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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지리능선 풍경보기

질고지놀이마당 2013. 2. 8. 14:55

그동안 지리산 종주를 가면 대체로 마음이 급했다.

기록 경쟁을 하듯이 걷다보면 '내가 왜 이곳을 걷고 있는거지?' 하는 의문이 생길정도로...

그럼에도 빨리 걸어야 했던 이유는 울산에서 이동 거리가 멀다 보니까 단체 종주산행에 끼어서 다녀오는 경우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 것이 싫어서 언제부턴가 서서히 나홀로 산행패턴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유유자적 발길 닿는대로 걷는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산행이 좋기는 한데 비용이 많이 들고, 원점회귀가 불가능한 종주산행의 경우 불편함도 감수해야 한다.

지리산 종주가 대표적인 케이스인데 그렇지만 나홀로 산행을 해 보면 비용과 시간을 투자할만한 가치를 느낄 수 있다.

 

가장 최근에 손학규 대표님을 모시고 2박3일간 여유롭게 걸었던 산행은 그야말로 지리산을 소풍다녀오듯이 여유있게 걸을 수 있었다.

계절이 가을이었는데 겨울산행을 그렇게 걸어보고 싶은 아쉬움이 있었다.

그 바램으로 찾아간 이번 산행은 아주 천천히 걸으면서 '느림의 미학'을 체험고 싶었다.

 

한겨울에 겨울비를 만나서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지만 그 조차도 '어쩔수 없으면 즐겨라'는 마음으로 즐겁게 받아 들였다.

그 보상일까, 하루종일 겨울비를 쏟아부었던 다음날 아침에는 환상적인 섬진강 운해를 만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산행기 또한 산행을 마치면 가급적 빨리 올려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산행기조차도 느긋하게 슬로우 퀵퀵이다.ㅋㅋ

 

첫날, 인적이 거의없는 노고단 정상탐방

 

 

 

 

 

 

반야봉에도 오르고...

 

 

 

 

 

 

 

 

연하천 대피소에서 일박

 

둘째날은 왼종일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린다는 예보를 듣고 산으로 들어왔지만 명색이 지리산 주능선인데 '비는 무슨! 눈으로 내리겠지' 했던 기대가 여지없이 빗나갔다.

우중산행을 강행하는 산꾼들은 죄다 물에 빠진 새앙쥐꼴이었다.

나도 저 꼴을 해? 말어? 망설임을 되풀이 하다가 이런 경험도 괜찮다 싶어서 왼종일 대피소에서 죽쳐보기로 했다.

제 3자의 입장이 되어 관조하듯이 산꾼들을 지켜보다가 모델이 되겠다 싶으면 카메라에 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러다가 좀이 쑤시길래 우중 산책을 나섰다.

발길 닿는대로 걷다가 안개 구름이 좀 걷히면 풍경사진이라도 찍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나브로 걷기 시작한 발걸음인데 아무것도 뵈는게 없으니(사진으로 담을만한..) 자꾸 빨라진다.

형제봉까지 다녀올까 하다가 내친걸음에 벽소령대피소까지 왕복을 했다.

등산지도상에 찍힌 시간의 딱 절반, 걷는 것 말고는 달리 시간 낭비할 일이 없으니까 다녀오는데 두시간이 채 안걸렸다. *^^* 

 

 

세째날은 지리산 산신령님께서 특별한 선물을 주셨다.

아마도 어제 왼종일 비를 내렸는데 다소곳이 숙명처럼 받아들인 것에 대한 상급이 아닐까 싶다. ㅎㅎ

 

탄성이 절로 터지는 지리산 운해, 지리산과 섬진강의 합작품이다.

 

 

 

 

 

 

 

 

 

 

벽소령을 지나며...

 

 

아련하게 펼쳐지는 산그리메를 보면 괜스레 눈물이 나려고 한다.

이나라 근대사에 수많은 사연을 품어 온 지리산은 그런 느낌으로 내 마음에 자리하고 있다.

 

 

 

 

세석대피소. 내 마음속 별장이다.

 

천왕봉이 지척에 보이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둘째날 일정 차질로 인해 천왕봉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이 좋은 날씨에 내 걸음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뒤돌아본 지리산 주능선과 반야봉

고향집 어머님 같은 느낌으로 먼길 떠난 자식들 굽어보는 느낌이다.

 

그런데 천왕봉까지 내처 걷고자 했던 발걸음을 장터목에서 멈춰야 했다.

등산객 안전을 고려(?)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방침이 오후 2시 이후는 통행을 금지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참고로 하절기에는 15시~)

할 수없이 장터목에서 중산리로 하산을 하려니 아쉬운 생각도 있지만 천왕봉 수없이 올라갔으니 단념이 그다지 애석한 것은 아니다.

산은 언제든지 그 자리에 있으니 좋은 날, 좋은 인연으로 다시오면 될 일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