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산행기/백두 한라 지리 설악 덕유산

왕시리봉 나홀로 고행기록

질고지놀이마당 2013. 8. 18. 01:14

 

언제 : 2013. 폭염 계속되는 8월 어느날

누가 : 나홀로

코스 : 원기마을~목아재~봉애산~왕시리봉~질매재~피아골대피소~직전마을 하산

 

<프롤로그>

이번 왕시리봉 산행은 급작스런 결정이었다.

원래는 무더운 여름임을 감안해서 안내 산행을 겸해 2박3일로 널널한 종주산행을 가기로 약속하고 휴가철 대목임에도 어렵사리 연하천과 장터목 두 곳에 예약까지 마쳤다.

그러나 갑작스런 사정으로 종주산행을 취소해야 하는 상황에서 혼자 종주하려니 너무 싱겁고, 안가려니 월휴까지 내놓고 벼르던 일정이 아까웠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미답구간이면서 사진 포인트가 될만한 곳을 찾다보니 첫눈에 들어 온 것이 왕시리봉이다.

게다가 홀로산행의 경우 원점회귀 산행을 염두에 둬야 하는데 지리산 종주는 늘 그 점이 어려움이다.

하여 미답구간을 살펴보니까 왕시리봉으로 올랐다가 물무장등을 거쳐 황장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원점회귀 산행으로는 딱이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비법정등산로라는 점, 이럴때 참 고민이 된다.

이유야 어떻든 정해진 법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

그렇지만 백두대간 종주를 포함해서 산행을 정말 좋아하는 산꾼들은 어쩔 수 없이(이것도 자기합리화를 위한 변명이라면 변명이지만) 금지구간을 들어가게 된다.

단속하는 국공 직원의 단속에 걸리게 되면 법을 어겼으니 벌금 내는 것 감수하고라도 간다.(실은 걸리지 않았으면 하는 요행을 바라고..ㅎㅎ)

여러명 떼를 지어 가지 않고 정말 산을 좋아하는 나 혼자서 최소한의 흔적만 남기고 오겠다고 다짐하고 출발이다.

 

사전에 인터넷 검색을 토대로 들머리를 원기마을로 잡았다. 예정대로 하산할 경우 원점회귀 산행이 가능함으로..

그런데 연곡사로 들어가는 갈림길이 있는 연어마을을 원기마을로 착각하는 바람에 현지에 도착해서 들머리 찾느라 한시간 이상을 허비했다.

원주민으로 보이는 연세 지극한 어르신들에게 왕시리봉 들머리를 여쭤봐도 다들 그런 길 없다고 하신다.

정자나무 아래 쉼터에서 오침을 즐기시던 어느 할머니는 "여기서 왕시리봉이 얼마나 먼데.. 못가요" 손을 휘휘~내젓는다.

옆에 계시던 다른 할머니는 나를 아주 젊게 봤는지 "젊은이 여기서 가려면 내일까지도 못가여~" 그러신다.

그러자 첫 물음에 손을 내저으시던 할머니는 "당신 왕시리봉 가려면 아매 불알 두쪽 떨어져 나갈걸?" 이러신다.

 

이런 된장, 분명 이 마을에서 출발했거나 내려왔다는 산행기를 봤는데 이상하다?

다시 차로 돌아와서 그제서야 지도를 꼼꼼히 살펴보니까 원기마을은 피아골 안쪽방향으로 한참을 더 들어가야 있었다.

원기마을에 도착해서도 들머리 표시가 없으니 지도와 지형을 대조하면서 또 시간을 허비했다.

지형으로 봐서 목아재는 금방 알아보겠는데 마을길이 여러갈래여서 생각보다 판단하기가 어렵다.

나홀로 초행길에 흔히 겪게되는 통과의례인 셈이다.

 

한참을 헤매다가 마을 주민에게 물었더니 하필 알려주는 길이 목아재까지 임도로 연결되는 가장 먼길이었다.

아마 차로 이동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알려준 모양인데 그 바람에 마을에서 최단거리 지름길을 놔두고 임도를 멀리 돌아서 목아재까지 오르는 동안에 이미 땀을 바가지로 흘렸다.

오후 3시에는 출발한다고 생각했는데 들머리를 출발할 때 이미 오후 4시,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고생길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내 걸음실력을 과대평가했고, 배낭무게는 과소평가했던 것.

