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동아리/인생이모작

나의 노후대책- 적게쓰고 살아가기

질고지놀이마당 2018. 1. 14. 17:02


감사한 마음으로 둥지를 틀게 된 3m * 4m쪽방

어느정도 짐정리를 마치자 그런대로 사람사는 방 모습이 갖춰졌다.

책상, 컴퓨터, 옷장, 서랍장, 옷걸이, 이불... 무소유의 삶이라고 말하기에는 이 조차도 사치일 것이다.

돌아보니 단칸 셋방살이로 시작하던 신혼초에도 이보다 별반 나은 것이 없었으니 초심으로 돌아왔다 생각하면 그만이다.

하늘 가리고, 비바람 추위 막고, 발 뻗어 누울 공간 있으니 이만하면 감사한 조건 아닌가~^^*


사람들이 노후대책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돈이다.

대개는 돈만 있으면 노후대책도 다 해결될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물질만능으로 통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주 틀린말은 아니다.

하지만 돈 외에도 건강이 받쳐줘야 하고, 적당한 일과 취미도 있어야 하며, 함께 가는 배우자와 친구도 필요하다.


필자는 38년 넘게 재직했던 회사에서 정년퇴직 직전 3년간 퇴직프로그램 교육운영 실무를 담당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성공과 실패 경험사례와 이론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남들은 나를 향해 인생이모작 준비를 가장 확실히 했을 것이라고 예단을 하는데 실상은 전혀 그 반대다.

이론상으로 알고 있는 것과 실제 퇴직준비는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퇴직지원프로그램을 맡으면서 비로소 체계적인 퇴직준비의 필요성을 깨달았지만 물적토대(돈)가 완전히 허물어진 상태였다.

정년퇴직까지 남은 기간 3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었지만 수입의 대부분을 선거빚 갚아야 하기 때문에 물적토대를 쌓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없는 돈이 갑자기 생기는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벌 자신도 없으므로 나의 퇴직대책은 최대한 적게쓰며 살아가는 것으로 정했다.

그리하여 정년퇴직까지 남은 3년동안을 지출을 최대한 줄이는 초긴축 훈련기간으로 생활했다.


금융기관 채무 원리금 공제 후에 월 1백만원 남짓한 급여(수령액 기준)를 가지고 혼자 생활비와 용돈을 해결한다는 목표를 정했다.

그런데 생활비와 용돈은 내 의지로 줄일 수 있었지만 의지만으로 줄일 수 없는 것이 세 가지 있었으니 

시민사회단체 및 각종 모임 회비, 경조사 부조금, 차량유지비 등이었다.

더욱이 아내 생활비와 보험료 공과금 등 매월 급여만으로는 감당이 안되는 부족한 금액은 격월로 지급되는 상여금으로 충당했다.

각종 회비는 재직기간 동안에는 차마 끊을 수 없었고, 경조사는 나름 줄이려고 노력했지만 그래도 불가피한 경우가 많았다.

차량유지비 지출을 줄일 수 없었던 것은 아내와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까 생활비와 주거비를 아껴서 교통비로 충당하는 꼴이 되었다.


품앗이인 경조사비의 경우 도움을 받았으면서 제대로 인사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서 이 기회를 빌어 심심한 양해를 구한다.

또한 옴짝달짝 할 수없는 금융기관 채무가 우선이다 보니까 선거당시 '펀드'라는 이름으로 도움받은 지인들의 채무가 아직도 제법 남아있다.

시장선거 단일화 경선에 패배하여 내가 빚쟁이로 전락하자 세상인심은 딱 두갈래로 갈라졌다.

자기 돈을 먼저 받으려는 쪽과 자기 돈은 천천히 갚거나 안 갚아도 된다는 쪽.

살던 아파트 매각과 퇴직금 중도청산을 통해서 급한 불은 껐지만 받지 못할 수 있음에도 기다려줌을 택한 지인들의 채무는 아직 그대로 남았다.

그 은혜 잊지않고 어떻게든 갚아나갈 생각이다. 정 안되면 농작물을 직접 가꾸어서 그 수확물이라도 현물로 공급하더라도...


