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진(記)/문화재&문화탐방

고헌 박상진 의사 생가

질고지놀이마당 2008. 3. 18. 14:18

고헌(固軒) 박상진 의사(朴尙鎭 義士 1884~1921)

 

박상진 의사는 당신께서 생전에 활동한 업적에 비해 한동안 인색한 대접을 받아 온 독립운동가이시다.

그런데 실은 박상진 의사가 대한광복회 총사령으로 있을 때, 전설적인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이 부사령이었다.

 

박 의사는 일제 식민지하에서, 판사등용시험(지금으로 치면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에 발령까지 받아서 출세가 보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일제하에서 법관으로 출세와 호의호식을 하는 것이 동포를 억압하고 수탈하는 길임을 알았다.

그리하여 보장된 출세길을 마다하고 독립운동가의 길을 택해 대한광복회를 조직하여 총사령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1918년 내부자의 밀고로 일본 관헌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 38세의 젊은 나이에 사형 집행으로 순국하셨다.

 

일제치하에서는 '흉악범'이고 '반역'의 길을 걸었으니 당연 박 의사의 가세는 기울고, 직계 후손들은 말못할 고초를 겪어야 했다.

독립운동가 집안의 공통된 폐해는 가세의 몰락으로 인해 직계존비속이 '큰 인물'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일제에 빌붙어서 출세 가도를 달렸던 친일매국노 후손들이 부와 명예와 권력을 대물림하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처럼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과 집안을 희생한 박 의사의 생가가 울산 북구 송정동에 있다.

뒤늦게나마 박상진 의사의 활약상과 업적이 제대로 평가 받고 최고의 독립운동가로 예우를 받게 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그간 제대로 관리가 안 되어 퇴락했던 박의사의 생가가 최근에서야 복원사업을 마치고 깨끗하게 단장됐다.

 

 

 

 

 

[자료에 의한 박상진 의사 연보 - 기록에 따라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음]

1884년 울산 송정동에서 승지를 지낸 박시규의 장남으로 출생

1898년 월성 최씨 (永伯)과 결혼

1899년 의병장을 지낸 허위 문하에 입문

1905년 스승 허위의 영향을 받아 양정의숙 입학

1908년 양정의숙 졸업 및 판사시험에 합격(1910년)하여 평양법원으로 발령

1911년 벼슬길 버리고 의주와 안동현에서 독립운동에 투신

1915년 대한광복회 결성, 총사령에 추대

         군자금 마련 활동 및 반민족 친일 부호 처단 활동

1917년 '총포화약류단속령' 위반으로 한 차례 옥고를 치름

1918년 대한광복회사건으로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중 1921년 8월 형집행으로 순국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오른쪽에 걸린 한시는 박의사 사형집행 당일에 박상진 의사가 지은 절명시(絶命詩)

 

  난복생차세상(難復生此世上)

  행득위남자신(幸得爲男子身)

  무일사성공거(無一事成功去)

  청산조연수진(靑山嘲緣水嗔)

 

두 번 태어나기 어려운 세상에

남아 대장부로 태어나는 행운을 얻었건만

이룩한 일 하나 없이 저승길 나서려니

청산은 비웃고 물길은 안타까워하는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