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정치/질고지칼럼

14. 공공의 이익은 사유재산권보다 중요

질고지놀이마당 2008. 6. 19. 14:52
관리자 (2004-07-08 11:52:35, Hit : 277, Vote :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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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의 이익은 사유재산권보다 중요




좀 쑥스럽지만 이번 숙제에서는 제 자랑 좀 하려고 합니다.
지난 4월 27일, 저는 아주 의미 있는 판결문을 받아들었습니다.
이른바 '러브호텔'로 불리는 모텔건축 불허가 처분에 대한 건축주와의 법정 다툼이 대법원까지 갔는데 최종적으로 북구청이 승소한 것입니다.



이번 판결은 법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난처한 입장에 처해있는 자치단체들에게 매우 중요한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큽니다.
또한, 검찰이 '항소포기'를 지휘해서 원심(즉 구청 패소 = 모텔건축 승인)대로 종결되려는 순간에 항소를 고집하여 얻은 결과라서 더욱 보람을 느낍니다.

사실 이번 재판은 매우 극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북구청에서 건축허가를 불허하자 처분에 불복한 건축주들이 집단으로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법정 다툼이 시작되었습니다.
원심에서는 원고(건축주)가 승소하였으나 피고인 북구청이 이에 불복하여 항소를 한 결과 항소심에서는 북구청이 승소하였습니다.
그러자 원고측은 다시 대법원에 상고하였는데 대법원에서 원고의 상고가 이유 없다고 기각함으로써 최종적으로 북구청이 승소한 것입니다.

저는 이번 판결을 보면서 옳다는 신념이 있다면 소신있게 추진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솔직히 담당 공무원의 입장에서 본다면 항소를 포기하고 건축허가를 내 주어도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나중에 지역 주민들이나 시민단체가 들고일어나더라도 할 말이 있습니다.
"구청에서도 막으려고 건축허가를 반려했지만 소송에서 지고 말았다"
→"항소를 하려고 했으나 검찰에서 포기하라고 해서 할 수 없었다"
→"행정소송에 패소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건축허가를 내 준 것이다" 라는 '이유 있는' 변명이 성립됩니다.

다시 말해 이쯤에서 건축허가를 내 주더라도 구청으로서는 할만큼 한 셈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 동안 왕왕 사회문제가 됐던 '러브호텔 집단촌' 난립을 막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나중에 주민들이나 시민 사회단체가 반발하고 나서도 그 때는 이미 때가 늦습니다.
재판까지 거쳐서 건축 허가를 받았다면 더더욱 어렵습니다.
따라서 행정기관이 반드시 막고자 하는 의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알고 보면 인·허가에 대한 자치단체장의 권한과 재량권 범위는 아주 제한적이고 법과 조례에 있는 사항조차 축소지향적으로 해석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숙박시설 건축허가 역시 마찬가집니다.
주변 여건을 보면 숙박업소가 들어서면 안되겠다 싶은데도 법적으로 건축허가를 제재할 근거가 없으면 허가를 내 주어야 합니다.
만약 법적 근거가 없음에도 불허 또는 반려처분을 하게 되면 그 공무원은 감사에서 문책을 받게 되고,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으로 이어질 경우 대부분 행정기관이 패소하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행정기관은 건축허가를 내 주면 나중에 지역 주민이나 시민단체로부터 원성의 대상이 되고, 불허처분을 하였을 경우 건축주가 행정심판 및 행정소송을 걸면 패소할 가능성이 높아 결국은 허가를 내 주지 않을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이번에 대법원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은 북구 매곡동 지역에 대한 모텔 허가 반려처분도 이런 과정이었습니다.
총 11건의 허가신청을 반려했는데 이렇게 되자 건축주들이 '우리도 단결하여 행정과 맞서자'는 식으로 뭉쳐서 행정소송을 제기했던 것입니다.

