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정치/환경 노동분야

고압 송전탑 공사장으로 변한 백마산 산행길

질고지놀이마당 2013. 10. 30. 14:49

언제 : 2013. 10. 27. 일. 맑음

누가 : 나홀로

 

평소 산행습관은 새벽에 출발해서 해가 뜰 무렵에 마루금에 가 있어야 하는 성격인데 전날 서울에 갔다가 늦게 내려오느라 조금 늦게 답사 산행길에 나섰다.

바로 이런모습, 늦게 길을 나서면 사람들이 몰릴만한 장소는 그야말로 교통지옥에다 주차전쟁으로 몸살을 앓는 현장을 거쳐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갓길에 한 줄만 주차를 하라고 현수막을 내걸고 안내도 하건만 아직 우리의 시민의식은 이런 정도에서 머물고 있다.

 

갓길 양쪽으로 주차를 하는 바람에 교행이 안되고, 교행이 안되니까 더 밀리는 악순환으로 인해 요소요소마다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배내골 가는 길)

 

 

배내골 하류로 내려가면서 보니까 금천마을 좌우측으로 거대한 철탑이 떡하니 들어섰다.

밀양에서 반대투쟁을 하고 있는데 양산지역은 주민반대가 없어서(?) 벌써 철탑이 다 세워진 것 같다.

그런데 보통 보아오던 철탑이 아니다. 76만5천 볼트라는 특고압 송전선로여서 그런지 위압적으로 느껴질만큼 크고 높다. ㅠㅠ

 

양산쪽 오룡산 남쪽자락(?)을 건너온 송전철탑이 서쪽으로(밀양) 향하고 있다.

 

궁금하면 못참는 성격이라 도로에서 가장 가까운 녀석 아래로 가서 올려다 본 모습

이거 완전 괴물 수준이다.

 

요리보고 조리보고~ㅎㅎ

 

 

현기증이 날 정도로 높고 아래쪽 기둥이 얼마나 굵은지 한아름으로 안아지지를 않는다.

 

 

 

스틱과 배낭을 놓고 기둥 밑둥의 굵기를 가늠해 보았다.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동해안(신고리원전)에서 출발한 거대한 송전철탑이 국토를 가로지르는 모습

 

 

원전과 철탑을 둘러싸고 인간들이 빚는 갈등과는 아랑곳 없이 가을꽃은 피고, 나뭇잎은 곱게 물들어 간다.

 

 

 

 

 

 

 

 

 

 

 

향로봉에서 백마산까지 가는 등산로 가까이에 철탑현장 네 곳이나 있었다.

첫번째는 약간 비켜나 있었는데 호기심에 확인해 보니까 기초공사가 끝난 상태였다.

 

두 번째 공사현장도 기초공사 마무리 단계로 보였다.

 

세 번째 자리는 벌목을 한 상태에서 터닦기 작업을 좀 시작했다가 중단된 상태.

흥미로운 것은 각 현장마다 굴삭기 한대씩이 놓여 있었는데 산중이라는 특성상 이동이 용의치 않아서 한번 올라오면 공사를 완전히 마칠 때까지 냅두는 모양이다.

 

향로산 정상이 가까워졌다.

 

그런데 아주 고약하게 자리 잡은 곳이 바로 이곳 네 번째 만나는 공사 현장이었다.

산길을 딱 막아서 철망을 둘러치고 공사를 하는데 우회로는 고사하고 어디로 가라는 안내판조차 하나 없었다.

앞서 다녔던 등산객들 발자국을 더듬어 보니까 산삐알 아래로 왼쪽이나 오른쪽 알아서 우회통과를 한 것 같았다.

나쁜**들 같으니라구... 욕이 절로 나오면서 인터넷에 현장고발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돌아서 반대편 공사장 출입로 쪽으로 와서 한전 직원에게 이런 몰상식한 법이 어딨냐고 항의를 했더니 소리를 지르거나 사람을 부르면 열어 준단다.

이런 된장, 그렇다면 그런 사실을 고지를 해야 알지 초행길에 고압적인 철망과 마주치는 산객들이 그런 사실을 어찌 알겠는가?

