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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스런 동물들의 진실/ 펀글

질고지놀이마당 2007. 6. 1. 16:38
뻐꾸기와 찌르레기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기르게 하는 ‘탁란’으로 유명한 새다. 알을 대신 맡기는 것도 모자라 이들은 이보다 더 파렴치한 행동도 한다. 자기 알이 잘 자라고 있는지 조사해서 자기 새끼가 없는 보모 새의 둥지를 초토화한다. 탁란을 알아채고 버린 보모 새에게 보복행위를 자행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들을 일명 ‘마피아 새’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조직폭력배(조폭)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동물은 이들 말고도 많다. 단, 조폭이 인간의 특수 집단인 만큼 이들의 행위도 인간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 그렇단 말이다. 조폭의 세계라면 ‘보복’ ‘배신’ ‘잔혹’ ‘불법’ 등의 단어가 떠오르는데 이런 특징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먼저 ‘보복행위’의 대표로 나는 고양이를 꼽고 싶다. 고양이는 자기를 해코지 한 사람과 그 행위를 잘 기억해 뒀다가 보복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가령 쥐를 물어다 신발 옆에 놓는다든지 깔끔한 곳에 자기의 배설물을 묻힌다든지, 화단을 파헤치는 조금은 귀여운 복수 행각들을 펼친다. 에드가 알란 포우의 ‘검은 고양이’란 소설도 이런 고양이의 보복행위를 잘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영리한 동물들의 이런 행태는 사실 두려운 상대에 대한 일종의 방어 작용으로 나온 것이다. 고양이가 쥐를 물어다 놓는 행위는 바꿔 생각하면 잘 봐달라는 뇌물로도 볼 수 있다. 스컹크가 방귀를 뀌었다고 복수를 했다고 말하지는 않지 않는가?

조폭의 다른 특징인 ‘배신’은 어쩌면 동물세계에선 널려있는 현상이다. 그야말로 그들은 배신을 밥 먹듯이 한다. 숫사자가 힘이 약해지면 그 동안 잘 지내오던 암컷들은 철저히 숫사자를 외면한다. 암컷들은 자기 자식을 모두 물어 죽이고 새로운 왕으로 입성한 다른 숫사자에게 즉각 애정을 바친다.

장년이 되어 독립해 나간 사자 새끼들은 부모와 다시 만나면 이미 그들은 서로 적수일 뿐이다. 반갑다고 포옹해 주는 일은 동물세계에선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설령 동물원에 함께 사는 등 어쩔 수 없이 같이 살더라도 장성한 자식들은 어느 순간 싸움의 대상이나 연적이 되어버린다.

사자에게 잡힌 동료가 잡아먹히는 걸 무심히 지켜보는 얼룩말 떼를 보면 이들은 도대체 동료애라고는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것 역시 한정된 자원과 공간에서 서로가 살아남기 위한 필연의 생존 전략일 뿐이다. 그래서 신은 그들에게 ‘배신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남기지 않는 선택적인 망각(일종의 기억상실)을 주었다.

동물들은 종종 조폭보다 훨씬 ‘잔혹’할 때가 있다. 호랑이나 사자는 아픈 동료가 있으면 처음에 먹이도 양보해 주고 아파서 화를 내도 무심히 받아주지만, 동료의 병이 중해 거의 죽음에 이르면 서슴없이 물어 안락사 시킨다. 이들은 인간의 지난한 안락사 논쟁에 일찌감치 종지부를 찍어 놓은 것 같다.

약한 새끼를 낳은 어미는 그 새끼를 살리려는 노력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동물에게 ‘육아살해’는 꽤 보편적이다. 그리고 많은 동물들이 그 죽은 새끼를 먹기조차 한다. 대표적으로 토끼가 자기 새끼를 먹는 현상은 토끼를 처음 기르는 사람들에게 아노미를 일으키게도 한다. 그들에게 죽은 새끼는 더 이상 새끼가 아닌 하나의 단백질원으로 보이는 것도 같다. 심지어 모성의 상징인 원숭이들조차 죽은 새끼를 종종 먹는다.

그런데 이런 새끼를 먹는 현상에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가령 초식동물인 토끼가 특이하게 이때만 육식을 한다든지 개코원숭이가 자기 새끼를 먹을 때 꼭 먹을 것도 얼마 없는 머리만 먹고 나머지는 남겨둔다든지 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일부 오지 원주민사회에서 조상의 영혼을 간직하려고 인육을 먹는 장례의식을 연상케 한다.

조폭은 ‘법’을 어기지만 동물사회는 아예 명문화된 법이 없다. 법이 없는 동물사회 질서는 어떻게 유지될까? 불문법이자 관습법으로 아주 잘 유지된다. 그러나 이 법이 어이없이 깨지는 경우도 있다.

우리 동물원(전남 광주 우치동물원)의 일본 원숭이에게 법은 ‘위험하니 절대 철창너머로 나가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새끼들은 철창 틈을 빠져 나와 밖에서 놀기도 한다. 양 새끼들은 다 자란 양이 감히 접근하지도 못하는 얼룩말의 등에서 신나게 미끄럼을 탄다. 사람들과 비슷하게 새끼들은 일정 나이가 찰 때까지 간단한 위법을 해도 용서되며 이들의 천진난만한 모험행동들이 바로 경직된 조직사회에 획기적인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지금까지 다소 무리해서 동물들의 문화를 조폭의 것과 비교해 보았지만 결코 그 둘은 비교대상이 못된다. 이합집산과 권모술수가 성행하는 조폭 사회와 달리 오랜 역사를 통해 최선의 것들을 받아들인 게 바로 이런 동물의 조직문화이다. 사람 역시 원시자연에 나가면 아마도 이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 또한 확실하다. 동물들에게 아무 이유 없는 폭력과 죽음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
(글 : 최종욱 야생동물 수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