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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6) 초고

질고지놀이마당 2017. 12. 17. 13:10

글 머리에

30년 노동조합 역사에서 단체협상을 연내타결하지 못하고 다음해로 넘겨지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38년여 회사생활 중 11년간을 교육부서에서 보내고 정년퇴직을 맞게 됐다.

지난 10월부터 회사 공유마당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라는 주제로 매주 한 꼭지씩 올리려고 준비한 글들이 있는데 임단협이 늦어지면서 공개하지 못했다.


2017년 임단협이 미타결 상태로 연말을 맞으면서 비록 떼밀리듯 정년퇴직을 맞고 말았지만 현대차 노사모두에게 남기고자 했던 이야기는 유효기간이 끝나지 않았다.

다만 회사 공유마당에 올릴 수 없을 뿐, 내 블로그에 공개를 통한 공유를 이어가려고 한다.

회사 밖에서 이어가는 첫번째로 주제는 노사합의로 운영하는 퇴직프로그램에 관한 제언이다.


최고경영진과 나누었던 대화


지난 2015년 노동조합 전현직 간부들의 해외공장 방문 마지막 일정은 북경공장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윤여철 부회장과 윤갑한 사장 등 회사 경영진이 북경공장에 와 있었다.

그리하여 공장현황 브리핑과 현장탐방을 마치고 북경공장측에서 준비한 저녁식사자리는 비공식 노사간 만남이 되었다.

내 솔직한 느낌은 우연한 조우라기 보다는 사전에 어느정도 의도된 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뭐 주빈이 아닌 나로서야 내 본분만 지키면 된다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임했다.

그렇게 해서 노동조합 전현직 대표들과 회사 경영진이 함께 식사를 하면서 비교적 편안한 대화 자리가 만들어졌다.

식사가 거의 끝나고 나서는 자리를 옮겨 앉기도 하고, 평소 친소관계나 화제에 따라서 개별적인 담화로 이어졌다.

하지만 술도 거의 못하고, 노조일선에서 떠난지가 오래되다 보니까 현 경영진과는 이렇다할 교분도 없는 나로서는 그 자리가 좀 뻘쭘했다.


잠시라도 개별대화를 나눌만한 이야기거리를 궁리하다 떠오른 것이 새로 맡게 된 퇴직프로그램이었다.

그래서 "노사합의로 시행하는 퇴직프로그램은 참 잘한 일이다, 노사가 함께 힘합쳐서 협력하는 유일한 사례다. 회사에서 한평생을 보내고 퇴직하는 사원들에게 노사모두 최대한의 배려를 해야한다. 나아가서 현재는 재직자 위주로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앞으로는 퇴직자의 전직지원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이에 대한 윤갑한 사장과 윤여철 부회장이 보여 준 반응은 매우 상반되게 나타났다.

한 사람은 '직원들 챙기는 것도 벅찬데 어떻게 퇴직자까지 다 챙기느냐' 라는 반응인 반면, 

한 사람은 정년퇴직프로그램이 노사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말에 어디 자세히 들어보자는 관심을 나타냈다.

그 자리에서 개별대화를 길게 할 분위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이후 구체적인 보고서를 만들어서 개인 이메일로 보내거나 직접 만남을 청하라고 적극적이었다.

최고 경영진의 관심에 나도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을 마음에 담고 돌아왔다.


직접소통이 어려운 조직문화

결론부터 말하면 퇴직프로그램 개선방안을 최고 경영층에게 직접 전달하는 것은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새로 맡은 일에 적응하느라 너무 바쁘기도 했고,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여 개선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만큼 퇴직프로그램 전반에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최고 경영진에게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차일피일 미뤄지게 된 것이 첫째 이유다.


두번째 이유는 우리회사의 조직문화인데 이것이 더 직접적인 이유다. 

퇴직프로그램 운영에 대해 어느정도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방안을 제시할 안목이 생기자 다른 고민이 생겼다.