이번 모텔 촌 불허처분에 대한 재판과정에서는 숨겨진 히스토리가 있습니다.
원심에서 북구청이 패소하여 판결문을 받은 다음 항소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검찰에서 항소포기를 하라는 검찰지휘가 있었습니다.
소송 담당자들은 당연히 검찰의 의견이 그러하니 당연히 항소를 포기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하여 결재가 올라왔습니다.
검찰에서 항소여부에 대한 지휘를 한다는 것을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항소를 포기하라는 의견도 그렇지만 항소를 할지 말지 검찰의 지휘를 받는 절차 자체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국가를 상대로 하는 소송의 경우 검찰이 항소여부에 대한 지휘를 받도록 법에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검찰 지휘가 내려오면 행정기관은 검찰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즉, 일선 공무원들의 입장에서는 검찰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구청장만 결재하면 항소 포기로 종결되는 상황에서 고집스럽게 항소를 결정했습니다.
검찰 지휘가 마음에 걸렸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구청이 포기하면 집단적인 모텔 촌이 들어서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담당자가 주저하기에 "검찰 지휘를 무시했다가 혹 있을지도 모를 '괘씸 죄'를 염려하는 것이라면 구청장인 내가 책임지겠다"고 실무자를 독려했습니다.
그래도 주저하기에 검찰에 직접 전화를 걸어 구청의 의지는 확고하기 때문에 꼭 항소를 해야겠다고 밝히고, 결국 재 지휘를 받는 형식을 밟았습니다.
이렇게 항소를 함으로써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였습니다.

아마도 원고측이 승리의 축배를 들고 있었을 그 시간에 북구청 법무담당자들은 절치부심, 원심 패배의 이유를 따져보고 항소심 재판부에 유리할만한 증거자료를 직접 찾아 나서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항소를 함으로써 일단 시간을 벌은 것만도 구청으로서는 유리한 입장이 되었습니다.
때마침 시에서는 주택가와 숙박시설간의 거리('이격거리'라 함)를 더 멀게 강화하는 조례개정안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청에서는 항소심 재판부가 현장 사정을 판단하기 쉽도록 간단 명료한 자료를 만드는 한편, 재판 소식을 알게 된 해당지역 주민들은 서명운동을 통한 단체 진정서 제출, 반대 현수막 걸기 등 자발적인 역할을 찾아 나섰습니다.
인근 주택가와 아주 가깝고, 아이들 주 통학로 옆이며, 인근지역 주민들이 가족단위로 즐겨 찾는 하천 공원이 있다는 사실 등, 원심 재판부가 달리 판단하거나 간과한 사실들과 도시계획상 용도만 상업지구일뿐, 아무런 기반시설도 갖춰지지 않았다는 사실들을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이렇듯 항소를 하게된 과정과 항소심에서 판결을 뒤집기까지의 과정은 행정에서 꼭 막아야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주민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습니다.

가까이는 남구 울산역 앞, 멀리는 경기도 고양시의 러브호텔촌과 같이 행정에서 막아내지 못함으로써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주민들이 대책위를 구성하여 극한 투쟁까지 나섰던 사례와 비교해 볼 때 이번 북구청의 대응과 대법원 승소판결은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하겠습니다.

저의 신념과 소신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개인의 사유재산권 보호도 중요하지만 더 많은 공공의 이익과 이해관계가 충돌하면 공공의 이익을 우선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이번 소송의 경우 모텔 건축업자들이 '단합'하여 법적으로 아무런 결격사유가 없다고 주장했고, 법적으로 건축허가를 제한할 근거는 다소 부족했지만 상식적인 기준으로 보더라도 인근 주민들의 주거환경과 초 중학교 학생들의 교육환경을 크게 해칠 수 있으며, 상업지역이라고는 하나 아무런 기반시설도 갖춰지지 않은 곳에 숙박시설 건축허가를 마구 내주면 비 정상적인 도시 즉, 난 개발이 되기 때문에 제한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던 것입니다.

이를 인정해준 항소심 재판부와 상고를 기각한 대법원 재판부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17대 총선에서 드러난 국민의식의 변화처럼 가치판단도 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진취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발전이고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법적인 근거는 다소 부족하더라도 공공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구청의 진취적이고 상식적인 고집을 사법부 최고 재판부의 판결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