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정치/환경 노동분야

현대차 지부장선거 결선투표 결과 분석

질고지놀이마당 2009. 9. 25. 12:20

오늘 오전 끝난 현대차 지부장 선거 결선투표 결과는 2천 2백여표 차이로 온건 보수 성향의 이경훈 후보의 승리로 판가름 났다.

'7전 8기의 신화'를 이룩한 이경훈 후보의 승리 요인은 무엇이며, '강성 민주파'로 분류되는 기호 3번 권오일 후보의 패배 요인을 살펴보자.

 

<3대 지부장 선거를 둘러싼 주 객관적 조건>

우선 이번 3대 지부장 선거를 둘러싼 주 객관적 조건은 이경훈 후보에게 다소 유리한 환경이었다.

간단히 정리하면 그간의 강성노선과 금속노조에 대한 부정적 여론 및 반감이 조합원들 사이에 폭넓게 퍼짐으로서 온건 실리노선이 어필 할 수 있었고,

지부장 후보자 중에서 가장 높은 인지도와 6번 출마해서 5번 1위를 하고도 결선투표에서 매번 고배를 마셨던 것에 대한 동정론도 바탕에 깔려 있었다.

 

다시 말해 이경훈 후보는 4명의 지부장 후보 중에서 인지도가 월등히 높았고, 온건 합리 노선을 걷는 '실리주의' 노선의 상징적 주자였다.

그리고 6번 출마하여 6번 실패한 이력은 '만년 2등'이라는 부정적인 징크스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경쟁 후보에 비해 인지도는 월등히 앞선던 것.

특히 결선에 오른 3번 권오일 후보나 민주파 계열의 4번 김홍규 후보는 지부장(전에는 위원장) 후보로 첫 출마라서 이름 석자를 모르는 조합원이 많았다.

이같은 이경훈 후보의 출마 경력과 1차에서는 1위를 하고도 결선투표에서 매번 역전패 당한 것에 대한 동정론도 상당했다.

 

게다가 5대집행부 이후 계속 민주 강성파(?)에게 집행권을 맡겼던 조합원들이 이제는 강경노선에 대한 실망이 많이 누적된 상태였다.

더욱이 금속노조 전환이후 실망감과 불만이 더 넓게 확산됨으로써 온건 실리 노선에 대한 반대나 비토가 옅어졌다.

이같은 현장의 정서 변화는 4명의 후보 중에서 온건 보수 노선 2팀(1번 2번)과 강성 민주파 2팀(3번 4번)으로 나뉘어 치러진 1차 투표 결과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즉 온건 보수성향 후보 2팀이 나왔음에도 표갈림 현상이 심하지 않고 1번 못지않게 2번도 3번과 박빙승부를 펼칠만큼의 득표력을 보여준 것이다.

두 진영의 표를 단순 합산하면 온건 보수 대 강성 민주파의 지지율은 57 : 43으로 역대 비율의 역전현상이 발행한 것이다.

 

따라서 결선투표에서 1번의 우세를 점치는 여론이 우세했다.

다만, 이와같은 주 객관적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 반대의 결과(3번 승리)를 점치는 분석의 근거는 현대자동차 조합원들의 전통과 1번의 한계를 지적했다.

즉, 역대 결선투표에서 이경훈 후보를 제외한 모든 후보와 제조직이 '민주파' 지원으로 모아졌던 것을 근거로 1번이 이번에도 그 벽을 넘지 못할 것이란 분석이었다.

또 하나는 1차에서 선전한 2번 진영이 같은 온건 합리성향임에도 불구하고 워낙 감정의 골이 깊어서 1번 후보를 지원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리하여 2차 결선투표에 대한 전망은 대체로 이경훈 후보의 백중우세, 즉 박빙승부를 점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뚜껑을 연 결과 2,200여표 승리는 박빙이라고 하기엔 차이가 많고, 여유있는 승리라 하기에는 빡빡하다.

 

반면에 결선에 오른 권오일 후보는 조직의 정통성과 인지도에 비해 후보자 개인의 인지도가 약했다.

전반적으로 강성 노선에 대한 지지가 크게 약화된 환경에서 이는 초반전 정체 현상을 빚었다.

그리고 현 금속노조 위원장이 같은 조직에 속해 있다는 것도 선거전에서 불리함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나아가 1차 투표 결과 3번과 4번의 득표를 합산해도 43%에 불과한 데다가 4번 진영과는 같은 민주파로 분류되면서도 숙명적인 라이벌 관계였다.