내가 위계질서를 건너뛰어 경영진과 직접 소통할 경우 아무리 선의였더라도 결과는 항상 직속상사의 입장을 어렵게 만들었다.

나는 개인적인 일로 본관을 찾아가는 일은 없지만 어쩌다 업무와 관련해서 의견을 내면 그즉시 되돌아 내려 꽂히는 것이었다.

직속 상사 입장에서는 모르는 내용에 대해 갑자기 질문을 받거나 질책을 당하면 얼마나 당황스러울 것인가?


사업부장급 중역에게 의견을 전달해도 민감한데 최고경영진에게 직접 전달하는 것은 역효과가 더 클 것 같았다.

하여 먼저 불러서 물어보기 전에는 주어진 일만 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더니 아무도 물어보는 사람이 없이 오늘까지 흘러왔다.

이제 하루하루 다가오는 퇴직에 맞춰 하나씩 주변 정리를 하면서 쓴소리일망정 회사의 앞날을 위한 제언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여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런데 이 글조차 또 이런 저런 이유로 제때 공개하지 못하고 마지막 출근하는 날까지 미뤄졌다.


퇴직지원프로그램에 대한 경영진 의식

퇴직프로그램 운영에 필요한 예산배정과 시간할애에 대해 들여다 보면 경영진의 생각이 어떠한지 드러난다.

노동조합은 좋은 제도를 제안하여 합의하고 도입한 것 까지는 잘했는데 운영에 대해서는 거의 손을 놓고 있다.

즉, 노사합의에 따라 운영하는 퇴직프로그램인데 회사에서 말단조직을 운영하듯, 처분에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팩트를 가지고 소개하는 다음 몇가지 사례를 보면 어떤 실정인지 글을 읽는이들이 객관적으로 판단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례 1> 경영진의 인식

퇴직프로그램은 노조에서 파업지침을 내리면서도 예외를 인정하는 교육이다.

그런데  2주간 일정(12. 4~12.15)으로 지난 15일 끝난 끝난 57년생 대상 전직특강은 중단될뻔 했다가 부활됐다.

97% 이상이 참석했을 정도로 대상자들이 꼭 필요로 하는 전직특강이 중단될뻔한 과정은 이렇다.


노동조합 쟁대위에서 아르바이트 작업자와 불법 촉탁직 투입을 금지한다는 단체행동 지침을 결정했다. 

대체인력을 투입할 수 없게되자 회사 경영진은 대체인력 수요를 줄인다는 차원에서 모든 출장과 교육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정규직이 아니면 대체인원을 투입 할 수가 없게 된 상황에서 교육과 출장부터 중단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틀린 결정은 아니다.


하지만 전직특강을 중단하면 보충교육을 할 물리적 시간이 없기 때문에 정년퇴직을 목전에 둔 57년생들은 선의의 피해자가 된다.(정년연장을 시켜주지 않는한)

대체인원을 투입하지 못하는 것도 큰 문제이지만 퇴직하면 바로 맞닥뜨리는 실업급여, 국민연금, 퇴직연금에 대한 교육을 중단하는 것도 큰 문제였다.

경영진의 1차적 판단은 생산차질 최소화에 방점이 찍혀서 모든교육 중단을 결정한 것이었다.

이후 경영진에서도 전직특강 만큼은 특별한 상황임을 인정하여 실시하도록 변경했지만 이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첫째, 평소 경영진이 갖고 있는 퇴직프로그램에 대한 인식이다.

퇴직프로그램은 여건에 따라 경영진 판단으로 언제든 중단하거나 취소해도 되는 시혜적인 교육이라 생각하면 안된다.

오히려 회사가 어렵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지켜주겠다'는 진정성을 가져야 직원들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둘재, 회사의 의사결정과정에서의 경직성이다.

최고 경영진일지라도 신이 아닌데 매사 자신들이 결정하면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다.

