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정치/질고지칼럼

42. 청목회 공동저서 기고문

질고지놀이마당 2008. 7. 3. 17:49

이 글은 청목회 회원들이 공동으로 저술한 사례발표에 제출한 원고라서 분량이 좀 많습니다.

무룡산에 산불이 난 순간부터 진화작업 및 복구작업까지의 과정에 주민과 함께 헌수운동을 펼친 기록이라서 할 말이 참 많았나 봅니다. ^^*

 

  관리자 (2005-08-16 14:04:51, Hit : 477, Vote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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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목회 공동저서 기고문


산불 이전의 무룡산 모습과 산불 이후 흉하기 모습을 드러낸 무룡산

이번 질고지 칼럼은 청년시장·군수·구청장회가 발간한 ‘청년 지도자의 실험과 꿈’이라는 책에 소개된 이상범 구청장의 글 ‘시민의 힘으로 복구한 무룡산 산불 피해’를 게재합니다.
이 글에서는 산림 자원의 중요성과 전국적으로 모범이 된 시민 헌수운동, 그리고 미래의 자원, 산림에 대한 이청장님의 애정을 다시 한번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이미 소개된 질고지 칼럼이지만 재구성해 다시 한번 그 때의 느낌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편집자 주>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한 울산의 진산

작년 2월 14일(토) 연암동 주택가에서 발화한 불씨가 산으로 옮겨 붙으면서 무룡산 자락은 삽시간에 火魔(화마)에 휩싸였다.
소방헬기 다섯 대와 공무원 및 주민들이 나서서 진화작업을 벌였지만 초속 15m가 넘는 강풍 앞에 속수무책, 50여㏊가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무룡산은 울산의 진산으로서 그리 높지는 않지만(536m) 동해 바닷가에 우뚝 솟아 있어서 동해바다와 울산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일품인 산이다. 그런 까닭에 정상에는 현대판 봉화대라 할 수 있는 통신 기지와 울산지역 방송국 송신탑이 모두 모여 있다.
가수 오은정이 부른 '울산아리랑'의 노랫말이 "운무를 품에 안고 사랑 찾는 무룡산아..."로 시작될 만큼 무룡산은 평소 시민들이 즐겨 찾는 산으로서 해돋이 및 달맞이 장소로도 손꼽힌다. 특히 ‘무룡산에서 바라보는 공단 야경’은 울산12경에 속한다.


울산 12경에 속하는 무룡산에서 바라본 공단야경

무룡산은 서민들의 일상적인 삶이 배어있는 산이기도 하다. ‘용이 춤춘다’는 의미의 산 이름이 말해주듯이 신령함을 간직하고 있어서 예로부터 가뭄이 들면 백성들은 무룡산에 올라 기우제를 지내곤 했다. 사방으로 뻗어 내린 무룡산 능선이 주택가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편리한 접근성으로 인해 평소 수많은 시민들이 즐겨 오른다.
어느 곳에서 올라도 정상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마치 숲 터널처럼 30년에서 50년에 이르는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다. 그런 숲길이 한순간의 산불로 폐허나 다름없는 잿더미로 변한 것이다.

조연환 산림청장(왼쪽)의 특강이 있던 날, 광장에서...

산을 좋아하는 터라 산불이 난 그 날 아침에도 무룡산 중간지점인 매봉재(340m)에 까지 올라갔다 와서 출근을 했다. 산불이 나던 하루 전날엔(2월 13일) 산림청 차장님(현 조연환 청장)을 초청하여 '나무의 마음 숲의 노래'란 주제로 특강을 한 감동의 여운이 남아 있었던 탓에 이른 새벽에 만나는 나무들이 전에 없이 정겨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나무 이름을 불러주고 하나의 생명체로 대하면 달라진다는, 시인이기도 한 산림청 차장님의 강연을 떠올리면서 마주치는 나무들과 대화하듯이 ‘이 녀석 이름은 무엇이고 몇 살쯤 됐겠구나, 저 나무는 나보다 연상이겠군’ 생각하니 발걸음조차 얼마나 가뿐하던지. 마침 가랑비가 내리기에 이번 주말은 산불 걱정 안 해도 되겠다고 안심을 했던 터였는데 바로 그날 오후에 최악의 산불이 발생한 것이었다.

