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교통·등산·여행

히말라야 14좌 관련자료 모음

질고지놀이마당 2016. 1. 4. 13:27

히말라야 14좌 링크

http://www.outdoor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965

 

히말라야 14좌를 오른 대한국인

http://www.outdoor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279

 

영화 '히말라야'

http://www.outdoor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419

 

 

◇ 히말라야 14좌 ◇

 

 

1. 에베레스트(Everest)

위치는 네팔과 중국 국경, 쿰부 히말라야

높이는 8,848m이며, 네팔명은 '사가르마타', 중국에서는 '초모랑마'로 불리우며 에베레스트는 발견자인 영국의 '조지 에베레스트'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초등은 1953년 영국의 존 헌트가 이끄는 영국 원정대에 의해 에드먼드 힐러리(뉴질랜드 인)와 셰르파 노르게이 텐징에 의해 이루어 졌다.

 

 

 

2. 케이 투(K-2)

위치는 파키스탄 카라코람 발토르 산군

높이는 8,611m이며, 히말라야의 8,000m급 봉우리 중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등반 성공률이 50% 정도로 극히 낮아서 가장 오르기 어려운 8,000m봉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현지에서 부르는 K-2의 이름은 '초고리'이며 초등은1954 A. 데지오가 이끄는 이탈리아 원정대가 7 31일 아브루찌 릉을 통하여 시도를 하고 L. 라체델리와 A. 콤파뇨니가 초등을 이룩했다. 1977년에는 일본이 42명의 등반가를 동원하여 정상등정에 성공하였으며, 우리나라는 1986년 김병준 대장이 이끄는 원정대가 아브루찌 릉을 통해 정상에 올랐다.

 

 

 

3. 칸첸중가(Kangchenjunga)

위치는 네팔 히말라야 동부 칸첸중가 산군

높이는 8,586m이며, 티벳어로 '5개의 큰 눈의 보고'라는 뜻이며 네팔인들에게는 최고의 성역으로 간주되는 산이다. 따라서 현지인들은 꼭대기에 올라서는 것을 극히 꺼린다고 한다. 주봉은 1955년 찰스 에반스가 이끄는 영국 원정대에 의해서 초등이 되었는데 등정자인 조지 밴드와 브라운은 성역을 밟지 말아달라는 현지인의 간곡한 부탁을 받아들여 정상을 몇 걸음 앞둔 지점에서 등반을 멈추었다. 성역으로 간주되는 칸첸중가의 이미지를 손상시키지 않은 영국 원정대의 이같 은 신사적인 행동은 알피니즘의 구현으로 히말라야 등반사의 한 장을 장식하며 등반대의 성가를 더욱 드높혔다. 한국에서는 87-88 동계 칸첸중가 원정대(부산 대륙산악회)가 캐러번 도중 대원 1명이 사망하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등정에 성공하였다.

 

 

 

4. 로체(Lhotse)

위치는 네팔 히말라야 쿰부 산군의 중북부

높이는 8,516m이며, 에베레스트의 위성봉으로 인식이 되어서인지 다른 8,000m 봉에 비해 등반이 자주 이뤄지지는 않으나 성공률이 매우 낮은 험준한 봉우리다. 초등은 1956년 에글러가 지휘하는 스위스 원정대에 의해 5 18일 이루어 졌는데 루이징거와 라이스가 서벽을 경유해서 정상에 도달했다. 현재 히말라야의 고봉의 벽 중에서 가장 등반이 어려운 곳의 하나로 로체 남벽이 꼽히는데 라인 홀트 메스너에 이어 8,000미터급 14봉을 모두 오른 폴란드의 예지 쿠크츠카도 이곳 로체 남벽을 오르던 중 추락사하는 등 산악인의 무덤으로 불리기도 한다.

 

 

 

5. 마칼루(Makalu)

위치는 네팔과 중국 국경, 쿰부 산군 동부

높이는 8,463m이며, 그 모양으로 인해 '검은 귀신'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마칼루팽이라고도 불린다. 네팔 히말라야에 위치한 마칼루는 오래전부터 여러 원정대가 관찰과 촬영을 거듭했으나 1954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등반이 시도되었다. 처음 등정을 시도한 미국 원정대(원정대장 시리) 7,056미터 지점에서 후퇴 하였고 다시 몬순기에 프랑코의 프랑스 원정대가 북릉으로7,880미터 지점까지 도달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리고 1955년 봄 다시 J. 프랑코는 9명의 전 대원을 3개 팀으로 나뉘어 5 15, 16, 17일에 아무런 사고 없이 연속으로 정상에 도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982년 가을 한국산악회의 허영호씨가 단독으로 등정에 성공했다.

