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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북미최고봉 맥킨리

질고지놀이마당 2009. 7. 17. 11:2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설산’을 다시 찾다
웨스트버트레스 루트 따르며 데날리의 미소 재발견

정오를 넘어서자 정상으로 향하는 산악인들이 점점 많아진다. 발라클라바 밖으로 드러난 표정은 대부분 일그러져 있다. 그런데도 이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피켈이나 스톡으로 균형을 잡아가면서 슬로모션으로 가파른 설릉을 한 발 한 발 올라선다. 수도자들 행렬은 길게 이어졌다. 설사면을 가로질러 데날리 패스로 올라서고, 가파른 설사면을 거쳐 풋볼 필드를 가로지른 다음 급사면을 치고 올라 정상 능선에 올라섰다. 그리곤 하나의 정점을 이룬 북미 최고봉 매킨리 정상에 한 명 한 명 우뚝 섰다.


▲ 커니스를 이룬 설릉을 따라 북미 최고봉 정상에 올라서는 김덕환씨. 얼굴을 내놓을 수 없을 만큼 강한 추위와 바람이 몰아쳤다.


선경 펼쳐지는 웨스트버트리스 따라 등반

폭풍설을 헤치며 모터사이클힐과 윈디코너를 거쳐 매킨리시티(4,300m)에 도착한 이튿날인 5월25일은 랜딩포인트(2,100m)출발 이후 처음 맞는 휴일이다. 매킨리시티는 이름에 걸맞게 수많은 팀들의 텐트들이 커다란 부락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들 모두 하이캠프로 올라설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23, 24일 이틀간 불어닥친 폭풍설 때문에 하이캠프인 데날리빌리지(5,250m)에는 발이 묶인 산악인들도 많다는 얘기가 전해졌다.

정오경, 체코 남녀 산악인 2명이 우리 텐트 옆에 눈을 파는 모습에 김덕환씨(동국대 OB)가 다가가 따스한 물 한 잔씩 건네준다. 등정에 성공한 뒤 폭풍설에 사흘간 하이캠프에 갇혀 있다가 지금 막 시티로 내려선 이들이다. 환한 표정의 여자와 달리 남자는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동상 때문이다. 그는 매킨리시티 의료텐트를 방문해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상태가 심각해 도보로 하산하지 못하고 이튿날 오전 헬기로 후송되어야했다. 시티에 머문 1주일간 이렇게 동상 환자를 후송하기 위해 헬기가 세 차례나 떠올랐다. 매킨리에서는 역시 추위와 바람이 가장 위험한 방해물이다.


▲ 카힐트나 빙하를 따라 올라가고 있는 산악인들. 경비행기로 접근하는 사이 광대한 설원을 걷는 산악인들의 모습은 흰 도화지 위에 점을 찍어놓은 듯했다.


“어휴, 이러다 기회도 없는 거 아니에요?”

예상치 못한 폭풍설을 C2와 C3에서 만나고, 시티에 올라섰는데도 날씨가 좋지 않자 모두들 불안해한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27일 바람이 잔잔해진 틈을 타 헤드월(Head Wall·4,940m) 위쪽 설릉에 짐을 올려놓고 시티로 내려와 레인저막사 앞에 적어놓은 일기예보를 확인한 결과 30일 바람이 15~20m/h로 가라앉는다고 한다. 시티에서 하루 쉬었다 하이캠프로 올라 그 다음날 정상공격에 나서기로 계획을 세워놓았기에 딱 맞는 날짜였지만 그래도 하루를 당겼으면 하는 마음에 갈등이 인다. 그렇지만 내일 날씨는 오늘과 비슷한 풍속(30~50m/h)에 구름이 많겠다고 나와 있다. 정오를 넘어서자 몇몇 팀은 헤드월을 올라선다. 악천후에 등반이 여러 날 늦춰지다 보니 일정에 쫓기게 된 팀들이다.

“시티에 오른 첫날 소주가 얼어붙더니 어젯밤은 텐트 안의 기온이 영하 16℃나 되었어요. 정말 대단한 추위네요. 이젠 정말 누에고치의 고통을 알 것 같아요.”


▲ C2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김병석씨. 캠프 구축시에는 눈을 파내고 눈벽돌로 담을 쌓아 바람에 대비해야 했다.

