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진(記)/국내여행

영월 동강 당일코스 일정표

질고지놀이마당 2009. 9. 9. 15:29

1. 이동 동선

울산-(언양 혹은 경주)고속도로(경부-중앙)-남제천IC-영월/ 약 4시간 내외(대체로 소통 원할, 휴게소 휴식시간 좌우)

 

2. 현지 탐방코스 및 동선

청령포-장릉-(점심식사)-동강레프팅-고씨동굴-한반도지형-귀울

 

3. 이동 시간 계획표

06:00~  울산(염포) 출발-청령포도착 예정 10:20

                 (4시간 목표에 출발지연, 중간 경유, 휴게소 늑장 등 감안 20분 추가^^*)

10:20~11:10 청령포 탐방(거룻배 기다림과 강 건너 오가는 시간, 단종유배지 돌아보는 시간 등 약 50분)

11:10~12:00 장릉으로 이동 및 장릉 탐방 (청령포에서 가까운 장릉 앞에 대형식당과 연계하면 이동 및 식사시간 절약)

12:00~        장릉 가까운 곳에서 점심식사

12:30~        레프팅 장소로 출발

12:50~13:30 레프팅 업체 미팅 및 문산 나루터까지 이동하여 레프팅 출발준비

13:30~16:00 문산 나루에서 섭새 나루 구간 레프팅 도착

16:00~16:30 잠시 휴식 후 빠르게 이동준비하여 고씨굴로 이동

16:30~17:20 고씨동굴 탐방 (개장시간 09~18시, 17시전 입장 해야 함-사전 확인 필요)

17:20~18:00 고씨굴에서 한반도지형이 있는 선암마을까지 이동 약35km(35~40분 소요) 

18:00~18:30 한반도지형 탐방 마치고 귀로에(제천 방향이어서 동선 상으로 무리가 없음)

 

* 운영진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

계획표 대비 시간이 많이 늦어지면 고씨동굴 탐방은 생략하고 곧장 선암마을로 이동 검토.

아래 건찾사 탐방 당시(7.11~12)의 동선과 소요시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자료 : 건찾사 첫날 일정>

 06시 동천 출발-10:40 청령포 도착-11:10 청령포 출발-13:00 점심식사 및 장릉탐방 마치고 숙소도착(예약 차질로 30분 정도 대기)

13:30 문산 나루터로 출발-14:10 이동 및 체조 보호장구 착용 후 레프팅 출발, 강물이 많은 편이어서 레프팅은 예상보다 빨리 도착

숙소로 내려와서 잠시 휴식겸 옷 갈아입고 선암마을(한반도 지형) 탐방 17:20~17:40(주차장부터 약 800m 도보이동)-선돌 18:10

 

단, 그 때와 달라진 조건 감안하세요.

교육팀원들은 시간 약속만은 잘 지켰지요. ^^* (출발시간 엄수)

그러나 태화-공업탑-법원-신복-언양 경유하고 휴게소에서 다소 길게 휴식 취하느라 약 4시간 반 소요

염포에서 곧장 경주IC로 가면 20분 정도 시간 단축 예상

강물이 불어서 청령포 탐방 못하는 바람에 시간 단축(뒷 차 기다리고 촬영 등 약 30분 머무름)

점심식사 일찍 마치고 장릉탐방 및 이동은 신속 진행됐으나 숙소에 도착해서 레프팅업체 미팅 관련 불필요한 시간 낭비

해가 많이 짧아졌기 때문에 저녁시간 활용이 당시보다 불리하고 강물도 당시보다 줄었을겁니다..

고씨동굴 입장시간 감안하여 전체 일정 빡시게 운영하고, 늦어도 18시 전에는 한반도 지형 전망대 도착 하세요, ^^*

 