물론 4번을 찍은 조합원들 표심은 가장 충성도가 높은 민주파 지지성향이라서 1번에게 갈 여지는 작은데 그렇다고 4번의 적극적 3번 지지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비슷한 맥락에서 2번 진영이 1번을 지지하지 않더라도 2번을 지지한 조합원 표심이 1번에게 더 쏠릴 수 있음을 감안하면

1차에서 1,700여표를 앞서며 1위를 차지한 이경훈 후보는 바람을 등에 업고 싸우는 격이고

갈길이 바쁜 권오일 후보 입장에서는 바람을 안고 싸워야 하는 꼴이었다.

 

1차 투표에서 득표를 근거로 2차에서 예상하였던 두 후보진영간의 득표 결과는 대체로 비슷하지만 의외의 결과도 눈에 띈다.

전주공장의 경우 결선에서 1번 후보가 승리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3번이 승리했다.

각각의 득표를 보면 1차에서는 1번이 1위를 하면서 216표를 이겼으나 2차에서는 반대로 3번이 127표를 이겼다.

표 차이는 많이 나지 않았지만, 그간 이경훈 후보가 호남지역 출신이란 점 때문에 울산에서 핸디캡으로 작용했던 것을 감안하면 지역 프레미엄은 없었다는 결과다.

 

현대차 노조 22년 역사에서 참으로 다행스러운 전통이 있다면 정치권은 말할 것 없고, 노동판에도 존재하는 지역감정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근래 들어서는 대의원 선거나 임원선거에서 향우회나 동문회 영향이 다소 작용을 한다고는 해도 영호남 지역감정이 거의 작용하지 않음은 뿌듯한 전통이다.

이경훈 후보가 전주공장에서 진 것은 지역색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현지 제조직과 후보 진영의 울산 공장 제조직 후보들과 연대의 선에서 봐야 한다.

 

<울산공장 조합원들의 정서변화가 대세 갈랐다>

반대로 3공장 투표소의 경우는 근속년수가 가장 짧은 조합원 층이어서 전통적으로 강성 후보 지지가 높았는데 2차에서는 오히려 좁혀졌다.

1차의 경우 3번 후보가 1번 후보를 816표 이겼는데 2차에서는 780표차로 좁혀진 것이다.

본관식당 투표소의 경우 가장 장기근속자 층으로서 전통적으로 온건 보수 성향인데 예상대로 1차와 2차 모두 1번 후보가 크게 이겼다.

1차에서 1번 후보가 3번 후보를 961표차 더블 스코어로 이겼고, 2차에서는1,461표 차이로 벌어진 것을 감안하면 울산 공장 표심의 향배를 짐작케 한다.

 

현자노조의 뿌리라 할 울산 공장의 경우는 공장단위로 투표를 하지 않는다.(구 정공이었던 5공장은 별개로 투개표 관리)

전체 조합원 약 2만여명을 직번 순에 따라서 한 투표소에 약 5천여명씩 4개의 투표소로 나누어 투표를 실시하는 것.

이에 따라 근속 고참 순으로 본관, 1공장, 2공장, 3공장 식당으로 나뉜다.

따라서 울산공장의 투표소별 조합원 성향은 공장 단위가 아니라 직번(근속) 순에 따라서 본관과 1공장은 온건 보수 성향이 많고

2공장과 3공장은 강성 진보성향 후보들 표가 많다.

다시말해 울산공장에서는 투표소 1공장 2공장 3공장.. 등등이 그 공장의 조합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쨌든 역대 임원 선거 결선투표나 파업찬반투표,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 등에서 울산공장은 늘 강성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번 3대 지부장 선거 결과는 울산공장 전체(5공장 제외)의 조합원 성향이 뚜렷하게 변화한 것을 나타낸다.

즉 1번 후보는 1차에서 3번을 근소하게나마 이겼다.(27표 이김)

그리고 2차 투표에서는 그 차이를 조금 더 벌린 것으로 나타났다.(307표 이김)

 

<판매와 정비 등 '외곽 조직'에서 이경훈 후보의 선전>

이경훈 후보는 나중에 통합된 판매 정비에서 오히려 여유있게 이겼다.

판매와 정비는 민노회 민투위 민주현장 등 현자노조 집행권을 장악했던 현장조직이 전통적으로 강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턴가 변화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완전히 역전현상이 일어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첫째는 금속노조가 추구하는 기업지부 해소 방침이 현실화 되면 위기의식을 더 크게 느끼는 판매와 정비의 정서를 꼽을 수 있다.