김덕환씨는 아침에 눈을 뜰 때면 누에고치가 떠오른다고 말하곤 했다. 우모복을 입은 채 침낭을 푹 뒤집어쓰고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입김이 닿는 옷과 침낭 부위는 허옇게 서리가 끼어 있거나 아예 얼음이 얼어붙어 있곤 했다. 밤 11시까지도 환한 백야가 이어지다 보니 답답해도 침낭을 얼굴까지 가리지 않으면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밤새 몰아친 바람에 잠을 제대로 못 이룬 28일은 결혼 20주년 기념일이다. 집에서 아이들 치다꺼리하느라 여념이 없을 아내를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 그지없다. 누에고치 생활이 뭐가 그리 좋아서 특별한 날마저 집을 비웠는지.

“형, 뭐 하세요?”

14년 전 비슷한 시기에 매킨리시티에 머물러 있던 기자는 텐트 천에 세계 지도를 그리는 강준호 형을 보곤 멀쩡한 텐트를 망치는가 싶어 왜 그러냐고 물었다.

“필석아, 아시아에선 에베레스트가 가장 높고, 유럽은 엘브루즈, 북미는 여기, 남미는 아콩카구아, 아프리카는 킬리만자로가 대륙을 대표하는 최고봉으로 알고 있는데, 나머지 2개 대륙 최고봉은 어디냐?”


강준호 형은 엉뚱한 사람답게 뚱딴지같은 질문을 했다. 당시 대장으로 참가한 박영석씨에게 대답을 들은 강준호 형은 각 대륙에 최고봉의 이름을 적어넣곤 깃발 표시를 했다. 언젠간 태극기를 꽂겠다는 각오였다. 그리곤 “좋다, 해 보자” 하곤 7대륙 최고봉 도전을 발표했다. 그 한 해 전 엘브루즈(5642)를 오르고, 97년 킬리만자로(5,895m)도 등정한 그는 98년 1월 함께 도전한 아콩카구아 정상에 오른 뒤 하산길에 추락사하고 말았다.

당시만 해도 매킨리를 찾는 사람 가운데 7대륙 최고봉 완등을 꿈꾸는 이는 거의 없었다. 지금은 달라졌다. 외국 산악인들은 시티의 캠프를 두리번거리다 말이 통하는 산악인을 만나면 자기가 오른 다른 대륙 최고봉에 대해 얘기하다가는 상대방에게 매킨리 다음은 어느 봉이냐 묻곤 했다. 매킨리를 찾는 많은 산악인들에게 7대륙 최고봉 완등이 최고의 관심사였다.

30일, 이제 하이캠프로 올라서는 날이다. 대개 헤드월에 햇살이 비춰져야 등반을 시작하지만 우리들은 서둘렀다. 한낮에 땀을 흘리며 등반하는 것보다는 조금 추울 때 걷는 편이 힘이 덜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틀 전 짐을 데포시킬 때에 비해 힘이 더 든다. 이런 체력으로 정상을 오를 수 있을까 염려되기는 했으나, 10피치 주마링 구간인 헤드월에 접어들자 속도가 빨라지고 이틀 전보다 30분 빠른 3시간 반만에 헤드월 상단에 올라선다.

헤드월 위쪽 설릉에 묻어두었던 식량과 장비를 배낭에 집어넣자 제법 묵직하다. 가파른 설릉을 따라 엄지손가락바위(Washburns Thumb)에 도착할 즈음 미국 클라이머들이 추월해간다. 맹인 한 명을 정상까지 올리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산악인들이다. 대원들은 무척 피곤한 표정을 짓지만 맹인 산악인은 굳은 의지 속에서 하이캠프를 향해 힘차게 올라 우리를 머쓱하게 했다.


▲ (왼쪽) 폭풍설과 화이트아웃 속에서 C3를 향해 오르다 김덕환씨가 암담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오른쪽) 모터사이클힐을 올라서는 산악인들. 커니스를 이룬 설릉이 아름다운 곳이다.


“와~, 정말 멋있네요. 그림 같아요.”