굵직한 정책결정은 자신들이 하는 것이 맞지만 소소한 실무적 결정은 실무진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아랫사람들이 윗사람의 심기부터 살피는 조직이어서는 미래가 없으며, 윗사람의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되면 '아니오'라고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회사 조직문화 수준은 어떠한지 각자 자문해 볼 일이다.


<사례 2> 일률적인 예산 삭감

매년 다음년도 예산안을 제출하고 심사를 거쳐 배정을 받을 때마다 모든 부서는 비상이 걸린다.

특히 회사 경영상 어려움이 닥치면 모든 예산을 일률적으로 몇%씩 삭감하라는 지침이 내려온다.

위기극복을 위해서 경상경비는 기본이고, 의무적이거나 필수적인 경비까지도 줄여야 하는 고충을 누가 반대할 것인가?


그렇지만 예산을 삭감하더라도 보통의 상식과 최소한의 기준은 있어야 하다.

정년퇴직 대상자는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대상자가 두 배 늘날 경우 예산도 두 배로 늘린 다음에 거기서 30%를 삭감하라고 해야 옳다.

그런데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작년대비 30%씩 삭감하라고 강제하는 식이다.(다행히 내년 퇴직프로그램 예산은 배려를 좀 했다고 들었다.)


그럼 어떤 결과로 나타났느냐 하면, 퇴직지원센터를 안고있는 교육실의 다른 예산에서 그만큼을 덜어내서 집행해야 한다.

즉, 노사합의로 시행하는 퇴직지원프로그램을 안하거나 줄일 수가 없으므로 교육실 각 팀의 예산을 끌어다 쓸 수밖에 없다.

그리되면 교육부서의 다른 예산은 30% 삭감이 아니라 50%이상 삭감당하는 결과가 된다.

그런데도 몇 년째 이러한 현상이 되풀이 되고 있으며, 회사 위계질서상으로는 '이런 예산절감 지침은 잘못됐다' 라는 어필 자체를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사례 3> 오히려 줄어든 1인당 퇴직자 교육비와 교육시간 

2013년 단협에서 노사합의로 시행하기 시작한 정년퇴직프로그램에 대해 시간과 비용측면에서 살펴보면 의외의 결과가 나타난다.

노사간에 합의서 교환하고, 퇴직센터 개관하며 폼 잡고 단계별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형식은 그럴듯하게 갖춰왔다.

실제로 퇴직 5년 전부터 단계별로 교육과 상담프로그램 실시 등 제도면에서는 가장 앞서있다고 자부할 만 하다.

그러나 퇴직지원센터를 운영하기 전에 시행하던 정년퇴직자 교육과 비교하면 교육비와 교육시간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퇴직지원센터 운영 이전에는 55세는 생애설계 과정으로 교육을 진행했고, 퇴직하는 해에는 경주에서 4박5일 합숙교육을 실시했다.

시간이 길다보니 프로그램 운영에 여유도 있었고(산책과 체육 오락 등), 마지막에는 회사 중역이 참석하여 노고를 격려하는 회식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단계적 퇴직프로그램으로 세분해 놓은 것을 살펴보니까 교육시간 총 합은 4.5일 짜리였다.

노사합의에 따라 퇴직프로그램으로 전환하면서 종전의 4박5일(55세 교육일 수 미포함)에 비해 근태인정 시간이 줄어들었다.(울산공장 기준)


더욱이 출퇴근 교육이 반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숙박교육 4박5일에 비해서 1인당 교육비는 줄어든 것이다.

즉, 대상인원이 대폭 증가했기 때문에 전체 퇴직프로그램 교육비가 늘어난 것이지, 1인당 교육비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퇴직지원센터를 만들고 전문상담사를 상주시키는 운영비용이 추가 된 것을 감안해도 전체 퇴직자 교육비용은 늘어나지 않았다. 


