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산행기/산행후기(종합)

구봉산-운장산 종주산행기(종합)

질고지놀이마당 2015. 11. 19. 01:44

 

2010. 10. 24. 일. 비

코스 : 윗양명 주차장 - 구봉산- 복두봉-1087봉-운장산 동봉(상장봉)-운장산(운장대)- 운장산 서봉(칠성대) - 내처사동 

  

"위기는 곧 기회다."

평소에 필자가 자주 인용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다음과 같이 응용해도 될 것 같다.

"최악의 조건은 곧 최상의 조건도 될 수 있다."

 

이번 구봉산-운장산 종주산행이 그러했다.

벼르고 별러서 나홀로 종주산행을 계획하고 먼길을 왔는데 출발 전부터 어긋났다.(물론 다른 행사에 참석하면서 덤으로 세운 산행계획이다.)

새벽 어둠속에서 들머리를 찾지 못해 헤매느라 시간을 허비했고, 비가 내리는데다가 구름이 잔뜩 끼어있으니 시야가 제로였다.

 

그래서 포기할까 망설일 정도로 악조건이었는데 무릅쓰고 강행을 했더니 최상의 조건으로 바뀐 것이다.

인생역전, 대박이었다.  

 

<구봉산~운장산 종주산행을 시작하며>

토요일 밤 대전에서의 모임을 마치고 금산으로 이동하여 24시 찜질방에서 토막잠을 잤다.

구봉산은 진안군에 있지만 산행 출발점은 금산과 진안의 중간지점이기 때문이다.

새벽 산행을 계획했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으니 혼자 이 무슨 청승맞은 짓인가 싶어서 잠시 마음이 흔들린다.

하지만 내친 걸음, 비가 온다고 도전을 포기한다는 것은 내 사전에 없다.

 

몇 번을 지나친 길인데도 비가 내리는 새벽 어둠속이라 들머리인 윗양명 주차장을 찾는데 30분을 오락가락 헤맸다.

주천에서 진안 쪽으로 더 올라와야 하는데 너무 가까운 곳에서 찾느라 같은 길을 몇 번 되풀이 했던 것이다.

지도상에는 용담댐을 건너는 다리 전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실제는 다리를 지나서 한참 더 가야 하는 착오로 생긴 문제였다.

이런 경우에 네비가 있었다면 헤매지 않았을 것인데 내 차에는 네비가 없을뿐 아니라 있다해도 나는 네비보다 내 판단을 더 신뢰한다.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이 5시 반을 넘어서는데도 비가 내리고 있어서 아직 어둡고 넓은 주차장에 덩그러니 나 혼자다.

예정대로 일출에 맞춘 산행이었다면 낭패였을 것이나 비가 오니까 좀 늦어져도 마음에 여유가 있다.

원 계획은 구봉산 정상에서 일출과 운해를 보기위해 4시 반경에 출발 예정이었지만 비가 오는 바람에 서두를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시간 여유가 생겼으므로 아내가 금요일 저녁에 싸 준, 만 하루도 더 지난 도시락으로 아침을 때우면서 상황판단을 한다.

그냥 기수를 돌려서 마이산과 옥정호수 풍경이나 둘러보면서 돌아갈까?

아니면 예까지 왔는데 초지일관, 예정대로 산행을 강행할 것인가..

 

나는 이런 경우를 닥치면 나름 논리적이고 과단성 있다고 생각하는 결정을 하는 편이다.

 

하나, 여기까지 왔으니 풍경을 전혀 못보더라도 일단 구봉산 정상까지는 올라간다.

둘, 날씨가 나아질 전망이 전혀 없으면 구봉산만이라도 부채꼴로 한바퀴 돌아내려오는 산행을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셋, 혹 날씨가 좋아지든가 시야라도 좀 열리면 종주를 강행할 것인지는 산에 올라가서 날씨변동을 지켜보고 판단한다.

 

이렇게 결정을 내리고 길을 나선 시각이 06시 30분인데도 사위가 어두워서 헤드랜턴을 켜야했다.