시간만 잘 지켜 준다면 당일 코스로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일정입니다.

~~~~~~~~~~~~~~~~~~~~~~~~~~~~~~~~~~~~~~~~~~~~~~~~~~~~~~~~~~~~~~~~~~~~~~~~~~~

 

건찾사 탐방 계획을 세우며 작성한 참고자료

 

 

 

 

 

 

 

 

 

 

 

 

 

 

 

 

 

 

 

 

 

 

 

 

다음은 미리 가보는 탐방 안내로서 영월군에서 소개하는 '영월의 명소' 해설 인용

 
 
 
    

 수려한 절경으로 인해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 청령포에 얽힌 단종의 비화를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단종의 유배지로, 1971년 강원도 기념물제5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상왕으로 있다가,그 다음해인 1446년 성삼문 등 사육신들의 상왕복위의 움직임이 사전에 누설됨으로써 상왕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중추부사 노득해가 거느리는 군졸 50인의 호위를 받으며 원주, 주천을 거쳐 이곳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청령포는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 수없는 마치 섬과도 같은 곳이다.

단종은 이 적막한 곳에서 외부와 두절된 유배생활을 했으며, 당시에는 이곳에 거처할 수 있는 집이 있어 호장 엄흥도는 남몰래 밤이면 이곳을찾아 문안을 드렸다고 전한다.
그 해 뜻밖의 큰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 되니 단종은 영월 동헌의 객사로 처소를 옮겼다.

지금 청령포에는 단종 유배시에 세운 금표비(禁標碑)와 영조때 세운 단묘유지비(端廟遺址碑)가 서있어 옛일을 전하고 있다. 또한 망향탑, 노산대, 관음송이 있다.




2000년 4월5일 단종문화제와 때를 맞춰 건립된 단종어가는 승정원일지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나름대로 재연했다.
어가에는 당시 단종이 머물던 본 채와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사랑채가 있으며 밀납인형으로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가 담장 안에 유지비각이 위치해 있다.
이 어가는 어가 또는 적소라는 명칭에 대한 논란과 주거형태, 어가의 위치 등 여러 가지 문제로 한동안 논란을 겪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승정원일지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재현했다.







이비는 총 높이 162cm로 밑으로 1단의 화강석 비좌 위에 오석으로 된 비신을 세우고
전면에는 「端廟在本府時遺址」(단묘재본부시유지)라 새기고
후면에는 「皇命崇禎戊辰紀元後三癸未季秋泣涕敬書 令原營 石」(황명숭정무진기원후삼계미계추읍체경서 영원영수석)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 비석은 전면 측면 각 1간의 비각안에 보존되어 있다. 
이 비각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금표비가 있다.







이 비석에는 「東西三百尺 南北四百九十尺 此後泥生亦在當禁」(동서삼백척 남북사백구십척차후니생역재당금)이라 기록되어 있다.
청령포에서 동서로는 삼백 척을, 남북으로는 사백 구십 척 안에서 금표나 금송에 대한 채취 금지항목으로 일반인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하는 의미로 세워진 것이다.










 
청령포 뒷산 층암절벽 위에 있는 탑으로 단종대왕이 유배생활을 할 때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근심속에서도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여기저기 흘어져 있는 막돌을 주워 쌓아 올렸다는 탑으로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다.










 
청령포수림지에 위치하고 있는 소나무로 단종 유배시의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1988년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되어 있다.  단종 遺址碑閣(유지비각)서편에서있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는 두 갈래로 갈라진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단종의 유배 당시 모습을 보았으며(觀),