마을에서 빤히 올려다 보이는 거리인데도 약 45분 걸려 목아재에 도착했다.(16:45)

 

 

목아재에서는 왕시리봉 가는 길을 못찾아 헤매는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어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비법정등산로치고는 초입에 길이 너무 좋았다.

이거 왠 제수냐 싶어서 룰루랄라~ 신나게 가다 보니까 방향도 이상하고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아뿔싸, 길이 너무좋아 이상하다고 생각한 그대로 그 길은 지리산 둘레길이었다.

중간에 오른쪽으로 치고 올라가는 갈림길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 길을 놓쳤던 것이다.

이거 초장부터 힘이 쭉쭉 빠지는 일의 연속이어서 내가 일진이 안 좋거나 판단력이 많이 흐려졌나?

어쨋든 되짚어 오면서 갈림길을 찾아보니까 어느팬션 광고 현수막 걸려있는 지점이 갈림길이었다.

 

봉애산까지는 한달음에 오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벌써 5시 반이다.

봉애산에서 왕시리봉으로 올라야 할 능선

 

 

건너편의 황장산

 

기묘하게 생긴 버섯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허리 구부려 한컷 담는 여유가 아직 남아 있었다.ㅎㅎ

 

 

왕시리봉 정상은 생각보다 멀었다.

다른 이들이 올라간 산행기록을 보면 3~4시간 정도?

남여 혼성팀의 당일 산행이니까 천천히 걸었을 것이라는 지레짐작으로 내 걸음이면 배낭무게가 있더라도 4시간이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배낭무게는 점점 두 어깨를 짓누르고, 땀이 비오듯 흐른다.

이미 어둠이 내린 밤길을 오르는 나는 천상 지리산 빨치산의 모습이리라.

거진 정상에 다달았다고 생각될 무렵부터 저쪽 구산리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상에서 사람들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 왕시리봉에 나 말고도 비박산행 오는 사람들을 더러 만나겠구나...

 

그러나 말소리는 더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는 것 같다. (나중에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보니 그 팀은 거기서 비박을 하는 중이었다.)

밤 9시가 넘어서야 천신만고끝에 왕시리봉에 도착했다.

아니 그 이전, 두 능선이 합쳐지기 직전에 전망하기 좋은 바위가 있어서 거기서 자리를 잡을까 퍼질러 앉아 쉬다가 공간이 마땅치 않아 정상까지 다시 올라갔다.

정상석은 초라했고 주변은 나무숲이 우거져서 전망이 아무것도 안보인다.

 

정상석 옆에 텐트 한동 칠 정도의 공간이 있었지만 혹시 올지도 모를 다른 팀에게 민폐가 되어서는 안되겠기에 조금 더 진행해서 등산로에서 비켜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보금자리를 준비해 놓고, 내일 아침 일출과 운해를 조망할만한 조망터를 찾느라 앞뒤로 지형정찰을 해 봤지만 어둠인데가가 숲이 우거져서 마땅한 곳을 찾을 수 없다.

정 없으면 아까 지나온 조망바위로 되돌아 가기로 하고, 늦은 저녁을 해결하려는데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남아 있는 물이 1리터밖에 안되는 것이다.

분명 3리터의 물을 준비해 오면서 이정도면 다음 물보급을 받을 수 있는 샘터까지 충분할거라 생각했는데..ㅠㅠ

너무 덥고 힘들어서 물 소비가 예상보다 많았고, 밤길 올라오면서 배낭 옆구리에 넣었던 물한통이 빠져나간 것을 몰랐으니 이 낭패를 어이할꼬?

 

아래 사진은 다음날 출발하면서 촬영함

 

나홀로 산행을 할 경우 당일이면 행동식으로 때우고, 잠을 자더라도 밥대신 라면이나 누룽지를 끓여서 해결하는 편이다.

그러나 물이 부족하니까 비스켓과 누릉지를 그냥 깨물어 먹는 것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적막강산, 산중의 밤은 깊고도 고요하다.

이런 자유로움을 누리고자 힘든 산행을 자청하는 것인데 오늘은 자유로움에 대한 댓가를 혹독하게 치른 셈이다.

그만큼 자유를 누려야 하는데 늦게 도착한데다 너무 지쳐서 자유시간을 길게 누릴 여유가 별로 없다.

일출 이전의 여명을 보고싶은 마음에 4시반에 알람을 맞추고 잠을 청했다.

 

자연속의 일부가 되어 단잠을 자고난 아침은 그런데로 가뿐하다.