물론 예산과 시간을 많이 써야 좋은 교육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합리적으로 개선해서 교육비와 교육시간을 절감할 수 있었다면 잘 한 일이다.

체계적인 프로그램 운영과 퇴직센터라는 상시공간을 마련하고 전문 상담사가 상주하는 등 질적으로 개선된 것도 평가할만 하다.

하지만 퇴직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된 본래 취지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예산을 삭감하는 것은 하나를 얻기위해 둘을 잃는 것이다.  


보다 본질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노사간에 합의로 시행하는 퇴직지원프로그램인데 거의 모든 것을 회사가 알아서 결정한다는 점이다.

노동조합에 통보만 할 뿐, 업체선정, 프로그램 개발, 예산,  교육운영 등은 모두 회사 교육부서에서 전담하고 있다.

이는 회사의 문제라기 보다는 노동조합 집행부에서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것이 더 문제다.

퇴직프로그램 운영실태를 어느정도 파악하고 나니까 열불이 나서 노조를 향해 이런 독백을 내뱉었다.

'지 밥그릇도 못 챙겨먹는 등신들 같으니라구...!'


노동조합은 집행부가 2년마다 바뀌니까 전문성과 연속성이 부족한데다 현안문제에 대응하느라 거의 신경을 쓰지 못한다.

앞서 예를 든 퇴직자 교육예산의 경우 10월 경에 편성을 하는데 그 시기 집행부는 단체협상 혹은 지부장 선거로 여력이 없을 때다.

이를 개선하려면 노사간에 제도와 시스템으로 정착시켜야 하는데 내년부터라도 새 집행부가 제대로 챙겨야 할 사안이다.


<사례 4> 비전지원센터는 어디에?

회사 경영진이 어떤 마음으로 노사문제를 대하는지, 특히 퇴직지원 제도를 생각하는지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비전지원센터' 문제다.

이름 자체가 생소한 직원들이 더 많을텐데 노사관계자들은 다 알고있는 사안이다.

2015년 단체협상 때부터 회사가 먼저 제시했던 것으로, 작년에는 리모델링 공사까지 다 마쳐놓았는데 지금껏 비워놓고 있으니 먼지만 쌓였을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박근혜 정부가 서슬퍼렇게 살아서 재벌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쥐락펴락 할 시기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라는 지침을 내린다.

정부산하 공기업들은 다 도입했고, 노조가 없거나 약한 곳은 덜했지만 강성노조가 떡 버티고 있는 현대차그룹은 죽을 맛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요구하는 임금피크제에 대해 노조는 태산처럼 버티고, 물러서자니 정권에 찍히니까 진퇴양난이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이던 2015년 단체협상 테이블에서 사측이 제시한 카드 중 하나가 '비전지원센터 설립'이었다.


박근혜 정권이 재벌에게 요구했던 것이 또하나 있었으니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를 지원하는 기관을 권역별로 설립하는 것이었다,

그같은 배경에 따라 청년실업 해소와 퇴직자 재취업 지원역할을 겸하겠다는 '일타쌍피' 아이디어로 제시한 것이 비전지원센터였던 것이다.

당시 회사는 퇴직자 전직지원은 물론이고, 실업급여를 받고 난 이후 국민연금을 받기까지 소득공백기에 촉탁&계약직 일자리를 만드는 안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최종 합의단계에서 집행부가 임금피크제를 끝내 거부하자 백지화되고 말았다.


그리고 작년 단체협상을 앞두고는 비전지원센터 공사까지 다 마쳤으나 사측이 임금피크제를 철회하면서 역시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이같은 과정을 보면 회사 경영진의 진정성 여부가 드러난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15년 1/4분기 노사협의회에서 노조에서 퇴직자지원쉼터를 만들어 달라는 안건을 상정했었다.