 

 

 

6. 초오유(Cho Oyu)

위치는 네팔 쿰부지역과 티벳 자치구 경계, 쿰부 산군의 동부

높이는 8,201m이며, '여신이 거처하는 곳'이란 이름을 가진 우아한 산이다. 네팔쪽의 남면은 상당한 급경사에 장장 2Km에 달하는 넓고 긴 벽을 형성하고 있으며 북면은 비교적 완만한 사면으로 형성되었다. 1954년 오스트리아의 티치가 이끄는 등반대에 의해 초등이 이루어졌으며 당시 이들은 네팔과 티벳간의 교역로이자 남체 바자르에서 가까운 난파라(Nanpa La, 5716m)를 넘어 북서릉을 통해 무산소 등정에 성공하였다.

 

 

 

7. 다울라기리(Dhaulagiri)

위치는 네팔 중부, 다울라기리 산군 최고봉

높이는 8,167m이며, 1949년 최초의 항공사진 촬영 이후 1950년에서 1959년 사이에 프랑스, 스위스,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가 교대로 일곱 번에 걸쳐 원정을 했으나 모두 8,000미터선 아래서 실패했다. 1960년에는 막스 아이젤린이 조직한 스위스 원정대가 북동릉을 경유하여 5 13일에 초등에 성공했다. 다울라기리는 잦은 악천후에 따른 급격한 기후 변화로 위험한 산으로 악명이 높은데, 특히 남벽은 1977년 라인 홀트 메스너의 실패 이후 아직도 미답봉으로 남아있는 극도로 위험한 벽으로 등반인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 부산합동대에 의해 가을 등정에 성공 하였다.

 

 

 

8. 마나슬루(Manaslu)

위치는 네팔 중부, 마나슬루 히말라야주봉

높이는 8,163m이며, 1950~55년 사이에 영국 원정대가 최초로 정찰한 후 일본 원정대가 4회에 걸쳐 마나슬루 등반 루트를 찾아냈다. 1956 5 9일 마키 대장이 이끄는 일본 원정대의 이마니시와 셰르파 걀첸 노르부가 정상 등정에 성공했다. 마나슬루는 한국 산악인에게는 비극의 산으로 인식되어 있으며 1972년 김정섭 대장이 이끄는 한국 원정대가 노말 루트로 등반을 하던 중 6,950미터 지점에서 눈사태로 4명의 한국대원과 1명의 일본인 그리고 10명의 셰르파가 사망하는 히말라야 등반 사상 최악의 사고를 맞았기 때문이다. 이후 1976년 봄 대한산악연맹이 등정을 시도했으나 다시 실패하고 1980년 봄에 이르러서야 동국대 산악회에 의해 세계에서 8번째로 등정에 성공했다.

 

 

 

9. 낭가 파르밧(Nanga Parbat)

위치는 파키스탄, 펀잡 히말라야

높이는 8,125m이며, '산 중의 왕'으로 불리는 히말라야산맥의 8,000m이상 고봉 중 가장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다른 거봉들과 떨어져 있어 정상 부위의 바람과 눈보라는 다른 봉우리보다도 강하다. 낭가 파르밧의 대표적인 벽은 디아미르벽과 루팔벽으로 나눠져 있으며 세계 최초로 8000m이상의 14봉을 최초로 완등한 라인 홀트 메스너도 이곳에서 동생을 잃었다. 특히, 남동벽의 루팔벽은 수직 4,500m의 거대한 직벽으로 등반인들에게 그 위용이 널리 알려져 있다.

