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 2008. 10. 4(토) 흐림
누가 : 현자 2공산악회 백두대간팀 동행
코스 : 삽당령- 닭목령- 고루포기봉-능경봉-대관령(약 25km 10시간)
밤 10시에 탑승하여 무박산행 출발지인 삽당령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약 3시간반쯤 세상모르고 잠을 잤다.
7번 국도를 거쳐 삽당령으로 오르는 길이었으니 굴곡이 심하고, 뒷좌석이어서 무척 흔들렸을텐데도 모를 정도로..
하긴 아침에 산악도로를 좀 뛰고, 테니스 동호회 월례회를 다녀 온 뒤니까 피곤한 것이 정상이다.
다 왔다는 소리에 깨어보니 다들 배낭을 챙기고 신발끈을 조이느라 부산하다.
삽당령에 내려서자 짙은 어둠에 안개까지 자욱한 한밤중이다.
다녀보면 산방마다의 전통이 있는데 '2공산'은 출발준비는 각자 알아서 하고, 출발 전에 기념사진 한장 찍은 다음에 대장 인솔하에 조별로 출발한다.
03:20 삽당령 출발

대간산행팀에 게스트 참가자는 필자 혼자.
그러나 같은 회사 직원들이고 전에도 몇 차례 동행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다들 편하게 대해주고 필자도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는 산방이다.
한동안 어둠과 안개로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운 산길을 걷다가 문득 하늘을 보니 별이 총총 보인다.
날씨가 맑아지나 보다 생각하니 혹시나 일출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님 일출은 아니어도 대간길의 멋진 조망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어 오른다.
대신 밤 이슬이 흠뻑 내려서 바지가 축축히 젖어든다.

하지만 이동하는데 따라서 날씨는 변화가 심했다.
안개지대(맺힌 이슬이 없음)와 이슬이 많이 맺힌 지대를 몇 번 반복하는 동안에 날이 샜다.
날이 훤하게 밝아왔지만 안개가 짙어서 해가 뜨는지 지는지 느낄 수가 없다.
땡벌 습격 소동
이동 중간에 작은 소동이 있었다.
첫 휴식을 취하려고 자리를 잡았는데 그 곳에 벌집이 있었던 모양이다.
누군가 "벌이다!" 소리치며 후다닥 뛰쳐가는데 다들 장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전상황, 여기저기서 비명에 가까운 외침과 함께 벌에 쏘이는 아군피해가 적지아니 발생했다.
캄캄한 밤중인데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른채 들구뛰기 급급한 상황이었다.
자리를 피해 부어오른 손과 눈두덩이를 확인하며 피해상황 점검 및 용케 피해를 당하지 않은 사람은 무용담을 나누느라 땡벌한테 습격당한 사건은 왼종일 화제였다.
특히 3조가 집중적인 피해를 당하는 바람에 우스개소리로 '3조는 땡삐조'라 부르며 희희덕 거렸다.
녀석들은 어두운 밤인데도 주로 안면을 공격했다.
필자 역시 그 뒤에 날이 샐 무렵, 왼쪽 눈가에 두 방을 쐬어서 만 하루가 지나 산행기를 쓰는 현재까지도 부기가 남아있다.
07:30 화란봉을 지났다.
닭목령으로 향하는 구간에 쭉쭉빵빵 곧게 뻗은 소나무 숲을 통과한다.
우리나라 소나무의 아름다움과 곧은 절개를 한껏 보여주는 풍경이다.
당산나무형, 낙락장송형, 그리고 한 몸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수형(樹形)까지 다양하다.


연신 감탄사를 토해내던 일행 한명이 아름드리 소나무를 보듬어 본다.
늠름하게 이땅을 지켜 온 소나무야, 사랑한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옅은 안개구름이 드리운 소나무 숲길이 끝나는 곳에 닭목령이 기다리고 있었다.
왜 닭목령이라 했을까? 이곳 지형이 닭모가지를 닮았나보다고 두런거리는 우스개소리가 들려온다.
08:12 닭목령 도착
이곳 닭목령 길가에서 산개하여 아침식사를 한 장소가 어느 집 마당인 셈이었다.
돌연 현관문이 열리면서 주인으로부터 매몰찬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인심 참 야박하게 변했구나 싶으면서 한편으로 오가는 산꾼들 중에 민폐를 끼친 이들이 많았으니 도매금으로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이란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아침부터 싫은 소리를 들었건만 2공산 회원들은 군소리 없이 자리를 옮겨주고, 넋살좋게 술 한잔 받으시라고 웃음으로 대한다.
(2공산방 사람들 참 순진하고 착하네 ^^)
2공산 산악회는 이동뿐만 아니라 식사도 조별로 하는, 질서와 절도가 느껴지는 산방이다.
안개구름에 빛을 가리워서 해가 달덩이처럼 변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08:55 출발
닭목령에서 출발한 대간길은 한동안 임도로 이어진다.
대간길에서 구간 전체가 이 구간만큼 편한 길이 또 있던가 싶을 정도다.
여전히 안개가 시야를 가리고 있으므로 찍사에게 찍힐 거리는 야생화밖에 없다.
몇 군데 채소밭에는 무우를 수확한 것 같은데 버렸거나 수확을 포기한 무우가 제법 많다.
아마, 이곳이 강원도 산간이 아니라면 오가는 길손들이 이게 왠 재수냐고 주워담아 갔을 정도로 아까운 무우들..(하긴 버리지도 않았겠지)


