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정치/질고지칼럼

8. 3층의 '이 주사'

질고지놀이마당 2008. 6. 19. 14:45

 

 

관리자 (2004-07-08 10:54:44, Hit : 279, Vote :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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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청장은 "3층 이 주사?"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구청장이 되고 보니 같이 일하던 현장 동료를 만나면
가끔 허접한(?) 질문을 받아 난감할 때가 있다.
구청장 월급이 얼마냐, 어느 정도의 예우를 받느냐는 따위다.
한 달에 두 번 정례적으로 찾아가는 주민 간담회에서도 간혹 그런 질문이 나오는데
간담회 자리에서의 질문은 오히려 고맙게 느껴진다.
간담회 분위기가 너무 사무적이어서 경직돼 있거나 반대로 집중이 안되어 산만할 때
이런 질문이 나오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즉, 누군가 "구청장님은 연애결혼을 했어요 중매결혼을 했어요" 묻거나
"한달 월급은 얼마나 되는데요?" 하고 물으면 금방 집중이 되고,
웃음이 터져 나오는 분위기가 되는 것이다.
아마도 소시민적인 호기심의 대상이 아닐까 싶다.

결혼 관계나 가족사항, 월급에 대해선 나름대로 충실히 답변을 하지만
구청장은 어느 정도 직급의 예우를 받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나도 사실은 잘 모른다.
예우에 관한 규정이 있겠지만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다 보니까
별 관심이 없고, 들어도 금새 잊어버린다.

그런데 얼마 전 공무원노조 간부한테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직원들 사이에서 구청장을 '3층의 이 주사'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노조간부들의 생각인지 일반 직원들의 보편적인 평판인지 모르나
하여간 그런 말을 들었으니 들려줬을 터이다. 그 순간 기분이 묘했다.
아니 아무리 구청장에 대한 예우가 어느 정도인지 무관심하게 지낸다지만
구청장인 날보고 6급에 해당하는 주사(主事)라니!

솔직히 말해 그 말을 듣는 순간은 불쾌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구청장(區廳長)을 주사(主事)로 부른다면 당연히 좋은 의미는 아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해야하나 고민스러운 찰나 그 호칭이 과히 나쁘지 않다는,
아니 오히려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구청장실이 3층에 있고,
구청장이 미주알 고주알 작은 부분까지 챙긴다는 것을 꼬집어 '3층의 이 주사'라고 했으리라.
비아냥거리는 의도일지라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은 인정해주는 평가가 아닌가?
그렇다면 감사할 일이다.

자신을 위한 변명을 잠시 해보기로 하자.
구청장에 취임한 이래 나는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업무를 직접 챙기는 편이다.
간부회의 석상에서 지시하고도 다시 과장을 부르거나
담당직원을 따로 불러 지시하거나 확인을 하기도 한다.
뭔가 개운한 생각이 들지 않으면 직접 현장을 살피러 나간다.
현장 확인을 늘 강조하는데 현장을 확인하지 않고 추진한 일은
나중에 거의 예외 없이 문제점이 발견된다.

그리고 현대판 신문고라는 생각에 홈페이지를 꼼꼼히 챙기는 편이다.
주민이 자신의 의견을 누군가의 간섭 없이 단체장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수단이 바로 홈페이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주민들의 의견과 직원들의 답변을 거의 모두 살펴본다.
뿐만 아니라 공무원들이 기존의 고정관념을 가지고 작성하는 결재서류 기안과 같은 답변으로는
주민들에게 감동을 주기 어렵다는 생각에 '모범 답변'을 작성해 직접 올리기도 한다.
그러니 직원들이 얼마나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것인가.
해서 '인터넷 구청장'이라는 평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쨌든 지금의 북구청 홈페이지는 주민 참여의 양이나 질적인 면에서,
그리고 주민들이 올린 질문에 답변하거나 건의사항을 업무에 반영하는 점에 있어서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큼 활성화되고 있다.
북구청 기관지 격인 '희망북구'와 전자신문 역시 발행한지 1년이 지난 지금
기존의 틀에 박힌 행정기관의 홍보 형식을 탈피하여 자리를 잡았다.

개관한지 6개월 째에 접어든 문예회관 활용도는 전국 최고수준이라고 평가한다.
많은 예산을 들여 지은 건물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하여 시행한
문화강좌의 경우 열기 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했으나
인기 강좌의 경우 수강생이 넘쳐서 접수를 못한 주민들에게 항의를 받는 등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지나칠 정도로 꼼꼼한 나의 행정 스타일은 순전히 일에 대한 욕심에서 비롯됐음을 고백한다.
나의 행정에 대한 경험은 약 2년간의 시의원 활동을 통해 어깨너머로 본 것이 전부다.
즉, 행정에 대한 직접 경험이 없어서 공무원들이 마음먹고 에두른다면
'고문관'이 되기 십상인 새내기 구청장이었다.
따라서 행정 업무와 조직과 사람을 제대로, 빨리 파악하기 위해선
남보다 두 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큰일 작은 일 가리지 않고 물리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직접 챙겼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너무 벅차서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구청에서 하는 일의 범위가 좀 넓은가!
누군가 들려준 "조직의 장이 할 일이 없어 심심할 정도가 돼야
그 조직이 제대로 굴러가는 것"이라는 말에 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직접 간섭하고 챙긴다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며, 비능률적임을 깨우치고 있다.
어느 정도 조직과 업무 관장에 대한 자신감도 갖고 있다.

이제부터는 단체장이 꼭 챙겨야 할 일과 담당자가 해도 될 일을 가려서
구청장의 체통(?)을 지키려고 한다.

3월 월례조회 석상에서 직원들에게 "3층 이 주사로 불러줘서 고맙다"라고 공개하면서
반 농담 삼아 밝혔듯이 이제는 승진을 하고싶다.
나 자신부터 노력하겠지만 공무원들이 도와주어야 가능한 일이다.
북구청 직원들의 자발적인 협력을 당부한다.
그런데 벼락 승진은 곤란하니 사무관이면 적당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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