위등과 서쪽 경사면

죽바위등은 동쪽에서 보면 암릉위에 우뚝솟은 바위봉우리인데 서쪽에서 보면 별로 드러나지 않는 평범한 봉위리다.

 

사광을 받는 이맘때 능선과 계곡의 명암이 확연하게 드러나서 힘이 불끈불끈 느껴진다.

 

함박재로 내려서기 직전의 채이등과 함박등, 그리고 영축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암릉구간

 

앞쪽이 채이등의 바위절벽 클로즈업, 뒷편 우뚝솟은 봉우리는 함박등이다.

 

중앙능선으로 이어지는 등로에는 사람 발자국은 없고, 몸집이 제법 큰 산짐승 발자국이 나란히 찍혀있다.

 

함박등을 막 지나서 부산에서 왔다는 한 가족을 만났다.

아빠가 쉬는날이라서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와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여학생을 데리고 온 가족이었다.

춥고 눈쌓인 험로에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아빠의 마음 씀씀이도 그렇지만 기꺼이 따라온 아이들이 더 기특하게 보였다.

나는 아이들과 그런 시간을 갖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

녀석들 머리가 큰 뒤에는 아무리 권해봐도 '내가 힘들게 뭣하러 가요?' 일언지하에 거절 당해서 한번도 이뤄보지 못했다.

 

대저 자식이란 품안에 있을 때가 내자식이란 옛말 하나도 그르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선지 나는 산길에서 아이들과 함께 걷는 가족을 보면 마음이 더 가고,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카메라를 갖고 오지 않았다기에 기념가족사진 몇 컷을 찍어주고 연락처를 남겼다.

 

함박등에서 바라 본 영축산(右)을 거쳐 신불재와 신불산까지 이어지는 마루금

 

주욱 거쳐온 영축지맥 마루금

 

15:40분 영축산 정상 직전의 1060고지에 오른다.

언젠가 영남알프스 지리에 익숙치 않았을 적에 눈보라치는 날씨여서 영축산 정상으로 착각했던 봉우리다.

오가는 이들이 작은 염원을 담아 쌓은 돌탑들 너머로 신불산 가지산 운문산 재약산 등 영남알프스 주요 산들이 두루 조망된다.

 

 

 

 

 

 

 

16시 5분전에 영축산 정상에 도착했다.

13시5분에 오룡산을 지났으니 능선길을 지나오는데 2시간 50분 걸렸다.(시살등 14시5분, 함박재 15시 5분 통과)

정상석 못미쳐에서 마주친 세명의 여성산객들이 통도사로 내려가는 길을 묻는다.

아직 시간이 한참이나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들은 겨울해가 짧다며 하산길을 걱정하고 있었다.

 

나도 하산을 서둘러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하산길이나 어둠 내리는 것은 대수가 아닌데 저녁에 예정된 현마클 송년행사에 늦을까봐 마음이 쓰이는 정도였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그리고 정상에서 조망되는 풍경사진을 찍는 도중에 퍼뜩 스치는 생각은 아까 만났던 가족이었다.

정상까지 오겠다고 했는데 아이들 데리고 빨리 이동할 수가 없으니까 나보다 20~30분은 늦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상에서 4시반은 넘어야 하산을 시작할텐데 5시면 해가 떨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남의일 같지가 않다.

 

늦어도 6시 전에는 험로를 벗어냐야 안심이 되는데.. 진작에 서둘러 하산을 권고하지 못한 내 자신이 책망된다.

조바심이 나서 아까 입력한 폰 번호로 아무리 전화를 해도 연결이 안되는 상황이 계속되니까 더 걱정이다.

험준한 산속에서는 휴대폰의 비상연락 기능은 신뢰할 바가 못된다.

만약에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전화연결조차 안되면 어쩔 것인가?

 

정상석에 낼름 앉아있는 까마귀를 보니 방정맞은 생각이 든다.

이녀석, 냉큼 내려오지 못할까! 

 

정상에 잠시 선채로 사방을 빙둘러 좌르륵 인증샷을 날리고는 서둘러 하산길에 접어 들었다.

현재시각 16시, 시내 삼산에서 18시 행사인데 하산과 이동을 두시간 안에 마쳐야 하는 상황이니까 나도 갈길이 바쁘다.

 

 

 

 

 

 

아리랑릿지는 벌써 산그림자가 반쯤 덮였다.

 

낙동정맥과 겹치는 급경사 구간을 구르듯이 달려 내렸다.

그리고 지산마을로 갈라지는 길목에서 빠른 하산을 위해 카메라도 챙겨넣고 군장을 다시 꾸렸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마음에 걸려서 수시로 폰을 누질러 보지만 여전히 통화권 이탈상태..

전화가 연결된 것은 30분이나 지나서였다.

가까스로 전화연결이 되었는데 예상대로 아직 정상인데 내려갈 길을 걱정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들과 연결이 되어 대강의 길을 일러주고 나니 마음의 부담이 조금은 덜어진다.

 

이후 나는 내 갈길이 급해 서둘러 울산으로 내달렸고, 딱 5분 지각하여 행사장에 도착했다.

씻고 몸단장은 고사하고 옷도 갈아입지 못한채 찍사로 변신해서 행사장을 누비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18시 20분, 무사히 하산을 마쳤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왔다.

얼마나 다행인지.. 마치 내가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죄책감에서 벗어난 기분이었다.

 

간접적이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

겨울산행에서 꼭 유념해야 할 것은 해가 짧고, 산중의 어둠은 빨리 내리며, 기온도 뚝 떨어진다는 점이다.

충분한 경험과 준비, 그리고 체력적으로 뒷바침 된다면야 별개지만,

길도 잘 모르는 초행길에다 잘 걷지 못하는 일행이 있고, 준비상태까지 부실하다면 절대로 절대로 무리한 산행은 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