무우밭과 민가가 끝나는 곳까지는 첩첩산중 험한 산길이 아니라 여늬 시골을 지나는 기분이었다.
구절초, 용담 등 가을꽃무더기가 자꾸만 발길을 잡는다.
꽃도 희귀성이 있어야 대우를 받는 법, 구절초는 이쁘기 그지 없건만 너무 흔해서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수리취, 열매를 맺은 모양새가 대꼬바리를 닮았다.


한쪽은 갈참나무숲, 한쪽은 탁트여서 전망이 좋은 길을 한동안 걷는다.

이번에는 왼쪽편으로가 훤하다. 벌목을 한 것일까?
단풍으로 갈아입는 잡목들 중간에 듬성듬성 남겨진 소나무의 자태가 더욱 도드라진다.



09:55 왕산제1쉼터를 지났다.
숲은 다시 활엽수림으로 바뀌었다.
기후 온난화 및 생태환경 변화로 우리나라에서 소나무숲을 얼마나 더 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코스도 편하지만 오늘 날씨는 전망이 없는 아쉬움 대신에 산행하기에 덥지도 춥지도 않은, 축복받은 기온이다.
10:25 왕산 제2쉼터를 지나고 고루포기봉을 향해 순항을 계속하는데 안개가 좀 걷히고 반짝 햇살이 퍼졌다.
철탑이 있는 고지를 오르는 비탈길에서 독사(살모사?) 한마리가 햇볕을 쬐러 나왔나 보다.
그런데 이녀석 도망가는 길이 전혀 바쁘지가 않다.
어그적 거리며 조금 가다가는 멈춰서 낼름거리고, 스틱으로 위협을 가하자 조금 가다 또 멈춘다.
맹독을 지녔다고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인지?

제법 단풍이 들어서 눈을 즐겁게 한다.
가을 가뭄으로 나뭇잎이 말라서 단풍이 그리 깨끗하지는 않지만 형형색색 변화시키는 자연의 섭리는 어김이 없다.


갈 길 바쁜 산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가을꽃
투구를 쓴 모습이라고 꽃 이름이 투구꽃이다.

이건 오리 두마리가 마주보는 형상인데 꽃 이름을 알았었는데 다시 도감을 찾아봐야 하겠다.



11:02 고루포기봉(1,238m)을 지났다.
이 구간은 강릉시 관할인데 군데군데 산길정비를 하고 있었다.
아마 국립공원도 아닌 곳의 백두대간길을 이만큼 정성스레 정비하는 곳도 드문것 같다.
도구를 짊어지고 힘들게 산길을 올라와서 기계장비의 도움없이 오로지 인력에 의지해서 고된 노동을 하시는 작업자들께 감사를 전한다.
빗물에 산길이 파이지 않도록 수로 하나도 신경쓰고, 아래 사진처럼 멋지게 나무를 보호하는 돌담을 쌓아 놓기도 했다.

이번 삽당령~대관령 구간 산행에서 볼 수 있었던 전망은 이 정도가 전부였다.
고루포기봉을 지나 능경봉으로 향하는 길에.




12:40 능경봉(1,123m)에 올랐다.
항공지도를 이용한 등산안내판이 백두대간길 대관령~닭목령 구간을 한눈에 정확하게 보여준다.

구 대관령 너머로 산자령으로 향하는 북쪽 풍경

13:05 샘터 도착

대관령준공비가 서있는 날머리로 나서기 직전에 하얀투구꽃이 눈길을 끈다.



자연이 채색한 한폭의 수채화, 가을 느낌이 물씬 풍겨나는 색조다.


13:15 고속도로준공탑에 내려섰다.
삽당령을 출발한지 꼭 10시간에서 5분이 빠진다.(선두에서 걸은 필자 기준)
도착하는 순서대로 기념촬영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내려선다.
옛 대관령 휴게소는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세워지고(실은 이곳 발전기는 전시용이다.) 신 재생에너지 전시관도 문을 열었다.
구 대관령 휴게소로 내려서는 길, 드디어 긴 여정을 마쳤다.

2공산의 하산주는 알뜰살뜰 셀프형이다.
버스에 싣고 다니는 가스버너에다 오뎅과 라면을 끓여서 막걸리를 곁드린 메뉴로 식사와 하산주를 해결한다.
출발 준비를 하는 동안에 주변 풀밭에 자주색 크로버(?)가 눈에 띄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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