"나무들이 얼마나 뜨거웠을까...?"

점심시간에 일어난 산불 소식을 듣고 곧장 현장으로 달려가 보니 강풍을 타고 번지는 속도는 공포 그 자체였다. 산불이 조금이라도 더 번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직원들을 독려하여 이 골짜기 저 능선을 미친 듯이 헤매고 다녔지만 인력으로 산불을 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소방헬기 다섯 대가 쉴 틈 없이 물을 실어다 퍼붓지만 그 순간만 잠시 주춤할 뿐 금세 시뻘건 불기둥이 솟구치며 빠른 속도로 번져나갔다. 나중에는 정상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것이 그나마 최선이었다. 결국 탈만큼 타고나서야 기세가 꺾였다.
날이 바뀌어 아직도 연기가 군데군데 피어오르는 산을 올라보니 너무나 처참하게 불타버린 현장에 말문이 막혔다. 산불을 막지 못한 죄책감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강풍으로 삽시간에 산림은 잿더미가 되고...

저녁에 아내에게 그 심경을 이야기했더니 “산불 좀 났기로 뭘 그러느냐”는 반응이었다. 평소 아내와도 자주 오르던 숲길이라서 불탄 자리를 직접 가보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더니 내일 당장 가본다고 했다. 다음 날 저녁, 아내가 낮에 산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여보 나무들 불쌍해서 어떡해?"
"나무들이 얼마나 뜨거웠을까..."
아내의 표현은 누구라도 현장을 보면 자연스레 우러나는 느낌이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심정이 모성애로 더 지극하게 느껴졌으리라.

참회의 마음에서 출발한 헌수운동

이런 느낌, 나무와 숲에 참회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 무룡산 산불지역에 대한 복구계획이다. 평소 수많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울산의 진산에 큰불을 막지 못했으니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속죄하는 길은 전보다 더 나은 숲으로 다시 가꾸는 길 밖에 없는 일이었다. 다시 가꾸되 누가 어떻게 가꾸는 것인가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후 틈만 나면 불에 탄 무룡산에 올라 산길에서 만나는 시민들과 안타까움을 나누는 한편, 시민헌수운동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았다.
불이 난 뒤에도 무룡산을 찾는 시민들은 그만큼 무룡산을 사랑하고, 숲을 아끼는 사람들이었다. 한번 산에 오르면 평일에는 30∼50명, 주말과 휴일에는 100명 이상을 만나게 되는데 십중팔구는 어떤 계기만 마련된다면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반응이었다. 그러기를 한 달여 마침내 자신감을 갖고 시민헌수운동을 통해서 복구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화마가 휩쓸고 간 무룡산과 이후 자발적인 헌수운동이 펼쳐진 자리(LG진로동산)

그러나 이와 같은 시민헌수운동 구상에 대해 공무원들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시민헌수운동을 하기에는 준비할 일정도 부족했고, 몇 명 안 되는 산림공무원으로는 산불 뒤처리를 감당하기에도 벅찬 것이 사실이었다.
무엇보다도 막상 일을 벌이더라도 과연 돈을 낼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 관의 눈치 보느라 어쩔 수 없이 참여를 강요하는 일회성 이벤트가 되지 않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컸다. 하지만 나름대로 가능성에 대한 확신과 시민들 반응을 통해 자신감을 가졌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만은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굽힐 수 없었다.

