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정치/질고지칼럼

23. 2004. 8 태풍 '메기' 피해를 당하고

질고지놀이마당 2008. 6. 24. 15:41

 

<2004년 8월 태풍 '메기'가 강동해안을 강타하고 난 뒤에 현장방문 소감 및 당시 언론보도를 보고 쓴 글>

 

제목 : 태풍 '메기'가 남기고 간 것 - 자연은 소유와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상생의 동반자

 

 

 

  관리자 (2004-08-30 13:58:08, Hit : 437, Vote : 109
 태풍 '메기'가 남기고 간 것 - 자연은 소유와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상생의 동반자


◈ 보기만해도 두려움이 이는 집채만한 파도. 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은 너무나 미약한 존재.

올해도 어김없이 태풍이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갔다.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 "살고싶지 않아요"라며 진저리를 치던 어느 아주머니의 표정이 비수처럼 가슴에 박힌다.

태풍 '매미'보다 거셌던 해일과 파도

불행 중 다행으로 울산지역은 태풍 중심부가 약간 비켜 가는 바람에 재해가 적었다.
하지만 상대적인 비교일 뿐, 크든 작든 피해를 당한 주민들의 상실감은 매우 크다.
우리 북구의 경우도 파도가 덮친 바닷가 주민들은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파도가 덮친 시각은 오전 9시경으로 오전 7시를 전후하여 거센 비바람이 지나간 뒤 두 시간여가 지난 시점이었다.


신명동 가옥 피해 현장

마침 밀물과 겹치면서 해수면이 높아졌기 때문에 파도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작년에 엄청난 피해를 안겼던 태풍 '매미'에 비하면 이번 태풍 '메기'는 바람의 세기나 강우량 등에서 비교가 안될 정도여서 안도했는데 태풍이 지나고 난 뒤에 '후 폭풍'에 해당하는 파도가 해안을 덮쳤던 것이다.

사실 북구청에서는 작년에 철저한 사전 대비로 태풍 '매미'의 피해를 최소화 시켰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건설과 및 농수산과 직원들이 비상근무를 하면서 시시각각 태풍의 진로와 비바람의 세기를 감안하여 대비책의 수위를 판단하고 있었다.
배를 인양하여 대피시켰는데 태풍이 비켜 가면 어민들에게 공연한 수고와 비용을 쓰게 했다는 원성을 사게 된다.
그러나 만약 대피를 시키지 않았다가 큰 피해를 당하면 더 큰 책임이 따르는 것이 수산담당 공무원들의 처지라서 최종판단을 하기까지 매우 고심을 하게 된다.


해안에 대피한 배 앞으로 덮치는 파도

따라서 좀 더 확실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태풍이 제주도를 지나는 시점까지를 살펴 본 다음 최종적으로 배 인양을 결정하여 작업에 착수한 시간은 밤 10경이었다.
이런 고심어린 결정으로 어선 피해는 없었으나 바다에 가까운 해안도로와 일부 민가의 해일피해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바닷가 가옥 피해 장면

民·官·軍의 신속한 복구작업
신명부락과 당사마을의 피해가 심했는데 안방까지 파도가 치고 들어온 가옥도 있어서 인명피해가 없었던 점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상황이었다.
울산에 정착한 이후 26년 동안 살면서 처음 접하는 파도의 위력이었다.
평생을 바닷가에서 살아 온 주민들도 평생 이런 파도는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성난 자연의 힘은 실로 대단해서 태풍이 완전히 지나간 시각인 19일 오후까지도 집채만한 파도가 으르렁 거렸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만하기 다행이라고 안도하면서 복구작업을 서두른다.
길을 덮은 자갈 모래며, 산처럼 밀려온 해상 쓰레기를 치우려면 주민들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인 상황이라서 복구작업을 지원해 줄 손길이 필요했다.
우선 구청직원과 공익요원을 차출하고 관내 군부대와 현대자동차에 지원을 청하니 흔쾌히 승낙한다.
이렇듯 북구청에서는 태풍 피해를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결과 작년 '매미'와 마찬가지로 큰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
또한, 신속하게 복구지원 대책을 마련하여 민·관·군이 협력한 결과 만 하루가 지난 20일에는 대부분 응급복구와 해변쓰레기 청소까지 완료했다.


현대자동차 임직원 및 7765부대 등이 태풍 복구에 힘을 보탰다

그렇지만 현장을 취재한 방송기자들의 시각은 아주 달랐다.

본질 덮어두고 현상만 꼬집은 방송보도

맨 먼저 YTN이 "호안 공사를 한 곳은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는데 방파제나 호안이 없는 곳이 피해가 컸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주민의 건의가 있었는데도 당국의 늑장대응으로 피해를 키웠다"는 식으로 보도하자 다른 방송사에서도 같은 시각이었다.
현상만 놓고 본다면 기자들의 시각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국가는 자연재해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할 무한 책임이 있으므로...

하지만 이 같은 방송보도는 본질은 덮어두고 결과적으로 드러난 현상만 꼬집는 것이었다.
방송기자들이 태풍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소개한 호안 축조 구간은 환경적인 측면에서 보면 '잘못 시공한 사례'로 남지 않을까 싶어서 마음에 걸리는 곳이다.


