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정치/질고지칼럼

13. 기고 글/ 노동조합의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

질고지놀이마당 2008. 6. 19. 14:51

 

관리자 (2004-07-08 11:50:47, Hit : 309, Vote :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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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조합의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 제안에 부쳐


<이 글은 이상범 구청장이 4월 20일 한국노동혁신연구소 홈페이지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 산하 4개 완성차 노동조합이 노사 공동으로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을 조성하자고 제안한 것은 노조운동사에 새 장을 여는 것으로 평가된다.

탄핵 정국, 17대 총선 등 사회 정치적인 불안정과 경제적인 불황까지 겹쳐 어려운 상황에서 올해 노사 전망 역시 불안한 가운데 강경 노선을 걷던 대공장 노조가 어찌 보면 유화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노사 공동의 사회공헌기금 조성을 제안하고 나온 것은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다.

이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하 현자노조)이 제안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현자노조는 민주노조 운동의 중심으로서 비타협적인 투쟁 노선을 견지하며 구심점 역할을 해 왔다. 특히, 지난 연말 출범한 11대 집행부는 역대 집행부 중에서 가장 강경한 운동 노선을 가지고 활동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 제안에 대한 안팎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제안에는 올해 노사 협상에서 명분의 우위를 선점하려는 노조의 대 국민 홍보 전략이 담겨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작년 현자노조의 임단협 타결이후 가해졌던 비판적 여론은 일부 언론에서 의도적으로 확대 재생산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노조로서는 매우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즉, 비정규직이나 협력업체 노동자들에 비해 월등히 우월적 대우를 받으면서 국가 경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몫만을 찾으려 한다는 '이기적인 노조운동'에 대한 비난 여론을 무시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때문에 노조의 입장에서도 지나치게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운동 노선을 펼치다가는 국민적 비난 여론에 직면하여 고립되고 말 것이라는 자성론을 바탕으로 요구 수준과 운동 방식의 변화가 불가피 하다는 현실 인식 및 대응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현대자동차노동조합(위원장 이상욱)이 북구사회복지관에 장애인용 승합차를 기증, 4월 7일 오후 1시 북구사회복지관 3층 다목적홀에서 기증식을 가졌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노동조합운동>

하지만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제안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현자노조의 경우 이미 오래 전부터 지역의 환경 문제와 문화 사업에 대한 연대 및 예산 지원을 실천해 왔으며, 최근의 실천 활동을 살펴보더라도 이번 제안이 '이미지 개선을 위한 일회용 협상카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회사와의 단체교섭 및 성과급 협상에서 사내 하청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요구를 포함하여  신규 직원 채용 시 사내 협력업체 노동자 우선 고용제도와 성과급 지급 등에서 상당한 성과를 이루어 왔다.

지역사회에 대한 활동을 보면 지난 해 가을 10대 집행부(위원장 이헌구)는 관내 농산물 소비와 아이들에게 좋은 먹거리 제공을 위한 학교급식 조례제정운동에 함께 하였고, 조합원들 모금운동으로 조성한 기금에서 3천여 만원을 할애하여 지역 내의 소년소녀 가장 및 기초생활 수급자를 지원하였다.

지금의 11대 집행부(위원장 이상욱)는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은 기간임에도 3천 2백만원 상당의 장애인 이동용 리프트가 장착된 소형버스를 북구 사회복지관에 기증했고, 조류독감으로 인해 닭, 오리 소비가 급감하여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자 회사에 요구하여 구내식당에서 '닭, 오리 1백만 마리 소비운동'을 제창하고 나섰다.

또한, 현대자동차가 위치한 북구 관내에 큰 산불이 일어나서 시민들 헌수운동이 시작되자 발 벗고 나서 2천 그루가 넘는 나무를 기증하고, 노조 간부들이 직접 나무를 심으러 나온 것도 현자노조의 변화된 모습이다.

따라서 이번 완성차 4사 노조의 제안은 노조 스스로 사회적 책무에 대한 구체적 실천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제안 된 것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위원장 이상욱)은 3월 24일 오전 11시 노조사무실에서 무룡산 살리기 헌수 및 사회 공헌 기금 조성을 위한 기자회견을 마련했다.

