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정치/질고지칼럼

11. 가장 넓은 정원을 가진 구청장

질고지놀이마당 2008. 6. 19. 14:48

 

 

관리자 (2004-07-08 11:09:50, Hit : 290, Vote :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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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넓은 정원을 가진 구청장




저는 요즘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17대 총선으로 바쁜 이때 선거와 초연(?)하게 나무 심는 사업에 몰두할 수 있음은 큰행복인 셈이지요.
단체장이 엄정 중립을 지키면서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선거법이 대폭 강화된 것도 큰 변화인 셈입니다.

나무를 심는 일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할 참 일꾼을 뽑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무룡산에 나무를 심자, 미래의 희망을 심자'는 슬로건은 정말 멋집니다.
지난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3일간에 이어 4월 3일 토요일부터
식목일인 5일까지 3일간도 무룡산 일대 나무 심는 현장에서 보냈습니다. 주말부터 식목일까지 연휴를 맞아 등산을 겸해 무룡산을 오르는 시민들이 산불 전보다 오히려 많아진 듯 싶었습니다.
오가는 길에 즉석에서 헌수 운동에 참여하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어쨌든 시민 헌수운동은 지방자치의 주인인 시민이 지역사업에 적극 참여하는 성공사례의 이정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북구청에서는 불이 났을 때부터 진화작업, 복구계획 수립, 범시민 헌수운동 추진위 발족과 헌수 운동전개,
그리고 나무를 심기까지의 전 과정을 영상기록물로 남기기 위한 작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 영상물은 산불 방지에 대한 경각심은 물론, 나무와 숲을 사랑하자는 교육 자료로 제작되어 관내 학교와 유관단체에 제공할 계획입니다.
그런데 참여 시민이 예상했던 목표치보다 세 배정도 늘어나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점도 많습니다.
나무 심을 장소와 묘목 추가구입을 하느라 '즐거운 비명'도 잠시, 실무적으로 감당해야 할 일들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경험 없이 처음 겪는 일이어서 시행착오도 있는데 이러한 모든 문제점과 성과 역시 기록으로 남겨 이후 유사한 사업을 하고자 하는 단체에  기초자료가 되도록 할 것입니다.

하여간 어려움이 한 둘이 아니어서 홈페이지에 양해를 구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헌수 참여자의 주소를 파악하고 약정 내용과 입금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전수조사를 해도 파악되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신청자와 입금자가 다른 경우, 주소나 연락처를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은 경우, 신청자와 명패이름을 달리 써서 달은 경우는 본인 확인이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모든 나무에 헌수자 명패를 달아 주고, 귀하의 나무는 어디에 심어져 있다는 것을 개별적으로 통보하는 작업이 계획보다 많이 늦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무를 심는 현장은 전쟁터에 다름 아닙니다.
묘목의 뿌리가 마르지 않도록 빠른 시간 안에 운반하고 심어야 하는데 산악 지형인 관계로 절반 이상을 사람의 힘으로 운반하고 있습니다.
묘목이 크기 때문에 받침대를 설치하고 가지를 잘라 주어야 하며, 일일이 물을 주어야 하는 등 사후 관리도 일이 많습니다.
이 모든 작업을 북구청 산림녹지 담당 공무원들과 공익요원들, 작업단 인부들, 그리고 산림조합 작업단이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휴일도 없이 연일 산 위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는 보람된 일을 한다는 자부심도 담겨 있지만 일이 고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혹 선거에 오해를 받을까봐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여, 그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산에 자주 올라 같이 나무를 운반하고 심는 작업을 통해 위로와 격려를 대신합니다.

나무를 심고 전정을 하는 작업을 어깨너머로 배우다 보니까 어느덧 '반 풍수'가 되었습니다.
키가 큰 나무는 심기 전에 가지를 잘라주어야 하는데 일 손이 달려 뻔히 알면서도 그냥 심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가위를 들고 나뭇가지를 자르고 있으니 지나는 주민들이 "벌써 노후생활 준비하느냐?" "정원 넓어서 좋겠다" 등등 반갑게 인사를 건넵니다.

정감 어린 덕담이 농담만을 듣고 보니 그럴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북구청 녹지공간도 넓은데다가 이번에 시민 헌수 운동으로 조성하는 등산로 주변만 하더라도 3만 평 이상에 약 8천 그루의 나무가 심어지니까 줄잡아 4만평의 정원을 가지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진 땅이라곤 바늘 꽂을 자리도 없는 터에 4만 평이 넘는 정원을 가꾸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큰 횡재가 어디 있겠습니까.

실은 산을 누가 소유하고 있느냐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자연을 소유한다는 발상 자체가 모순이지요. 헌수 구간 대부분이 개인의 소유로 되어있다 하더라도 등산로 주변은 이미 울산시민 공동의 재산이나 다름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소유하지 않고도 소유한 것 이상의 기쁨을 만인이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입니다.  
이렇듯 나무 한 그루 심기 운동은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의 또 다른 실천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습니다.
저는 휴일을 고스란히 반납해도 즐겁기만 합니다. '드넓은 정원'을 가꾸는 일 자체가 곧 휴식이자 취미생활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