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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태극종주 사진보기 17/ 마근담~덕산

질고지놀이마당 2007. 5. 30. 15:10

태극종주 사진기록의 마지막이다.

마근담봉에서 덕산까지 내리막이라고 만만하게 보았는데 그렇지가 않다.

 

넉넉잡고 오후 두시쯤이면 도착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도중에 오침도 즐기고 마냥 여유를 부리다가 막판에 복병을 만난 셈이 되고 말았다.

치밀하게 확인하지 않고, 웅석봉에서 덕산까지 약 13km가 넘는 거리여서 완만한 내리막으로 이어지겠거니 안이하게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피로가 누적되고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깔딱고개라 할 만큼의 가파른 내리막이 두군데나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덕산에서 태극종주를 출발하는 산꾼에게는 연이은 깔딱고개가 호된 신고식인 셈이고,

구인월에서 출발하여 덕산으로 마무리 하는 산꾼에게는 마지막 얼차려라는 생각에 쓴 웃음을 짓는다.

 

수양산인줄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도착한 곳은 그러나 벌목봉이라는 작은 팻말이 기다린다.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지만 어쩌랴, 벌목봉에서 가파른 내리막을 구르듯 내려와서 이제는 고생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진짜 수양산이 앞길을 턱 가로막고 나선다.(아래사진)  

 

벌목봉과 수양산 사이에 평평한 개활지를 개간한 밭에서 뒤 돌아본 벌목봉에서 내려온 경사면이다. 

 

피로에 지친 산길나그네의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들꽃은 자태를 뽐내며 마냥 평화롭다.

 

피곤한 중에서 들꽃과 주위 풍경을 살피며 휴식을 겸한다.

 

 

다시 힘을 내어 수양산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발견한 시그널이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기 그지없다.

울산에서 영남알프스 근교산행을 주로 하는 세월카페 회원들의 활약은 존경스럽다.

이번 나홀로 산행을 준비하면서 세월산방님들의 종주 산행기를 통해 직간접 도움을 받았다.

 

수양산(503m)은 낮으막한 봉우리지만 피로에 지친 산꾼에게는 그조차 힘겹다.

 

작은 팻말과 시그널이 전부인 수양산 정상, 하지만 종주길에 매어진 시그널 하나하나는 대단한 의미와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적어도 산꾼에게는...

배낭과 모자를 모델로 흔적을 기록한다.

 

드디어 마침표를 찍을 순간이 다가온 것 같다.

마지막 봉우리인 시무산(402봉?)은 실소가 나올만큼 야산에 불과한데 측량 삼각점이 있을 따름이다.

이제는 굴러가도 되리라.

 

시무산(402봉?)에서 돌아본 뒷 봉우리가 수양산인지 벌목봉인지 확실히 모르겠다.

 

임도를 따라 내려오는데 나뭇가지 사이로 마을이 보인다.

해냈구나 하는 성취감과 안도감, 감개가 무량하다.  

  

지리산 태극종주의 시발점 또는 종점인 덕산 들머리에 붙어 있는 자그만 팻말

이곳을 거쳐간 이름모를 산꾼들에게 강한 연대감과 함께 감사한 마음이 우러난다. 

도전과 성취! 이 맛에 또 다시 힘든 도전을 하게 되는 것이리라.

 

세월과 더불어 또 하나의 반가운 시그널이 종착점에 붙어 있었다.

'자유인과 쭈니' 이 두분은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산악인 부부다.

닉네임처럼 부부이면서 서로를 구속하지 않고 자유로운 산행을 즐기는 이 부부가 사이좋게 태극종주를 마친 것일까? 반가운 마음이 울컥 솟아 오르며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기다리는 이 없는 종착점, 갑자기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서러워서가 아니다.

지난 4일간의 행군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며 무사히 완주했다는 안도와 기쁨의 눈물이다.

아무도 반겨주는 이가 없지만 내면에서 솟구치는 환희가 그간의 피로감을 잊게 한다.

개인적으로 아주 소중한 순간을 기념사진으로 남기고 싶지만 아무도 없으니 아쉽다.

 

진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즐겁다.

마근담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개울가로 내려가 땀도 씻고 시원한 냇물에 발을 담그니 날아갈 것 같다.

길가와 개천에 핀 들꽃도 살펴본다.

가게에서 사서 마시는 맥주 한캔의 시원함은 이 순간 비길데 없는 행복이다.

 

 

 

마근담 계곡 사이로 보이는 봉우리가 걸어온 길임은 분명할진데 어느 지점인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덕산에서 산행을 시작하려면 아래 표지판이 있는 정류장에서 내려 덕산교를 건너 진주방향으로 약 50여m쯤 가면 위에 사진에 나와있는 산행 들머리 표시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후기>

5월 20일 새벽 4시 20분에 구인월회관을 출발하여 5월 23일 오후 4시 30분에 덕산에 도착했다.

 

3박 4일간 일정을 다시 정리해 보면

첫째날, 04:20 구인월 ~ 16:30 노고단 대피소(약 25km)

둘째날, 05:00 노고단대피소 ~ 반야봉 경유 ~ 17:30 세석대피소(약 22km)

세째날, 05:02 세석대피소 ~ 19:36 밤머리재(약 25 km ?)

네째날, 04:54 밤머리재 ~ 웅석봉 ~ 16:10 덕산 하산 완료(약 18 km ?)

 

세째날과 네째날 구간 거리 및 전체 누적거리를 정확히 모르겠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구인월에서 덕산까지 대략 90km 내외로 잡고 있으니 그러려니 할 뿐이다.

대저 산이 좋아 걷는 것이 중요 하지 정확한 거리, 소요시간, 기록이 뭐 대수일까.

내가 걸은 거리 및 소요시간은 들쭉 날쭉이라 그야말로 참고사항일 따름이다.

예컨데 둘째날과 마지막날은 여유를 부리는 바람에 시간이 늘어졌고, 첫째 세째날은 좀 빨리 걸었다.

그러면서도 사진(일출 운해 일몰 야생화...)을 찍느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낸 구간도 있다.

 

그럼에도 이 길을 걷고자 하는 초행자들에게 참고가 될 수 있다면 그 또한 보람된 일이리라.

구간 거리와 소요시간, 누적시간은 정확하게 기록한 분들이 많으니까 그 분들 몫으로 하고,

나는 내 나름대로 주변 풍경을 살피며 사진기록으로 남기는 것에 충실하고자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일정을 하루 늘려서 야간산행을 하지 않고 주간 산행만을 고집한 것이었다.

다행히도 3박 4일간, 좋은 날씨와 좋은 만남 덕분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게 되었다.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