이에대해 회사는 온갖미사여구를 동원해 답변서를 제출했는데 요약하면 한마디로 재직자 지원도 벅찬데 퇴직자 지원까지는 무리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단체협상 자리에서 회사가 먼저 퇴직자쉼터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비전지원센터'를 제시했다.

당시 노조측 협상대표로 참여했던 모 사업부대표는 당시 회사의 태도에 어리둥절 했다는 소감을 들려준 바 있다.


작년 단체협상에서 회사는 '임금피크제' 도입 요구를 철회하는 '결단'을 내렸다.

용단이라고 했지만 정치상황으로 보면 정부여당이  20대 총선에서 참패하고, 박근혜 정권이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시점이다.

레임덕이 가속화 되고,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무너져 내리는 정권을 재벌이 무서워 할 이유가 사라진 때이다.

회사는 임금피크제를 철회하는 용단을 내리면서 공사까지 다 마쳐놓은 비전지원센터도 덩달아 거둬들였다.


회사 경영진이 진실로 정년퇴직자 및 퇴직지원프로그램에 대해서 진정성을 가지고 있었다면 임금피크제 실시 여부와 상관없이 추진해야 옳다.

사족을 하나 붙인다면 노조 집행부 역시 꼭 필요한 것은 관철시키겠다는 진심어린 의지가 부족했다.

2015년 노사협의 때 퇴직자 쉼터를 요구할 때 '일단 들이대서 회사가 들어주면 좋고, 아니면 말고'식으로는 아니함만 못했다.


노동조합 30년 역사에 장기근속자들 꼬박꼬박 조합비 내온 것 적립금이 수백억이다. 매년 쟁의대책비로 수억원씩 집행한다.

그런 기금 얼마라도 노조에서 부담할테니 회사도 더 보태서 퇴직지원센터든 비전지원센터든 짓자고 해야 당당하고 회사도 거부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지금이라도 비전지원센터를 문 열지 않는 이유를 따지고, 당초 취지대로 운영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사례 5> 교육에 대해 표리부동한 경영진

교육부서 일원이 되어서 초기 몇년동안 생활하면서 가장 의아했던 것이 경영층에서 교육부서를 아주 홀대한다는 느낌이었다.

경영진들이 말로는 교육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매년 승진인사와 예산배정에서는 너무나 소외되었다.

대리에서 과장 승진은 연차가 차면 올려주는데 그 이후는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기 만큼이나 어렵다.

내가 보아왔던 교육팀의 승진인사 때 분위기는 희비가 엇갈리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초상집이었다.


기술강사들은 거의 다 현장에서 최고의 이론과 실무능력을 인정받아서 강사로 발탁된 것으로 알고있다.

그런데 단골 승진누락에다 노사간 대치상태가 되면 '긴급출동' 인원으로 동원된다.

'군사부일체'라고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가르친 강사는 사측 대열에 배운 제자는 노측 행동대에서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교육부서에 대해서, 그리고 가르치는 강사들을 이렇게 예우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교육팀이 인사실 소속으로 있다가 교육실로 승격되면서 다소 나아지기는 했으나 예산과 인사에서 소외되는 것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맺는 말>

필자는 38년여 재직기간 마지막 3년간을 퇴직지원센터에서 퇴직지원프로그램 운영 실무를 담당한 것은 큰 행운이자 보람이었다.

나 자신의 문제이면서 정년퇴직을 앞둔 선후배 및 동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실제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여부는 교육과 상담을 거쳐간 당사자들이 판단하는 것이니까 내가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나 자신은 퇴직전에 내게 주어진 마지막 소명이라 생각하고 퇴직지원프로그램 대상자들을 내가 모셔야 할 고객이라 생각했다.

즉, 내 일자리와 월급을 주는 고객이라는 마음으로 한사람 한사람을 대했다.

따라서 일이 즐거웠고,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3년 전 이 업무를 맡고나서 가장 의아했던 것은 노사가 합의해서 시행하는 좋은 취지의 프로그램인데 정작 당사자들 참여가 저조한 것이었다.