텐트를 툭툭 쳐보니 이슬이 별로 내리지 않아서 직감적으로 운해를 보기는 틀렸구나 싶어 실망이다.

텐트 밖으로 나와서 하늘을 보니 아직 별이 총총, 날씨는 맑은 편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고 카메라만 챙겨서 어제 봐둔 조망터로 이동하니 아무도 없다.

어제 밤에 멀지 않은 곳에서 비박을 한 산객들이 오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후 하산할 때까지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섬진강 운해가 없는 아쉬움은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일, 그래도 멀리 천왕봉 너머로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색은 어제 고생에 대한 보상심리를 충족시켜준다.

그런데 대략 왕시리봉 줄기가 섬진강에 닿는 지점을 경계로 하동쪽은 운해가 없고, 구례쪽은 운해가 쫘악~ 깔렸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가 위치한 조망터에서는 구례쪽으로는 시야가 열리지 않았다.

아마도 노고단에서라면 멋진 운해를 볼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 시절인연이 닿지 않음은 내 복이고 운인 것을 어쩌랴.

 

 

하동방면 섬진강 물줄기는 해가 좀더 남쪽으로 내려오는 가을이 되어야 여명 빛이 반사되는 풍경을 찍을 수 있겠다.

운해가 깔리면 깔리는대로, 운해가 없으면 역광으로 반사되는 섬진강 물줄기는 찍사들로 하여금 비법정등산로임을 알면서도 들어가게 만드는 매력이 충분한 곳이다.

하긴 이곳 풍경을 찍기에 적합한 철이면 이렇게 한산할 리가 없을 터. 난 사진가는 아니니까 이런 조용함에 자족한다.

 

 

 

붉게 물드는 동녘하늘, 일출이라도 제대로 보겠구나 기대하기 충분했는데...

실은 이곳에 오면서 배낭무게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카메라 두 개와 숏다리 삼각대를 챙겨왔다.

주로 찍는 DSLR 카메라에 장착한 24-70랜즈로는 줌기능이 약하고, 70-200랜즈를 빌려서라도 갖고 올까 하다가 그 무게가 장난 아니어서 그만뒀다.

대신에 시그마 18-200랜즈가 장착된 구형 모델을 가지고 간 것이다.(카메라와 랜즈 무게를 합쳐도 70-200 백통랜즈보다는 가볍다.)

 

어쨋든 여기 소개하는 사진은 무겁게 짊어지고 온 두 대의 카메라 합작품이다.

즉 멀리 천왕봉과 섬진강 물줄기를 줌인해서 찍은 것이 처음 사진을 배울때 쓰던 케논300D 구모델로 찍은 것이다.

 

 

 

 

 

 

 

구례방향으로는 운해가 뒤덮여 있는데 아래사진(대략 구산리~송정리) 부근을 경계로 하동쪽은 운해가 없다.

 

 

 

 

 

 

 

꿩대신 닭이라고, 단 하나 기대를 가졌던 일출은 이렇게 실망으로 끝나고 말았다.

에휴~ 복도 지질이도 없지, 위험 감수하고 생고생 하면서 이곳을 찾았는데...ㅠㅠ

 

 

 

 

어제밤 늦게까지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올라온 등로

왼쪽 아래 원기마을이 보이고, 섬진강에 닿도록 내려 뻗은 능선이 목아재와 봉애산을 거쳐 올라온 길이다.

네 시간이면 충분할 거라고 만만하게 봤는데 꼬박 다섯시간 걸렸다.

 

 

 

 

너무 힘들게 올라온 길인데 기대했던 바를 아무것도 만나지 못한 아쉬움에 보고 또 보고, 같은 사진을 또 찍어보고...

한시간 넘게 머물다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햇살이 퍼진 시각이었지만 구례쪽 운해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 발걸음을 구산리쪽 능선으로 옮겼다.

혹시 이쪽에 전망이 트인 바위가 있다면 아직 운해를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릴까 해서다.

하지만 한참을 내려가도 숲만 무성할 뿐, 돌출된 바위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인데도 이쪽 능선에는 이슬이 잔뜩 내려서 금새 옷이 젖어 버린다.

아하~ 어느 찍사가 귀띰해 준 '운해가 있을지 없을지를 가늠하는 척도는 이슬'이라는 말이 맞구나.

옷이야 젖더라도 조망터를 찾을 수만 있다면 좋겠는데... 헛수고만 하고 터덜터덜 발걸음을 돌렸다.

