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울산에 내려와서 생활한지 35년째 겨울을 맞는 동안에 이번처럼 많은 눈이 지속적으로 내린 적은 처음이다.
날씨가 따뜻했기 때문에 눈이 내리면서 많이 녹아서 그렇지 혹한의 날씨였다면 울산 북구지역 산악지역엔 아마도 50cm 이상의 적설량을 기록했을 것 같다.
하여간 1년에 눈 한번 구경하기 어려운 겨울이 많았을 정도로 '따뜻한 남쪽나라'였던 울산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연례행사처럼 폭설을 한 두번씩 겪고 있다.
기상이변 탓이라고 설명되는 이러한 폭설은 대개 봄에 내리는 경우가 잦았다.
특히 작년에는 4월 하순에도 폭설이 내려서 불이나게 가지산에 올라 한참 피어나던 진달래꽃이 얼음샤베트로 변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4월 하순에 눈내린 풍경 다시보기 http://blog.daum.net/jilgoji/7162555)
2월10일(월) 아침 출근길에 눈속에 파묻힌 필자의 승용차
예상대로 출근대란, 그러나 '의지의 한국인'은 꿋꿋하게 승용차를 몰고 출근 중이다.
출근길의 수출선적부서 앞 도로, 밤새 눈을 하얗게 뒤집어 쓴 생산차들이 수출선전 야적장으로 이동하는 중간에 제설차가 작업을 하면서 겨우 통행을 하고 있다.
부서에 도착해서...그런데 바다에 둘러쌓인 동구에 가까운 성내쪽은 쌓인 눈이 훨씬 적었다.
왼종일 퍼붓는 눈이 보통 아니다.
다행히(?) 날씨는 춥지 않아서 내리는 대로 거의 녹는 바람에 쌓이는 양은 얼마 안되지만 저 눈이 다 쌓였다면 울산지역 최고의 폭설을 기록했을 것이다.
퇴근시간이 되어도 눈은 그치지 않고 여전히 오락가락
그치는가 싶다가 다시 쏟아지고 무서운 기세로 몰아치던 눈발이 어느새 그치기를 반복한다.
차를 가지고 퇴근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는 아니고 버스를 타고 가도 되기는 하는데 편안한 퇴근수단 다 마다하고 눈보라치는 산길을 걸어서 퇴근하기로 작심했다.
눈길을 걸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니 밤길이 다소 고생스럽기는 하겠지만 울산에 살면서 언제 이런 '호사'를 누려 볼 것인가?
도전할 기회는 자주 오지 않으니까 기회다 싶을 때 주저없이 낚아채고 볼 일이다.~^^
다행히 헤드랜턴은 항상 휴대하고 다녔으며, 스틱과 경등산화도 차에 항상 실려있었는데 스패츠와 아이젠이 없었지만 그게 뭐 대수랴.
기능성 등산복이 아닌 순모 양복바지를 입고 있어서 눈이 좀 덜 들어가도록 작업용 토시를 발목에 차는 것으로 임기응변을 하고 출발을 했다.
눈이 아무리 쌓인들 동네 뒷산에서 조난이야 당하랴, 러셀이 안되어 있다한들 4시간이면 집에 가겠지 했는데...
성내 삼거리에서 염로정으로 오르는 임도는 겉으로는 눈이 쌓였지만 속에는 반쯤 녹아 있어서 질퍽거렸다.
방수기능이 떨어지는 경 등산화라서 금새 축축히 젖어 오는데 날이 춥지 않아서 발이 시려운 줄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악조건임에도 눈길을 걸어간 발자국이 적지아니 찍혀 있는걸 보면 필자와 비슷한 '의지의 한국인'이 적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어지럽게 찍힌 발자국은 흩어져 있어서 뒤따라 걷기에 전혀 도움이 안되고 쏟아지는 눈으로 금새 덮여 버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진도가 느려서 염포정에 도착하니 벌써 어둠이 내렸다.
눈보라가 심한데다 어두워서 DSLR 카메라 촬영은 할 수가 없었으므로 아쉬운대로 폰카로 인증샷
폰카를 가지고 자동모드로 찍으니까 바람에 날리는 눈송이가 이처럼 긴 막대기처럼 표현된다.
'의지의 한국인'은 나 말고도 또 있었다.
그 시각에 산길에서 세 사람을 만났다.
