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온 날 : 2008. 11. 17 (월)/ 경주 보문단지 정년퇴직자 교육장에 다녀오면서..
을씨년스러움이 묻어나는 들녘
하늘엔 힘을 잃은 태양이 구름과 숨박꼭질하는 늦가을 오후에 진평왕릉에 들렀다.
평일 오후라 인적 드문 그곳에는 탐방객 한 명이 찬바람을 맞으며 작품사진(?)을 찍고 있었다.
뭐랄까.. 오랫동안 미뤄온 숙제를 해결한 기분이 이럴것이다.
꽤나 오래전에 읽었던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진평왕릉에 대해 높이 평가한 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글을 보면서 울산에서 지척이니까 언젠가 가봐야지 마음 먹었으면서도 여지껏 실행을 못해왔기 때문이다.
보문단지 교육장에서 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진평왕릉이 생각나서 약간 돌아오는 코스로 길을 잡았다.
'그래, 늦가을 풍경속에 보는 왕릉이 제격일거야' 라는 생각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간 진평왕릉은 예감해던 것보다 수수했다.
아니, 크고 화려함을 척도로 삼는 기준으로 본다면 초라했다.
양지바른 언덕은 고사하고 바람조차 막지 못하는 황량함.. 그 흔한 울타리조차 없이 탁 트였다.
논으로 둘러싸인 허허벌판에서 바람을 가릴 그 무엇도 없는 능 주변에 노송 한 그루가 수문장처럼 뎅그러니 서있다.
그 외에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고목이라고는 왕버들 나무 몇 그루가 전부였다.
신라26대 왕이자 선덕여왕의 부왕이라는 사실, 재위기간도 오래고 업적도 적지 않다는데 왜 이다지 수수할까?
대부분의 왕릉은(아니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가급적이면) '명당 중의 명당'을 찾아 묘를 쓰는데 왜 하필 허허벌판에?
진평왕릉을 둘러보면서 궁금증은 꼬리를 문다.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평범한 눈에는 보이지 않고, 생각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
업무차 지나는 길이라서 짧은시간 휭~하니 한바퀴 돌아보고 사진 몇 컷을 찍고 돌아오는 내내 골똘히 생각을 해 보아도 모르겠다.
하긴 전혀 문외한이 전문가들의 몫을 고민한다고 풀어질 숙제가 아니다.
그저 보이는대로 보고 느껴지는대로 느끼면 되는 필부 아닌가?(문화유산 답사기에 그 답이 있을텐데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무리 제지하는 시설이 없기로서니 봉분까지 올라 갈 용무가 뭣이 그리 많길래 반들반들 길까지 나있단 말인가!
왕릉이라 이름 붙여진 묘 중에서 이런 대접을 받는 곳은 없을 것 같다.
묘 주변은 대개 수백년은 됨직한 노송이 둘러 싸고 있는데 이곳에 고목으로 꼽을만한 나무는 버드나무(왕버들?)가 주류다.
어쩌면 논 가운데 위치한 왕릉 주변은 늘 물기가 많은 습지상태로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던게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 생각해서 그런지 정비한지 얼마 안돼보이는 능 둘레를 따라 인위적인 배수로를 이중으로 둘러놓은 것이 그런 추론을 뒷바침한다.
왕릉에 대한 소개는 실소가 나올 정도로 간략하다.
봉분의 높이나 크기보다 재위기간 업적을 한 줄이라도 더 설명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부족한 정보는 인터넷 검색을 해서 보충할 일이다.
허허벌판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오래도록 사진을 찍는이는 무엇을 담으려는 것일까?
'전문가' 다운 분위기를 풍기는 저 이는 사진가 같기도 하고, 역사가 같기도 했다.
잎새를 모두 떠나보낸 나목으로 인해 왕릉 분위기는 더욱 소박하고 스산하게 느껴졌다.
하늘엔 바람이 구름을 이리저리 옮겨가면서 시시각각 다른 풍경을 연출하는 가운데 구름과 태양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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