아래 사진에 보듯이 등산로를 이렇게 딱 막아 놓았다. ㅠㅠ

 

반대편으로 돌아와서 바라본 공사현장

바로가면 50m 남짓할 편한 길이 막혀서 왼쪽 비탈 아래로 한참을 우회해야 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점이다.

그렇지만 목표지점인 백마산까지는 찍고 내려가야 한다는 욕심에 다시 등산로를 오르면서 내려다 본 안부의 모습이다.

그래도 이곳 현장은 임도를 따라서 차가 올라 올 수 있는 곳이라서 공사가 좀 수월한 조건인 것 같다.

현장에 상주하는듯한 한전 직원들의 임시 천막이 설치되어 있고, 10여명의 직원들이 현지에서 컵라면으로 새참인지 이른 저녁인지.. 하여튼 저들도 고생이다.

 

백마산 정상 오르기 전 한전 직원들의 임시거처가 있는 안부에서 만난 저녁노을

 

 

 

 

 

 

 

 

 

 

해가 떨어지고 나면 산중의 어둠은 금방 내린다.

이곳 안부에서 백마산 정상까지 몇 걸음 안될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올라보니 예상보다 멀었다.

정상까지 오르기 전 캄캄한 어둠이 내려서 헤드랜턴을 켜야 했다.

 

어둠속에 혼자 산을 오르는 나도 중증이지만 나처럼 백마산 정상쪽에서 내려오는 두 사람을 만났다.

그들 목표는 향로봉을 거쳐 성불사가 있는 곳이라니까 아직 두시간은 족히 걸려야 할 거리다.

설상가상 그들은 이곳 지리에 그다지 익숙치 않은지 이것저것 묻기에 가까운 하산길을 권고했다.

그들의 처지를 보니까 가장 가까운 곳으로 하산만 하면 되는 내가 그래도 나은편이지 싶다.

그러나 잠시 후 백마산 정상을 거쳐서 미답구간인 서쪽방향(평리쪽이라 생각했는데 나중 확인하니까 바드리였다.)으로 하산하는 길이 예상밖의 난코스였다.

 

캄캄한 어둠속에서 초행길이라 암릉의 길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다 밧줄에 의지하지 않고는 내려가기 어려운 절벽이 한참이나 이어졌다.

가지산 북릉 못지않은 난코스가 있을 줄은 미쳐 몰랐던 것.

대신 이곳을 밝을 때 지나면 전망이 아주 좋을 것 같아서 조만간 다시 한번 와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조심조심 민가까지 무사히 내려와서 안도를 했는데 정작 이곳에서 큰길로 내려가는 도로를 찾지 못하고 헤매느라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고만고만한 시멘트길이 여러갈래로 뻗어 있을 경우 어느길이 맞는지 알 수가 없으므로 상식적 판단을 택할 수밖에 없다.

대개는 산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면 찻길로 이어지는 것이 상식인데 이곳은 멀기도 하거니와 상식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순전히 경험과 상식에 입각해서 옆으로 뻗은 길 보다는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가보면 과수원으로 연결되면서 막혀버리곤 하는 상황을 서너번 겪었다.

오가는 사람이 없으니 물어 볼 수도 없고, 휴대폰 지도 검색에도 나타나지 않는 농로였다.

산길 찾는데는 '빠꿈이'라고 자부하던 내가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 고생을 할 줄이야... 이건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다.

 

 

나는 이런 경우를 겪고나면 사후에라도 원인분석을 하는 성격이라서 상세한 지도검색을 통해 확인해 보았더니 과연 그곳 길은 미로나 다름 없었다.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겪긴 했지만 직관으로 방향을 정해 길을 찾아 내려온 것 만으로도 자부심을 가져도 될 정도로...

평리 체험마을이라고 생각했던 곳은 바드리였고, 내가 찾아 나온 길은 그곳에서 '외부세계' 로 연결되는 유일한(?) 길이었다.

위 지도에서 보듯이 마을을 중심으로 여러갈래로 뻗어나간 길 중에서 사전에 아무런 정보나 물어 볼 곳 없는 밤중에 내가 찾아 나가야 할 유일한 길은 딱 하나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