완전무장을 한채 염포정까지 눈길을 돌아 염포동으로 하산하는 한쌍의 부부를 마주쳤고,
염포정에서 인증샷을 찍고 있는 중에 사택쪽에서 눈길을 헤치고 올라 온 산객 한명이 군부대쪽으로 앞질러 갔다.
내심 눈보라 심한 밤길에 혼자 걷는 것이 무모한 짓 아닌가 갈등을 하고 있었는데 그 산객의 존재로 인해 망설임이 사라졌다.
앞질러간 산객을 돈문재 근처에서 만나 아랫율동까지 동행을 하게 된 덕분에 눈보라속 야간 산행에 대한 두려움이나 외로움이 사라졌다.
그는 랜턴도 없이 길을 나섰는데 역시나 혼자 계속 걷기가 망설여 지던차에 내 존재로 인해 내처 겯기로 했단다.
이렇게 산에서 만난 '크리이지 보이' 두 사람이 서로를 의지하여 밤길을 걷는 인연은 보통이 아니리라.
나도 걸음이 빠른 편이지만 러셀을 하면서 치고 나가는 그 산객의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이건 마치 무장공비 수준이다. ㅎㅎ
이만한 열정과 걸음 실력이라면 언제 제대로 된 심설산행을 동행하면 멋진 파트너가 될 것 같다.
간혹 눈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한 소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딱~딱! 울려오는 가운데 랜턴 불빛에 망또를 뒤집어쓴 유령같은 나무 때문에 흠칫 놀라기도 하고...
쌓인 눈이 점점 많아져서 군부대 근처 바람 많이 부는 능선상에서는 무릎이상 빠졌다.
그리고 바람이 얼마나 세찬지 앞사람 걸어간 발자국이 금방 묻혀버려서 흔적조차 남지 않을 정도다.
퇴근길에 돈 안들이고 동계훈련 완전 빡시게 하는 셈이다.
군부대 정문쪽으로 돌아오니까 예상대로 제설작업이 되어 있기는 했는데 그래도 퍼붓는 눈이 많으니까 금새 다시 쌓이고 있었다.
동행한 산객 덕분에 군부대 정문근처 조명불빛 아래서 서로의 인증샷도 남기고..ㅎㅎ
약수터 아래 조명불빛 아래서 인증샷 하나를 더 찍고...
율동과 약천사쪽 갈림길에서 잠시 갈등하다가 더 욕심내지 않기로 하고 아랫율동까지 동행해서 내려왔다.
다음 날(2. 11. 화) 새벽 5시 다시 집을 나섰다.
어제 밤길에 만난 환상적인 설경을 사진으로 담지 못한 아쉬움이 컸으므로 새벽에 출발하면 출근길에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므로...ㅎㅎ
동울산 세무서를 지나
북구청을 가로지르고...
눈길 전 구간을 걸어서 출근하려면 4시간 넘게 걸리기 때문에 오토밸리로에서 4공장 정문까지는 차량을 얻어 타는 것으로 시간을 단축했다.
이른 시각 차를 가지고 출근하는 부지런한 사람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손을 들면 차를 세워줬다.
오토밸리로에서 미끄러운 길에 차가 막혀 있으면 내려서 해결사를 자처한다음 다른 차를 다시 얻어타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전시나 다름없는 빙판길에 차를 몰고가든 걸어서 가든 꼭두새벽에 터로 향하는 사람들이라는 동질성 때문인지 다들 마음이 후했다.
그 중에 맨 마지막에 카풀을 해준 인연은 특이하게도 새벽 출근하는 아들과 같이 갔다가 어머님이 차량을 회수해 오는 가족이었다.
보통의 가족이라면 빙판길에 차를 몰고 나가는 것이 위험하다고 말릴텐데 이 어머님은 그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특별하게 느껴진다.
아들을 생각하는 모성애에 더하여 플러스 알파의 도전정신을 갖고 있는 분과의 특별한 인연을 맺으며 4공장 정문까지 카풀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단축한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사택에서 염포정 오르는 길로 아무도 가지않은 눈위에 내 발자국을 찍으면서 어제 밤에 찍지 못한 사진 기록을 남겼다.
지금 소개한 사진들은 폰카로 촬영한 것으로서 DSLR 카메라로 찍은 풍경사진은 별도 꼭지로 소개한다.
2월 12일 낮에 구내 이동 중에 수출부두를 지나면서 한 컷
2월 12일(수) 오후에 문화회관 앞에서 제설작업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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