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2013. 8 .17. 토. 맑음
2박3일 나홀로 지리산행 다녀오는 길에
왕시리봉에서 조망하던 섬진강 비단물길, 바로 그 자리를 지나는 곳에 '전망좋은 곳'이란 팻말이 써 있어서 차를 세우고 내려갔다.
섬진강 하면 김용택 시인이 떠오른다.
그의 詩를 접하면서 비로소 나는 시가 지닌 깊이와 아름다움, 매력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시는 난해한 언어의 유희'라는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고 있던 젊은 날의 내게 시란게 이런거로구나 하고 재정립 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세상의 모순에 눈뜨기 시작하면서 접하게 된 김용택 김지하 박노해 시인은 노동운동 입문 초기에 나의 가치관과 인생관 정립에 많은 영향을 끼친 시인들이다.
그 중에서도 김용택 시인의 서정성을 바탕으로한 은은한 현실 비판은 물감이 스며들듯 저항감 없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펜의 힘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에 공감하기 시작한 것도 이무렵이었다.
아니 필자 뿐만이 아니라 함께 학습하던 멤버들도 마찬가지로 매료되었다.
내가 보기에 저항시인의 대명사로서 첫 손가락에 꼽히던 김지하 박노해 시인이 불이라면 김용택 시인은 물이었다.
김 박 두 시인의 시는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던 유신독재의 심장을 향해 비수를 들고 달려들듯 저항적이고 혁명을 부추기는듯한 격문 형태로 느껴졌고,
(실은 그래서 두 시인의 시를 보면 심장이 펄떡펄떡 뛰며 피가 끓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은근히 겁이 나기도 했었다. (벌써 30여년 전의 회고다.^^)
그런데 김용택 시인의 시를 읽으면 무지랭이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두메산골에서 자란 내 이야기 같았고, 내 가족과 이웃의 이야기처럼 빠져 들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농민 노동자 도시서민 등 민중이 처해있는 현실을 놓치지 않고 은유적으로 풍자하고 비판했다.
김 박 두 시인이 죽창과 쇠스랑을 들고 봉기하는 느낌의 시를 직설적으로 썼다면, 김용택 시인은 예리한 비수를 품속에만 간직한 채 느낌으로 전달했다.
그렇게 젊은 날의 내게, 아니 지금까지도 내 인생항로에 깊은 영향을 끼친 김용택 시인을 탄생시킨 섬진강에 대한 느낌이 어찌 각별하지 않겠는가?
가만 생각해보니 이렇게 한가롭게 섬진강을 굽어보며 사색에 잠긴 것이 처음이다.
숱하게 지나 다니면서도 무엇이 그리 바빠서 시간을 내지 못했을까?
이번 지리산 나홀로 산행은 섬진강과 김용택, 김용택과 섬진강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던 것만으로도 의미가 깊었다.
그러면서 실은 인생의 황금기를 숨가쁘게 달려온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섬진강 1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서정적 느낌의 섬진강 물줄기를 바라보며 회상에 취했다가 차로 돌아오는데 꽤~꽥 시끄러운 소음이 들렸다.
이런~ 이런~! 도축장으로 실려가는 오리들을 가득실은 대형트럭이 서 있었다.
이 폭염에 좁은 공간에 갇혀서 무더위와 갈증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선진국에서는 잡아 먹을때 잡아 먹더라도 동물을 학대하면 처벌받는다는데...ㅠㅠ
폭염이 계속되고 있는 날씨에 보양식으로 많이 찾는 닭과 오리들이 처한 현실을 보니 한동안 닭 오리고기 메뉴를 보면 이 모습이 떠오를 것 같다.
불교에서는 윤회설을 믿는데 쟤들은 전생에 무슨 업을 지었으며, 뭇생명을 학대하며 사는 인간들은 후생에 어떤 업을 치르게 될 것인지...
생명은 다른 생명을 통해 유지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요, 먹이사슬이라고는 하지만 그중에 가장 잔인하고 정점의 포식자가 인간일 것이다.