 

 

 

10. 안나푸르나(Annapurna)

위치는 네팔 히말라야 중부, 안나푸르나 산군 최고봉

높이는 8,091m이며, 등반 역사상 최초로 등정된 8,000m봉이다. 1950년 이전까지 안나푸르나는 거의 탐사된 일이 없었는데 모리스 에르조그가 이끄는 프랑스 원정대가 본래 공격 목표였던 다울라기리의 등반로를 정찰하기 위해 안나푸르나로 진입했다가 등반 가능성을 발견하고 목표를 변경, 부적절한 장비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등반을 감행하여 6 3일에 정상 정복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짜릿한 성공과 달리 하산때 여러 어려운 상황을 겪었는데 당시 흥분제를 과다 복용해 자기통제에 실패한 에르조그와 그의 파트너 라슈날이 크레바스에 떨어지며 눈사태에 휩쓸리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이로 인해 하산 중 많은 대원들이 동상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을 절단해야만 했다.

 

 

 

11. 가셔브룸(Gasherbrum)

위치는 파키스탄과 중국의 국경, 카라코람 발토르 산맥의 가셔브룸 산군

높이는 8,068m이며, 1봉은 '히든파크'라고도 불린다. 1861년과 1887년에 고드윈 오스틴 소령과 영허즈밴드 소령에 의해 처음으로 가셔브룸 1봉에 대한 정보가 알려졌으며 K5라는 측량명도 가지고 있다. 히든파크는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된 최초의 8000미터봉이며 1975년 베이스캠프까지 불과 12명의 포터만 동원한 2인조 원정대 라인 홀트 메스너와 패트 하벨러는 8 10일 가셔브룸 1봉의 북벽을 경유하여 등정했는데 이 등정은 최초로 무산소 등정으로 이루어진 알파인 방식이었다. 지금은 가셔브룸 1봉에 대여섯 개 이상의 독립된 루트와 변형루트가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 충남 산악연맹의 박혁상 대원이 등정에 처음으로 성공하였다.

 

 

 

12. 브로드 피크(Broad Peak)

위치는 파키스탄, 그레이트 카라코람 발토르 산맥의 브로드피크 산군

높이는 8,047m이며, 팔첸 캉리로도 불린다. 1892년 콘웨이가 이끄는 영국 탐험대의 정찰 때 지금의 이름을 얻었으며 1957년 슈무크의 지휘 아래 헤르만 불, 슈무크, 디엠 베르거, 빈터 슈텔러 4인조가 최초로 정상에 올랐는데 이들은 고소 포터와 산소기구를 사용하지 않은 채 장비를 3개의 고소캠프에 운반하기 위해 6,950m높이를 여러 번 오르내렸다. 브로드 피크는 우리나라 산악인이 가장 늦게 오른 봉우리로 1995년 스페인 바스크 원정대와 합동으로 등반한 엄홍길과 전남 광주의 빛고을 원정대가 몇 시간 차이로 정상에 섰다.

 

 

 

13. 가셔브룸2(Gasherbrum 2)

위치는 파키스탄과 중국 국경, 카라코람 발토르 산맥의 가셔브룸 산군

높이는 8,035m이며, K4의 측량부호가 붙여진 가장 쉬운 8000미터봉으로 꼽힌다. 1956년에 1934년의 정찰을 토대로 오스트리아 원정대가 모라벡의 지휘아래 남서릉을 경유하여 초등에 성공하였고 모두 5개의 독립된 루트가 있는데 모두 가셔브룸 계곡에서 출발한다.

 

 

 

14. 시샤팡마(Sisha Pangma)

위치는 중국 티벳 자치구 남서부 시샤팡마 산군

높이는 8,012m이며, 티벳어로 '일기변화가 극심한 산'을 의미한다. 8000m이상의 고봉 중 유일하게 중국측에 속해 있어 가장 늦게 등정이 이뤄졌다. 중국 원정대는 대륙이 공산화된 후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1961, 62, 63 3회의 정찰 끝에 1964년 등정을 시도해 현재의 주 접근로인 북면 야북캉가길라 빙하를 넘어 정상 정복에 성공하였다. 시샤팡마 등반 때 가장 어려운 점은 극심한 기상변동에 따른 강풍인데 10월부터 시작되는 티벳고원의 폭풍은 평야지대 위에 우뚝 선 시샤팡마로 곧장 불어와 바람을 피할 곳 조차 없어 등반가들에게 큰 고통을 준다. 등정의 또다른 관은 7,700m부근에서 2회에 걸쳐 나타나는 경사 50도의 설벽으로 이 벽을 넘어서면 20도 정도의 완만한 경사를 지나 순탄하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1991년 여름에 성균관 대학교 산악회와 울산 합동대에 의해 초등되었다.