때로는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音)는 뜻에서 관음송(觀音松)이라 불리어 왔다.

소나무 크기는 높이 30m, 가슴높이의 둘레 5m로 지상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동,서로 비스듬히 자랐다.
갈라진 줄기의 밑둘레는 3.3m, 남북 20m로 가지를 펼치고 있다.
수령은 600년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단종 유배시의 수령을 80년으로 하여 계산된 것이다.

청령포는 남한강 상류에 3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섬과 같은 곳으로 주변에는 우거진소나무의 숲이 있고, 관음송은 그 소나무 숲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영월군 남면 광천리 청령포에 위치한 이 수림지는 수십 년에서 수백 년생의 거송들이 들어 찬 수림지로 단종의 유배처를 중심으로 주위에 울창한 송림을 이루고 있다.
이 수림중에는 남송이라 불리우는 가장 큰 노송이 있는데 그 높이가 30여m나 되어 다른 노송보다 두배나 더 크며, 또 여송이라 불리우는 거송이 있는데 마치 裸女(나여)가 거꾸로 서 있는 형상인데 나무의 북쪽은 엉덩이 모양을 하였고 남쪽은 흡사 음부처럼 생겼을 뿐만아니라 음문까지 자연적으로 생겨 있어 여송임을 입증하고 있다.







청령포 바로 뒷산으로 일명 刀山이라고도 하는데 청령포에서 솟아오른 암벽으로 된 이 산은 6개의 작은 봉을이루고 있어 육륙봉이라고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육륙봉은 어찌 보면 톱날과 흡사하다.
 
         
구 분 어린이 청소년.군인 성인 비고
         
개 인 700 1000 1300 도선료포함(경노 200)
 
단 체 600 700 1100 도선료포함(경노 200) ※ 기준: 30인 이상
 
군민(개인/단체) 500/400 600/500 1000/800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와 사약을 받고 승하한 관풍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시를 남겼던 자규루, 그리고 주검이 묻힌 장릉 등에서 생생한 단종의 한과 넋을 느끼어 본다

정조 15년(1791)에 건립된 곳으로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받친 충신위(忠臣位) 32인, 조사위(朝士位) 198인, 환관군노위(宦官軍奴位) 28인, 여인위(女人位) 6인을 합하여 264인의 위패(位牌)를 모셔놓은 곳이다.

매년 한식날 단종제향후 제사를 지낸다. 


정조때 박팽년의 후손인 영월 부사 박기정이 수축한 우물로, 단종제를 올리는 한식때 제정(祭井)으로 사용했다.

일설에 의하면 보통때는 조금씩 샘이 솟았으나 매년 한식날 제사 지낼 때에는 물이 많이 솟아 올랐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정려각은 1726년(영조 2년)에 어명으로 세운 비각으로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는 정여문이다.
비석은 1833년(순조 33년)에 가필하여 같은 해에 또 다시 증축하였으며, 1876년 (고종 13년)에 고종이 증시하기를 '충의'라 하여 1879년 (고종 16년) 비석에 있는 것을 다시 고쳤다.


한식날인 단종제향때 제물을 올리는 곳으로 정자각 또는 배위청(拜位廳)이라 한다.


1698(숙종24년)노산묘를 장릉으로 추봉하고 영조 9년에 비각과 수복실, 정자각을 세웠다.

비석전면에는 "조선국 단종대왕 장릉"이라 쓰여있다.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장릉에 있는이 배견정은 장릉(莊陵)에서 능선을 타고 남쪽으로 남하하던 거북이가 머리를 번쩍 들고 맑은 하늘을 바라 보는 것같은 형상을 한 언덕위에 네모진 아담한 정자가 있으니 배견정이라 한다.

배견정은 낙화암에서 순절한 시녀들의 넋이 단종묘소를 찾아와 죽어서 두견이 되었다는 단종대왕 영혼 앞에서 울며 절하던 곳이라 하여 배견정이라 이름 지은 것으로서 이 정자는 1792년 사육신의 유일한 혈손인 박팽년의 현손인 박기정 부사(朴基正 府使)가 창건하였다.
단종을 두견새에 견주어 말하 것은 여기서 연유된다.

옛적에 중국 촉나라의 망제가 그 신하인 “요령”에게 임금의 자리를 빼앗기고 궁궐을 쫒겨나서 서선에 숨어 살면서 복권되기를 기원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끝내 객사하였다.
이에 촉나라에 돌아가지 못한 그 원귀가 새가 되어 “촉혼귀” “촉혼귀”하며 울었으므로 그 새를 두견새라 하였다고 한다.
이 새의 이름은 여러 가지로 불리워지는데 두우, 두혼, 촉혼, 촉백, 자규 등이다. 왕위를 빼앗기고 객지에서 죽은 왕의 영혼을 비유하는 말이다.