 

사진에 대한 환상과 미련에서 깨어나니 현실의 문제가 떠올랐다.

물이 부족한데 아침은? 그리고 앞으로 남은 거리는?

아침 역시도 행동식으로 때울 수밖에...

밤에 자면서 갈증과 아침에 비스켓을 먹으면서 물을 마시다 보니까 이제 물은 0.5리터 한병으로 줄었다.

 

그런데 궁하면 통한다고 떠오른 생각이 왕시리봉 아래 어딘가에 있다는 외국인 별장터였다.

사람이 살든 안살든 별장터였다면 물은 있을 것이다.

거기에 희망을 걸고 짐은 놔둔채 물통만 들고 별장터를 찾아 나서는데 안개가 자욱하게 온 산을 뒤덮는다.

지도상에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별장터가 있다고 표기되어 있는데 이 또한 헛수고만 실컷 하고 말았다.

돌아와서 왜 못찾았을까 원인 분석차 좀 더 상세한 지도를 보니까 구산리 방향 능선으로 한참 내려가다 오른쪽이었다.

 

그런데 나는 갈림길까지 가기 얼마 전에 이쪽이 아니구나 판단하고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는 느진목재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서 아무리 내려가도 영 아니었다.

물도 못찾고, 한시간여 오르락 내리락 하다 보니까 헛심만 뺀 결과가 돼 버렸다.

 

산중에서 진퇴양난에 빠진 산객의 사정이 어떠하든 무심하게 피어있는 야생화는 아름답기만...

 

 

여기서 양단간에 판단을 해야 했다.

가장 빠른 길로 하산을 할 것이냐, 0.5리터 남은 물만 가지고 원래 목표로 했던 주능선으로 올라 임걸령 샘터까지 가느냐?

배낭 무게와 어제 걸어 본 경험으로는 임걸령까지 가는 것은 도저히 무리였다.

한 여름 무더위 속에서 불이 없다면 천하장사도 견딜 제간이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올라온 길을 되짚어 내려가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고, 내려가는 거리또한 만만치가 않다.

앞으로 전진하다 정 안되면 질매재에서 피아골 대피소로 하산하는 길이 있었다.

그래 전진이다. 가면서 견딜만 하면 끝까지 가는 거고, 정 어려우면 질매재에서 탈출해도 된다.

느진목재를 거쳐 문바우등으로 이어지는 길은 높낮이가 그다지 많지 않아서 속도를 좀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시련은 끝난것이 아니었다.

느진목재 방향이라 생각하고 한참 속도를 내서 신나게 내려가다 보니까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비법정 등산로라 하더라도 갈수록 길 흔적이 잦아들고 방향도 서쪽으로 진행한다는 예감.

우거진 숲에서 시야가 확보되는 지점까지 이동하느라 족히 20분 정도는 내려갔을 것이다.

아까 물 찾으러 다닐때는 짐은 놔두고 맨 몸이었지만 어깨 짓누르는 무거운 배낭메고 내려간 길 되짚어 오르려니 힘이 두배로 드는 것 같다.

 

다시 길을 찾아 느진목재를 지나는데 더덕향이 코를 찌르기에 보니까 발밑에 더덕꽃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이 고생중에 왠 재수람! 이걸 캐 말어?

줄기를 더듬어 보니까 제법 실하다.

그렇지만 주렁주렁 달린 꽃을 보니까 그냥 놔두면 더 많은 씨앗을 맺을 거고, 그러면 이 근처에 더 많이 자랄텐데... 기념 사진만 남겼다.

 

그나저나 물문제 해결이 큰 숙제다.

지리산도 가물었기는 매한가지 였는지 왠만하면 석간수라도 떨어질만한 바위틈 아래도 물기가 없다.

그러던 중 눈이 번쩍 뜨이는 보물을 발견했으니 여러번 지도를 보면서도 무심코 넘겼던 문바우등 아래 샘터 표기였다.

왜 이걸 이제 보았지? 하지만 이 가뭄에 그 샘터에 물이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물이 있고 없고는 운명에 맡기고 가보는 거다.

머리속에 숙지한 샘터 지점이 어디쯤일까를 유심히 살피면서 가다보니 문바우등 못미쳐서 갈림길이 나타난다.

물을 찾으려면 능선길이 아닌 아래쪽 우회길로 가야 할 것이라는 판단, 그리고 그게 설사 내려가는 길이면 그냥 내려갈 수 밖에 없는 절박함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다행히도 그 판단은 옳았다.