웨스트버트레스는 육체적·정신적 고통만 주는 능선이 아니다. 헤드월을 올라설 때는 각양각색의 텐트들이 캠프촌을 이룬 매킨리시티가 아름답게 바라보이고, 그 뒤로 웅장하게 솟구친 헌터(Hunter·4,442m)와 포레이커(Foraker·5,304m)는 영롱한 보석처럼 반짝이며 감동케 했다. 그러다 헤드월을 올라선 다음 능선을 따르노라면 구름 뚫고 솟구친 설릉이 자아내는 선경에 취해 넋을 잃고 말았다. 게다가 데날리패스 왼쪽으로 고개를 빼꼼 치켜들고 있는 북봉(5,934m)은 어서 오라 불러대는 듯하다. 이런 풍광에 데포해 놓은 짐을 배낭에 넣어 한층 힘겨운 상황인데도 김병석씨(광양 그루터기산악회)와 김덕환씨는 즐거움이 넘치고 멋진 풍광을 카메라에 담기 바쁘다.


풋볼필드 올라서자 옛 기억 떠오르며 흥분 일어

엄지손가락바위를 올라서자 여자 산악인을 선두로 4명의 외국 클라이머들이 내려온다. 어제 하이캠프로 향했던 이들이다. 표정이 어둡다. 오늘 오전 정상공격을 시도했으나 강한 바람에 밀려 포기하고 시티로 내려서자니 마음이 착잡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들은 분명 내일 날씨가 더욱 좋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계획된 일정에 쫓겨 오늘 정상공격에 나섰을 것이다.


▲ 피곤한 표정으로 웨스트버트레스 능선을 따르는 김병석씨. 포레이커와 카힐트나 빙하가 바라보인다.

매킨리에 도전한 수많은 팀들은 3주 안팎의 일정으로 등반에 나선다. 하지만 이번 시즌처럼 대엿새씩 날씨가 좋지 않은 상황을 만난다면 결국 등반 가능한 기간은 2주밖에 되지 않고, 그렇다보니 원정 종료시점이 다가오면 마음이 조급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등반기간을 2주 정도 잡은 우리 역시 답답한 마음에 어제 하이캠프로 올라설까 망설이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딱 한 번의 기회를 가장 좋은 날에 맞추는 게 현명하겠다 싶어 오늘 하이캠프로 향하는 것이다.

매킨리시티를 출발, 6시간 반만에 도착한 하이캠프는 차분히 가라앉아 있다. 외국 산악인들 대부분이 내일 등정을 앞두고 체력을 최대한 아끼고 마음자세를 가다듬는 듯싶었다. 우리로서는 캠프지를 만드는 게 시급한 일. 시티의 5인용 텐트보다 작은 3인용 텐트지만 삽으로 눈을 파내고, 톱으로 눈블럭을 잘라내 텐트 주변을 둘러 쌓노라니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주변의 외국 산악인들이 우리 캠프에서 눈길을 떼지 않는다.

하이캠프에 올라 있는 70여 명의 외국 클라이머들은 대부분 사나흘씩 묵고 있었다. 내일 등정길에 나서겠다는 우리 얘기에 의아스런 표정이다. 이들은 마지막 캠프에서 체류하는 시간을 짧게 하고 등정을 시도하는 게 좋다는 우리의 등반상식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보다는 5,250m대 캠프에서 여러 날 쉬면서 적응기간을 갖고 정상을 향하는 게 성공확률이 높다는 판단이다.

완성시킨 텐트는 시티 캠프에 비해 좁고 낮지만 그래도 아늑하다. 눈을 녹여 차를 여러 잔 마시고 동결건조미 두 봉으로 저녁을 해결한 다음 ‘빌리지 산책’에 나선다. 레인저캠프 부근의 커다란 렌치에는 로프가 잔뜩 감겨 있다. 사고자를 헬기접근이 가능한 매킨리시티까지 후송하는 데 쓰이는 구조장비였다. 하이캠프와 매킨리시티와의 표고차가 1,000m에 이르니 결국 거의 1,000m 이상의 로프가 감겨 있는 셈이다.

하이캠프는 과연 ‘데날리빌리지’라는 이름이 어울릴 만큼 아늑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매킨리시티의 캠프들이 개미만큼 작게 보이고, 헌터와 포레이커뿐 아니라 카힐트나 빙하로 뻗어내린 웨스트버트레스 설릉, 그리고 그 너머 피터즈빙하(Peters Gl.) 일원의 설산들과 그 너머로 거대한 평원까지 몽땅 바라보인다. 설산의 아름다움과 대평원의 편안함이 함께 곁들여지면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일찍 출발하는 게 성공확률이 높다는 형 말이 맞는 것 같네요. 지금부터 준비하죠.”


