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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위원장 선거 향배와 이후 전망

질고지놀이마당 2009. 9. 28. 16:55

2파전으로 치러진 금속노조 위원장 선거는 1차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어서 1위를 차지한 기호 1번 박유기 후보팀에 대한 찬반투표를 치른다.

지난 21~23까지 치러진 선거에서 기호1번 박유기 후보팀은 전체 유효표의 49.39%인 54,940표를 얻었으나 과반수 득표에는 0.61% 미달했다.

 

 

24일 개표결과에 따르면 투표권을 가진 전체 조합원 수는 147,616명.

이중 투표자는 111,233명(투표율 75.32%).

기호 2번 김창한 후보팀은 48,168표(43.30%)를 득표하여 2위에 머물렀다.

 

이에 따라서 금속노조 선거관리규정에 따라 결선투표는 9월 28일 ~30일 3일 동안 박유기 후보팀에 대한 찬반투표로 치러진다.

이는 후보자가 3팀 이상일 경우에는 1위와 2위팀을 두고 결선투표를 치르지만 두 팀만 출마했기 때문에 1위팀에 대한 찬반투표를 실시하는 것.

찬반투표는 과반수 이상 투표에 과반수 이상 찬성으로 가결되기 때문에 박유기 후보는 사실상 금속노조 위원장에 당선된 것이나 다름없다.

 

박유기 위원장 후보가 무난한 승리를 한 것은 어찌보면 의외라 할 수 있다.

'선물비리'라는 악재는 민노회 조직의 지지기반을 송두리째 흔들리게 만들어서 현대차 지부장 선거에서 자파 후보가 4위에 머무는 고전을 했다.

물론, 비록 4위에 머물렀지만 온갖 악재를 안고 출마한 것을 감안하면 내용상으로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그렇다고 금속 위원장 후보에게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됐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위원장 후보가 속한 현대차 지부 내에서의 분위기는 지지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무관심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유기 위원장 후보가 무난한 승리를 거둔 요인을 몇가지로 유추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위원장 후보가 금속노조 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대차 소속이라는 점과 위원장 재임시절 금속노조로의 통합을 성사시킨 업적, 지명도 등이 상대후보 진영보다 유리했다. 금속노조에 비판적인 현대차 지부 및 일부 대공장 노조 조합원이 아닌 금속 조합원들 입장에서 본다면 박유기 후보는 '금속노조 통합을 완성시킬 적임자'인 셈이다.

 

둘째, 역설적이게도 금속노조 위원장 선거 자체가 무관심 속에 치러진 것이(적어도 현대차 지부에서는) 악재를 안고 출마한 박 후보에게는 다행이었다. 지부장 선거에 묻혀버림으로써 공세를 당할만한 악재가 전혀 쟁점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만약에 상대편 위원장 후보가 같은 현대차 지부 소속이면서 비슷한 경력과 인지도를 지니고 있었다면 현대차 내에서의 득표결과는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셋째, '국민파'가 후보를 내지 않음으로써 선거구도가 단순화 된 상태에서 민주노조 운동의 양대산맥을 형성하는 '중앙파'의 힘은 전국 각지에 흩어진 지부 지회의 표를 얻는데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즉, 현대차 지부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금속 선거에 별 관심이 없다가 막상 투표를 하러 갔을때 상대후보가 잘 알려져 있거나 별달리 어필할만한 요소가 없었기 때문에 위원장 후보가 어디 소속이냐, 알고있는 사람(인지도) 이냐에 근거한 투표성향을 보인 셈이다.

다시 말해 박유기 후보는 현대차 내부는 출신과 인지도로 표를 얻고, 다른 사업장 및 타 지역은 높은 인지도 및 '중앙파' 조직력으로 돌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넷째, 이건 사족이나 다름없는 이야기일 수 있는데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도 간과할 수는 없는 요인이라 하겠다. 다시 말해 금속노조 내부적으로 본다면 후보를 내지 않은 국민파가 일반의 예상과 달리 역선택을 하거나 박유기 후보를 더 껄끄럽게 생각하는 관이나 사용자 단체에서도 무관심한 표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박유기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안팍으로 산적한 난제를 조기에 해결하고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를 겨냥한, '벼랑끝으로 밀어주기'를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승리 요인이 무엇이었든 박유기 후보의 당선은 찬반투표라는 '요식절차'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박유기 후보 진영은 금속노조 위원장에 당선되더라도 안팎으로 숱한 난제가 기다리고 있어서 매우 어려운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금속노조 내에 최대지분을 가지고 있는 국민파의 행보와 현대차 지부장에 당선된 이경훈 집행부가 어떤 노선을 취하느냐가 관건이다.

관이나 회사의 견제 또는 개입여부야 추측에 불과하니까 논외로 하더라도 노동조합 내부사정만도 매우 어렵다.

 

앞서 금속노조 위원장 선거에 대한 기사에서도 밝혔지만 '국민파' 진영은 이번 금속 위원장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았다.

세 불리를 감안하여 한 박자 쉬고 권토중래를 도모할 국민파 입장에서는 '중앙파'인 박유기 호의 출범과 성공적 집행은 곧 자신들 입지 축소를 의미한다.