그런데 '세상만사 세옹지마'라고 갈등과 고민 끝에 산행을 시작한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서 고민했던 문제들이 다 해결되어 버렸다.

 

바로 이렇게~~!

겨우 구봉산 제1봉을 내려다 볼만한 높이까지 올랐을 뿐인데 발아래는 환상적인 운해가 펼쳐진다. 

  

   

내리던 비도 소강상태여서 거추장스러운 우의를 벗어버렸다.

미리 실망해서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더라면 이 좋은 기회를 영영 놓쳐버렸을 것이다.

참새가 봉황의 속내를 알 수 없듯이 인간이 어찌 하늘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으랴.

 

한동안 용담호반 위로 황홀하게 연출되는 운해에 취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러면서 1봉부터 5봉 6봉까지 차례대로 빠뜨리지 않고 운해풍경을 담았다.

나중에 더 나은 촬영포인트가 찾아지고 촬영조건이 나아지면 한 순간에 버림을 받는 운명이 되고 말 장면이지만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더 나은 기회가 꼭 온다는 보장이 없고, 앞에서 좀 부족하다 싶었던 기회가 실은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아뿔싸! 

낮게 드리운 구름이(안개?) 퍼져 오르면서 산등성이를 덮는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구봉산이라 불리는 근원인 아홉 봉우리(주봉을 빼고 여덟 봉우리)를 담으려면 정상까지 올라야 하는데 아직 7봉과 8봉이 남았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다.

구름(안개)이 일단 퍼져 오르기 시작하면 진행이 무척 빠른데다가 덮어버리고 나면 그야말로 오리무중,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은 급한데 갈길은 멀고, 등로는 급경사를 이룬다.

그나마 다행으로 7봉과 8봉은 절벽이 너무 가파라서 등산로가 옆으로 패스하는 바람에 시간을 단축한다.

땀은 콩죽같이 흐르는데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걸음을 재촉하여 한시라도 바삐 구봉산 봉우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야 했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아까의 빠른 이동속도라면 구름이 뒤덮고도 남았을 시각인데 솟아 오르던 구름떼가 도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용담호 상공의 낮은 구름들이 피어 올라오다가 더 강력하게 누르는 저기압 저지선을 만나 일진일퇴 공방전을 벌이는지 대치상태로 머물고 있었다.

 

그 덕분에 구봉산 정상 바로 아래 촬영포인트를 찾을 때까지 멋진 풍광이 유지된다.

어느사이 빗줄기도 그쳐 있어서 느긋하게 구봉산에서 내려보는 운해를 마음껏 퍼 담을 수 있었다.

  

 

 

얼마남지 않은 정상으로 오르는데 구름떼가 다시 구봉산 산허리를 휘감는다.

하지만 이제는 구름이 온 천지를 뒤덮는다 해도 아쉬울 것이 없다는 포만감이 생긴다.

 

   

하지만 구봉산 정상에 올라서도 구름떼는 약간의 공방전만 벌이고 있을 뿐,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구봉산의 주봉을 뺀 나머지 여덟 봉우리가 좀 더 잘 보이는 각도인 천황사쪽 능선으로 한동안 이동해서 모습을 담았다.

 

구봉산을 오르기만 한다면 두 시간이면 충분한데 어느덧 시각은 9시 25분을 넘고 있다.

사진을 찍느라 한시간 이상을 보낸 것이다.

 

구붕산 산행을 계획하면서 겨냥했던 일출과 운해 두 가지 목표 중에서 절반은 얻었다.

시쳇말로 본전은 한 셈이다.

그냥 내려갈까, 내친 걸음에 종주를 강행할까?

필자는 주저없이 후자를 택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종주산행을 할 경우에 예정했던 시각보다 2시간이나 늦다는 것과 보급물품(물과 간식)을 덜어놓고 올라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걷는 것에는 이골이 나 있으니 염려할 바가 아니고, 비가 오니까 목마름이 덜할 것이다.

비가 온다한들, 그리고 구름이 뒤덮여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미 운해 풍경은 얻었으니 걷는만큼 남는 장사라서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운장산으로 향한지 얼마 안돼서 빗줄기가 굵어진다.