▲ (왼쪽) 하이캠프인 데날리빌리지. 표고차 300m의 데날리패스로 이어지는 허릿길이 빤히 바라보인다. / (오른쪽) 헤드월을 향해 줄지어 오르는 산악인들.

새벽 4시30분, 김덕환씨가 깨운다. 기껏 해야 대여섯 시간밖에 안 잔 것 같은데 워낙 푹 잠이 들다보니 몸이 상쾌하다. 그래도 깨죽과 잣죽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뜨거운 물을 보온통에 채워 넣은 다음 장비를 챙기고 나니 7시가 다가온다. 우리 캠프 위쪽에 텐트를 치고 있는 AAI(America Alpine Institute) 상업등반대 대원들은 우리 눈치를 보며 출발하지 않는 분위기다.

7시 정각, 데날리빌리지 설원을 가로질러 데날리패스로 접어든다. 그제야 AAI팀 10명이 뒤따라온다. 설벽을 가로지른 허릿길을 느림보 걸음으로 가노라면 그들에게 방해도 되고 나에게도 부담될 듯싶어 양보하자 모두들 고마워한다. 안자일렌 상태로만 해도 패스까지 오르는 데 큰 문제없을 것 같은데 앞장선 김덕환씨는 확보물마다 자일을 통과시키며 안전에 최선을 다한다. 마음은 벌써 패스를 올라섰는데 몸은 한참 밑에 머물러 있다. 14년 전 패스를 올라서는 데 2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던 것 같은데 2시간이 지나는데도 데날리패스가 아직도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AAI팀 꼬리가 고개 너머로 모습을 감추고도 20분쯤 지나서야 패스에 올라선다.


▲ 데날리패스에서 풋볼필드로 향하는 산악인들.

깊숙한 안부를 이룬 패스에는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 AAI팀 대원들은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급경사 능선길로 향한다. 따스한 물 한 모금에 간식으로 체력을 보강하고 급사면으로 접어든다. 젊은 남녀 한 쌍이 오버행 바위 아래서 엉거주춤한 상태로 있다. 여자는 막 볼일을 끝낸 듯하고, 남자는 여자의 불편함을 달래주려는 듯 옆에서 껄껄대며 오줌을 눈다. 그리고 1시간쯤 더 올라갔을 때 뒤따라오다 우리를 추월해 가는 그 여자에게 김덕환씨가 다가가 벙어리장갑을 끼워준다. 매킨리 등반 중, 특히 정상을 향하다 잠시라도 장갑을 벗는다면 손가락을 자를 위험마저 있다. 그런데 고소증이 심하다보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이다.

“형, 그 속도로 정상까지 갈 수 있겠어요?”

이제 완경사 설릉을 따라 풋볼필드(Football Field)로 올라서는 클라이머들과 그 너머에 솟구친 정상 능선이 보인다. 능선 오른쪽 턱이 카힐트나 혼(Kahiltna Horn·약 6,096m)이요 왼쪽 끄트머리가 정상이다. 김덕환씨가 100발짝에 한 차례씩 쉬면서 숨을 고르자 그런 속도로 갈 수 있겠냐고 묻더니 선두 자리를 내게 넘긴다. 아무래도 속도가 처지는 나를 앞장세우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 헤드월을 오르다 쉬고 있는 김덕환씨와 김병석씨. 캠프촌을 이룬 매킨리시티와 헌터가 바라보인다.


정상 풍광은 분명한 대가이자 보상

선두 자리를 넘겨받자 오히려 힘이 솟는 것 같다. 마지막 언덕을 넘어 넓디넓은 설원인 풋볼필드와 정상 능선이 마주보이자 14년 전 기억과 지금은 만날 수 없게 된 선배의 얼굴이 떠오르고 한편으론 흥분이 인다. 당시 일행 6명은 화이트아웃과 강풍이 번갈아 등장하는 상황에서 정상으로 향했다. 그러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데날리패스를 올라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속이 불편해지더니 설사를 하고 말았다. 안전벨트를 풀고 바지를 내리고-. 다시 바지를 입었을 땐 엉덩이는 얼음장처럼 차가워졌고, 손가락은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가슴팍에 손을 넣고 주무르기를 20여 분. 손가락이 서서히 풀려가자 마음이 놓였다. 다시 용기를 내어 일행을 뒤쫓아갔으나 이미 거리는 내 시원찮은 걸음으로 좇아가기에는 너무 벌어져 있었다.

