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정치/환경 노동분야

'밀양의 눈물'- 농성장 지키는 할매 할배들

질고지놀이마당 2013. 11. 20. 00:43

2013. 11. 16. 토. 맑음

 

지난 주말에는 죄송스럽게도 '팔자 좋게' 화악산으로 '답사산행'을 다녀왔다.

들머리를 찾아 가는 길에 상동역 앞에서 금호마을 주민들께서 피켓시위를 하고 있어서 그 모습을 몇 장 담았다.

 

 

 

 

 

 

 

 

가는 길에 상황이 궁금하여 도곡마을 쪽으로도 일부러 들러서 내려왔다.

예상대로 도곡마을 주민들도 도곡저수지 옆 텐트에 모여서 공사장 진입차량을 지키고 계시는 중이셨다.

 

그런데 산행을 다니면서 보니까 경찰과 한전측은 주민들에게 막히는 진입로에만 의존하지 않고 별도의 진입로를 따로 확보하고 있었다.

차량출입이 불가피한 경우는 경찰들이 주민들을 격리 감금 시키면서 진출입 통로를 확보하는데 이 때마다 크고작은 '상황'이 발생한다.

따라서 이미 공사가 진행중인 곳의 농성장은 공사를 막아내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불편을 주어서 지연시키는 정도가 정확한 현실이다.

 

 

 

 

그동안 울산은 바드리와 평리 농성장에 주로 다녔기 때문에 이번에 처음 방문한 여수마을 농성장

바로 빤히 올려다 보이는 122번 철탑현장에서 공사가 한창이어서 굴삭기 소리가 들려왔다.

 

 

등산을 왔는데 들머리를 좀 알려달라고 하자 텐트에 계시던 주민분께서 친절하게 안내를 자청하셨는데 예정했던 코스는 경찰 보초들이 여지없이 막아섰다.

하는 수 없이 마을 안쪽으로 해서 나만의 방법으로 산비알을 더듬어 올랐다.

 

옥교산에서 545고지를 거쳐 말밭고개를 지나 아래화악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기준으로 많이 누비고 다녔다.

철탑공사 현장을 지나칠 때마다 한전 직원들의 저지와 경계 그리고 '보호 안내'를 받았다.

등산로를 턱하니 막아서서 공사를 하면서 이넘들은 '통행에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라는 문구가 아니라

'출입금지 이곳은 국가기간시설을 건설하는 공사현장입니다. 무단으로 들어오거나 점거시에 형법 00조에 의거 '업무방해죄'로 처벌됨을 경고합니다."로 대신하고 있었다.

엄연히 통행하던 등산로가 있었던 곳을 막고 공사를 해야 하면 우회로를 만들어 주고, 불편을 끼쳐서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해도 시원찮을 판인데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산을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까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내릴 무렵에서야 평밭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에 있는 농성움막에 도착했다.

127번 자리인줄 알았더니 129번이란다. 등산로를 따라 걷다 보니까 한참을 둘러서 돌아내려 온 것이었다.

어쨋든 이곳도 산행 답사를 마치고 내려오면서 처음 들렀다.

 

농성장에 계시던 어르신들이 따뜻하게 맞아주시며 저녁식사를 차려 주셔서 점심도 거른 상태라 맛나게 먹었다.

765kv 송전탑 건설계획이 발표되고 나서 싸워온 세월이 어느덧 8년이나 되는 평밭마을 주민들

화악산 자락아래 청정지역인 이곳에 얼마 안되는 주민들이지만 가장 흔들림없이 싸워오신 이야기를 들었다.

더도 덜도 말고 이곳만큼만 주민들이 뭉쳐서 싸운다면 지켜내지 못할 마을이 없을 것 같다.

 

이어서 129움막으로 이동해서 전설적으로 싸우고 계신 밀양할매들께 '정신교육'을 받았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젊은 내가 정신상태로는 할매들에게 배울 점이 많았다는 뜻이다.

17살에 막내 며느리로 시집왔으나 시어른께서 야물게 보셨는지" 대대로 물려 온 땅을 네가 지켜라" 고 말씀하신 유지를 끝까지 지켜내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우신다는 할머님

 

 

산중 움막이지만 다행스럽게도 근처 농가에서 전기선을 끌어다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러나 한전측에서 전기를 나눠주는 농가에 대해 단전협박을 하고 있어서 언제 끊길지 모르는 상태라고 한다.

추워지는 날씨에 고령의 노인들에게 최소한의 인도적 배려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비열한 것인지 다급한 것인지...ㅠㅠ

 

현재 할매는 경찰의 출석요구서를 받은 상태다.

겁나지 않느냐고 여쭈었더니 "살만큼 살았고 죽음까지도 각오한 마당에 감옥 가는게 뭐 두렵겠냐"고 담담히 말씀하신다.

생사를 초월한 의연한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산전수전 다 겪어 왔다고 자부해 왔던 나자신을 돌아보면 그렇지 못했음을 실토하지 않을수 없다.

남들 보기에는 씩씩하고 용감해 보였을지 모르나 고비마다에서 가능하다면 피해가고 싶었고, 두려움도 있었다.

봇물 터진듯 이야기를 풀어가시는 78세 할머님 곁에서 먼저 자리를 깔고 누우시는 할머님 연세는 85세라고 하셨다.

 

그럼에도 경찰과 한전의 회유 협박에 굴하지 않는 할매들을 보니 존경스럽고 마음이 숙연해 졌다.

 

일정상 하룻밤을 묵기 위해서 아랫움막으로 옮기려고 일어서는데 움막천장에 걸쳐있는 밧줄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밧줄이 아니라 올가미였다!

여차하면 목숨줄이라도 걸고 지키겠다는 결사항전의 올가미를 보니 다시한번 마음이 숙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