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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 운해

질고지놀이마당 2013. 8. 18. 01:55

2013. 8. 17. 토. 맑음

 

노고단에서 본 운해는 실로 장관이었다.

시시각각으로 자연이 연출하는 대자연의 서사시!

미명 속에 드러나는 끝없는 구름바다가 이미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하였으며, 해돋이 이후에는 천군만마가 진군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고지를 향해 '돌격 앞으로~!' 를 외치며 빠른 속도로 진격하여 모든 사물을 휘감아 버리는가 하면,

열병식과 사열을 하는 것처럼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각개전투 형태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볼거리를 제공했다.

 

살인적인 폭염이 계속되는 날씨에 2박3일 일정(8.15~17)으로 나홀로 비박산행에 나섰다가 무더위와 배낭무게, 물부족 등등의 악조건으로 인해 1박2일만에 하산을 한게 어제(8.16) 일이다.

그야말로 '개고생'을 사서 하고서 '탈출'을 한 것인데 그냥 철수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치 않고 아쉬움이 너무 커서 꼭두새벽 노고단에 다시 오른 길이었다.

어제까지가 지옥행군이었다면 이 아침은 천국여행에 해당 될 터.

이를 두고 유식한 말로 표현하면 고진감래라 하겠다.~ㅎㅎ

 

하여간 그동안 수없이 지리산을 다녀왔지만 이번 처럼 시시각각 변해가는 환상적인 운해를 만난것은 처음이다.

 

 

 

 

 

 

우선 노고단에서 조망하는 천왕봉 일출이 시작되기 전 여명(앉은뱅이 삼각대를 쓰나마나여서 지지대 없이 촬영하느라 약간 흔들림 발생~ㅠㅠ)

 

 

 

 

 

 

 

 

반야봉 부근에도 구름이 피어올라 일출직전의 풍경을 더욱 신비롭게 연출한다.

 

 

 

하동쪽 섬진강 방향으로

 

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남부능선

 

이시각 노고단 정상을 점령(?)한 사진가들과 부지런한 등산객들(여기 출입금지 시각인데 이렇게 떼거리로 올라와도 되는겨?)

 

천왕봉과 중봉 사이로 선명한 일출이 연출됐으나 실력과 장비 다 부족해서 제대로 된 일출사진은 담지 못했다.

아마 이날 천왕봉에 올라서 일출을 맞은 사람들은 소원풀이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제 '개고생'을 한 왕시리봉에 하얀 구름이 얹혔다.

그러나 이는 운해쇼의 서막에 불과함을 다음 사진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구례방향은 완전 운해속에 잠겨버렸다.

욕심을 더 낸다면 운해가 형성된 고도가 조금 낮아야 산들이 다도해처럼 떠 있을텐데 그랫으면 금상첨화였을 것.

 

만복대에도 깃털같은 구름이 걸리고...

 

햇살이 비추는 것과 대를 같이하여 드디어 시작된 운해쇼.

 

왕시리봉 능선

 

형제봉 능선

 

 

산위에는 원추리꽃과 이질풀꽃 오이풀꽃 등 여름 야생화가 한창이다.

 

 

노고단 중계탑을 순식간에 삼켜버리는 운해군단의 진격

 

강약을 조절하듯이 때른 부드럽게~

 

 

 

 

운해가 점령한 왕시리봉

이 모습을 보면서 문득 어제 아침에 왕시리봉에서 겪은 일이 생각났다.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면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인데 내가 지금 저 산에 있으면 그냥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오리무중일 뿐이다.

어제 아침이 그랬다. 아침햇살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구례쪽의 안개구름이 온산을 뒤덮어 버렸다.

물을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헤매던 나로서는 길도 방향도 더 헷갈리게 돼서 날씨를 원망했는데 위에서 내려다 보았다면 지금 이순간처럼 탄성을 지르고 있었을 것이다.

 

고지를 향해 성난 아우성을 치며 백병전을 펼치듯 몰려가는듯한 운무

 

삽시간에 종석대를 집어 삼키고 성삼재 휴게소도 뒤덮었다.

 

목줄을 조였다 놓아 주는 것처럼 금새 풀어지는 운해 사이로 성삼재 휴게소가 드러난다.

사진 아래 어두운 부분의 건물이 노고단 대피소다.

 

 종석대를 집어 삼켰던 운해도 부드러운 손길처럼 변했다.

 

노고단은 생태탐방로가 조성되어서 제한적인 개방을 하는 곳이다.

낮 10시부터 국립공원의 안내를 받아 적정인원만 출입을 시키는데 이른새벽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올라오는 바람에 걱정이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국공 직원이 쫓아 올라왔다.

사진사들과 산을 잘 알고 자주 다니는 사람들은 이른 새벽이니까 '나만 살짝 다녀와야지~' 싶은 이기적인 마음인데 이걸 보는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다.

출입금지 팻말이 있으니까 들어가면 안되겠구나 생각하던 일반 등산객들도 다른 사람들 들어가 있으니까 가도 되나보다 하고 덩달아 들어오도록 유발하는 것.

군중심리 혹은 모방심리라고나 할까.

하여간 다들 국립공원 직원에게 호통을 맞고 서둘러 내려오는데 왜 쫓겨나야 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을 정도로 이날 아침은 출입금지선이 허물어지고 말았다.

 

노고단 고개에서 바라본 종석대 너머로 구례방향 운해

지금 올라오는 사람들은 이 풍경만 보고도 감탄한다.

밋밋한 아침풍경만 보면 이것만 봐도 대단하다. 하지만 더 큰 감동을 맛본 눈으로는 '뭐 저걸 가지고~' 뻐기고 싶은 마음이다.

 

더 아래로 내려와서 시암재휴게소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다.

이곳에서도 역시 지나는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으며 감탄을 연발한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은 자기 중심적이고, 자신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마련이다.

 

필자도 어제 아침 왕시리봉에서는 짙은 안개가 불만이었는데 오늘 아침 노고단에서는 왕시리봉을 덮은 운해를 보면서 마구 감탄했다.

그리고 노고단 정상에서 본 운해 파노라마 감동의 여운으로 인해 노고단 고개나 시암재에서 보는 풍경을 별로라고 생각했음을 이 글을 정리하면서 깨닫게 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