어느 순간 광풍이 불어왔다. 설릉에 피켈을 꽂고 거의 기도자세를 취했다. 이러다 죽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 때 누군가 등을 툭툭 치며, 괜찮냐 묻더니 함께 오르자고 권했다. 외국 클라이머였다. 그는 너무나도 편안한 모습으로 앞장서 나아갔다. 그렇게 생면부지의 외국 클라이머 뒤를 좇아 오르기를 1시간쯤 했을 때 어마어마한 설원인 풋볼필드가 펼쳐지고, 정상 능선에서 움직이고 있는 일행의 모습이 바라보였다.


 

일행은 이미 하산길에 접어들고 있었고, 30분쯤 지나 풋볼필드에서 만난 선배 산악인 한상국씨는 “합의했던 대로 내려가자”며 하산을 종용했다. 당시 개인 8명이 모여 나선 원정이었던 터라 사고 시 뒤처리가 걱정이 되었다. 해서 등정길에 나섰다 마지막 등정자가 내려올 때 만나는 사람은 무조건 하산하기로 약속을 했었다. 그 제안은 기자가 했던 것인데, 자충수에 걸려든 셈이 되고 만 것이다.

풋볼필드를 지나 급경사 설벽에 접어들자 클라이머들의 발걸음이 더욱 느려진다. 모두 고뇌에 차 있다.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 것일까. 한 발 한 발 오르면서도 왜 이렇게 무의미한 행위를 하나 회의가 인다. 그것도 적잖은 시간과 경비를 들여가면서까지. 매킨리 정상에 오르면 그 이유가 깨달아질까?


▲ 북미 최고봉 정상에 오른 대원들. 오른쪽에서부터 김병석, 김덕환, 기자.
어렵사리 설벽을 올려치고 카힐트나혼에 서자 많은 배낭이 놓여 있다. 정상을 향한 등반객들의 소지품들이다. 바람이 매섭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좁은 설릉을 따르다 왼쪽으로 떨어지면 150여m 아래 풋볼필드요, 오른쪽은 3,000여m 아래 이스트포크 카힐트나빙하(East Fork Kahiltna Gl.)다. 바람이 획 불어댈 때마다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선다. 그래도 멋진 풍광에 배낭에 넣어둔 카메라를 끄집어내는 모습에 김덕환씨는 어이없어한다.

정상이 다가올 즈음 외국 산악인들이 내려오고 있다. 바로 직전 등정의 기쁨을 누렸을 텐데 표정이 무겁다. 이렇게 무거운 표정을 얻으려고 북미 최고봉에 올랐단 말인가.

강풍이 휘날리는 정상은 카힐트나혼에서 올라온 날카로운 설릉과 캐신리지, 그리고 사우스 버트레스(South Buttress) 3개 능선의 꼭지점에 솟구쳐 있다. 남쪽 캐신리지쪽은 웅장하면서도 험난하고, 그 뒤로 헌터는 기운차게 솟구쳐 힘을 북돋아주고 있다.
정상 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던 동쪽 산군은 멀리 대평원과 이어지면서 편안한 산세를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이런 풍광을 보며 가슴 벅차하기 위해 50kg 가까이 나가는 무거운 짐을 끌고 매킨리시티로 올라서고, 동상을 각오하면서 하이캠프를 거쳐 예까지 올라온 것이란 말인가. 그래도 분명 보상이었다. 지금 이곳이 아니라면 볼 수 없는 풍광이 발아래 펼쳐져 있었다.

김덕환씨는 ‘현수야, 사랑해’ 글자를 써넣은 스포츠타월을 펼쳐들고 찰칵하고, 김병석씨 역시 가족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듬뿍 적어넣은 타월을 펼쳐들고 찰칵한다. 그 사이 외국 산악인들이 한 명 한 명 올라온다. 모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그래도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우리에게 카메라를 건네주곤 한다. 한 순간 한쪽 아이젠으로 반대쪽 신발을 찍으면서 균형을 잃고 미끄러지는 클라이머가 있었으나 다행히도 500여m 절벽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 멈추었다.