샘터라기 보다는 이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극소량이나마 물이 흘러내리는 작은 물길이었다.

그야말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물받이를 용이하게 만들어서 배가 터지도록 마시고, 세수와 양치까지, 그리고 물통마다 가득 채웠다.

배낭 무게가 2.5kg 늘었지만 물이 없어 불안 초조하던 조금 전까지에 비하면 부자가 된듯한 기분이었다.

문바우등을 우회하는 곳에 퍼질러 앉아 누릉지와 국수를 섞어 끓여서 처음으로 식사다운 식사를 해결했다.

뭐랄까 집이었다면 꿀꿀이 죽같다고 거들떠 보지도 않을 음식이지만 달게 먹었고, 럭셔리하게 커피까지 끓여 마시는 여유를 부렸다.

아, 물의 고마움이여, 물은 과연 생명의 원천이었다.

 

이제 원래 목표대로 가도 되겠구나. 시간은 벌써 오후 한시, 남은 거리를 가늠해 보니 반야봉까지 충분히 갈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 기백도 잠시 뿐. 질등을 넘어서면서 다시 갈등으로 변했다.

실은 질등 못미쳐에서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힘들어서 물한모금 마시고 망연히 쉬는데 눈길이 꽂히는 것이 있었다.

어랏! 저것 상황버섯 아닌가?

 

잘은 모르지만 굴참나무 등걸에 멋들어지게 생긴 한쌍의 버섯은 얼핏 들어보았던 상황버섯 모양과 색상과 그대로였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폰카로 찍어서 카톡으로 알만한 사람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상황버섯 맞으니까 귀하게 모셔오란다.

이게 왜 횡재람? 산신령께서 고생 많이 한다고 점지 해주신 걸까...

 

조심스럽게 채취해서 배낭에 넣으려니 배낭이 워낙 포화상태여서 수납 공간이 너무도 좁다.

아니 버섯이 그만큼 컸다. 물이 흐를 정도로 축축한 상태여서 무게도 솔찮게 나가고..ㅠㅠ

채취를 안했으면 모를까, 채취를 하고나서 버릴수도 없고 지고 가기도 버거운 애물단지가 돼버렸다.

이걸 메고 예정된 계획대로 다 걸으려면 너무 힘에 부치고, 귀한(?) 버섯마저 다 망가질 판이다.

 

질매재로 내려와서 암만 생각해도 남은 계획대로 산행을 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아니, 너무 힘드니까 내 몸에서 소근대는 유혹의 소리가 끊임없이 마음을 흔들었다.

"내려간다고 아무도 뭐라지 않아, 괜한 만용 부리다가 진짜로 퍼지면 혼자서 어떻게 감당할건데?"

결국 의지가 달콤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꼬리를 내렸다.

 

그래 내려가자, 산은 언제나 그자리에 있으며 언제든 다시 와도 넉넉한 품을 열어 준다.

등산지도에는 질매재에서 피아골대피소로 하산하는데 40분 소요된다고 표기되어 있었다.

이 정도야 뭐 식은죽 먹기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 또한 크나큰 오산이었다.

이번 산행에서 마지막 시련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얼마쯤 내려오다가 길이 사라지고 없어져 버렸다.

내가 길을 잘못 들었나 되짚어 봐도 아니고, 아마도 다닌 사람은 거의 없는데다 비가 올때마다 등산로가 물길로 변해서 그런 것 같았다.

내려가도 보면 있겠지... 하지만 점점 더 오리무중 그렇다고 돌아가기에는 너무나 먼 당신이다.

진퇴양난,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아니 오해려 더 무거워 진?) 배낭무게를 감당하며 너덜지대를 내려오는 곤욕을 치렀다.

한발만 삐긋하는 날이면 오가는 이 없는 산중에서 조난객 신세가 될 판이다.

 

40분 걸린다는 내리막길을 두시간이나 걸려서 겨우 하산했다.

발목이나 무릎을 다치는 대신에 스틱 손잡이 부러뜨린 것으로 대신하면서...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피아골 대피소에 내려오니 하늘은 어찌나 푸르고 고운지..!

그냥 산으로 올랐으면 저녁 노을,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반야봉 낙조가 얼마나 멋있었을까 싶어 괜히 내려왔나.. 마음이 간사해진다.

 

 

파아골대피소에서 직전마을까지 4km도 짧지 않은 거리지만 이 길은 종전까지에 비하면 신작로나 다름없었다.

