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진(記)/국외여행

필리핀 세부-보홀 여행記(3) / 풍경과 풍물

질고지놀이마당 2010. 9. 23. 11:51

9월 9일 하루동안 세부(막탄섬과 세부시내)에서 유적지 탐방을 하면서 만난 풍경과 풍물이다.

 

여행을 제대로 하는 것이 어떤 것일까?

가족여행을 하면서 내내 머릿속에 맴도는 의문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개념과 아내와 딸 부부 등 다른 가족이 생각하는 여행의 개념은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상반된 개념을 안고 함께 떠난 여행에서 의견은 늘 부딪힐 개연성을 안고있는 시한폭탄과 같았다.

하지만 우린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자기 방식을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않음으로써 지혜롭게 극복했다.

 

모닝콜을 하지 않아도, 전날 일정이 빡셔서 무척 피곤해도 새벽 다섯시면 어김없이, 저절로 눈이 떠졌다.

그러면 주섬주섬 필수품을 챙겨서 아직 어두컴컴할 무렵인 동이 트기 전부터 바닷가로 나가 일출을 기다리거나 걸었다.

그러면 기대만큼은 아니어도 바다는, 그리고 이국의 아침은 늘 내게 벅찬 감동으로 보답했다.

 

매일 아침, 아니 저녁시간에도 그러지 않고서는 좀이 쑤셔서 견딜수가 없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고 기대하는 여행의 참 맛이었다.

 

 

 

카약을 저어 작은 섬을 한바퀴 돌아온 다음에 수영과 물질로 아침을 여는 이분은 헌지에서 사업가로 성공한(?) 한국인이었다.

삶의 연륜과 여유와 품격이 풍기는 그의 모습에서 성공한 인생, 은퇴이후의 멋진 삶이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찬란한 일출은 아닐지라도 시시각각 변하던 하늘과 구름과 바다위로 눈부신 아침해가 떠오른다.

이러한 아름다움을 같이 누리고 싶어서 하루를 마감할 즈음에 조심스럽게 권해봤지만 단 한번도 가족들 동참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마음껏 잠도 푹자고, 쉬는 것이 최고라 생각하는 가족들에게 내 행동과 사고방식은 '별 난 사람의 극성스러움'일 뿐이었다.

 

하지만 난 내 방식대로 여행을 즐겼다.

가족들이 새벽 잠을 자는 동안에 혼자 누리는 두 세시간이 여행의 진수를 맛보는 기회였다.

혼자 누리는 것이 미안하고 아까울 정도로..

 

내 사고방식으로 여행은

다부진 체력을 바탕으로 부지런하며, 호기심 많아야 하고, 다소의 위험부담에 위축되지 않는 모험정신을 가져야 했다.

그래서 세부와 보홀에서 숙소 주변은 물론, 좌우측 한두시간 거리를 새벽이나 오후에 두발로 걸어다니면서 살펴보았다.

 

 

멀리가지 않고 호텔에 부속된 바닷가에서 보고 즐길수 있는 풍경

 

 

 

 

 

 

숙소였던 임페리얼팰리스 호텔 전경과 호텔에 부속된시설과 창밖으로 바라 보이는 전망

 

 

 

 

라푸라푸 모뉴멘트에 있는 기념품가게

 

근처의 해산물식당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이것저것 주문하면 즉석에서 요리를 해준다.

필리핀의 물가는 무척 싼 편이어서 탈 것과 먹는 것에 대한 부담이 그리 크지 않았다.

특히, 시장에서 사는 과일값은 2천원어치를 사서 여섯명이 후식으로 실컷 먹고도 남을 정도였다.

 

 

 

라푸라푸모뉴멘트 옆의 수상공원

바닷물이 들고 나는 이곳에서 젊은 청소년들이 물놀이를 하면서 관광객을 상대로 구걸을 하기도 한다.

자랑스런 부족장을 둔 후예들이 아름다운 자연환경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빈부의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컸다.

 

이채로운 것은 바닷물에 잠긴 나무숲이다.

내 짧은 상식(나무는 바닷물에서 살지 못한다?)이 여지없이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막탄섬은 세부 본섬 옆에 붙은 작은섬이다.

그렇지만 막탄국제공항이 있고, 세부를 찾는 관광객을 수용하는 고급 호텔과 리조트가 거의 다 몰려있는 관광의 요충이다.

세부 본 섬과 막탄섬은 新 舊 두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짬을 내어 뉴브리지 아래에도 가 보았다.

