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정치/손학규 대표

손학규대표 기조연설 전문

질고지놀이마당 2018. 7. 17. 20:09

동아시아미래재단 대토론회

[변화의 시대 : 권력구조와 선거제도 개편]

2018. 7. 16. 월. 국회 헌정기념관

 

 

 

 

 

 

<동아시아미래재단 대토론회 - '권력구조와 선거제도 개편' 기조연설문>

 

"새로운 변화 속의 한국정치,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6.13 지방선거 이후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은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집권여당은 사상 최대의 압승을 거두고 진보의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야당은 참패했고 보수는 궤멸했습니다. 중도는 아예 흔적도 없어졌습니다.

 

김정은 신년사로 시작되어 평창 동계올림픽을 달구고 연이은 남북, 북미, 북중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정세에 미증유의 역동적인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국내정치적으로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대통령이 적폐청산을 주도하면서 국민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지방선거를 통해서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적 변화에 적극 응답한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은 좌측으로 상당히 이동했습니다. 만약 다음 총선에서 집권 여당 또는 범여권이 개헌선을 확보한다면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질 염려마저 있습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대통령의 연임제로 개헌이 되면 견제와 균형이 생명인 민주주의에 심각한 불균형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클린턴의 선거구호를 바른미래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빌려 썼습니다.

남북관계가 아무리 높은 지지율을 기록해도 일반 국민은 악화된 경제 상황에서 야당을 찍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지지했습니다.

 

경제는 정말 엉망입니다. 우리나라 경제는 현재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서민 경제는 하루하루 힘들게 버텨가고 있습니다.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일환으로 7월 14일 최저임금을 8,350원, 작년 대비 10.9% 인상한 가운데, 소상공인연합회와 편의점가맹점협회에서는 “나를 잡아가라”는 피켓을 들고 동맹휴업을 선언할 만큼 중소기업이나 영세상공인들은 충격이 큽니다.

 

노동시간 단축 정책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면서 정부는 14만~18만 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 기대했지만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현실입니다.

 

저는 2012년 ‘저녁이 있는 삶’을 말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저녁이 있는 삶’은 적정한 노동의 대가로 가족과 함께 따뜻한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삶을 의미합니다.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인상 때문에 오히려 일자리를 빼앗기면 ‘저녁이 없는 삶’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경제는 기업이 이룹니다. 정부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기업이 막대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국내 투자를 기피하고 있는 이유는 정부가 기업을 적대적 적폐의 대상으로 보고, 과도한 규제를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기업이 활발하게 투자하고 의욕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야 합니다. 우리사회는 이미 4차산업혁명의 과정 속에 있습니다. 4차산업혁명은 위기인 동시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입니다.

빅데이터·인공지능(AI)·로봇기술·사물인터넷(IoT) 등 신기술이 기존 제조업과 접목하면서 새로운 상품과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산업 체계를 구축해야합니다.

 

정의로운 분배와 혁신적인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여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고 사회통합의 정치를 이룰 수 있는 정치세력의 출현은 이래서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한반도의 봄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가 지켜본 가운데 남북의 지도자가 군사분계선을 넘어서 서로 부둥켜안고,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악수를 나누는 역사의 현장은 모든 국민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경기도지사 재직 시 벼농사 합작 사업을 통해서 북한 경제의 기초를 튼튼하게 하기 위한 사업을 했고, 2007년 북한 방문 당시 「평화와 번영을 위한 남북토론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평화선언 및 남북경제협력 10개년 계획 공동추진’을 제안했던 저로서는 이러한 역사적 장면을 보면서 남다른 감회를 느꼈습니다.

 

지금 남북간에는 남북철도를 잇는 실무협상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이 성과를 거두고, 남북한 체육교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체제 구축을 통해서 한국의 경제적 기회를 확대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개발에 가장 큰 책임과 부담은 대한민국이 질 수밖에 없는 사실 또한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 화해협력정책이 당시 야당과 보수적인 국민들 사이에서 ‘퍼주기’ 논란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가 독선적으로 남북관계를 이끌기보다 야당이 협조하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야당과의 협치를 위한 제도적 정비가 이래서 필요한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세계질서가 변하고 있습니다. 세계화 과정에서는 국제주의가 대세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대국 민족주의가 새로운 판을 휩쓸며, 특히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으로 세계는 ‘냉전 2.0시대’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관세폭탄으로 미·중이 무역전쟁에 돌입했으며, 중국의 개입으로 한반도 사태도 앞을 가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여당과 야당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항구적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먼저 국민적 통합입니다. 급변사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내정치의 통합성과 역동성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제왕적 대통령제의 모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대통령 보좌진과 내각의 갈등은 국정 운영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비서진들의 전횡이 날로 가중되어, 민생과 직결되는 고용과 관련해서 자료와 통계를 속여 대통령을 바보로 만들었습니다. 책임 총리와 책임 장관은 이미 동화 속의 옛말이 되었습니다.

 

촛불혁명의 “내가 나를 대표한다!”는 구호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근절하고, 협치를 위한 새로운 헌법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국민들의 요구였습니다. 패권주의를 반대하고 국민주권주의를 선택한 것입니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확립과 공화주의의 복원을 요구했습니다. 이제 정치권이 답해야 합니다.

 

진정한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선거제도가 개편돼야 합니다. 정치권은 이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한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합니다. 이것이 패권주의의 종식을 위한 길이고, 다당제 연립정부의 기반입니다. 제가 주장한 7공화국의 건설의 시작인 것입니다.

 

저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바른미래당 선대위원장을 맡으면서 지방선거 후에 다가올 한국정치의 개혁과 정계 개편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여당의 압승이 이미 예측된 상황에서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의 통합을 추진하고 중도개혁세력이 그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국민은 계파정치의 구태에 찌든 바른미래당을 버렸습니다. 하지만 개혁을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는 아직 굳건히 살아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지금 우리의 과제는 정치에서 다양성을 확보하고 다원적 민주주의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중도정치의 복원은 바로 그 기초를 세우는 것입니다. 중도는 기회주의적 중간노선이 아닙니다. 중도는 통합입니다. 좌와 우를 배격하지 않고 통합을 이루어서 실제로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개혁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세종대왕이 왕궁에서 한문을 쓰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는데도 기존 사대부들과 중국의 눈을 피해가며 백성들을 위해 훈민정음을 만든 것은 오직 애민정신이었습니다. 노비에게 석 달간 출산 휴가를 준 것은 천민들도 함께하는 통합사회에 대한 염원이었습니다.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노동자 복지제도를 시작한 것은 사회통합의 요구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키루스 대왕이 피정복자들에게 전리품을 나누어주고 현지인에게 자치권을 허용한 것은 통합과 평화의 기틀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좌우의 이념적인 갈등이 없었고 오직 국민만 있었습니다. 중도정치의 통합정신은 역사에 영원히 빛나고 있는 것입니다.

 

지방선거로 한국정치의 과거는 가고 새로운 시대가 다가왔습니다. 새로운 세대가 한국정치의 앞날을 맡아야 합니다. 이를 위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저도 저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를 한국정치의 미래를 위해 헌신으로 바치고자 합니다.

 

내일은 제헌절입니다. 비록 오늘 토론회가 개헌을 중심적으로 논하는 자리는 아닙니다만, 헌법과 정치제도 개혁의 문제는 가장 절실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그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분출되고 있는 새로운 정치제도에 대한 다양한 논의, 그 시발점이 되는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토론이 허심탄회하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8. 7. 16.

 

손 학 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