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산행기/영남알프스

신불산 산행기

질고지놀이마당 2007. 5. 15. 16:47

신불산 심설산행 - 2월 9일(목) 맑음

산행 지점 : 등억 온천지구 내 새로 개척한 등산로
하산 지점 : 간월산장 옆
등억온천지구 출발(11:30) - 자수정 오름길과 만남(12:40) - 공룡능선 점심(13:10~14:00) - 정상(14:40) - 하산시작(15:10) - 간월재(15:40) - 간월산장(16:20)

 

신불산 정상에서 본 장쾌한 설경

신불산은 여러 차례 산행을 했는데 아주 오래전에 간월재로 올랐던 경험과 파래소 폭포에서 오른 적이 있지만 대개는 간월산장 쪽으로 오른다.
홍류폭포를 지나 능선을 따라 오르면 나타나는 공룡능선(일명 칼날능선)은 스릴 만점이다.


배내봉 - 간월산 능선에서 본 등억 온천지구와 신불산 오르는 능선 및 공룡능선

전혀 가 보지 않은 산은 혼자 심설산행을 하기에 자신이 없고, 자주 가 본 산은 새로운 맛이 없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새로 개척했다는 등억 온천지구에서 오르는 길이었다.
마침 찾아가기 쉽게 안내표지며 현수막이 붙어 있어서 길을 찾는 수고를 덜 수가 있었다.

이곳은 아무도 가지 않았겠지 기대했으나 역시 두 사람의 발자국이 찍혀있다.
아침에 오른 듯 아직 선명한 가운데 바람에 날린 눈이 살포시 덮여 있다.
등산로 입구 주변에 보이는 건물은 거의 다 '러브호텔' 이었다.

온천관광단지를 개발한다면서 아름다운 경관을 마구 훼손하더니 겨우 목욕탕과 모텔촌이라니...
잘려나간 산 허리에 빈터는 잡초가 무성하고 드문드문 모텔이 들어서 있는 흉물스런 모습을 어찌 개발이란 이름으로 합리화시킬 수 있을까.

산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산신령이 있다면 어찌 노하지 않을 것인가!


등억 온천지구에서 새로 개척한 등산로 들머리의 삼나무(편백나무?) 군락

'스카이 호텔' 옆에 차를 세우고 산행 준비를 하는데 옷깃에 파고드는 공기가 차갑다.
이윽고 출발(11:30)
등산로 들머리에는 죽 곧은 낙엽송과 삼나무(?)가 사열하듯 줄지어 서있어서 등산객을 반기는 듯 하다.
완만한 길은 10분이 채 안되어 끝나고 오른쪽으로 살며시 틀어서 능선 길에 접어드니 발목이 푹 빠질만큼 눈이 쌓여있다.


등억 온천지구에서 능선 오르기까지 북사면에 쌓인 눈

출발한지 20분이 채 안되어 휴식 겸 아이젠과 스펫츠를 착용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는 처녀(?) 산행을 기대하다 앞서 간 발자국이 있어 아쉬워했는데 아니다.
아마 앞에 간 발자국이 없었다면 체력소모는 훨씬 심하고 중간중간 길 찾느라 시간도 제법 허비하였을 것을 생각하니 고맙기 그지없다.

선각자의 어려움과 뒤 따라가는 후발주자의 이점을 오늘도 절실히 체험한다.
자수정 동굴나라 쪽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는 지점에 도착하니 12시 40분, 출발부터 1시간 10분이 걸렸다.
계속 오르막인데다가 눈이 허벅지까지 쌓인 곳도 많아서 걸음이 더딘 편이다.
여기서부터는 제법 발자국이 많다.


자수정 동굴나라 오름길과 만나는 능선에서 본 간월산

전망이 탁 트인 곳에 이르러 사진 몇 장을 찍고 다시 출발.
날씨가 좋아서인지, 유명세를 타는 산이라서 그런지 오늘은 등산객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덕분에 개인 사진을 한 두컷 남길 수가 있었다.


능선에서 바라 본 영축산

공룡능선은 평소에도 험한 코스여서 눈 위로 걸어간 흔적이 전혀 없다.
나 역시 안전을 고려하여 욕심부리지 않고 고분고분 우회코스를 따라 걸었다.
암릉구간은 평소에도 위험하지만 아이젠을 찬 상태로 바위를 디뎌야 하는 경우는 훨씬 더 위험하다.


공룡능선을 오르며 바라 본 신불산 정상

허기가 돌기에 양지바른 바위아래 자리를 잡으니 바람부는 능선과 달리 봄날처럼 아늑하다.
바빠야 할 이유가 없는 산행이어서 느긋하게 쉬면서 점심을 먹고, 절벽에 붙은 고드름 사진도 찍는 등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는 다시 출발(14:00).