신명 호안 축조는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과거 철조망과 돌무더기로 모든 해안선을 꼭꼭 막았던 시절이 연상되어 마음조차 답답하기 짝이 없다.
파도가 넘쳐오는 것을 막기 위해 치른 대가가 너무 크거늘 기자들은 태풍피해를 강조하느라 호안축조가 바람직한 대책인 것처럼 보도했다.
우리 직원이 기자에게 "50년 만에 한번 올까 말까한 태풍을 막으려고 해변경관을 옹벽으로 막는 것은 생각해 볼 일"이라고 반문한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북구청에 환경마인드를 가진 공무원이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태풍피해 → 호안 공사 미비 → 당국책임 식의 대동소이한 도식적인 보도는 식상하다.
그보다는 국가에서 관리해야 할 공유수면을 민간에게 불하함으로써 해변을 과도하게 점유하고,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해변가까이에 건축을 허가함으로써 위험을 자초한 것이 더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나친 인공구조물은 또 다른 재앙의 시작

무분별한 해변잠식과 인공적인 구조물 설치가 해양환경을 크게 해치고 있음을 입증한 공영방송의 환경 다큐에서 모래가 이동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이렇듯 호안 옹벽은 일시적으로 파도는 막을 수 있으나 조류 변화로 인하여 해변이 유실되거나 퇴적 현상으로 인해 바다기능을 상실하는 등 더 많은 문제를 안고있다.
강동 해변에서도 구암 마을은 해변의 모래·자갈 유실이 심하여 축대나 방파제 기초가 허물어지기 직전인가 하면, 신명과 화암 방파제 부근은 모래와 자갈이 많이 쌓여서 애써 만든 항(港)이 제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태풍 영향으로 아름다운 몽돌이 유실 또는 해안쪽으로 퇴적 현상이 심화됐다.

오랫동안 바닷가에서 살아 온 어민들은 직감적으로 방파제 및 호안 공사로 인해 물 흐름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8월 21일자 지방 신문에 울주군 서생면 나사리 해변에 축조한 방파제 및 호안 공사로 인해 매년 모래 퇴적이 심각하다는 보도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경상일보 8월 21일자 서생 나사마을 태풍 피해 기사와 사진

인간의 탐욕에 대한 자연의 경고

강동 해안의 태풍피해를 보면서 인간의 탐욕에 대한 자연의 경고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 해안선은 바다의 것이었다.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을 가만히 살펴보면 해안선이 천연의 상태로 유지되는 곳은 파도가 힘을 다할 때까지 밀려와서 사그라지기 때문에 평화롭기 그지없다.
그러나 길을 내거나 집터를 넓히기 위해 해변을 지나치게 잠식한 곳은 어김없이 바다와의 충돌이 일어난다.

집채같은 파도가 몰려와서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보노라면 성난 바다의 신이 내 영토를 돌려달라고 외치는 것 같다.



밀려오는 파도의 힘에 비례하여 충돌로 인한 충격은 클 수밖에 없으므로 바다를 무리하게 메워서 지은 집과 길은 상습태풍피해지역인 셈이다.
이곳을 보호하기 위하여 호안 옹벽을 쌓으려면 바다의 영토를 더 침범해야 하고, 충돌은 더 크게 일어날 것이다.
이런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것이 진정한 대책인지 의문이다.

자연과 더불어 평화와 공존의 지혜를

물론, 바다에도 도로 항만 공항 등 국가나 지방정부 및 공공목적을 위한 건설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왜 저토록 해변에 가까운 곳에다 집을 지었는지
원래는 공유수면이었을 해변을 왜 개인에게 불하시켜 주었는지
왜 건축허가를 내 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수두룩하다.
모두가 북구청이 신설되기 훨씬 이전, 어둑했던 시절에 이뤄진 일들이다.
그런데 누구의 잘못이든 현재의 책임은 북구청과 북구청장 몫이다.


바닷가 가까운 집은 피해상황에 완전 노출인 셈이다.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할지 머리가 복잡하다.
어떤 과정을 거쳐 지어졌든 현재 들어선 시설물과 가옥을 우선 보호해야 하는데 북구의 재정은 턱없이 부족하고, 해양 환경에 대한 고려도 무시할 수 없다.
개인적인 판단으로 호안 옹벽을 쌓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다.
그러려면 더 많은 해변 잠식과 엄청난 예산이 필요하다.
그만한 예산이 있다면 차라리 바닷가에 가까운 집들은 되사들여 자연상태로 복원하는 것이 올바른 대안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환경파괴와 경관훼손을 최소화하면서 태풍 피해도 막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북구청이 떠 안은 숙제다.

한시도 쉼 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숙연해 진다.
영겁의 세월을 지켜온 자연에 비하면 인간의 한살이는 찰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연을 소유와 지배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욕심이 지나쳐 화를 자초하고 있음이다.
한없이 넉넉한 품을 가진 바다가 성을 내는 것은 인간에게 평화와 공존을 촉구하는 경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