대상자 4~5명에 한명이 참가했을 정도로 교육프로그램 참석율이 너무 낮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 내가 담당하는 동안에 참가율을 50% 이상으로 끌어 올리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한명이라도 더 참석시키려고 귀찮을 정도로 문자를 보내고, 차수 바꿔달라는대로 바꿔주는 등 부단히 노력한 결과 어느정도 성과는 있었지만 목표한만큼 참석율이 올라가지는 않았다.


이유가 뭘까?

내가 보고 느낀 바를 토대로 내린 결론은 이렇다.

퇴직자 교육을 비용지출로 인식하는 경영진

현안문제에 매몰되어 신경 못쓰는 노동조합

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과 퇴직이후에 대한 절박함을 못 느끼는 배타적 성향의 대상자들이 합쳐진 결과라고...!


옛말에 '평양감사도 제 싫다면 할 수 없다'는 말처럼 본인이 안오는데야 어찌할 방법이 없다.

'교육이 그게 그거지' 라며 교육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가지고 아예 오지않거나  

회사와 노조가 자판기처럼 모든것을 다 해주기를 바라는 의존적이고 배타적인 참가자는 교육분위기를 흐리고 힘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교육을 마치고 "참석하길 잘 했다, 이런 교육기회 만들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때 다시 힘을 얻는다.


퇴직교육 담당자 및 경영진은 '교육을 해도 당사자들이 안오는걸 어떡합니까?' 라고 해서는 안된다.

한 사람이라도 더 오도록 안내하고 참가자들로 하여금 '매우 유익한 교육이었다, 정말 고맙다'는 평가를 받아야  제대로 하는 것이다.

인생이모작 준비를 도와주려는 회사의 진정성을 인정하게 되면 내 직장에 대한 고마움과 소중함을 저절로 느끼게 되는 것이 퇴직프로그램이다.

단 한미디도 회사를 위해 무엇을 하라거나 하지말라고 안하는데 본인 스스로 그러한 마음을 갖게됐을 때 지속가능한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퇴직프로그램은 대립적인 노사관계 속에서도 협력적으로 진행하는 거의 유일한 모델이다.

경영진은 퇴직프로그램 교육비를 절감해야 할 비용으로 보면 안되고 기왕에 하는 것 감동을 줄 수 있도록 제대로 해야 한다.

노동조합도 요구만 해놓고 방관할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개발, 업체선정, 예산책정, 인력배치, 교육과 상담운영 모두를 제대로 하는지 수시로 챙겨야 한다.

퇴직자 교육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재직 중은 물론 퇴직이후까지도 직원들의 마음을 얻는 길이다.  

따라서 노사간 신뢰회복과 노사안정을 구축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단언한다.


교육운영 실무자들은 그러한 사명감을 가지고 내가 회사를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교육자를 대해야 한다.

경영진은 실무자들이 충만한 사명감과 긍지를 가지고 일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자신들은 굵직한 정책적 사안을 결정하고 실무는 실무진이 전문가임을 존중해 주면서 의견을 경청하고 맡겨야 한다.

"그게 최선의 방안이라면 적극 지원할테니 열심히 해라,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겠다." 이게 윗사람의 자세다.

윗사람 눈치만 살피는 조직이 아니라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그건 안됩니다." 라고 말 할 수있는 조직이어야 미래가 있다.


지난 3년간 그러한 목표와 욕심을 가지고 달려왔다.

그 과정에서 교육실 직속 상사들의 입장을 어렵게 만든 적도 있고, 아마도 지금 공개하는 이 글은 그 결정판일 수 있다.

하지만 경영진에게 감정이 있어서 퍼붓는 것이 아님을,

2006년 전환배치 당시 다들 꺼렸던 나를 받아주고 11년간 함께 생활한 교육실 동료들의 입장을 어렵게 하려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기 바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