하산길-. 다리는 천근만근이지만 마음은 평안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부드럽고 아름다운 설릉을 오르는 데 왜 그리 힘들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외국 클라이머들 역시 마찬가지. 정상으로 향할 때의 무표정함 대신 부드러운 눈길을 주고받으며 등정을 축하해준다. 이제 마음놓고 카메라를 눌러댈 여유도 누리고, 김덕환씨는 아껴두었던 보온병 안의 따뜻한 물을 선배들에게 따라준다.

▲ 풋볼필드를 가로질러 카힐트나혼으로 오르는 산악인들. 능선 왼쪽에 정상인 남봉이 솟아 있다.

등정 9시간, 정상체류 1시간30분, 하산 4시간30분 등 15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하이캠프로 내려섰을 때는 밤 10시. 그런데도 텐트 밖은 밝기만 하고, 텐트 곳곳에서 도란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바람 소리까지도 다정스럽게 느껴진다.


아름답고 다양한 산세 지닌 북미 최고봉

이튿날 아침, 그제 저녁이나 어제 아침과 달리 클라이머들이 텐트 앞에서 커피 한 잔씩을 손에 들고 담소를 나누거나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등정의 기쁨을 만끽하는, 너무도 행복한 표정들이다. 이제 서두를 이유도 없다. 몸이 이끄는 대로 마음 닿는 대로 움직이면 된다. 정상을 오른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이자 자유가 바로 이런 것인가 보다.

오후 11시경, 텐트를 걷고, 배낭을 꾸린 다음 다시 한 번 빌리지 산책에 나선다. 역시 아름다운 곳이다. 매킨리만큼 아름답고 다양한 산세를 지닌 산도 드물 것이다. 도화지를 펼쳐놓은 듯 깨끗하고 거대한 빙하 주변에 반짝이며 솟구친 수많은 설봉과 설릉들-. 그와 더불어 이 산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흰 눈만큼 순수한 등산인들이 찾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산이 수많은 고산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게 느껴져 왔고, 14년만에 다시 찾은 게 아닌가 싶어졌다.

헤드월을 향해 내려서는 사이 부지런한 클라이머들이 벌써 올라오고 있다. 고뇌에 찬 표정들이다. 간혹 정상을 밟았냐 묻곤 축하해주는 클라이머들도 있지만 대개는 말 한 마디 건넬 힘조차 없어 보인다. 그들은 우리가 겪었던 똑같은 길을 따르며 환상을 좇는 멍청이 산꾼들이었다.


웨스트버트리스 등반법

캐시 앤드 캐리 방식으로 캠프 이동

‘위대한 산’이라는 의미의 데날리(Denali)라는 원래 이름과 함께 미국 제25대 대통령의 이름인 매킨리(Mckinley)로 불리고 있는 북미 최고봉은 경비행기를 타고 데날리 국립공원의 명봉들을 바라보면서 설원에 내려앉아 등반을 시작한다는 점, 거대한 설원과 반짝이는 설봉이 자아내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 여기에다 크레바스, 설벽, 설릉 등 고산이 갖추고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하고, 모든 짐을 등반객 스스로 옮기면서 등반하기에 여느 고산보다 더욱 뜨거운 성취감까지도 누릴 수 있다는 점 등이 매력인 고산이다.

▲ 탈키트나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35분만에 닿은 랜딩포인트. 날씨가 허락한다면 매킨리뿐 아니라 헌터(앞봉), 포레이커 등 데날리 3대 봉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7대륙 최고봉 등정 붐이 일기 시작한 2000년 이후 등반객은 급속도로 늘어나 매년 등반시즌인 5~6월 두 달간 1,500명에 이를 만큼 많은 산악인들이 도전하기에 이르자 데날리 국립공원측에서는 산이 오염될 것을 염려해 한 시즌 등반인원을 1,000명 이내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렇지만 실상 대다수 산악인들이 등로로 삼는 웨스트버트레스(West Buttress)를 비롯한 여러 루트의 등정율은 5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게 데날리 국립공원측의 통계다. 또한 위험한 구간마다 고정로프가 깔려 있거나 확보물이 박혀 있고, 전진베이스캠프인 매킨리시티(4,300m)와 마지막 캠프인 데날리빌리지(5,250m)에 레인저가 상주하고 있음에도 해마다 사고가 끊이지 않는 산이다. 탈키트나 산악인 묘지에 적혀 있는 사망자 수만 해도 150명 가까이 된다.