바위 너머로 고헌산

정상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제법 시간이 걸린다.
능선에 올라서니 바람도 세차고 제법 춥다.
발길을 자꾸만 더디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아름다운 경관이다.
울산에 와서 27년째 살면서 눈 쌓인 영남알프스의 경관을 이처럼 만끽하기는 처음이다.


공룡능선에서 본 운문산 - 가지산

눈 구경하기 힘든 울산이라지만 그동안 눈 내린 적이 적지 않았을 터임에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생활을 해 왔음이다.
멋진 경관이 아름다워서 사진을 찍고 나서 오르다 보면 더 멋져 보이는 경관이 계속되니까 그만큼 발걸음이 더딜 수밖에.
그렇게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마침내 신불산 정상에 올랐다.(14:40)


신불산 정상의 탁 트인 전망/ 간월산- 능동산 - 가지산 - 운문산- 억산이 한눈에 조망된다.

신불산 정상(1209m)에서 보는 펼쳐진 영남알프스의 설경은 사방팔방 막힌 곳이 없어 장쾌하기 그지없다.
간월산을 거쳐 배내봉 - 능동산 - 석남터널 - 가지산 주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한 눈에 잡힌다.

가지산 주봉에서 우측으로 쌀바위 - 상원산 - 귀바위 - 고헌산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좌측으로는 운문산 억산 봉우리도 하얗게 눈을 뒤집어쓰고 있다.


신불산 정상에서 영축산 - 삿갓등 능선

남쪽으로는 영축산에서 시살등으로 이어지는 암릉 능선이 여기도 봐 달라는 듯 험한 산세를 자랑한다.
서쪽으로는 능동산에서 이어지는 천왕봉 제약산 봉우리 까지 그리고 동남쪽으로는 정족산 및 천성산 자락까지 시야가 깨끗한 편이어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산봉우리가 다 조망된다.


간월재로 내려가는 길에 본 설경

추위를 무릅쓰고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는데 돌탑을 바람막이 삼아 한 떼의 산꾼들이 옹기종기 모여 점심을 먹고 있는 풍경이 궁상스럽기도 하고 비장해 보인다.
정상 오르기 전 양지바른 바위틈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오길 얼마나 잘했는지...

올라오느라 힘들기도 하였지만 경관이 너무 좋아서 내려가고 싶지가 않다.
권력도 그래서 놓기 싫은 것인지?
하지만 춥기도 하고 말벗도 없으니 더 오래 머물지 못하고 간월재 방향으로 하산 길을 잡았다.


산 아래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몰아쳐 쌓아 놓은 설성(雪城)

간월재로 향하는 능선에는 바람이 몰아치면서 옮겨놓은 눈 더미가 마치 성곽처럼 쌓여있다.
키 높이의 눈도 눈이지만 유려한 곡선의 아름다움이 또 발길을 붙잡는다.
모진 눈보라를 견디면서 새 봄을 기다리는 철쭉군락 위로 파아란 하늘엔 희미한 낮달이 걸쳐져 있다.


간월재 임도. 멀리 사자봉과 운문산 봉우리

간월재까지의 내리막길은 훼손이 심한 기존 등산로를 폐쇄하고 새 길을 다듬어 놓았다.
하산 길에 조망되는 간월재 임도며 천왕봉 방향의 설경 역시 감탄을 자아낸다.
간월재는 간월산과 신불산 사이 낮으막한 안부인데 항상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다.

그 바람골에 자생하는 억새군락은 특유의 유연함으로 추위와 바람을 잘도 이겨내면서 등산객들에게 멋진 장관을 선사한다.
이 역시 자연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삶의 지혜가 아닐까.


간월재에서 억새밭 너머로 보이는 고헌산

건너편 고헌산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이곳에서 간월산장으로의 하산길은 임도가 잘 닦여 있는데 임도를 가로지르는 지름길 등산로는 경사가 매우 급하다.
바위도 많고 눈길이라서 넘어지기 십상인데 몸이 가뿐한 탓에 내가 생각해도 구르듯 잘도 내려온다.
간월재(15:40)에서 간월산장(16:20)까지 내려오는데 소요된 시간은 불과 40분.


등억온천지구에서 올려다 본 정상

그런데 욕심은 화를 낳는 법.
시간이 좀 이르기에 그냥 오기 뭣해서 한 군데 더 길을 잡았다가 어둠이 내리고 말았다.
게다가 전화기 배터리가 방전되어 소통마저 끊겨 버렸다.
부상도 아니고 길 잃을 염려는 없었지만 사정을 모르는 안 사람과 지인들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여유를 부렸다가 늦어진 하산 길에 달빛을 받으며

영남알프스의 멋진 설경을 감상하면서 대자연에서 지혜와 교훈을 얻는 산행을 하였음에도 과욕으로 인해 크나큰 걱정을 끼치고 보니 미안하기 짝이 없다.
다음부터는 무리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여분 밧데리를 준비해야 하겠다.


공룡능선 오르기 전 안부에서/ 뒷편 봉우리는 간월산 정상 


신불산 정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