우연한 결과인지는 알 수 없으나 1차 투표에서 무효표가 8천표가 넘게 나왔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선거 공정성 논란에 따른 무효표 처리인지, 또는 어느 조직에서 1번과 2번을 다 같이 견제하고자 하는 의도적 무효표인지는 확실히 알 길이 없다.

만약 찬반투표로 치르는 2차 투표에서 투표율이 많이 낮아지거나, 반대표 혹은 무효표가 많이 나온다면 이는 조직적인 견제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와같이 박유기 호가 출발하는 과정 자체가 순탄치 않다면 이후 집행과정의 장애는 훨씬 많을 것임은 불문가지다.

예상되는 장애물은 금속노조 내에 정파별로 차지하는 조직 분포상으로 수적인 열세를 안고 가야 한다.

이는 중앙위원회나 대의원대회 같은 의결기구에서 안정적인 구조를 갖지 못한채 집행부를 이끌어 가야 함을 의미한다.

더욱이 상급단체에 포진하고 있는 상집간부들은 위원장이 바뀌어도 마음대로 다 바꿀 수 없는 제 정파적 입장을 가진 '전문가' 집단이다.

곳곳에 포진한 노동진영 내부의 조직적 견제와 집행부 흔들기만 가지고도 지지기반이 취약한 집행부는 휘둘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음으로 박유기 후보가 속한 현대차 지부장 선거 결과는 금속노조가 추구하는 방향과 일정한 거리를 두겠다는 '실리노선' 후보가 당선됐다.

금속노조 탈퇴나 연대사업 자체를 거부하겠다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기업지부만큼은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지부장 선거가 끝난 직후에 당선자가 언론기자들에게 밝힌 인터뷰에서도 이같은 의지가 강하게 담겨 있다.

이럴 경우 재임시에 현자노조를 금속노조로 전환시켰으며, 이후 기업지부 해소 및 단일 금속노조를 완성해야 할 박유기 호의 노선과는 마찰이 불가피하다.

 

더욱이 이번 지부장 선거에서 나타난 현장 표심은 금속노조에 대해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것도 커다란 부담이다.

15만 금속 조합원 중에서 약 1/3에 가까운 4만5천 조합원을 거느린 현대차 지부는 수적인 영향력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에서 절대적이다.

현대차 지부가 기업지부를 고수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타격이지만 기업지부 해소에 위기감을 느끼는 대공장노조들이 공조를 취할 수 있어서 그 파장은 심각하다.

 

마지막으로 박유기 호가 출범하면 정부 및 사용자 단체에서 사사건건 딴지를 걸고 나올 것임도 어렵지 않게 예상되는 부분이다.

금속노조 통합과 더불어 공동교섭을 성사시키고 조합원들 앞에 산별노조의 장점과 가시적인 성과물을 안겨줘야 할 박유기 호로서는 출발부터 첩첩산중인 셈이다.

선거 승리를 축하하고 장도를 기원해야 하는 것이 예의이거늘 현재 처한 상황이 워낙 엄중해서 필자의 마음도 무겁기 그지없다.

 

<추신>

글을 마치고 나서 생각난 것이 하나 있어 덧붙인다.

 

박유기 후보는 현대차 노조 12대 위원장 재임시절 발생했던 총무실장의 '선물비리'를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징계위에 회부되어 정권1년을 받은 상태다.

금속노조 위원장 선거를 1개월 쯤 앞둔 상태에서 박 전 위원장에 대한 징계가 이뤄지자 그가 속한 현장조직인 민노회는 크게 반발했다.

그러나 징계위원회를 겸직하는 확대운영위 분포로 보면 징계론이 우세한 구도인데다 현장 여론은 조합비 환수는 당연하지만 징계는 과하다는 의견에서 부터 백가쟁명 식으로 다양했다.

그런 가운데 현조노조 집행을 담당했던 전직 위원장 전원(사직한 분 제외)은 심각한 우려와 재고를 표명했다.

양형의 경중보다도 징계 자체가 부적절하며,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역사에 안좋은 선례가 된다는 점에 모두가 공감했던 것.

 

위원장 재임시절 본인 스스로가 비리에 연루됐다면 마땅히 중징계 및 민형사상 책임까지 져야 하겠지만 박 전 위원장의 경우는 좀 다르다는 해석이다.

알면서 묵인 방조했다면 모르되, 몰랐던 상황이라면 부하 직원에 대한 지휘 감독상의 도의적 책임은 따를지언정 징계는 과한 것이란 판단이다.

박 전 위원장에게 책임을 물어 징계를 하기로 한다면 8대 집행부시절에 발생했던 광고비 사건은 위원장이 당사자로서 더 엄중한 책임을 물었어야 마땅한 사건이다.

더욱이 박유기 전 위원장은 '선물비리' 건이 발생하여 논란이 되자 12대 집행부 전체가 중도에 사퇴를 하는 것으로 도의적 책임을 이미 진 바 있다.

 

박유기 후보는 현대차 지부 및 금속노조에 재심을 청구한 상태에서 금속노조 위원장에 출마했는데 당선이 확실시 되는 그에 대한 징계재심 처리가 주목된다.

(재심을 청구한 상태에서는 재심 확정시까지 1심 효력이 정지됨으로 피선거권 제약이 따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