 

우리네 70년대 판자촌을 연상케 하는 환경과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다닥다닥 붙은 판자집과 죄송한 표현으로 코딱지만한 작은 가게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어딜가나 아이들이 무척 많다.

 

그러나 아이들은 환경에 비해 해맑고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눈 마주치면 악의없이 웃고, 인사 잘 건네고..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서 잊혀졌던 어린시절 추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떼 지어서 학용품가게(실은 군것질이 탐나는) 앞을 서성거리는 모습,

고무줄놀이를 하거나 말타기며 무등타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들 어린시절이었다.

 

 

 

막탄섬과 세부섬을 연결하는 뉴브릿지 아래 풍경

다리아래 시원한 그늘과 적당한 바닷바람을 즐기는 시민들과 특히 청소년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두 섬 사이로 강물처럼 빠른 물살이 흐르는 해협에는 대형 화물선들이 수시로 오르내린다. 

 

 

그 한켠에 직접 목격하는 수상가옥들은 멀리서는 낭만적으로 보였는데 막상 가까이서 보니까 고된 삶의 무게를 지탱한 아슬아슬한 주거환경이다.

깊은 수심도 거울처럼 투명하게 들여다 보일정도로 맑은 에메랄드빛 바닷물은 오데가고 이곳 바닷물은 더럽고 냄새나는 시궁창과 같다.

자본주의사회 빈부의 격차는 바닷물조차도 이렇게 차별이 심한 것일까..

이런 환경에서 살며, 이런 환경에서 뛰어놀면서도 얼굴은 밝은 아이들을 보니마음이 아리다.

 

16~17년 전에 잠시 살펴 보았던 필리핀의 모습이 그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변하지 않은 모습이 필리핀 경제의 현 주소라는 생각이다.

자연환경이 이렇게 좋은데 왜 잘 살지 못할까, 국가를 경영하는 지도층은 도대체 무얼하나 하나싶다.

그런 한편, 어딜가나 아이들이 많다는 것은 세계 최저 출산률이 국가적 고민인 우리나라에 비추어 볼 때 희망적인 요소라는 생각도 든다. 

 

 

장소를 세부시내로 이동하여 마젤란 십자가와 바실리카 데 센 니노 성당을 들러 산페드로 요새로 옮겼다.

요새 입구에 일단의 어린이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보는 이는 큰 구렁이를 목에 걸친 특이한 사내다.

이 사람은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자신의 모습을 사진 찍도록 모델로 제공하면서 얼마간의 팁을 받고 있었다.

 

산페드로 요새는 필리핀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스페인이 서구문물을 앞세운 신식무기로 무력을 과시하던 역사의 현장으로 보인다.

성곽이라고 하기도 뭣할 정도로 앙증맞은 규모에 제대로 발사가 되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투박하고 단순하게 생긴 대포가 '장식품'처럼 놓여있다.

탐험가 마젤란에 의한 필리핀 발견은 필리핀 역사에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이다.

마젤란은 막탄섬의 부족장인 라프라프의 칼에 찔려 죽었지만 이름 석자를 역사책에 남겼고

그의 필리핀 발견은 필리핀이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계기이자, 세계 무대에 그 존재를 알리고 근대화의 길을 걷는 출발점이기도 했다.

 

필리핀 사람들은 그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터무니없는 짐작일 따름이지만 필리핀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제 강점기에 대한 국민적 감정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근거없는 내 추축일 수도 있고, 그들 나름의 국민정서이거나 워낙 오랜기간 식민지 지배를 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우리는 일제가 어설프게 복원했던 광화문을 철거하고 새로 복원할 정도로 일제강점 흔적이라면 기를 쓰고 지워버리고 싶은 것이 국민감정이다.

그런데 필리핀에는 그러한 유적들이 공존함은 물론, 지금은 주요 관광자원이 되고 있었다.

종교만 하더라도 필리핀 국민들 99%가 마젤란 십자가가 상징하는 카톨릭을 믿는다고 한다.

 

 

이 날 세부시내 탐방의 마지막 일정은 세부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 올라 야경을 보는 것으로 마무리 했다.

무슨 산인지 이름은 미쳐 기록하지 못했는데 일정상 걸어 갈 수는 없고, 차를 타고 올라 가는데도 무척 멀고 높은 곳이었다.

 

마지막 날 묵었던 마로코폴로 호텔을 지나서도 한동안 산길도로를 오른다는 것, 그리고 기념사진에 보니까 Natures  Park라는 표기가 단서다. 

현지에 사시는 딸 친구 부모님의 극진한 안내로 돈 안들이고, 내용은 가장 알차게 보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