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내린 해미읍성 (2)
2016. 1. 24. 일. 한반도 중심부를 기준으로 동쪽은 맑음, 서남쪽은 대설
새벽4시 정각에 충주를 향해서 출바알~~~
기록적인 한파로 전국이 꽁꽁 얼어붙은 날씨임에도 꼭두새벽에 이 먼곳으로 향한 이유는 단 하나
혹시나 충주댐 주변의 환상적인 상고대를 만날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였다.
새벽이라서 거칠것 없는 고속도로를 씽씽달려 목적지가 다가올수록 높아지는 불길한 예감
그간에 터득한 경험과 섭렵한 상식을 토대로 상고대가 맺히기는 틀렸다는 예감이 점점 확신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창밖의 기온은 영하 17도를 가르킨다.
긴 터널 안에서 영하 5도까지 쑤욱 올라갔던 기온이 터널 밖으로 나오자 1~2도씩 뚝뚝 떨어지며 순식간에 17도까지 떨어지는 걸 보니 과연 춥나보다.
얼마나 추운지 간을 보기위해 창문을 잠깐 열어보기도 하고, 휴게소에서 외투를 안걸치고 나와보기도 했지만 그닥 실감은 나질 않는다.
예상시간에 맞춰서 목적지 도착했으나 불길한 예감이 에누리없이 적중하니까 참으로 허무하고 머쓱했다.
그냥 돌아가긴 그렇고 이제 뭐하지? 꿩대신 닭이라 했는데 닭잡으러 어딜 가지?
일단 아침식사부터 해결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올겨울 울산에서는 눈구경 제대로 못했는데 이참에 폭설내린다는 남도쪽으로 내달릴까?
그치만 호남지역이나 서해안까지 가려면 너무 멀리 돌아가는 거리이기는 하다.
눈길에 도로상태가 어떨지도 모르고... 동행한 **벗님은 기대감과 염려 사이에서 망설인다.
도전을 즐기는 편인 나는 이런 상황이 닥치면 가서 부딪혀 보자는 신념의 소유자다.
가더라도 도로사정 및 접근성이 좋으면서 설경이 좋은 곳이 어딜까를 고민하다가 서산 해미읍성이 떠올랐다.
마침 **님도 해미읍성을 가본 적이 없다면서 호남보다는 상대적으로 멀지 않다고 하니까 솔깃해 한다.
까잇거 가 보입시다, 해미읍성을 향해 기수를 돌려 고고싱~~~!
서해안고속도로에 접속하여 서해대교를 지나 당진땅에 들어서자 눈발이 휘날리며 고속도로 상태가 점점 눈길로 변했다.
엉금엉금 기어가듯 하는 구간을 지나면서 보니까 방금 전에 일어난 접촉사고로 차량 두대가 반파되어 나뒹굴고 있다.
생생한 사고 현장을 목격한 **님이 걱정스런 얼굴로 '그냥 돌아가는 것이 좋겠지요?' 내게 동의를 구한다.
"그럽시다." 말로는 흔쾌히 동의를 하면서도 속셈은 따로 있었다.
"돌아가려해도 다음 분기점(당진-대전간) 까지는 이대로 가야 합니다" 그대로 직진이다.
실은 그 때의 도로사정은 간뎅이가 부어있는 나 조차도 팔과 다리에 잔뜩 힘이 들어가고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태였다.
그렇지만 긴장과 걱정스런 마음과 달리 길가에 펼쳐지는 설경은 동화속의 풍경처럼 환상적이다.
날씨도 변덕이 심해서 눈보라가 잠시 그치고 하늘이 보이는가 싶기도 하고 제설작업이 잘 된 곳은 노면이 드러나기도 한다.
바라던 대로 잠깐씩 날씨가 호전되고 도로사정도 조금 나아지자 속셈을 드러냈다.
"여기까지 왔는데 가는데까지 가 봅시다."
**님도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을텐데 기대감도 있고 나를 신뢰하는 까닭에 내 의견에 동의한다.
그렇게 해서 10시경에 해미읍성에 도착했다.
전혀 예정에 없던 꿩대신 닭으로 선택된 해미읍성은 닭의 역할을 기대이상으로 보답했다.
몇 번이나 와 본 곳이지만 나도 설경은 처음이고, 무엇보다 **님이 만족해 하니까 비로소 마음이 가벼워진다.
추위도 잊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사진을 찍다보니까 세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근처 식당에 들러 소머리국밥으로 점심식사를 해결하고 귀로에 올랐다.
눈길이 끝나고 고속도로에 올리자 긴장이 풀리고 피로감에 졸음이 밀려온다.
운전대를 념겨 줬더니 본인 차량이어서 익숙하기도 하지만 **님은 운전실력도 완전 베테랑이다.
이후 교대도 안하고 꼬박 세시간을 달려 예정시간에 에누리없이 도착하는 것으로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