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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나루 근처의 장회리 망향시비(望鄕詩碑)

질고지놀이마당 2014. 9. 16. 07:10

우주계 지구성 동양 대한민국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

 

아, 우리가 살고 있는 삶터를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렇게 거창하구나~!

그러나 수몰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히 담아서 표현하고 남기고자 했던 역사의 현장은 수풀속에 묻혀져 가면서 폐허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구담봉~옥순봉을 돌아 내려와서 차를 세워둔 장회나루터까지 터덜터덜 걸어오다가 우연히 눈길이 닿는 바람에 꼼꼼히 살펴보게 되었다.

 

지금 비록 폐허처럼 변했지만 이집 주인장의 고향사랑이 얼마나 절절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기록들이다.

 

인자무적

순박한 장회리 사람들은 어질게 살았건만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대대손손 이어 살아 온 정든 고향을 빼앗겼다.

그 소중한 인연들, 뿔뿔이 흩어져 살더라도 장회리 삶터의 흔적을 일부나마 보존하고, 이를 매개로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자 했던 마을지도자(?)의 노력이 눈물겹다.

 

 

처마 아래 빛바랜 표창장과 감사패들...

 

 

 

 

집은 폐허로 변했으되 월악로 3737 이라는 신주소도 붙어 있고(문패에 적힌 구 주소는 단양읍 장회리 67번지), 

비록 다른 사람이 수취인으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리 오래되지 않은 요금청구서 우편물도 들어 있었다.

 

 

주인장 내외의 흉상일까?

섬세하진 못하지만 수수하게 고향땅을 지키며 한평생을 살아왔을 시골주민 부부의 모습으로 연상된다.

 

<우리집 그사람>은 아마도 시골로 시집와서 고생하며 살은 부인에게 바치는 헌정시 같고

<파수꾼>은 수몰된 고향마을 장회리를 지키는 자신(장회리 이장 우태옥)을 주인공으로 한 자작시로 짐작된다.

 

천하제일 이고장에 홀로남은 파수꾼아

이생에서 못다한일 저생에서 넋이되어

대대손손 이어온땅 대대손손 누리면서

지구상에 장회리요 단양땅에 장회리라

 

1995년 5월 8일 만들고 글쓴이 장회리장 우태옥

 

범죄없는 마을 지정패

 

 

마을자랑비를 중심으로 왼쪽에 영생탑을, 오른쪽에 망향탑을 세우고 가운데 마을자랑비문을 길게 새겨넣었다.

그리고 염원하는 글까지... 마을사람들 공동의 노력이었는지 끝까지 고향마을을 지키고자 했던 마지막 파수꾼 혼자의 노력인지는 모르지만 지나는 길손이 보기에도 안타깝다.

이쯤되면 감동이 전해져서 장회리를 고향으로 했던 사람들이 뜻을 모아 고향마을 박물관을 만들거나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다소 특이한 불망비

대개 오래된 고을에 보면 군수나 현감 등 지방수령을 거쳐간이에 대한 공덕비가 주욱 세워져 있는 것을 흔히보는데

여긴 지방수령이 아닌 주사(현 공무원으로 치면 6급에 해당?)에 대한 불망비다.

단양군 단양면 하방리로 되어있고, 건립연도는 일제시대로 보인다.

아마도 수몰지역에 세워져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왔을 것으로 추측

 

이 탑과 비문을 새긴 주인공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게하는 장회리 주소

 

 

무궁 영생의 염원을 큰 바위에 새겼으되 불과 20년이 넘지않은 세월에 세인들의 관심은 줄고, 발길은 끊겼으되 극성스런 수풀이 덮어가고 있어 안쓰럽다.

 

자화상일까?

혼자서라도 고향마을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파수꾼'은 몇 년에 걸쳐 이러한 조형물을 만들면서 열정을 쏟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비록 조형물들이 시멘트로 만든 조악한 수준이고, 사사로운 것이어서 문화재적인 가치는 없더라도 그 분의 열정만은 존경스럽다.

그 열정의 현장이 이처럼 방치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주인공 우태옥 님은 아직 살아 있더라도 이젠 기력이 쇠락한 노인이거나

어쩌면 이미 고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우연히 이곳을 거쳐가게 된 길손은 그 분의 절절한 고향 사랑을 생각하며 잠시나마 숙연한 마음으로 머리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