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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송년 심설산행 1/ 한계령~중청대피소

질고지놀이마당 2009. 1. 6. 11:43

언제 : 2008. 12. 29(월) 무척 추운날씨, 오전에는 개인날씨였으나 오후에 강풍 동반한 악천후로 바뀜 

누가 : 나홀로

코스 : 한계령~서북능선길~끝청~중청대피소(눈길 약 5시간 30분)

 

간밤 장거리 운전의 피로를 한계리 24시 찜질방에서 대강 풀고 이른 아침에 한계령으로 이동했다.

설악산 송년산행을 출발하면서의 원래 계획은 첫날 남교리를 들머리로 십이선녀탕 계곡을 타고 서북능선 전체를 걷고, 둘째 날 공룡능선을 걷는 것이었다.

하지만 욕심을 접고, 한계령을 산행 출발지로 바꾼 은 이유는 폭설이 내린 이후 서북능선길은 러셀이 제대로 안되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사실 국립공원에서는 한계령~대청봉 구간조차 15인 이상이 되어야 입산을 허락한다고 공지를 하고 있었고, 실제로 들머리에서 일행과 동계장구를 대강 살펴봤다.

 

물론, 등산객 안전을 고려하여 다소 과장된 통제임을 감안하더라도 눈쌓인 서북능선을 나홀로 도전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결과론이지만 만약 무리한 종주산행에 나섰더라면 큰 낭패를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날 오후의 날씨는 그야말로 잠잠하던 바다가 뒤집어 지듯이 지축을 울리고 하늘을 가리는 폭풍한설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전망과 경관이 좋은 한계령까지 차로 오르면서 날씨가 괜찮은 것 같아서 일출에 대한 기대를 해 봤으나 구름에 가리었다.

휴게소에서 따뜻한 아침을 먹고 출발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휴게소가 문을 열지 않아서 더운물과 주먹밥으로 때웠다.

이번 산행은 출발부터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보다 즉흥적으로 바뀌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가장 큰 낭패는 버너와 코펠을 빠뜨리고 온 것.

산행 출발을 하면서 배낭을 새로 꾸리면서야 그 사실을 발견하고 아연실색,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엄동설한에 2박3일간의 산행을 불도없이 비상식량과 간식으로 해결해야 할 상황이 되어 버렸다.

 

바쁠 이유도 없지만 우왕좌왕하느라 아침 시간을 많이 허송하고 나서 햇살이 퍼지는 8시 40분경에 산길에 접어 들었다.

한걸음씩 떼 놓을 때마다 두 어깨를 누르는 배낭의 무게가 묵직하게 느껴진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2박3일 일정에 나홀로 산행이니까 짐이 많은 편이다.

DSLR 카메라에 줌렌즈를 추가한 가방과 삼각대까지 챙겼으니..!

 

한계령 고개길 저편으로 흘림골 암릉이 아침햇살을 받아 흐릿하게 드러난다.

 

남서쪽 건너편으로는 가리봉과 주걱봉이 서릿발처럼 꼬장꼬장한 자태로 아침햇살을 받고 있다.

매서운 추위가 사진에서조차 느껴진다.

 

몸을 풀듯이 느린 걸음으로 한시간 반쯤, 서북능선길에 닿았다.

눈앞에 떡 버티고 선 암봉에 기대어 선 바위 한자락은 영락없이 '방랑시인 김삿갓'의 형상이다.

 

이곳 풍광이 너무 좋아서 풍자와 해학이 넘치던 천재시인 김삿갓이 주유천하를 하다가 이곳에서 망부석이 되었나 보다.

 

이윽고 서북능선 길.

땀흘리며 수고한 보상을 한꺼번에 받는 듯한 겨울 설악의 장관이 펼쳐진다.

왼쪽은 서북능선에서 백운동계곡으로 흘러내린 암릉이고, 저멀리 설악의 등뼈와 같은 공룡능선, 가운데 날카로운 암릉이 용의 이빨에 비유되는 용아장성능선이다.

 

하얀 눈세상에 빨갛게 제 모습을 뽐내는 물체는 몸에 좋다는 마가목의 열매(?)인 것 같다.

 

 

일부러 빚어도 이리 만들기 어려울 정도의 암릉이 즐비하다. 

시간도 널널한 편인데다 경관이 좋은 곳마다 멈춰서서 사진을 찍느라 산행시간은 고무줄처럼 늘어진다.

 

 

밀어보고 당겨보고, 이리보고 저리보아도 설악의 암릉美는 과연 좋다.

 

 

 

오늘 가야할 목적지인 중청대피소 쪽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

정상의 왼쪽부터 중청봉과 끝청, 그리고 희미하게 대청봉이 약간 겹쳐 보인다.

 

 

설악은 주봉인 대청봉을 거쳐 뻗어나간 백두대간을 중앙으로 하여 서북능선과 화채능선이 양 날개처럼 펼쳐진 형상이다.

그 중심인 공룡능선을 이루는 암릉과 암봉에 눈쌓인 설경을 서북능선에서 보는 눈맛을 어찌 다 표현하랴.

 

그 중에서도 용아장성능선(일명 용아릉)의 암릉미는 단연 뛰어나다.

 

 

다시 가리봉과 주걱봉을 한계령에서 올라온 지능선 너머로 바라본다.

 

등산객들의 발자국으로 도랑처럼 파인 능선길

보기에는 깊지 않은 것 같지만 다져진 눈길에서 한발자국만 옆으로 잘못 디뎌도 허벅지까지 빠진다.

 

 

악천후로 변하면서 내리는 눈 못지않게 날리는 눈의 위력도 대단함을 실감했다.

바람골에서는  앞서간 발자국이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바람에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다행히 먼길이 아니어서 악천후가 시작된 후, 오래지 않아서 중청대피소에 도착했다.

아래 폭풍한설 몰아치는 중청대피소 전경을 찍다가 강풍에 떠밀려 경사면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허리까지 눈속에 빠졌다가 벗어나느라 한참을 허우적 거렸다.

이후는 대자연의 위력 앞에 한낮 티끌과 같은 존재로 돌아가서 어서 강풍이 잦아들고 날씨가 맑아지기만 기다릴 뿐,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만약에 욕심을 내어서 십이선녀탕 계곡으로 들어왔으면 귀떼기청봉 어디쯤에서 이 악천후를 만났을 것을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하다.

자연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야 함과, 산위의 날씨는 변화무쌍함을 보여주는 악천후였다.

 다음 송년 심설산행 두번째 소개 순서는 이튿날(12. 30. 화) 대청봉에서 소청 구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