하지만 뭐 대수랴, 다시 우의를 덮어쓰고 경쾌한 발걸음을 옮기는데 고운 단풍잎이 비에 젖으니 색상이 더욱 곱다.

 

만추의 우중산행, 이 넓은 산에 오롯이 혼자다.

복두봉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내리막 한번과 오르막 한번을 지나자 걷기에 참 편한 능선길이다.

풍경을 보거나 사진을 찍거나 하느라 시간을 지체하지만 않으면 내 걸음은 누구 못지않게 빠른 편이어서 바람처럼 내달린다.

 

구봉산을 출발한지 한시간이 채 안걸려서 복두봉(1018m)에 도착했다.

동편 끝자락에 올망졸망 구봉산을 이루는 꼬맹이 봉우리 몇개에서 시작하여 구봉산 주봉과 977봉을 거쳐 이어지는 마루금이 한눈에 조망된다.

 

 

복두봉에서 숨 한번 몰아쉬며 인증샷만 남기고 발길을 재촉하여 다시 한시간이 채 안걸려서 1087봉에 도착했다.

산죽과 돌무더기가 정상을 빙 둘러싸듯이 한, 전망이 360도로 확 트인 봉우리다.

걷는 내내 비는 내리다 말다를 되풀이 하는 가운데 뒤덮여도 괜찮다고 생각한 구름떼 역시 정지화면처럼 멈춰있다.

 

오늘의 이 행운이 운장산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은근히 기대가 된다.

여기서도 사방을 둘러보며 인증샷만 남기고 다시 발길을 재촉한다.

구봉산에서 두시간 늦은 출발을 했기 때문에 내처사동에서 3시 15분 출발하는 시외버스를 타려면 마음이 급하다.

 

 

구봉산과 복두봉, 그리고 여기 1087봉에서 사진을 찍는 내내 여러차례 마이산이 보이지 않을까 눈여겨 살펴봤는데도 못 찾았었다.

그런데 사진을 정리하면서 보니까 이곳 1087봉에서 남쪽 조망을 담은 사진에 희미하고 작게나마 마이산이 보였다.(아래사진 오른쪽 귀퉁이에 희미하게~)

현장에서 눈에 띄었으면 멀더라도 클로즈업 사진이나마 찍었을 것인데 아쉽다.

 

 

1087봉에서 운장산 동봉(상장봉 1113m)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종주코스 중에서 가장 난구간이었다.

중간에 각우목재란 곳을 지나게 되는데 고도를 300m 이상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쳐야 하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에 1087봉에서 각우목재로 내려섰다가 상장봉으로 다시 올라가는 능선이 잘 드러난다.

 

각우목재로 내려서기 직전에 다시 구름이 치밀고 올라와 시야를 가리기 시작한다.

비는 완전히 그쳤으나 산 아래 구름은 여전히 일진일퇴를 하면서 전선을 유지하고 있다. 

 

윗양명 주차장을 출발한 이래 줄곧 혼자였는데 여기 상장봉 직전에서 한무리의 산객을 만날 수 있었다.

상장봉에 올라서자 운장산(운장대)과 서봉(칠성대)이 손에 잡힐듯이 가깝다.

 

시간을 보니 12시 47분, 각우목재에서 상장봉까지의 오르막 구간에서 시간이 좀 지체됐다.

하지만 구봉산에서 이곳까지 3시간 20분만에 주파했으니까 남은 구간은 별 것 아니어서 이후 진행은 마음을 놓아도 된다는 계산이다.

 

 

그런데 멋진 풍경을 담을 때마다 기능을 잘 발휘해 주던 주 카메라(캐논 5D)가 작동을 멈춰버린다.

이런 낭패가.. 밧데리가 다 소진된 것이다.

산행을 시작하면서 종주 가능성 보다는 구봉산 산행만으로 그칠 것 같아서 예비 밧데리를 챙기지 않은 탓이다.

 

그렇지만 이럴 경우에 대비하여 소지한 '똑딱이 카메라'가 있어서 대타로 기용한다.