다시 말해 스스로 먼저 실천하면서 회사측에 제안했다는 점에서 명분을 선점하고 있으며, 합리적 노사관계로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등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이라는 명칭이 의미하듯 공익적 책임을 수행하자는 대의 명분을 지닌 만큼 회사측이 거부할 명분이 적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역사회에서 외면당하는 기업 현실>

그런데 회사는 기업 활동을 통해서 고용을 창출하고, 임금 지급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있으며, 국세인 법인세를 포함하여 사업소세 주민세 등 지방세를 적법하게 내는 것으로 기업의 의무를 다하고 주장한다. (편의상 울산지역에서의 현대자동차에 대한 사례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함)

사실 현대자동차의 예를 보면 울산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나 기여도는 거의 절대적이다.
울산에서 내는 지방세는 울산시와 북구청 지방세 수입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기업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현대자동차를 바라보는 지역사회의 시각은 매우 부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첫째는 현대자동차라는 기업의 규모나 경영 실적에 비해 지역사회에 대한 지원 활동이 실제로 미미하다는 점이다.
울산을 대표하는 중화학 공업은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으로서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SK가 이 세 가지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그런데 울산 시민들은 기업의 지역사회에 대한 책무를 말 할 때, 곧잘 현대중공업과 SK를 예로 든다. 이 두 기업은 지역사회에 대하여 천문학적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현대자동차는 회사 규모나 경영실적을 감안할 때 지역사회에 대한 역할이 이들 두 기업에 비해 대단히 인색하다.

간단히 사례를 확인해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동구에 있는 현대중공업은 동구 관내의 문화, 복지, 체육시설은 물론, 학교, 병원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복지 시설을 직접 지어 운영하고 있다. 남구에 있는 SK는 1, 2단계에 걸쳐 무려 1천억원을 투자하여 울산의 남구에 울산대공원 조성사업을 지원하고 있으며, 회사 내에 지역사회 사업을 전담하는 '사회 공헌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자동차가 울산 지역에 회사 부담으로 지어서 운영하는 문화, 복지 시설은 현대자동차 문화회관이 유일하다.
물론, 동구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현대중공업의 역할과 SK의 울산에 대한 관계가 특수성이 있기도 하고, 현대자동차 역시 지역에 대한 사회 사업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선적을 기다리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수출 차량>

매년 경로잔치, 어린이날 행사, 연말이나 명절에 사회보장시설에 대한 예산 및 현물 지원과 각종 행사시에 교통편 제공을 포함하여 가장 최근에는 북구 사회복지관에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중형 버스도 기증했다. 가장 많은 나무를 심었는가 하면, 관내 태화강 살리기 운동을 포함하여 환경적인 실천을 잘하는 '환경친화기업'이기도 하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중공업이나 SK에 비해서, 그리고 세계적인 기업 규모나 경영 실적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인색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시민들이 느끼는 정서적인 불만이다.
우리나라 기업 환경이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고, 따라서 음성적으로 이루어지는 정치자금과 같은 검은 거래가 없는 투명사회라면 세금을 꼬박 꼬박 내는 것으로 책무를 다하고 있다는 회사의 항변이 통할 수 있다.

그러나 지역사회를 위한 공익 목적의 기부에는 인색했으면서 정치 권력에 대해서는 수백억 원 규모의 '차떼기' 불법 자금을 갖다 바친 사실이 드러나자 그 어떤 설명도 설득력을 잃고 말았다.

정경유착에 의한 검은 정치자금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차떼기 대선 자금'의 실체는 노동자와 도시 서민들에게 극심한 좌절감과 박탈감을 안겨주었다.
우리 회사는 그렇지 않을 거라 믿었던 현대자동차 직원들은 물론 울산 시민들도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았다.

이윤의 일부를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데는 인색한 기업이 차떼기 대선 자금을 갖다 바쳤다는 사실이 주민들 마음 속에 깊은 상처를 남기면서 정서적 거부감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물론, 하고 싶어서 한 일이 아니라 정경 유착의 고리를 유지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기업의 자구책이었겠지만 그렇다고 면책 사유가 되지는 않는다.
만약 회사가 정치권에 갖다 바친 자금 이상을 지역사회에 기부했다면 깊은 감사와 커다란 자부심으로 남았을 것이다.

어쨌든 기업의 체면과 이미지가 구겨진 이상 앞으로라도 일그러진 정경 유착의 고리를 끊고 건전한 기업 활동으로 경쟁력과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부도덕한 정치자금을 내는 대신 그 반만이라도 사회공헌을 위한 기금으로 출연한다면 기업 자신을 위해서도, 지역사회를 위해서도 더 없이 바람직한 일이다.
지금 노조에서 이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재계, 무조건 경계할 일 아니다>

문제는 노조가 요구하는 출연금 규모가 기업 경영에 너무 큰 부담으로 작용해서는 곤란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노사간 협의를 통해 조정할 수 있는 문제로써 일단은 제도부터 만든 다음, 몫을 키우고 조정해 가는 것은 앞으로 제도를 운용 해 가면서 할 일이다.

노조에서는 순이익의 5%를 출연하라고 요구했지만 협상 여하에 따라 단 1%를 출연하기로 합의하더라도 대단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 조차 부담이 크다면 경영 실적과 연동하되 최저 하한선과 최고 상한선을 정할 수도 있을 것이고,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처럼 우선 제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사회공헌 기금 조성을 제안하고 나선 노조에서도 회사가 출연하는 수준만큼 임금인상율이나 성과급에 대해 연동하여 요구수준을 하향하여 요구한다는 타협안을 낼 수 있어야 하고, 그리 된다면 앞으로의 노사관계를 보다 발전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회 공헌기금을 조성한다면 그 기금의 집행에 있어서도 노사가 긴밀히 협의하여 결정하게 됨으로써 노사간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이며, 파트너십이 제고될 것이다.