민간이 중심이 되고 행정은 지원을 맡는 역할 분담

시간과 인력의 부족은 물론 시민헌수운동 경험도 없었으므로 실천계획을 두 가지로 나누어 마련했다. 첫째는 구청 내부적으로 헌수운동에 대한 협력과 지원체제를 만드는 것이었다. 우선 전산부서에서 산불 및 헌수운동 관련 미니 홈페이지를 별도로 구축하여 자료실과 시민 참여란을 만들었다.
홍보부서는 생생한 산불 자료화면과 현장사진을 찍어서 올리고, 각 부서별로 업무와 관련 있는 단체에 대해 헌수운동 홍보 및 참여를 조직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자치행정과에서 참가자 관리 및 회계처리를 도맡고 나서자 지원 체계는 확실히 갖춰졌다.
(헌수운동 미니홈페이지 : http://www.bukgu.ulsan.kr/kor/tree_mu/hunsu.htm)



다음으로 세운 대책은 ‘행정이 앞장서면 될 일도 안 된다’는 경험에 따라 민간 중심의 헌수운동 추진 기구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북구 관내 대부분의 자생단체 대표들과 지방의원들이 참여하는 '범시민 헌수운동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가 구성되었다.
주관은 북구청과 '울산생명의 숲(이하 생명의 숲)'에서 하되 대외 공식창구는 '생명의 숲'이 맡고 실무적인 지원은 북구청에서 맡았다.
특히 모금과 관련해서는 공동모금법 저촉 여부 및 비용 결산, 영수증 발급 등과 같은 문제가 있어서 고민이었는데 생명의 숲이 그 역할을 맡음으로써 대외 공신력도 높아지고, 모금법 관계는 물론 연말정산용 영수증까지 발급할 수 있어서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었다.

전문가 진단과 조언을 바탕으로 수종 선택

이러한 헌수운동을 위한 준비와 조직체계를 갖추는 한편, 산림부서에서는 실제 헌수운동에 필요한 실무적인 준비를 진행하였다. 산불이 난 곳은 최소 1~2년이 지난 후에 나무를 심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탄 자리가 너무나 참혹해서 등산로 좌우측만이라도 나무를 심기로 결정하고, 다섯 구간의 등산로를 각기 테마가 있는 산길로 만들기 위한 기본계획을 세웠다.
주변 경관 및 기후와 토양에 적합한 나무를 선택하기 위하여 산림청 산하의 '산림과학연구원' 연구진을 초청하였다. 현지답사를 토대로 산림전문가들이 권장한 나무 중에서 단풍나무 느티나무 산벚나무 이팝나무 산딸나무 등 다섯 수종을 우선 결정하였다.


전문가들의 조언으로 다양한 수종이 선택됐다.

몇 년생을 심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결정했다. 어린 묘목을 심으면 비용도 싸고 생존율이 높으나 성장이 느리고, 큰 묘목을 심으면 복구가 빠른 반면 생존율이 떨어지고 묘목 값이 비싸다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이런 장단점을 감안할 때 5년생 묘목이 적당했으나 묘목 값과 지주목 이름표 등 부대비용 까지 감안하면 한 그루당 2만원이 넘는 것이 고민이었다. 한 구좌에 2만원씩을 내는 것은 시민들에게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 금액을 많이 모으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무를 작은 것으로 하기도 뭣해서 고민 끝에 5년생 나무로 하되 한 구좌 당 1만원으로 하고 모자라는 금액은 복구예산으로 충당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해서 다섯 개의 등산로 4km에 걸쳐 약 4천5백 그루의 나무를 심는 시민헌수운동 계획이 완료됐다. 이제 본격적인 헌수운동을 통해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실제 기간은 3주 남짓. 과연 주민들이 동참하여 4천5백 그루의 나무가 모아질 것인지는 숙제였다. 나는 내심으로 자신이 있었지만 산림녹지 담당 직원들은 불안한 모습이었다. 후일담인데 산림 공무원들은 절반 정도만 모아지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관내 초등학교장 헌수운동 간담회 장면