한국 산악인의 경우 79년 에베레스트 초등자인 고상돈씨가 이일교씨와 함께 추락사하는가 하면 92년 3명, 94년 2명, 그리고 2006년 1명 등 여러 차례의 인명사고가 일어나 한동안 악명 높은 산으로 인식돼 왔다. 올해의 경우 5월 중순 일본 산악인 2명이 캐신리지 등반 중 실종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 (왼쪽) 매킨리시티에 설치한 이탈리아 팀 캠프. 텐트가 보이지 않을 만큼 담을 높이 쌓고, 주방까지 꾸며놓았다. / (오른쪽) 데날리빌리지에 설치된 렌치. 1,000m 아래 매킨리시티까지 사고자를 내리는 데 사용된다.
이는 아마추어가 많이 찾는 까닭과 더불어 매킨리만이 지닌 자연적인 특성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매킨리는 북극권에 위치(북극점에서 약 322km)해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산으로 꼽히고 있으며, 공기 중 산소가 희박해 해발 6,194m 높이의 산이지만 7,000m급에 준하는 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게다가 베링해협과 알래스카만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과 눈보라와 함께 급습하는 화이트아웃이 등반대를 애를 먹이곤 한다.

이번 등반 때도 C2(2,900m)에서 C3(3,400m)로 오를 때는 화이트아웃에 길을 찾느라 고생해야 했고, 윈디코너를 향할 때는 추위와 강풍 때문에 긴장할 정도였다. 매킨리시티에 머무는 1주일간 동상환자 수송을 위해 세 차례나 헬리콥터가 올라왔다. 대부분 등정 후 하산한 이들로, 레인저들은 헬리콥터로 후송된 이들 대부분 동상부위를 절단할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해 주었다.

매킨리 등반 중 가장 애를 먹는 게 짐이다. 적어도 50kg가 넘는 짐을 한 번에 옮기기는 어려운 일. 대부분의 산악인들은 스키나 설피를 신고 배낭과 썰매를 이용해 캐시 앤드 캐리(cache & carry) 방식에 준해 짐을 옮긴다(현지에서는 우리 산악인들이 짐을 올려놓는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데포’라는 말 대신 캐시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따라서 캠프 구간을 두 차례씩 짐을 나누어 옮기기도 하고, C3(3,400m)까지는 하루에 하나씩 캠프를 올린 다음 경사가 가파르고 청빙구간이 나타나는 모터사이클힐 아래 C3에 스키와 설피 외에 예비 식량과 불필요한 장비를 데포시킨 뒤 매킨리시티(4,300m)까지는 두 차례에 나누어 짐을 옮기기도 한다. 이 경우 첫날 윈디코너 너머 설원에 짐 일부를 옮긴 뒤 C3로 내려와 하룻밤 자고 이튿날 나머지 짐을 가지고 매킨리시티로 향한다.

매킨리시티까지 오르는 사이 썰매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산악인들이 많이 있다. 안전벨트나 배낭에 끈으로 연결시켜 놓은 무거운 썰매를 끌고 올라가는 것만 해도 힘든 일인데 좁은 설릉이나 설사면을 오를 때면 옆으로 쏠리는 일이 생겨 짜증스럽게 하고, 하산길에는 앞으로 쏠리거나 뒤집히면서 성가시게 한다. 썰매에 짐을 실을 때는 무게 중심을 가능한 한 낮게 하고, 등반자 뒷줄을 썰매 위쪽에 걸어놓은 카라비나에 통과시키는가 하면, 하산할 때는 스키폴로 연결시켜 밀면서 내려가는 것도 요령이다. 

▲ 탈키트나의 K2 항공사 부근의 산악인 묘에 있는 고상돈 추모비.
매킨리시티에 도착 이튿날은 푹 쉬면서 대열을 정비하고 세쨋날 짐의 일부를 헤드월(Head Wall·약 4,940m)과 엄지손가락바위(Washburns Thumb) 사이 설릉에 짐을 묻어둔다. 관리소측은 1m 이상 깊이로 눈을 파낸 다음 짐을 묻어두라고 권한다. 무엇보다 까마귀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서다.

짐을 웨스트버트레스 능선 상에 올려놓고 내려온 다음에는 반드시 하루 이상 휴식을 취하고 하이캠프인 데날리빌리지(Denali Village·5,250m)에 올라선 이후에도 역시 적어도 하루 이상 쉬면서 고소에 적응한 다음 등정길에 나서라는 게 레인저들의 충고다.