영월 장릉 경내 입구에 낙촌기적비각이 있으니 영월군수이던 낙촌 박충원이 노산묘를 찾은 일에 대한 사연을 기록한 기적비각이다.

이 비각은 1974년 5월 5일 그 후손들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1973년 성균관장 창산 성낙서가 쓴 비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단종이 폐위되어 영월로 유배되고 사육신의 참화가 일어나고 종친, 구신 등 삼족멸문의 화가 계속되니 세정은 극도로 음험할 때 단종마저 사사당하시니 엄흥도는 충성으로써 단종시신을 업어다가 황량한 산골에 암장하였다.
어제의 군왕이 오늘과 같이 참변을 당하셨으니 어찌 천도가 무심하며 금지옥엽의 영혼인들 어찌 철천의 한이 없겠느냐. 엄호장 마저 세상을 떠나니 그 묘소조차 알길이 없어 풍설속에 버려지게 되었다.
이 후로는 이 고을 군수가 도임하면 원인 모르게 죽기를 7인에 이르렀다.

중종 36년에 박충원이 군수로 부임한 즉 군리(郡吏)가 피신할 것을 권하였으나 박충원은 죽는 것은 명이라 하고 의관을 정제하고 등촉을 밝히고 단정히 앉아 있었는데 비몽사몽간에 임금의 명을 받들어 온 세사람에게 끌려가 본 즉 숲속에 어린 임금을 여섯신하가 둘러서 모시고 있었다.
임금을 꾸짖어 내다 처형할 것을 명하였으나 세 번째 있던 이가 살려두자고 임금께 아뢰어서 처형을 모면하였다.
깨어보니 꿈속의 일이 단종대왕의 일이라 짐작하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 단종묘소를 수소문함에 엄호장의 후손의 안내로 찾아가 보니 꿈 속에서 본 바와 같으므로 묘소를 수축하고 정중하게 제사를 올리니 그 후부터는 군수가 부임초에 죽어가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단종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단종역사관

잊혀지고 왜곡된 단종의 역사를 바로 잡고 이를 널리 알리고자 건립된 단종 역사관은 단종의 즉위식에서부터 사약을 받는 모습 등 단종의 일대기를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연대기식으로 모형전시되어 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2009.06.27) 

17세의 어린나이에 사약을 받고 승하한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의 능이다. 단종은 부왕인 문종이 일찍 죽어 12세에 임금이 되었으마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었다가 1457년(세조3년)  결국 사약을 받고 승하하였다. 
단종이 승하하셨을 때 시신을 거두는 이가 없자 영월 호장 엄홍도가 시신을 거두어 모신 곳이 바로 장릉이다.
장릉 주위의 소나무는 모두 능을 향해 절을 하듯 굽어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경이로움을 자아내게 한다.
 
: 동계: 09:00~17:00   하계: 09:00~18:00
         
구 분 어린이 청소년.군인 성인 비고
         
개인 640 1000 1200 노인(65세이상) 무료
 
단체 550 730 1000 30인이상
 
군민(개인/단체) 320(250) 500(360) 600(500)  
 


 
 
소재지 : 서면 옹정리 산 180번지
문의처 : 서면사무소 : 033)372-6001
영월군청 문화관광과 : 033) 370 - 2542
       
       
 
         
 
 
맑고 청명한 서강의 물줄기는 서면 선암마을변에 우리땅을 그대로 복원하듯 한반도 지형을 만들어 놓았다.


마을 사람들이 옛날부터 한반도를 닮았다 하여 찾아간 선암마을의 한반도지형은 삼면이 바다인 우리땅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풍경으로 서강변에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서해바다 와 남해바다 그리고 동해바다까지 온통 작고 이름없는 아담한 선암마을에 모여든게 신기하다.

남북한간에 평화와 공존을 이야기하는 시점에서 선암마을의 한반도지형처럼 하루빨리 통일이되어 아름다운 금수 강산 곳곳을 자유롭게 구경할 날을 기대해 본다.

영월군 서면 옹정리 선암마을 앞에 위치한 옹정리 산 180번지는 한반도의 모형과 흡사하여 이 곳을 찾는 관광객이 해마다 늘고 있다.

동해안과 서해, 남해안에는 서강물이 감싸고 돌아 한반도의 형상과 똑같다는 평을 받고 있다
 
 
 
 
소재지 : 하동면 진별리 산 262
문의처 : 고씨동굴 관리소 (033) 370 - 2621
영월군청 문화관광과 (033) 370 - 2531
 
       
 
       
 
 
        영월군 하동면 진별리에 소재하고 있는 석회동굴 주굴(主窟)의 길이 1,800m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동굴의 하나로 1969년 6월 4일 천연기념물 제219호로 지정되어있다.

