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진(記)/국내여행

한라산 윗새오름/ 악천후속 영실코스

질고지놀이마당 2011. 1. 14. 13:33

 

2010. 1. 9. 일. 눈보라 속 4남매 부부동반 가족산행

코스/ 영실주차장- 휴게소- 악천후로 윗새오름 1km 전방에서 되돌아 내려옴

 

원래는 어리목코스로 올라서 영실로 돌아서 내려오려고 했는데 1100도로를 올라가는 동안에 날씨가 점점 나빠져서 곧장 영실주차장으로 향했다.

혹시 입산통제라도 되면 산행 자체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듯 산행을 시작할 때는 별 걱정하지 않았고, 날씨가 흐려지면서 진눈개비가 날려도 곧 개이려니 생각했다.

09시 30분, 여덟명의 가족산행 전사들이 완전군장을 꾸리고 영실 주차장을 출발했다.

 

 

 

영실코스 탐방로에서 휴게소까지 2.5km의 도로에 눈이 많이 쌓여서 차량은 못다니고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날씨가 점점 나빠지고 있었으나 그래도 낭만적인 감상에 젖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걸을 수 있었던 코스다.

그러나 날씨는 이제 실실 걱정이 될 정도로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단체 탐방객들이 제법 많은데다가 다들 별 걱정하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별일 있으랴싶은 믿음이 있었고, 산길은 분잡스러울 정도였다.

 

10시 15분 영실휴게소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본격적인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산길에서 한발자국만 비켜나도 무릎이상 빠지는 눈길이다.

산객들 발에 다져진 등산로는 좁기 때문에 도리없이 줄을서서 흐름에 따라 올라가는 형편이다.

 

10시 55분, 이윽고 숲길이 끝나며 개활지가 시작되고 본격 오르막이다.

거칠것없는 눈보라가 눈을 뜨지못할 정도로 사정없이 몰아친다.

이쯤에서 조망되는 영실기암 절경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길게 줄지어 걷던 대열이 많이 줄어들었다.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가족은 여전사들이 더 잘 오른다.

 

11시 15분 병풍바위쯤에서 눈보라를 맞으며 인증샷,

여기서 첫 후퇴자가 발생했다. 최연장자인 매형이 먼저 내려간다며 하산을 시작한 것.

가이드겸 찍사에 운전기사요, 산행대장인 필자의 처지가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내 사전에 중턱산행, 후퇴는 없는데.. 집안 형제들 행사이니만큼 令을 고집할 수가 없는 조건이다.

 

오르막 고생길은 거의 끝나가는데..

이 오르막만 오르면 고생끝 행복시작이라고 할만큼 편한길이 기다리고 있는데 가족들 분위기는 더 무리하지 말고 내려갔으면 하는 쪽으로 흐른다.

그래도 조금 더 올라가서 제대로 얼어붙은 눈꽃을 구경시키고 내려갔으면 하는 욕심에 좀 더 오르기 시작한다.

 

 

 

 

이젠 악천후 속에 오르는 산객보다 내려오는 대열이 훨씬 많다.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풍경들이 나타난다.

적당한 지점에서 사진촬영 마치고 하산을 해야겠다고 내 고집을 접기로 한다.

하지만 마눌이 기다리지 않고 내처 올라가 버렸으니 빠른 걸음으로 따라잡아야 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사이에 형한테서 전화가 걸려와서 누나도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다며 전부 이산가족 만들 참이냐, 그만 내려가지 않고 고집 부린다고 불호령이다.

 

앞서간 아내와 여동생을 따라잡아 발길을 돌리는데 눈보라 속에도 환상적인 눈꽃풍경이 자꾸만 발길을 잡아 세운다.

아마 형제들 모임이 아닌 산행이었다면 아내와 나는 윗새오름까지 다녀왔을 것이다.

하지만 서열이 분명한 형제들 모임에서 하극상을 벌일 수는 없는 일이고, 무엇보다 전체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입장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12시경 어쩔수 없이 발길을 돌려 하산을 서둘렀다.

 

 

 

 

 

 

12시 15분경 병풍바위 옆을 내려오는데 날씨는 더 혹독하게 몰아친다.

방금전에 앞서간 사람의 발자국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찬 바람에 온몸이 휘청거렸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 못지않게 바람에 날리는 눈까지 더해서 도무지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다.

워낙 급격하게 변하는 악천후라서 중도 하산을 결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윗새오름에서 점심대신 먹으려고싸짊어지고 간 컵라면과 간식, 정상주, 커피 등등을  영실기암 안내판 옆에서 먹고 마시는 여유를 부렸다.

12시25경부터 약 20여분간, 지나는 산객들이 대단하다며 인사를 건네면 불러서 한잔 나눠주기도 하면서..ㅎㅎ

춥고 손이 시려서 모든 것이 어설펐지만 눈보라속에서 이런 추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오죽하면 독실한 크리스찬인 동생이 추위를 이기는데 좋다는 꼬드김에 과실주 한컵을 마셨는데도 정말로 취하지 않는다며 신기해 했다.

 

13시경 영실휴게소에서 얼마 되지 않는 곳에서 앞서 내려간 매형이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내려가긴 했는데 아는사람도 없고, 하릴없이 휴게소에서 이곳까지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우릴 기다리는 중이라 했다.

 

 

 

13시 10분쯤 영실휴게소에 도착했다.

눈보라는 사그라들줄 모르고, 아직 내려가야 할 거리가 제법 되었지만 일단 휴게소에 들어가서 중간 하산주를 나누며 언몸을 녹였다.

 

멈춰선 제설차를 보니 눈은 끊임없이 퍼붓는데 이젠 차량이 내려갈 수 있을지 걱정되기 시작한다.

아직 갈길이 멀건만 한번 주저앉으니 다들 궁둥이가 무겁다.

14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내리막길이라 힘은 들지 않겠지만 영실주차장까지 눈길 2.5km가 남았다.

 

 

날씨는 더욱 사납게 으르렁 거리고..

눈보라가 심해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계는 10~20m 정도에 불과하고 가시거리도 50~100m를 넘지 않는다.

 

 

 

 

 

날씨가 험하기는 해도 내려오는 걸음이어서 좀 가볍다.

 

 

올라가는 것 같지만 실은 눈보라가 너무 세차서 뒷걸음으로 내려오는 것 ^^*

 

 

 

 

 

14시 30분경에 영실주차장에 도착했다.

9시 반경 들어올 당시에는 이곳까지 소통은 문제가 없었는데 그 사이에 상황이 심각하게 변해있었다.

눈은 점점 쌓이고, 올라오는 차량과 내려가는 차량이 교행을 못해 차량 소통에 문제가 생긴 것.

국립공원 직원들이 어떻게든 소통을 돕고자 노력한 결과로 엉킨 실마리를 풀고, 대형버스들이 내려가면서 내는 자국을 따라 엉금엉금 기듯이 내려왔다.

이후 경사지고 구불구불한 산간도로를 내려오는 내내 서행과 엔진브레이크를 이용하면서 긴장의 연속이었다.

 

더욱 마음 졸였던 것은 산간도로에서 주유소가 없어서 한라산을 들어서기 전부터 경고등이 들어와 있었던 점이다.

만약 도로가 막혀 소통을 못하거나, 차량에 문제가 생기면 꼼짝없이 산속에 갇혀서 추위속에 떨어야 할 상황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무사히 내려왔고, 기름을 넣으려 서귀포시내로 들어서니 거짓말처럼 온화하고 맑은 날씨가 아닌가!

마치 전혀 다른 세상을 다녀온 것처럼 변화무쌍한 한라산의 악천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