 

 

http://mt21.com.ne.kr에서 가져옴

 

세계 8000m급 14봉 등정자

세계 8000m급 14봉 등정자
순번 이름 국적 등정연도 비고

1.

라인홀트 메스너

이탈리아

1986

신루트6, 무산소

2.

예지 쿠쿠츠카

폴란드

1987

신루트9, 동계4

3.

에라르 로레탕

스위스

1995

신루트2, 무산소

4.

카를로스 카르솔리오

멕시코

1996

신루트3

5.

크리스토프 비엘리키

폴란드

1996

신루트3, 동계3

6.

후아니또 오이아르자발

스페인

1999

신루트2, 무산소

7.

세르지오 마르티니

이탈리아

2000

 

8.

박영석

한국

2001

동계1

9.

엄홍길

한국

2001

시샤팡마 재등정

10.

알베르토 이누라테기

스페인

2002

무산소

11.

한왕용

한국

2003

 

12.

에드 비스터

미국

2005

무산소

13.

앨런 힝크스

영국

2005

초오유 등정 논란

14.

실비오 몬디넬리

이탈리아

2007

무산소

15.

이반 발레오

에콰도르

2008

무산소

16.

데니스 우룹코

카자흐스탄

2009

신루트3, 무산소

17.

랄프 두이모비츠

독일

2009

 

18.

베이카 구스타프슨

핀란드

2009

무산소

19.

앤드루 록

호주

2009

 

20.

호아오 가르시아

포르투갈

2010

무산소

21.

피오트르 푸스텔니크

폴란드

2010

신루트1, 유산소7

22.

오은선

한국

2010

여성 최초, 칸첸중가 논란중

23.

에두르네 파사반

스페인

2010

 

(출저 http://www.8000ers.com/, 〈Himalayan Database〉)(2010년 8월 기준)

 

 

세계 최초로 8,000m 14개 봉 완등을 이룩한 사람은 이탈리아 등산가 라인홀트 메스너이다.

 그는 1970년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를 시작으로 해서 1986년 10월 로체 등정을 끝으로 16년 동안 14개 봉 모두를 완등했다.

 14개 봉 중 4개 봉은 두 번씩이나 올라 8,000m 고봉을 모두 18번이나 올랐다.


두 번째 완등자는 폴란드 산악 영웅 예지 쿠쿠츠카이다. 

그는 1979년에 로체를 시작으로 14개 봉 완등에 뛰어들었다. 

1989년 로체 남벽에서 로프 절단으로 사망할 때까지 10년 사이에 8,000m 고봉을 17번 올랐다. 

쿠쿠츠카는 메스너보다 9년이나 늦게 14개 봉 완등을 시작했으나 14개 봉 중 10개 봉에 새 루트를 냈고,

 에베레스트를 제외한 13개 봉을 무산소로 등정했으며, 여러 완등자 중 완등 기간이 가장 짧은 9년이란 기록을 세웠다. 

또한 칸첸중가·안나푸르나·초오유·다울라기리를 동계 초등하는 눈부신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세 번째 완등은 1995년에 스위스의 에라르 로레탕에 의해 이루어졌다. 

로레탕은 히말라야에 과감히 알파인 스타일을 적용한 속도등반의 명수다. 

그는 1982년 낭가파르바트를 시작으로 1995년 10월 칸첸중가를 마지막으로 13년 동안 14개 봉을 완등했다. 

1986년 8월에는 에베레스트 북벽을 2박 3일만에 오르내리는 속도등반을 구사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1996년에는 두 사람의 14좌 완등자가 탄생했다. 

멕시코의 카를로스 카르솔리오와 폴란드의 크리스토프 비엘리키가 각각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순위를 기록했다. 

카를로스 카르솔리오는 1985년 7월 낭가파르바트에서 시작해 1996년 5월 마나슬루를 끝으로 11년 동안 14개 봉을 완등했다. 

크리스토프 비엘리키는 1980년 2월 에베레스트 동계 초등을 시작으로 

1996년 9월 낭가파르바트 단독 등정을 끝내 16년 동안 14개 봉을 완등했다. 

그는 여섯 번이나 단독등반을 해냈으며, 통상 3회의 동계 초등을 이룩했다.

여섯 번째의 완등자는 스페인의 후안니토 오르자발이며, 1999년에 14개 봉 완등을 마무리했다.