정상공격은 매킨리시티의 레인저캠프 칠판에 적혀 있는 일기예보에 준해야한다. 대개 하이캠프 이후의 날씨 1주일치가 적혀 있다. 풍속이 20m/h 이하인 날을 등정일로 잡도록 한다.

정상으로 향할 때 가장 위험한 구간은 하이캠프에서 데날리패스(Denali Pass·5,547m)로 이어지는 사면 트래버스. 매년 레인저들이 30m 안팎 거리로 스노바를 박아놓고 간간이 카라비나까지 걸어놓아 등반객의 경우 자일만 통과시키며 진행하면 큰 문제가 없지만 오후 들어 하산길에는 눈길 폭이 넓어져 대부분 안자일렌도 하지 않은 상태로 내려서곤 한다. 그러나 고산증이나 탈진상태에 이른 이들은 자일 확보 없이 내려서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추락시 400~500m 아래 크레바스 지대까지 곧바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 년에 한 번씩 추락사고가 일어나 데날리 국립공원측에서 가장 위험한 구간으로 꼽고 있다.

데날리패스를 넘어선 이후 풋볼필드까지는 크게 위험한 구간이 없다. 단 해발 6,000m대의 대설원인 풋볼필드(Football Field)까지는 고소증세로 저하된 체력과 컨디션으로 올라야하고, 정상 능선에 올라서려면 수직고 150m의 가파른 설사면을 올려쳐야 한다. 정상 능선에 올라선 이후로는 설벽 상단을 가로지르거나 좁은 설릉을 따라야 하는데, 바람이 불 경우에는 매우 위험한 구간이다. 중간 중간 박혀 있는 스노바를 잘 이용하면 안전하게 북미 최고봉 정상에 설 수 있다.

▲ 탈키트나 사무소에서. 왼쪽부터 김덕환, 오갑복, 김병석, 로저 로빈슨, 기자.
장비는 동계 고산장비에 준해야 하며, 식량은 일정보다 넉넉히 준비해야 한다. 등반을 마치고 탈키트나행 경비행기를 타기 위해 랜딩포인트로 돌아온 뒤에도 악천후로 비행기가 뜨지 않아 여러 날 머물러야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랜딩포인트에도 2~3일분의 식량을 눈 속에 묻어두어야 한다. 매끼 식사는 동결건조미보다는 압력밥솥을 이용하는 게 컨디션 유지에 좋다는 게 경험자들의 평이다.

데날리 국립공원 소속 탈키트나 레인저 사무소장인 로저 로빈슨씨(Roger Robinson)는 “쓰레기와 분뇨 처리에도 철저하게 신경써야 하지만 바람과 추위가 대단한 산이므로 특히 동상에 조심해야한다”며, “포레이커 정상에 버섯구름이 형성될 경우 뒤도 돌아보지 말고 안전지대로 피하라”고 당부했다. 로빈슨씨는 “하이캠프 이후 등정시간은 컨디션이 좋을 경우 8시간 이내에 가능하지만 18시간 이상도 걸린다”며 “모든 동상의 50% 이상, 모든 사고의 25% 이상, 모든 재난의 55% 이상이 등정 당일에 일어나므로 무리한 등정은 삼가라”고 덧붙였다.

앵커리지와 탈키트나 사이의 도시인 와실라에 거주하며 20년 동안 한국 산악인들의 매킨리 등반을 도와주고 있는 오갑복씨(www.denaliclub.com)는 “간혹 무모하게 등반하는 한국인들 때문에 황당한 경우를 겪을 적이 있다”며, “준비를 철저히 하고 여유를 가지고 등반에 임해줄 것”을 당부했다.

등반시즌은 5~6월 두 달간이지만 5월은 춥고 날씨 변화가 심하므로 6월 초나 중순을 등정시기로 잡고 일정을 짜는 게 바람직하다. 데날리 국립공원은 매킨리 등반객에 한해 1인당 120달러의 입산료를 받고 있다. 등반 두 달 전까지 탈키트나 사무소에 입산신청을 해야 하며, 한 달 전까지 팀당 대원 1명을 추가 신청할 수 있다.


출처 : 시나브로/늘픔
글쓴이 : 시나브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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