헌수운동을 고집스레 추진한 책임이 있으므로 나 역시 지시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물건을 파는 세일즈맨처럼 조찬모임은 목사님들, 점심은 관내 교장선생님들, 저녁은 직능단체 대표들을 초청하는 식으로 관내 기업체 및 노동조합, 자생단체, 직능단체, 아파트 자치회 대표들과 연쇄적인 간담회 자리를 마련하여 시민헌수운동을 알리는데 주력했다.
독지가나 기업체에서 큰 돈을 내어 많은 금액을 모으는 것보다 1만원, 2만원씩 적은 돈을 내는 '개미군단'식 시민 참여가 중요함을 역설했다. 시민들이 자기 돈을 내어 나무를 직접 심고 가꾸는 것이야말로 숲에 대한 사랑이자 환경운동의 실천이며, 가장 효과적인 산불 방지 캠페인이라는 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헌수운동 현수막을 산불 현장 및 등산로 입구마다 붙이고, 리플릿도 등산로 입구에서 직접 나누어 주는 방식을 택했다. 이러한 전통적 방식과 병행하여 미니 홈페이지도 생생한 자료사진을 바탕으로 짜임새 있게 구성하였다. 마침내 신청을 받기 시작하여 하루 이틀... 그러나 주로 공무원들이 참여할 뿐 접수창구는 한산했다.
1주일이 되도록 일반 시민들의 붐이 조성되지 않아서 실패로 끝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일말의 불안감도 생겼다. 그러나 1주일이 지나면서 헌수운동 홈페이지에는 접수 신청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2주가 채 되기 전에 목표한 수량을 넘어서자 주최 측으로서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개미군단'의 자발적 참여로 '즐거운 비명'

이때부터 헌수운동은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다. 나무 심을 구간이 턱없이 부족해서 당초계획보다 두 배로 늘리기로 하고 긴급하게 구덩이 파는 작업과 묘목 확보에 들어갔다. 하지만 붐이 형성된 헌수대열 참가는 봇물처럼 밀려들어서 며칠 만에 목표치의 두 배를 훌쩍 넘기더니 곧 1만 구좌를 넘어섰다.
나무 심을 구간을 무작정 늘릴 수도 없고, 식목일을 며칠 앞둔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묘목을 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어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헌수운동에 참가한 시민들에게 돈은 받아 놓고 막상 심을 나무를 배정해 주지 못하는 것을 걱정해야 하니까 행복한 고민이긴 하지만 잘못하면 모처럼 형성된 시민참여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게 될 것이므로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기업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헌수운동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나무를 심어야 할 날짜가 다가오면서 최대 고민은 나무 심을 구덩이와 묘목을 더 이상 추가하기 어렵기 때문에 신청한 수량만큼 배정하지 못하고 축소 배정하는 문제였다. 이미 헌수목 수량은 1만 2천주를 넘어서서 이런 추세라면 당초 목표의 3배를 넘기는 것은 시간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연일 대책회의를 갖고 고심 끝에 일단 개인 및 아파트와 자생단체 단위 참가자를 우선적으로 배정하고, 공무원 및 기업체 참가자는 직접 심으러 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후 순위로 미루기로 하였다. 예를 들면 1백 구좌를 신청하였더라도 나무를 직접 심으러 온 인원수만큼만 배정해 주고, 헌수만 한 경우는 헌수동산에 대표나무 한 그루만 심고, 단체 명찰을 달아주는 것으로 양해를 구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시민헌수운동은 예상 밖의 '대박'을 터트린 가운데 일주일간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나무심기 작업을 진행했다. 구청에서 나무 심을 구덩이를 미리 파놓고 묘목과 도구를 준비해 두면 시민들은 편리한 날에 와서 자신이 원하는 수종의 나무를 심고 이름표를 써서 달도록 했다. 단체나 아파트의 경우 독자적인 ‘헌수동산’으로 가꾸어 갈 수 있도록 일정한 구역을 분양하듯 지정해 줌으로써 참여의식과 경쟁심을 갖도록 하였다. 그 결과 인근의 몇 아파트 단지는 전체 세대수의 절반 이상이 헌수운동에 참여하였다.