2000년에도 두 사람의 완등자가 탄생했다. 

이탈리아의 세르지오 마티니와 우리나라의 엄홍길이 각각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완등자가 되었다.

 엄홍길은 완등을 끝내기까지 12년이 소요되었다.

아홉 번째 완등자는 우리나라의 박영석이며 2001년, 8년 만에 완등을 마무리했다.

열 번째 완등자는 스페인의 이누라 태기이며 2002년에 완등을 마무리했다.

열한 번째 완등자는 우리나라의 한왕용으로, 2003년에 완등을 끝내기까지 10년이 걸렸다.

 

Tip 히말라야 8,000m 봉우리의 개수


해발고도가 8,000m가 넘으면서도 14개 고봉에서 제외된 봉우리들은 대부분 다른 고봉에 이어진 능선에 솟아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주봉에 종속된 한 봉우리로만 취급되어 8,000m급 14개 봉 안에 들지 못하고 있다.

네팔과 시킴의 국경을 이루고 있는, 칸첸중가 서쪽의 얄룽캉(8,505m, 일명 캉바첸)과 

에베레스트 남쪽에 위치한 로체 바로 옆의 로체샤르(8,398m)가 그런 봉우리이다. 

특히 로체샤르는 독립된 등반 대상지로서 그 등반성은 로체 이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안나푸르나 중앙봉(8,060m)과 동봉(8,020m), 칸첸중가 중앙봉(8,478m)과 남봉(8,491m)도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독립봉의 성격이 뚜렷한 것은 로체샤르와 얄릉캉뿐이다. 

그래서 세계 산악계의 일부에서는 8,000m급 고봉을 14개가 아닌 16개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수치상으로만 따진다면 8,000m가 넘는 봉우리는 20개가 되는 셈이며, 높이로만 따진다면 

14개에 포함된 고봉들 중에는 포함되지 않는 고봉들보다 해발이 낮은 봉들도 있다.


아시아 최초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무산소 등정 성공한 몽벨 김창호 원정대 소식!! 주소복사

 

 

여기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탄생했어요!!

무산소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도전했던 김창호 대장님이 원정대와 함께 완등에 성공했다는 소식입니다~

 

 

 

이걸로 김창호 대장님은 국내 최초 히말라야 8,000m 14좌 무산소 완등과 동시에 7 10개월이라는 최단 기간 안에 14좌를 모두 오르는 기록을 세우셨다고 해요!

 

이렇게 국위선양 하시는 분의 이야기를 제가 안 꺼낼 수 없잖아요?

 

  

 

김창호 대장님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분도 있겠지만 죽음의 구간이라고 불리 우는 해발고도 7,000m 이상 높이의 히말라야 봉우리 13개를 모두 무산소로 오르신 분이에요. 에베레스트까지 오르셨으니 이제 히말라야의 모든 봉우리를 무산소로 정복한거죠!

 

해발 고도가 6,000m 이상만 되어도 산소량이 급격히 떨어져서 시간이 지날수록 죽어간다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후덜덜…! 저라면 너무 두려워서 시도조차 하지 못할 것 같은데 정말 대단하세요!

 

 

<이미지 출처 : KBS 뉴스>

출발 하실 때 뉴스를 보면서 괜히 걱정도 되면서 기대도 많이 했는데 성공 소식을 가지고 다시 돌아오시니까 너무 반갑더라구요!

 

이번 도전이 의미 있는 이유는 정말 다양했지만 무엇보다 처음 도전을 시작할 때부터 해발 0m에서 8,848m의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오른다는 것 자체만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었죠.

 

 

<이미지 출처 : KBS 뉴스>

 

이번에 새로 안 사실이지만 해발 8,000m가 넘는 히말라야 산이라도 대부분 헬기로 3,000m 베이스캠프까지 이동한 다음에 클라이밍으로 정상까지 오르기 때문에 온전하게 그 높이를 다 올랐다고 할 수 없더라구요.

 

김창호 대장님은 인간의 힘으로 온전히 해수면에서 시작해 정상에 오르겠다는 의지를 보이시며 카약부터 시작해 싸이클, 트레킹, 마지막 클라이밍까지 에베레스트 4단계 프로젝트 원정대를 꾸렸답니다.

