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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노조 재투표 결정 왜? 어디로?

질고지놀이마당 2009. 9. 16. 20:04

현대차 노조의 제 3대 지부장 선거 결과 공식발표가 늦어지더니 선관위에서는 '재투표 실시' 결정이 내려졌다.

내부 사정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이기는 하지만 이는 필자로서도 예상 밖의, 당혹스러운 결정이다.

어느 후보진영의 유 불리를 떠나서 향후에 미칠 영향이 워낙 민감하고 크기 때문이다.

 

<발단>

문제의 발단은 판매위원회 소속 경남지역 투표함에서 투표자 수(226) 보다 투표용지 수(227)가 한 장 많이 나온 것에서 부터다.

당연히 개표 참관인 측에서 문제제기가 따랐을 것이고, 개표는 일시 중지 되었다.

선관위는 자체 회의를 통해서 개표를 마냥 중단할 수 없으므로 '당락에 영향을 끼칠 경우에 재투표를 실시한다'는 결정을 하고 이후 개표를 진행했다.

그리고 개표 결과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기호 1번과 3번의 결선투표로 판가름 나는 듯 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의 투표함에 대한 처리를 두고 선관위에서 전면재투표라는 결정을 한 것이다.

 

물론, 한 표든 열 표든 투표자 수와 투표용지 수가 맞지 않으면 투표의 공정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 받게 된다.

따라서 그 처리는 대다수 조합원들이 수긍 할 수 있도록 엄정하게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한 표의 무효표에 대해 그 투표함의 무효 처리가 아닌, 전 조합원 투표 전체를 무효로 하고 재투표를 실시한다는 결정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와 같은 결정은 필자 기억으로 현자노조 22년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기도 하다.

 

<재투표 결정이 갖는 문제점>

필자는 어느 후보 진영에 유불리라는 측면에서 접근하지 않고 노조 장래를 걱정하는 입장에서 이 글을 쓴다는 점을 먼저 밝힌다.

누구나 공감하고 있는, 위기상황이라 진단하는 현자노조의 장래가 너무나 염려스럽기 때문이다.

 

전면 재투표 실시라는 선관위 결정은 기 알려진 비공식 개표결과 1위와 2위를 차지한 후보진영에서 흔쾌하게 승복하기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다.

조합원들도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여서 혼란 종식과 노조 정상화의 길이 아닌 또다른 혼란의 시작이며 정상화에 암초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예상되는 문제점을 짚어보자.

 

첫째, 집행부 사퇴로 공석이 된 지도부를 빨리 선출해서 노조정상화를 이룩하기 위한 선거인데 오히려 정상화의 길이 멀어질 수 있다.

선관위의 재투표 실시 결정에 대해 각 후보 진영에서 흔쾌하게 승복하지 않으면 재선거 자체가 원만하게 치러질 것인지조차 불투명하다.

재투표에서 순위가 뒤바뀌는 경우를 배제할 수 없는데 재투표에서 의외의 결과가 나오면 결선투표와 달리 극심한 후유증이 따를 것이다.

선관위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면 정상화의 길은 더욱 멀어진다.(아래 넷째 참조)

 

둘째, 정상적인 선거운동이 종료된 상태에서 재투표에 대한 각 후보진영과 지지자들의 자기주장이 난무하면서 현장은 혼란이 가중될 것이다.

이미 선관위 결정의 공정성 및 외부세력의 사주나 결탁 등 '음모설'과 출처 불명의 마타도어가 유포되고 있다.

이러한 혼란이 증폭되면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으로부터 더욱 멀어질 뿐이다.

 

세째, 재투표를 실시 하더라도 같은 문제가 재발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전국 수많은 투표소에서 실시하는 투표함 중에서 실수이든 고의적이든 투표자 수와 투표용지 수가 맞지 않는 경우가 생기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것인가?

선례를 잘 못 만들면 이후 두고두고 부메랑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후 어느 임원 투표에서든 세 불리한 쪽에서, 혹은 불순한 의도를 가진 개인이나 조직적으로 투표 자체를 방해하는 선례로 악용될 수 있다.

또는 경험과 전문성 부족에 의한 단순 실수일 가능성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매번 무효화 시키고 재투표를 실시할 것인지?

       

넷째, 전면 재투표 실시 결정은 현자노조가 자체적인 선거관리의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점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일이다.

이는 현자 노조 및 조합원들의 명예와 자존심이 크게 훼손되는 일이다.

따라서 재투표를 실시할 만큼 공명선거가 의심되는 중차대한 '선거부정'이라면 그 책임소재부터 확실히 해야 한다.

만약 어느 후보 진영에서 의도적인 선거부정을 했다면 그 후보는 후보자격 박탈은 물론, 이후 중징계에 회부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번에 발생한 투표자 수와 투표용지 수가 차이가 나는 귀책사유는 어느 후보 진영이 아닌 선관위의 투표관리 잘못인 것이다.

 

물론 한시적이고 한정된 선관위 인력으로 전국 각지에 산재한 투표소를 직접 관리 감독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따라서 지부나 지회, 대의원, 일시적인 선거 종사자 모집 등 공조직의 도움을 받아서 선거관리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이런 특성을 감안하여 객관적으로 볼 때 이번 사유는 현지에서 선거관리를 담당한 투표종사자의 실수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러함에도 전면 재투표를 실시 한다는 것은 원인과 해법을 침소붕대 하는 것이며, 순수성과 공정성을 의심받기 십상인 결정이다.