또한, 지역사회에 대한 문화 복지 생활체육시설에 투자를 하게 되면 기업 및 상품 이미지를 제고하여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되며, 노사 공동에 대한 신뢰를 높임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노사관계 안정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노조의 사회공헌 기금 조성 제안에 대하여 경제단체에서 반대하거나 경계만 할 일이 아니다.

지난 2월 3일, 북구사회복지관 개관식에서 4,500만원 상당의 차량을 기증한 현대자동차 전천수 사장이 이상범 구청장에게 키를 전달하고 있다.



<지방자치 단체가 지역 노사에 거는 기대>

지방정부의 입장에서도 기업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바람이 크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 지방정부는 수도권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예외 없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울산 북구와 같이 독립하여 출범한지 얼마 안 되는 지방정부는 도시 기반시설도 안되어 있고, 문화 복지 시설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전국 236개 지방정부 중에서 재정과 인력 모두가 가장 어려운 형편이다.

앞서 예를 들었듯이 이웃해 있는 동구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문화 복지 생활체육의 자급자족을 구가하고 있어서 북구와 아주 대조적이다. 그러다 보니 주민 간담회 석상에서 도서관, 수영장, 스포츠센터 등 주민 숙원사업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빠지지 않는 것이 동구와 북구의 비교,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에 대한 비교다. 즉 현대자동차는 뭐하냐는 질책이다.

이렇듯 지역사회에서의 바람은 기업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기대가 팽배해 있다.

행정이 할 일을 기업에 의존한다는 것이 바람직한 일은 아니나 기업의 사회적 책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리고 북구 주민의 2/3 이상이 현대자동차와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기업은 직원과 그 가족을 위해서라도 좀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공헌기금을 가지고 지역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사업을 전개하려면 지방정부와 긴밀한 협력은 필수적이다.
현대자동차 임직원 일동은 3월 20일 오전 10시부터 태화강 정화 활동을 벌였다.

노사 합의로 출연한 기금을 사용하여 지역사회의 문화 복지 체육시설에 대한 투자를 결정한다면 기업과 노조, 그리고 지방정부간 긴밀한 협력과 역할분담을 통해 부지마련과 건축비 부담, 이후 시설 운영 방안에 이르기까지 함께 해야 할 일이 얼마든지 많다.

예컨대 지역의 숙원사업인 문화시설을 신축하기로 했다면 부지 마련과 적자가 예상되는 향후 운영비는 지방정부가 부담하고, 건축비는 노사가 조성한 사회공헌기금에서 출연하며,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운영위원회를 구성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작년에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지역사회에 대한 역할을 살펴보기 위해 도요다市를 다녀온 적이 있다. 직접 살펴보기도 하였지만 자료를 통해 확인 가능한 부분만 하더라도 도요타 자동차가 직원과 가족을 위해서 도요다 시내에 운영하는 문화 복지 체육 시설의 규모는 상상을 넘었다.

기업이 직원과 가족들을 위한 문화 복지 체육시설을 지어 운영하면 지역주민들도 공동의 혜택을 누리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보면 현대자동차는 울산 지역사회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논하기 이전에 직원들과 가족들을 위한 문화 복지 체육시설 투자조차 인색하다는 평을 면키 어렵다.

이런 현상을 반영하듯 울산시민들 사이에 현대자동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예상보다 강하게 퍼져 있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다. 전에는 회사에 대한 고마움과 회사가 하는 일이라면 일단 협조적이었다.

울산에서는 차를 사더라도 당연히 현대차를 사야 한다는 분위기(바람직한 현상인지는 별개)였으나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변화가 당혹스러울 정도다.

특히, 회사 인근에 있는 주민들과 상인들은 훨씬 심하다. 주민들과의 간담회를 가지면 "회사가 우리한테 해주는 게 뭐냐, 소음, 악취, 교통난과 주차 난 등등 피해만 준다"는 불만들을 주저 없이 표출한다.




<국민에게 희망 주는 합의를 기대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동조합이 노사 공동의 사회공헌기금 조성을 제안하고 나왔으니 명분과 타이밍이 기막히다. 완성차 4사 노조가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 조성을 제안하고 나선 것은 이러한 민심의 흐름을 정확히 짚은 것이다.  

특히 강경 노선을 걷던 대공장 노조가 합리적 제안을 했다는 것은 대립적인 노사관계에 대한 변화, 나아가 올해의 노사관계가 합리적이고 유화적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바람직한 노사관계의 전형을 만들어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합의를 이루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