너는 어이하여 사형수의 신세가 되어 허공에 매달렸는고?
가냘퍼 보이는 거미줄이 방아깨비를 옭아매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언젠가는 작은 새도 헤어나지 못하고 거미줄에 꽁꽁 묶인 것을 본 적이 있으니까...
짧은 한살이를 열심히 즐기는 잠자리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까 김용택 시인이 쓴 '섬진강' 시에 대한 해설이 딱이다 싶은 것이 있기에 여기 인용한다.
"섬진강이란 시는 소외되어 있지만 소박하고 건강한 농민의 모습과 생명력을 담고 있는 시입니다.
섬진강의 의미는 한을 안고 살아가지만 소박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는 남도의 농민들을 상징한다고 하죠.
유유히 흐르는 강을 의인화하여 농민 및 민초들의 생명력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시의 끝부분에는 외부의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는 건강한 민중의 생명력을 강조하고 있는 시입니다.
이러한 생명력은 민중의 생명력과 다름없으며 애비 없는 후레자식 같은 세력이 위협하더라도 그 건강함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시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평사리 앞 섬진강에서 일단의 불자들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
생태체험 학습이거나 물고기류 방생이거나 그도 아니면 삶의 체험현장 이거나?
하기야 잠시 스쳐가는 나그네 입장에서 무엇을 하는 것인들 어떠랴, 그냥 서정적인 한폭의 풍경으로 족할 뿐...
섬진강 10 ---- 김용택
전라도나 경상도
여기저기 이곳 저곳
산굽이 돌고 논밭두렁 돌아
헤어지고 만나며 아하,
그 그리운 얼굴들이
그리움에 목말라
애타는 손짓으로 불러
저렇게 다 만나고 모여들어
굽이쳐 흘러
이렇게 시퍼런 그리움으로
어라 둥둥 만나
얼싸절싸 어우러지며
가슴 벅찬 출렁임으로 차오르나니
어화 어화 숨차
어화 숨막히는 저 물결
어화 어기여차
저 시퍼런 하동 포구
섬진강물에 허리춤까지 물에 잠긴채 재첩을 채취하는 모습이 더러 눈에 띈다.
놀이가 아닌 노동으로 하는 사람들은 힘들겠지만 폭염이 계속되는 날씨여서 물에 들어가 있는 그 자체가 시원해 보이는 부러움으로...ㅎㅎ.
평사리 공원에서
<김용택 시인은> ........... 한국현대문학대사전에서 인용
1948년 전북 임실 출생.
순창농림고교 졸업 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1982년 창작과 비평사의 『21인 신작시집』에 연작시 「섬진강」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초기시는 대부분 섬진강을 배경으로 농촌의 삶과 농민들의 모습을 정감있게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연작시 「섬진강」의 경우, 시적 서정성만이 작품의 지배적인 정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농민들의 일상이 조밀하게 사실적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현실의 각박한 변화와 농촌의 퇴락을 비판과 풍자의 시선으로 지켜보기도 한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김용택의 시적 경향은 보다더 직관적이면서도 깊이있는 정서를 담는 격조 있는 서정시로 변모하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특히 소월시문학상의 수상작이 된 시 「사람들은 왜 모를까」와 같은 작품에 이르면 더욱 분명하게 하나의 시적 개성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가 다루고 있는 시적 언어의 소박성과 그 진실한 울림은 토속적인 공간으로서의 농촌이 지니는 전통적인 가치와 새로운 현대적 변화를 연결해주는 정서적 감응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일상의 체험을 시적 대상으로 하면서도 그 소탈함과 절실함을 동시에 긴장감 있게 엮어내는 시적 상상력은 독자적인 시적 경지를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그가 부박한 모더니즘에 휩싸이지 않고, 격정적 이념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정서적 균형과 언어적 절제를 지키면서 아름다운 시로써 독자들을 감동시키고 있는 점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