또한, 결과적으로 선관위에서 투표관리를 잘못한 책임을 후보진영에게 떠 맡기는 꼴이다.

이런 문제의 연장선에서 보면 새로운 선관위를 구성해서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주장까지 비약할 수 있으므로 노조 정상화의 길은 점점 요원할 뿐이다.

 

<각 후보 진영의 입장 분석과 향후 전망>

현재 드러난 각 후보 진영의 재투표 실시에 대한 입장을 정확히 확인할 길은 없다.

단, 기호 2번 진영만 선관위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선대본부장 명의로 밝혔을 뿐, 나머지 세 후보 진영은 입장이 없다.

이는 승복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승복하기 어렵다는 내부 진통의 과정으로 해석된다.

 

미루어 짐작을 하더라도 1위와 2위로 득표하여 결선 투표에 진출했다고 생각한 1번과 3번 후부 진영은 재선거 실시를 받아 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근소한 표차로 결선에 진출한 3번 진영은 더욱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태다.

물론, 1위 득표를 한 1번 후보 진영이라 하더라도 확정적인 결선 진출을 백지화 시키고 재투표를 수용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신 근소한 표차로 3위에 머문 2번 진영은 기사회생의 기회를 잡았으므로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는 입장이다.

4위를 한 4번 진영은 이리 하든 저리 하든, 결선투표에 진출할 가능성이 난망한 상태라서 재투표 실시 여부에 대해서 관심 밖일지 모른다.

 

여기서 다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즉 선관위 유권해석과 결정에 따라서 이른바 '득'을 보는 쪽과 '손해'를 보는 쪽은 조합원들 입장에서도 쉽게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재투표를 통해서 득을 볼 수 있는 진영과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진영이 어디인지.

오비이락 처럼 공교롭게도 선관위원장이 특정 후보 조직의 의장단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정성에 오해받기 십상이다.

따라서 대다수 조합원들이 선관위의 결정에 대해 머리를 끄덕일만큼 공정하고 순수하다고 판단하지 않으면 역풍이 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설사 재투표가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번 진영으로서는 '기회'라고 판단한 재선거가 역풍이라는 암초를 만나 난파선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순위가 뒤집히는 경우가 생기면 그 후유증도 크게 오래 남을 것이다.

회사의 입장이 어떨지 알 수 없으나 일각의 소문대로 특정후보를 도와주기 위해 손을 댄 경우라면 오판이다.

성공 확률도 높지 않을뿐더러 이런 선례를 만들면 회사도 나중에 감당하기 어려운 혼란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재투표가 이뤄지면 남은 후보들은 분주한 셈법을 통해서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만들어 갈 것이다. 

이른바 '민주파'로 분류되는 3번과 4번 후보 진영 및 여타 '민주세력'의 연대 가능성을 점칠 수 있다.

4번은 어차피 안되니까 재투표에는 관심을 쏟을 이유가 없고 3번을 지원하자고 하든가(가능성 낮지만), 가만 두어도 4번에 투표한 성향은 1번과 2번으로는 거의 가지 않을 것이므로 자동 3번에 가거나 기권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후보를 내지 않은 군소 조직까지 가세하면 3번은 재투표가 나쁘지 않을 수 있다.

더욱이 4번 진영은 금속노조 위원장 후보가 출마한 상태고, 3번 진영은 금속노조 위원장 후보를 내지 않았으므로 역할 분담 공조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반해 1번과 2번 진영은 서로가 양보할 수 없는 본선 진출권을 두고 '피 터지는'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1번 이경훈 후보는 1위를 한데다 이번에야 말로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으므로 양보란 생각할 수 없는 입장이다.

2번 진영은 결선투표에만 오르면 1번이든 3번이든 어느 후보를 상대해도 승리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마찬가지 입장이다.

2번 진영의 1번에 대한 반감은 3번보다도 심한 상태라서 이리되면 재투표 결과는 예측불허의 3자간  이전투구 및 혼전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선장 자리를 다투는 사이에 배는 서서히 침몰해 버리는..

 

진퇴양난에 빠진 선관위, 눈 앞의 이해관계에 매몰된 후보진영.. 현자노조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현재로서는 세 가지이 길이다.

재투표 강행, 재투표 철회, 2번 후보의 대승적 결단

 

필자의 판단으로 최악은 경우는 재투표 강행이다.

남은 두 가지 해법 중에서 재투표 철회는 선관위가 한번 결정한 재투표 결정을 번복하기도 쉽지 않겠지만 재투표를 강행하는 것보다는 나은 해법이다.

이게 성사되기 위해서는 선관위 결정을 되돌릴만한 명분과 현장여론의 향배가 불리하게 작용하는 상황이 동시에 필요할 것 같다.

결국 자승자박을 한 꼴이 된 선관위가 결정을 번복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2번 후보 진영이 결단을 내려 주는 것이 가장 빠르고 지혜로운 해법이라 생각한다.

물론 2번 진영의 입장에서는 재투표 원인제공(?)을 한 장본인은 3번이라 보니까 억울하고, 재투표하면 이길 수 있겠다는 간절한 심정 이해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민심의 향배를 누가 알랴, 역풍을 맞으면 다음을 기약할 수도 없는 난파선의 신세가 될 위험성이 더 높다.

관전자 입장에서는 멀리 길게 보는게 이기는 길로 보이는데, 선거에 매몰된 당사자들에게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