지난 3년동안 훈련과정을 거쳐 이제는 실전이다.

급여에서 공제하던 사내 모임회비는 자동으로 종결처리되고 자동이체 되던 시민사회단체 회비는 월 1만원 한도로 조정할 것이다.

의식주는 물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회비와 경조금 차량유지비를 최대한 줄여서 월 1백만원 이하로 생활하겠다는 각오다.

이처럼 경제적인 노후대책은 초긴축 재정을 통해 해결하고 건강한 몸과 정신을 단련하여 인생이모작 밑천으로 삼기로 작심했다.

내 몸이 건강하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초기 8개월간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는 무슨 일이든 준비하고 도전하는 기간의 물질적 토대다.

그리고 만 62세부터 수령하게 될 국민연금은 혼자 떨어져서 살고있는 아내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퇴직을 하면서 가장 시급한 첫번째 숙제는 주거문제 해결이었다.

당장 사택을 비워줘야 하는데 전세방을 얻을만한 목돈은 없고, 보증금이 적은대신 월세를 내는 원룸을 얻기에는 지출부담이 너무 컸다.

2014년 울산시장후보로 출마했다가 고스란히 떠맡게 된 선거빚을 해결하느라 중도청산을 했기 때문에 내가 받게 될 퇴직금은 3년치에 불과하다.

채권자들에게 대단히 죄송하지만 얼마 안되는 그 돈이나마 경제적 자립이 안되는 아내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써 IRP계좌(퇴직연금)로 신청했다.

(아내는 내가 해고됐던 94년 이후의 퇴직금은 남아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ㅠㅠ)


이처럼 주거대책이 막막한 상황이었음에도 어떻게든 길이 열릴 것이라는 근거없는 믿음이 있었다.

정 안되면 컨테이너 집이든, 비닐하우스 임시 거처든 내 한몸 의탁할 곳 없으랴 하는 배짱이었다.

그런데 퇴직을 불과 한달도 채 남지않은 상황에서 신기하게도 길이 열렸다.

함께 퇴직하는 동갑내기 30여명이 공동체를 준비하면서 얼마간씩 출자해서 사무실 겸 모임공간을 얻었다.

거기에 쪽방이 하나 달려 있었는데 내 사정을 알게 된 회원들이 그 쪽방을 내가 쓰도록 배려를 해 준 것이다.~♡♡

 

엄동설한에 비닐하우스의 각오로 출발하려던 나에게 쪽방은 대단한 축복이다.

샌드위치 판넬로 두 벽을 치고, 문을 달고 전기패널을 까는 리모델링 비용으로 125만원이 들었다.

천장 도배와 장판은 방을 내준 모임의 친구들이 깔아줬다.

이제부터 근거리 교통수단으로 이용할 자전거도 말끔하게 수리했다.


이처럼 나의 인생이모작 밑천은 건강한 몸과 도전정신이다.

나의 노후대책은 첫째도 둘째도 건강을 밑천삼아 최소한의 지출로 살아가기다.

돈이 없다는 것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부끄럽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끝>


<사족으로 남기는 이야기>

인생의 상당기간을 공인으로 살아온 처지에서 돈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두 가지 평가가 있더라.

첫째, 내가 정말로 돈이 없다는 걸 알게 됐을때의 대체적인 반응은 '허~저놈아 나보다 인생 헛 살았네' 깔보면서 자신이 이룩한 성취에 대해 위안을 삼는다.

나는 누군가에게 비교우위를 통한 성취감과 우월감을 주는 것도 보시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것 같다.

둘째, 내가 만약 재산을 많이 모은 재력가가 되었다면 앞에서야 듣기좋은 말을 할지 모르지만 등 뒤에서는 '다 도둑놈들' 이라고 손가락질 할 것이다.

나는 적지않은 공직생활 하면서 부정 비리 축재 하지않고 올곧게 살아왔다는 자기위안을 삼으면 된다.


 아래 사진은 약 3m * 4m 쪽방 한 칸에 동반자가 된 살림살이를 정리하는 과정

  

근거리 이동시 발이 되어 줄 자전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