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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흘림골-주전골/ 2공장산악회 1

질고지놀이마당 2011. 1. 23. 13:26

 

언제 : 2011. 1. 22. 토. 맑음

누가 : 현대자동차 2공장 산악회

코스 : 흘림골매표소-여심폭포-등선대-12폭포-용소폭포(경유)-금강문-오색약수

 

3시간 남짓 산행하기 위해서 왕복 11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비효율적(?)인 산행은 평소의 내 지론과는 맞지 않는 일이다.

투자(비용과 시간)에 비해서 성과(?)가 너무 적다는, 한마디로 부가가치가 없는 일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럼에도 나는 2공장산악회(이하 2공산) 회원들과 더불어 아침일찍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세상살이와 일의 가치가 꼭 효율로만 따진다면 얼마나 메마르고 팍팍할 것인가!

2공산 회원들이라고 왜 그러한 효율성과 가치판단이 없을까, 겉으로 드러나는 효율성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음이다.

 

아침식사를 위한 화진휴게소에서의 잠시 휴식

아침해가 수평선을 가린 구름위로 떠오르느라 한참 늦었다.

  

  

 

한계령을 오르는 차창밖 풍경,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다.

 

12:08분 흘림골 입구에 도착했다.

2006년 설악산 일대를 초토화시켰던 물난리때의 참담했던 풍경이 오버랩된다.

유실된 도로는 말끔히 복구되었고, 등산로도 전부 새롭게 단장을 했지만 엄청난 자연의 힘으로 휩쓸고 간 골짜기의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다.

 

참고삼아 당시의 생생한 산사태 현장사진을 몇 장 소개한다.

흘림골에서 떠내려 온 집채만한 바윗돌과 통나무들이 도로를 덥쳤고, 계곡물은 국도를 완전히 휩쓸어 가버렸다.

 

 

당시 필자는 산사태가 일어나기 하루 전날(2006. 7. 14) 입산을 했다가 중청대피소에 갇혀있었다.

4일째 되던날(7.17) 오색으로 하산하여 보니까 온전한 상가가 하나도 없었다.

등산로 유실은 말할것도 없고 한계령을 넘는 국도는 물길을 지나는 골짜기마다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

어느쪽으로도 차가 다닐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필자의 차량이 남교리쪽에 있어서 멀더라도 한계리쪽으로 가야했다.

오색에서 점심때가 지났는데 유실된 도로를 따라 한계령까지 걷는 동안에 날이 저물어 한계령휴게소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다음날 한계리까지 걸어서 하산했다.

그 여정에서 목격한 물난리 현장은 한마디로 폭격을 받은 것 같았고 필자의 기록은 전쟁터를 누빈 종군기자의 취재기와 다름 없었다. 

 

 

벌써 4년 반의 세월이 흘렀다.

자연은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당시의 상처는 너무 크고 깊었다.

도로와 등산로는 복구되었지만 절경을 자랑하던 흘림골 계곡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었다.

 

불과 3시간 남짓한 코스임에도 왕복 11시간의 버스이동을 기꺼이 감수하게 한 이유다.

12시 17분, 그 아픔과 추억의 현장인 흘림골 계곡을 들어선다.

 

 

등산로는 아주 잘 정비되어 있다.

아니 너무 편하게 정비되어 있어서 자연 그대로를 선호하는 산꾼들은 오히려 불만일 정도다.

 

  

산은 제모습을 크게 잃지 않았는데 계곡은 그렇지를 못하다.

크고작은 바윗돌 들이 켜켜이 겹쳐 있어서 소와 폭포를 이루던 계곡은 심하게 휩쓸려 내려간 때문에 이사를 가느라 가재도구를 들어내버린 빈집처럼 휑하다.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고, 한동안 기록을 갱신하던 혹한도 언제였냐는듯이 추위도 누그러졌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잔설이 드문드문 남아있는 암릉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여심폭포를 향해 오르는 일행

 

얼어붙은 여심폭포

 

 

등선대로 오르며 뒤돌아보는 풍경

설악의 골짜기며 능선 그 어디인들 아름답지 않은 곳이 있으랴.. 

 

 

 

 

 

 

 

가파른 오르막에 잠시 쉬어가는 일행들

 

맨 후미에서 따라오며 사진을 찍다가 오르막 고개마루에서 선두가 일행을 기다리는 사이에 등선대 전망을 어서 담고자 먼저 올랐다.(12시53분)

등선대 전망 사진은 다음꼭지에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