지금 모니터상으로 보기에는 별로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지만 큰 화면이나 확대해서 보면 해상도에서 확실히 차이가 난다. 

그렇거나 말거나 없는 것에 비하면 이렇게라도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소중한 경험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풍경사진을 찍고는 내처 운장대로 향한다.

그런데 운장산 동봉 또는 상장봉이라 부르는 이곳 높이가 지도상에는 1113m인데 정상석은 1133m여서 헷갈린다.

어느 한쪽이 틀린 것인데 1126m인 운장대를 운장산의 주봉을 꼽는 것을 보면 동봉(상장봉)의 높이는 1113m가 맞을 것 같다.

 

오늘 구봉산-운장산 종주산행에서 마루금의 끝자락인 운장산 서봉(칠성대)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며 수시로 숨바꼭질하는 구름은 다시 산아래 풍경을 열어 주었다.

 

 

13시 18분, 운장산 정상(운장대 1126m)에 도착했다.

날씨가 개이면서 산아래 풍경 조망은 오히려 흐려진다.

구름도 흩어지고, 시야도 좀 뿌옇게 변한 것이다.

 

남은 거리를 가늠해 보니까 14시 전에만 서봉에서 하산을 시작하면 시외버스 시간에 충분히 맞출 수 있겠다.

서봉에서 내처사동 주차장까지 딱 4km인데 하산길이라서 약 1시간이면 될테니까..

점심 대신에 희망연대 지니님이 챙겨 준 간식(떡과 밀감이 얼마나 요긴했는지!)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마지막 봉우리인 서봉으로 출발이다. 

 

이젠 간식도 없고, 물도 바닥이 났다.(종주를 할 조건이 아니라는 판단에 0.5L  생수 한병만 달랑 갖고 왔으니..)

 

운장대에서 본 서봉(칠성대 1122m)/ 13:30

지도에 표기된 운장산의 세 봉우리 이름과 현장에 세워진 정상석 이름이 서로 달라 외지에서 온 초행자에게는 혼란스럽다.

그래서 지도상 이름과 표지석 이름을 함께 적는다.

 

서봉의 '상여바위'에 올라서서 바라 본 운장대(右)와 상장봉(左)/ 13시 40분

 

칠성대 아래 계곡

  

상여바위 너머로 보이는 상장봉과 운장대

 

다음은 칠성대에서 둘러 본 주변 조망이다.

서쪽으로 연석산(925m)

 

서북쪽으로 뻗어나간 골짜기(상검태 하검태 보리암 방향)

 

내처사동쪽으로 하산해야 할 독자동계곡 방향

산 중턱에 55번 지방도가 지나는 피암목재 고갯길이 보인다.

 

13시 50분 칠성대를 출발하여 하산을 시작했다.

대개의 등로는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도중에 작은 오르내리막이 있기 마련인데 독자동계곡 하산길은 지루할 정도로 계속 내리막이다.

아마도 이 코스로 올라오려면 꽤나 지루하고 지치기 십상이겠다.

 

하산을 시작한지 딱 한시간 만에 내처사동 주차장에 도착하니 20분쯤 여유가 있다.

초행길인데다가 비가 내려서 암릉구간이 미끄러워 산행조건이 좋지 않았지만 도전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 스스로 성취감을 만끽하며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

 

다음은 필자가 걸었던 경로를 지도에 표기했다.

나홀로 종주산행을 준비하면서 인터넷 공간에 다른 블로거들이 올린 산행기 도움이 컸기에 품앗이로 생각하고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을 남긴다.  

 

종주거리 : 약 16km(윗양명주차장-구봉산 3.2km/ 구봉산-운장대 8.2km /운장대(서봉)-내처사동 주차장 4.6km)

소요시간 : 전체 8시간 20분(주차장-구봉산 사진촬영 3시간 / 구봉산-내처사동 주차장 5시간 20분)

내처사동에서 진안으로 가는 시외버스 출발시간/ 13시 20분, 15시 15분

 

혹 더 상세한 산행기록이 필요한 분은 꼬리글을 남기면 성심껏 알려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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