울산 본조에는 금속노조에 대한 곱지 않은 여론 정도라 치면 정비와 판매는 위기의식에 따른 반감으로 작용할 것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렇더라도 일각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 실체 여부야 알 길 없지만, 그렇게 주장하는 쪽에서도 자신들이 집행권을 잡고 있을 때는 은근히 즐기던 프레미엄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결선투표에서 투표율은 낮았지만 모비스에서도 거의 더블 스코어로 이겼다.

비록 투표자 수, 투표율이 다 낮아서 절대 표차는 얼마 안되지만 득표율로 환산하면 대단히 이례적인 수치다.

더욱이 모비스위원회 위원장 당선자가 기호 3번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음을 감안하면 잘 이해가 안가는 대목이다.

이쪽 역시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인지, 조합원들 정서 변화인지는 연구과제로 남겨둔다.

 

마지막으로 5공장은 민주파에 대한 일방적 지지성향이 가장 강한 사업장이라 할 수 있다.

거의 유일한 최대 현장조직이었던 '동지회'가 지금의 민노회와 통합하기 때문에 4번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임은 1차 투표 결과로도 나타났다.

다만 예상했던 것 보다는 4번 득표율이 낮은 것이 눈길을 끌었다.(남양에서 2번 후보의 압도적인 60% 득표와 대비)

과거 정공노조로 독자 활동을 할 당시에 현재의 민주현장과 같은 조직(구 실노회)과 집행권을 주고 받았던 5공장에서 조차 이경훈 후보는 1차에서 3번을 이겼다.

 

따라서 1차 투표 득표를 토대로 한 결선투표 예측은 1번후보가 최소한 30%대가 넘는 득표율은 확보한 셈인데 결과로 나타났다.

당초 전망대로 본다면 결선투표에서 3번 후보가 더블 스코어 이상(8~9백표 차이) 이겨야 하는데 결과는 568표 차이에 머물렀다.

 

선거란 워낙 변수가 많기 때문에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다.

물론 신뢰도 높은 과학적인 여론조사를 할 수 있다면 보다 근접한 예측을 하겠지만..

개표를 하기 전 필자의 예측은 당락 결과는 근사치로 맞아 떨어졌다.

 

그러나 각 공장별(투표소 별) 예측은 남양과 전주, 3공장과 1공장에서 빗나갔다.

필자 예상으로는 남양에서는 1번 후보가 최소 60%대는 넘는 득표를 하지 않을까 예상했으나 57%에 머물렀다.

전주 공장은 55% 정도로 1번이 이기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히려 근소하나마 졌다.

반대로 3공장에서는 3번 후보가 1,200표 이상 이길 것으로 예상했으나 780표 밖에 이기지 못했다.

1공장의 경우 1차 투표에서 1번 후보가 이겼음에도 역대 울산공장의 결선투표 표심 정서를 감안하여 백중세로 분류했는데 1번이 449표를 이겼다.

 

이와 같은 요인을 감안할 때 당락은 대략 1차에서의 표차 1,700여 표를 중심으로 대략 1,500~2,000표 사이에서 결정되지 않을까 예상했었다.

결과는 그 보다는 다소 많은 2,200여표 승부로 결정됐다.

 

<이경훈 당선자가 당면한 과제>

이경훈 후보는 '만년 2등'이라는 숙명같은 징크스를 떨쳐 버리고 7전 8기에 성공했다.

이를 두고 민주와 어용의 대립구도는 허물어 졌다고 보기에는 이르겠지만 조합원들 의식 저변에 확산된 변화의 조짐만은 분명하다.

이경훈 당선자는 이제 집권은 성공했지만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진로는 결코 만만치 않다.

집행에도 성공한 지도자로 남을지 엄중한 시험대에 오른 그를 기다리는 숙제는 너무나 많다.

 

집행부 사퇴로 늦어진 임단협과 촉박한 시일 속에서 조합원들의 '실리'기대를 일정부분 충족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 안에 잡음없이 진용을 갖춰야 하는데 이질적 요소도 많고, 시간과 인재풀은 부족하다.

상집 구성만 문제가 아니라 이어서 치러야 할 대의원 및 대표 선거 등도 만만치 않다.

단일조직의 한정된 인력으로는 상집구성과 '현장을 지키며 집행부 바람막이가 돼  줄 여당' 대의원과 대표 출마 등 가용 일꾼이 태부족이다.

 

이경훈 당선자의 성공 또는 실패는 개인의 결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자노조 미래와 직결되는 것이어서 한 시도 관심의 눈을 떼기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