같은 배낭무게인데 속도가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잘 정비된 등산로는 걷기에 편했다.

사실 산 위에서 더 지치고 속도를 더디게 만들었던 원인중의 하나는 봄부터 여름까지 우거진 덩굴식물들이 배낭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 문제였다.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고, 국립공원 측에서는 오히려 빨리 자연으로 되돌아 가는 정책을 취하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공원측에서 설치했던 표지판이 전혀 없음은 물론, 등산객들이 달아놓는 리본(시그널)도 없다.

 

피아골 골짜기는 깊고도 맑다.

근현대사의 비극을 간직한 피아골은 가뭄 속에서도 맑고 깨끗한 계곡물이 주야장창 흘러내린다.

첨벙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 정도의 계곡을 따라 청아한 물소리를 벗삼아 내려오는 길은 그야말로 낙원이나 마찬가지.

만 하루동안 지옥과 천당을 경험한 산행이었다. <끝>

 

 

 

 

<에필로그>

 

이 글을 다 읽으시는 방문자님이 있으시면 이 말씀을 꼭 전해드리고 싶다.

특히나 필자처럼 혼자서 초행으로 비법정등산로를 가려는 목적으로 자료수집차 다른이의 산행기록을 보는 경우라면...

 

"비법정등산로 함부로 들어가지 마세요, '개고생' 합니다." ㅎㅎ

반은 농담어린 표현이지만 진심으로 충고할만큼 이번 산행이 힘들었고, 많은 점을 깨달았다.

물론 비법정등산로에 들어가는 자체가 어쨋든 실정법 위반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국공 직원에게 단속되면 그에 상응하는 댓가도 치러야 한다.

하지만 그 보다도 현실적인 어려움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절실히 경험했기에 그점을 강조하고 싶다.

 

특히나 여름철은 더 그렇다는 생각이다.

무더위와 물 문제, 등로가 희미하고 안내표지가 전혀 없으므로 알바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 등 악조건이 한 둘 아니다.

물을 많이 지고가면 되기야 하겠지만 그만큼 무게 부담이 늘어나고, 법정 등산로와 달리 비법정등산로는 현지에서 물 보급을 확신할 수가 없다.

산행기를 이번 처럼 장황하게 쓰는 경우가 적은데 이례적으로 길게 쓴 이유도 누군가에게 꼭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왕시리봉은 섬진강 물길을 조망하기 좋은 포인트가 있다는 것 외에는 다른 매력을 찾기 힘들다.

안가봤으니 가 보고 싶다는 원초적 본능 말고는 거의 나무숲에 시야가 가려지고 암릉도 별반 내세울 것이 없다.

그럼에도 만만하게 보고 갔다가는 필자처럼 낭패를 겪기 십상이다.

 

등산지도에 표기된 시간보다 더 걸린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는데 이번 산행에서는 훨씬 더 걸렸다.

무더위와 알바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배낭무게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J-3를 모두 혼자 완주했을만큼 걷는데는 자신이 있었고, 길눈도 밝은 편이라고 자부해 왔다.

실은 그래서 이번 산행도 겁없이 덤번 것이기도 하지만 요체는 배낭무게와 날씨라는 변수였다.

보통 7~10kg 정도면 그닥 부게로 인한 부담을 안느끼는데 15kg이상 넘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마도 이번 산행에서의 배낭 무게는 대략 20kg 내외였을 것이다.

무게가 나가는 순으로 치면 카메라 2대와 삼각대, 물 3리터, 1인용 텐트와 침낭, 에어매트, 코펠, 버너, 2일치 식량(라면, 누릉지, 비스켓), 과일, 오버트로즈와 여벌 옷, 기타 등등... 그런데 산행을 진행하면서 무게가 준 것은 유일하게 과일과 비스켓 뿐이었다. (물은 중간 보충, 버섯 채취로 하산길엔 오히려 더 늘어났음. ㅠㅠ)

 

반성하건데 비법정등산로는 안들어가는 것이 맞고(사진작가들이나 1대간 9정맥 종주산행을 하려면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부득이 하게 가게 되는 경우에는 여럿이 떼를 지어 가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2~4명 정도?)

그리고 필자처럼 혼자 무모하게 가는 것도 이번 산행을 계기로 스스로 자제하겠다는 결심을 했으며, 이 글을 보는 이에게도 권한다.

 

긴 글 후기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읽으신 분이라면 공감하리라 믿으며...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