아파트 주민들의 헌수운동 참여는 적극적으로 이어졌다(벽산아파트 주민들의 헌수 각오 장면

이들 아파트에서는 자치회를 중심으로 부녀회 통반장들이 나서서 적극 홍보를 하고 관리사무소에서 접수신청을 받아서 일괄 접수를 하는 등 조직적으로 참여하였으며, 나무를 심는 날은 도시락과 간식을 준비하여 아파트 주민들 참여를 이끌어 내었다.
이러한 아파트 주민들의 헌수운동 참여와 나무심기는 가을에 있었던 거름주기 행사까지 적극적으로 이어졌다. 어느 아파트 주민들은 자신들이 나무를 심은 장소에 아파트 이름을 새긴 헌수동산 비석을 세웠을 정도로 참여열기가 뜨거웠다.
시민헌수운동은 이처럼 삭막했던 아파트 주민들에게 공동체 의식 및 행정에 대한 주민 참여를 높이는데 한몫을 단단히 하였다.

검게 타버린 산등성이를 수놓은 원색의 물결

마침내 나무심기 작업이 시작되자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연인원 수천 명이 매일같이 원색의 물결을 이루었다. 산등성이마다 나무를 나르는 사람과 심는 사람, 정성스레 이름표를 써 붙이는 사람들의 물결로 마치 산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도 부모를 따라 온 아이들도 새로운 희망을 심는다는 뿌듯함으로 충만해 있었다. 누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산에까지 더운물을 끓여 와서 따뜻한 차를 대접하는 자원봉사자들도 있었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참여 속에 봄철 나무심기는 일단락되었지만 그걸로 헌수운동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줄이고 줄여서 8천여 그루의 나무를 심었는데 나무란 심는다고 그냥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무를 심는 것보다 더 큰 어려움은 심은 나무를 제대로 살리느냐 하는 문제였다.
서툴게 심은 나무는 재손질이 필요했으며, 지주목을 세우고 특히 산불이 난 지역은 가파르고 척박한 토질도 많아서 가뭄에 취약하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만약 시민 헌수운동으로 심은 나무들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원성이 빗발칠 것이었다.

나무를 심고 4월 하순까지 약 3주간에 걸쳐 봄 가뭄이 심했다. 등산로에 푸석푸석 먼지가 날 정도의 가뭄이 계속되자 입술이 바싹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매일같이 공익요원들이 동원되어 물차로 물을 실어 날랐지만 타는 가뭄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거의 매일아침 출근 전에 산에 올라 나무를 살펴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아예 전지가위를 들고 올라가서 어둠이 내릴 때까지 가지치기 작업을 하였다.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가지를 잘라줘야 가뭄을 덜 탄다니까 긴 가지를 자르거나 많은 가지를 솎아주는 것이었는데 차차 해 보니까 수형을 보는 안목이 생기는 것 같았다.

가뭄과의 싸움과 가지치기

이렇게 봄부터 여름까지 계속된 가지치기 작업으로 손바닥이 부르트고 굳은살이 박혀갔지만 새 잎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나무를 보는 것은 더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한편으로 말라 들어가는 나무를 보는 마음은 마치 자식이 잘못되는 심정이었다.


생태계 복원은 놀랄만하다. 이듬해 무룡산은 새생명으로 태어나고 있다(가을 무룡산 모습)

"작물과 나무는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실감나는 기간이었다. 이런 정성이 통한 탓인지 나무 종류에 따라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가을 육림의 날 시점에서 점검한 생존율은 97% 이상으로서 매우 경이적인 수치였다. 봄이 되어야 좀 더 안심이 되겠지만 이러한 생존율은 전문가들도 감탄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나무를 심은 구간이 산등성이라서 바람을 많이 타다보니까 가을이 채 되기도 전에 나뭇잎이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나무가 모두 말라죽은 것으로 오인한 어느 시민이 방송사에 제보를 했다고 한다. 애를 쓰고 산에 오른 카메라기자가 나무줄기를 살펴보니 모두 파랗게 살아 있음을 알고 그동안 나무 살리느라 얼마나 애썼는지 알겠다며 웃었다.

