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정치/질고지칼럼

33. 한민족과 함께 살아 온 소나무의 수난

질고지놀이마당 2008. 7. 3. 17:00

개인 홈페이지에 연재했던 '질고지칼럼'을 블로그로 옮겨오는 작업중입니다. ^^*

 

  이상범 (2005-04-07 14:30:13, Hit : 331, Vote :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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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족과 함께 살아 온 소나무의 수난


◈ 하얀 눈과 더불어 하얀 비닐로 덮인 나무 무덤은 공동묘지를 방불케 한다.

지난 일요일 무룡산으로 오르는 화동 약수터 등산로.
전날 내린 폭설로 인해 눈길 산행을 즐기려 찾은 시민들로 등산로는 이미 눈길이 아닌 진창길로 변해버렸다.
그런데 일주일 전과 달라진 모습이 있었으니 등산로 곳곳에 하얀 나무무덤이 수두룩하게 생겨난 것이다. 하얀 눈과 더불어 하얀 비닐로 덮인 나무 무덤은 공동묘지를 방불케 한다.


재선충은 소나무의 에이즈라 불릴 정도로 일단 감염된 나무는 반드시 죽는다

이른바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들을 베어내서 그 자리에서 훈증처리를 하면서 생긴 결과다.
재선충은 소나무의 에이즈라 불릴 정도로 일단 감염된 나무는 반드시 죽는다고 한다.
때문에 추가 감염을 막기 위해서는 감염된 나무뿐만 아니라 주변의 나무조차 베어서 그 자리에서 훈증처리(약품을 뿌리고 외부를 밀폐시킴)를 하는데 이것이 보기에도 섬�한 나무 무덤의 정체다.
주민들은 베어 낸 나무를 화목으로 쓰든가 목재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유충 감염을 위해 반출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으니 유념할 일이다.


재선충에 걸린 소나무는 유충 감염을 위해 반출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으니 유념할 일이다

한국 사람에게 가장 친근한 나무이자 일상생활 속에 깊숙한 관계를 맺고 있는 소나무.
작년에 일어났던 큰 산불에서 겨우 살아남은 소나무들인데 이번에는 재선충 감염으로 인해 베어내야 한다니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다.
유구한 세월을 함께 살아온 소나무가 당한 수난은 대체로 국가적 어려움과 궤를 같이 해 왔다는 점에서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일제시대에는 곧게 뻗은 소나무는 벌채되어 공출되었고, 전쟁물자로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둥치에 상처를 내었던 흔적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625전쟁 당시에는 전화의 틈바구니 속에서 황폐화의 길을 걸었다.
이후 국가적인 산림녹화 정책 덕분에 숲이 어느 정도 살아났으나 소나무의 수난은 그치지 않았으니 송총이가 극성을 부렸던 시절이 있었고, 솔잎혹파리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당하기도 하였다.



소나무는 한국인이 가장 친근하게 느끼는 나무이다. 푸른 소나무는 민족의 정기.

이제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만하니까 산불과 재선충이 생존을 위협하는 최대 천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엊그제 금요일 오후에도 산불이 일어나 농소3동 제전마을 뒷산(순금산) 약 7천5백평의 소나무 숲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산불은 순간의 실수로 인한 실화이거나 고의적인 방화로 일어난다.
실화도 문제지만 방화는 인간의 탐욕에 의한 범죄다.
올들어 울산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산불의 대부분은 고의적인 방화로 추정되고 있다.
즉, 산림이 양호하면 개발허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산불로 위장하여 숲을 없애려고 일부러 불을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재선충까지 겹쳤으니 소나무 생존에 최대 위기가 닥친 것이다.

소나무는 사시사철 푸르름을 잃지 않기에 절개 곧은 선비에 곧잘 비유된다.
나아가 숱한 외세의 침입과 지배를 받아 오면서도 꿋꿋하게 지켜온 한민족의 상징이기도 하다. 실제 소나무는 우리 한국 사람의 일상생활과 아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시인이기도 한 조연환 산림청장 초청특강 당시 들었던 소나무 예찬을 잠시 생각해 보면 부지기수로 많다.


지난 25일의 순금산 산불은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다.

갓난아이가 태어나면 대문에 걸치는 금줄에 솔가지를 꽂고, 죽은 다음에는 소나무 관과 함께 묻는다. 그리고 묘 주변에 가장 즐겨 심는 나무도 소나무다.
이런 풍습을 생각하면 한민족의 일생은 소나무와 함께 시작하여 소나무와 함께 생을 마감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밖에도 소나무는 땔감, 식용, 목재 등으로 우리네 일상에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러한 소나무가 지금 수난을 당하고 있으니 마치 한민족이 수난을 당하는 것과 같은 아픔으로 다가온다. 소나무의 위기가 곧 민족의 위기가 아닌가 싶어서 여간 걱정이 아니다.
산림청에서는 재선충 확산을 막지 못하면 한반도 전역에 소나무가 전멸할지도 모른다는 경고성 예측을 하고 있다.


무룡산은 울산의 진산이자 북구의 희망을 상징한다. 무룡산의 아픔과 같이 모든 산들이, 나무가 더 이상 신음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산림청의 우려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은 일본은 이미 재선충 피해로 인해 소나무가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소나무 숲 재건을 위한 범국가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데 예산도 엄청나게 소요 되지만 재선충에 내성을 가진 묘목을 개발하고 보급하여 심더라도 울창한 숲을 이루려면 최소한 40~50년이 걸린다고 한다.

산에 소나무가 없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삭막한 일인가!
제발 산불 방지와 재선충 확산 방지를 위해 온 시민이 파수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