영월읍에서 동남쪽 12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영월화력발전소에서 동남쪽으로 6km떨어진 남한강 상류 하식단애(河蝕斷崖)에 위치하고 있다.
고씨굴이란 임진왜란 당시 고씨가족이 피난하였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그 밖에도 이곳은 수도장 등으로도 이용되어 왔다고 전한다.

1966년 4월 한국동굴학회가 이끄는 한일합동조사단에 의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그 후 건국대학의 홍시환(洪始煥) 교수팀의 본격적인 개발조사와 당시 유은재(兪銀在)군수, 박영국(朴泳國) 관광협회장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서 관광동굴로 개발 공개되었다.

이 동굴이 형성된 지질년대는 고생대(古生代)의 대석회암통(大石灰岩統)에 속하는 지층으로 약 4~5억년전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굴이 1,800m, 지굴(支窟)을 합하면 총연장 3km에 달하는 동굴이다. 해발고도 210m의 강변에 위치하고 있는 고씨굴의 기상환경에 대한 학계보고에 따르면 동굴내부의 기온은 연교차는 비교적 적은 편이며, 일교차는 약 10도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1986년 11월 16일 14시에 실시한 동굴 안쪽의 기온이 4.5℃일때 바깥쪽은 그보다 약간 낮은 3.2℃였다. 동굴내의 기온은 입구에서 멀어짐에 따라 점차 상승하여 중간지점인 구름다리 앞에서는 10.2℃였고, 가장 안쪽인 광장의 기온은 16.2℃였다. 즉 외부보다 13℃정도 높다.

동굴 내부의 습도는 동굴에서 300m 지점까지는 상대습도 50% 미만이나 깊어짐에 따라 습도는 높아지고 특히 주변에 물이 있는 곳에서는 60%를 상회하였다.

수온은 12℃이고 계절적 변화는 0.6℃ 내외이며 외기변화의 영향은 적은 편으로 나타나 있다.
동굴을 형성하는 지형지물의 분포 특징은 상층 지각(地殼)의 구조암석인 석회암질의 구조성분과 지표에서의 침투 수량 미치 기간, 집중도 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 동굴에서 싹트고 있는 2차 생성물로 대표적인 것은 종유석(鐘乳石)과 석순(石筍), 석주(石柱), 유석(流石), 석회화단구(石灰華段丘)등의 석순경관(石筍景觀)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동굴의 대표지역이라 할 수 있는 제3지역에서는 현수상 종유석군(懸垂狀 鐘乳石群), 석회화폭(石灰華瀑), 석막석순(石幕石筍) 그 밖에 섬세한 형성물체들이 있으며,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절묘한 형상을 하고 있다.
그 밖에 경승지로는 십이선경(十二仙境) 일대와 무량탑(無量搭)등의 거대한 종유석군, 석주열(石柱列), 천궁(天宮) 일대의 대형 선순군 등을 들 수 있고,
기형형성물(奇形形成物)로는 극락전(極樂殿) 일대의 유석군, 신농지(神農池), 꿈의 궁전, 천불대(天佛臺) 등이 있으며, 이들은 모두 보존가치가 높은 것으로 주목되고 있다.

동굴생물로는 1965년 분포조사 때 동굴내부의 호수에 많이 서식하고 있는 백색의 엽새우를 비롯한 20종의 동굴생물이 보고된 바 있고, 1971년도 조사에서는 소과 2종, 게새우 5종, 지네 4종, 곤충류 17종, 포유동물 3종, 거미 10종 등 41종을 확인하였다.

이들의 생태적 분포는 진동굴성(眞洞屈性)이 14%, 호동굴성(好洞屈性)이 35%, 외래동굴성(外來洞窟成) 50%로 나타나 있다.
이중에는 지구상에서 4~5억년 전에만 볼 수 있었던 화석곤충인 갈로와 충(蟲)이 서식하고 있음이 밝혀져 학술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이 동굴은 현재 내부 1km까지 관광용 동굴로 개발 공개되고 있어 훼손 또는 오염의 우려가 있다.

관리자는 물론 출입 관람객의 세심한 주의가 요망되고 있다. 

 
 
 
 

 
 
 
 
 

 
 
 
연계 관광지
ㅇ 고씨동굴(16Km) → 김삿갓유적지(14Km) → 내리계곡(2시간 소요)
ㅇ 고씨동굴(13Km) → 청령포(2Km) → 장릉(0.5Km ) → 보덕사(3Km) → 선돌(2시간 소요)
 
: 하절기(3월∼10월) : 09:00~18:00(9시간) / 동절기(11월∼2월) : 09:00~18:00(9시간)

****주의사항!
성수기나 주말/휴일에는 관람객이 많아 입장객 제한인원이 조기 마감될수 있습니다.
이 점 유의하시고 전화문의를 하시면 여유롭게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구 분 어린이 청소년.군인 성인 비고
         
개인 1500 2200 3000 경노 : 무료
 
단체 1200 1900 2400 경노 : 무료 ※단체기준: 30인이상
 
군민(개인/단체) 750/600 1100/950 1500/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