 

 

 

저는 KBS 뉴스로 그런 내용을 처음 알았는데 네이버 TV캐스트에서 독점으로 이 원정기를 영상으로 중계해서 흥미롭게 시청했거든요!

 

카약 160km, 자전거 1000km, 트레킹 150km를 거쳐서 베이스 캠프에 도착한 여정도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그 모든 내용을 대원들이 직접 촬영해서 공개를 한 영상은 정말 인상적이에요. 처음에 한 인터뷰만 봐도 이 원정을 위해서 정말 많은 노력과 정성을 쏟으며 준비하셨더라구요.

 

 

 

네이버 TV캐스트에서는 벌써 14화까지 영상이 나왔는데요. 이제 막 클라이밍을 시작해서 이동하는 영상을 보니 예상대로 너무 위험천만해 보여서 많이 걱정했었거든요! 클라이밍은 또 다른 구간이랑은 정말 다르게 많이 위험해 보이더라구요! 발 아래로 아득한 절벽인데도 거길 꿋꿋하게 걸어나가는걸 보고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걱정하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영상을 감상했었는데 정말 반갑게도 다음 영상이 나오기 전에 성공 발표를 들은 거에요 ㅎㅎ

 

 

아무쪼록 내려오실 때에도 안전하게 내려오셔서 한국으로 들어오실 그 날이 또 기다려지네요~! 직접 김창호 대장님이 말해주는 에베레스트 무동력/무산소 등정기 정말 듣고 싶어요.

 

 

 

네이버 TV캐스트 영상을 보면 이 원정이 얼마나 대단하고 역사적인 원정인지 아실 수 있을 거에요~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아래 링크 공유해드릴게요! 영상을 감상하면서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축하해주세요!

 

 

http://tvcast.naver.com/v/56527/list/5395

 

'히말라야의 별' 고 박영석 대장 추모 음악회 6일 방송

입력2015.12.03 20:40 최종수정2015.12.03 20:40

 

[스포츠투데이 최성근 기자]

 

오는 6일 밤 10시 마운틴TV ‘문화트레킹’에서 박영석탐험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영원무역이 후원한 박영석 음악회를 방영한다.

“산악인은 산으로 가야 산악인이라고 생각해요. 탐험가는 탐험을 가야 탐험가이고요. 나는 죽는 그날까지 탐험을 할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면서요.”

4년 전 고 박영석 대장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산악인의 마음속에 전설로 남아있는 박영석 대장, 그의 일생은 ‘산’ 그 자체다. 2001년 한국인 최초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그는 2005년에는 인류 최초로 산악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다. 산악 그랜드 슬램이란 세계8000m급 14좌와 7대륙 최고봉, 세계 3극점을 모두 등반하는 것을 일컫는다. 세계의 철인, 라인홀트 메스너도 달성하지 못했던 최고의 기록이다.

기사이미지
고 박영석 대장 / 사진=마운틴TV 제공
원본보기


그런 그의 도전과 탐험은 멈추지 않았다. 2009년 험난하기로 유명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코리안 신루트를 개척한 것이다. 정상에서 내려온 그는 “나머지 히말라야 8000m 이상 13개 고봉에도 새로운 루트를 내는 도전을 하겠다”고 포부를 밝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11년 코리안 신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오른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끝내 내려오지 못했다.

세계 산악인들 사이에 ‘산악 탐험사에 한 획을 그은 한국인’으로 기억되고 있는 박영석 대장. 그가 우리를 떠난 지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그의 숭고한 도전정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를 가슴 속에 깊이 품은 사람들이 매년 함께 모여 그의 도전정신을 기리는 아름다운 음악회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박영석 음악회’는 산을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산악 문화행사로 자리 잡았다.

히말라야의 큰 별 박영석 대장을 추억하는 가슴 따뜻한 음악회는 6일 오후 10시 마운틴TV '문화 트레킹'을 통해 방영된다. 한편, 마운틴TV는 SK Btv(ch 261), LG U+ tv(ch 69), olleh KT(ch 117)에서 시청 가능하며 전국 지역 케이블 채널번호는 마운틴TV 홈페이지(www.mountaintv.co.kr)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는 티빙(http://bit.ly/1cmIiND)과 에브리온(http://bit.ly/1t4DiCw)으로 무료 시청이 가능하다.


최성근 기자 sports@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