푸르게, 푸르게...
그러나 언론에서 우호적인 기사를 써 준 것만은 아니다. 식목일 아침 모 방송사에서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오보를 내 보내서 헌수운동에 찬물을 끼얹기도 하였다. 소나무는 불에 취약해서 불길만 지나가도 대개 죽어버린다.
즉 소나무 잎이 화상을 입으면 붉게 마르면서 죽어버린다. 그런데 방송기자는 산불로 말라 죽어가는 어린 소나무를 비추면서 기후와 토양을 무시한 채 나무를 심고 사후관리를 제대로 안 해서 말라죽었다고 보도한 것이었다.
식목일 아침에 전국 방송으로 내 보낸 그 기사 때문에 북구청 직원들은 한동안 곤욕을 치러야 했다. 방송의 영향은 대단해서 “심은 나무도 관리를 못하면서 시민헌수운동은 왜하냐”는 질타에서부터 “불난 자리에 바로 나무를 심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백가쟁명 (百家爭鳴)식 항의가 빗발쳤다.
지방으로 발령 받은 지 며칠 되지 않아 현지 실정을 모르는 기자의 어처구니없는 무지(?)에 따른 헤프닝이었지만 구름처럼 이어지는 시민들의 헌수운동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되었다.

기록을 남기기 위한 처절한 노력, 완벽한 팀워크로 효과적인 홍보 활동

한편, 산불과 이를 복구하기 위한 기록을 꼼꼼히 남기는 작업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실은 산불 진화작업을 하느라 정신없이 산을 누비다가 구청 홍보담당 직원을 만나니까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불끄기 작업은 기자 한 명 더 있으나 없으나 표가 나지 않지만 기록을 남기는 작업은 기자가 아니고는 안 되는 일 아닌가!
이때부터 이들(사진 및 편집 담당)은 새로운 ‘사명’을 받고 이후 진행된 모든 기록을 충실히 담게 된다. 아마추어 사진작가들과 계절에 따라 변해가는 산불지역의 변화와 헌수운동 과정을 사진 및 영상으로 담았다.


자체적으로 제작한 동영상 시사회를 직원들이 보고있는 장면.


명예기자, 사진작가 등이 참여 무룡산 산불 현장 기록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새 나무를 심기 위해 일부구간의 나무를 베어내는 장면과 아름드리 그루터기를 설명하는 장면에서 눈시울이 뜨겁다. 희망을 심는다며 정성스레 나무를 심고 이름표에 입맞춤을 하는 시민의 모습에서도 마찬가지다. 산불이 났을 때 흘린 참회의 눈물이 감동의 눈물로 변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지금 북구청 홈페이지에는 산불 화보집과 함께 '아 무룡산'이라는 동영상 자료도 올려져 있다.
'아! 무룡산' 영상자료는 프로가 아닌 북구청 직원들 스스로의 힘으로 영상자료를 모으고 편집한 것으로서 몇 번을 보았어도 다시 보면 가슴이 뭉클하다. 그리고 산불이 났을 때부터 헌수운동 추진 과정에서 느낌을 정리한 몇 꼭지의 글이 북구전자신문(http://hopebukgu.ulsan.kr) 및 개인 홈페이지(http://www.leesangbum.net) ‘질고지 칼럼’란에 올려져 있다.

시민헌수운동의 성과 및 이후 계획

북구청에서 진행한 시민 헌수운동에 시민들의 폭발적인 동참이 이루어진 것은 평소 자주 오르던 숲을 잃은 주민들의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흐트러지기 전에 헌수운동이라는 동기부여가 정서적으로나 시기적으로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무룡산이 갖는 상징성과 치밀한 사업계획도 한 몫을 했다. 인터넷을 통해 산불 피해의 생생한 피해 현장을 전달하고 참가 신청이나 헌수금 입금도 온라인을 통해 편리하게 처리되도록 함으로써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확대 재생산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헌수운동 참가자는 원할 경우 직접 나무를 심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공원묘지를 관리하듯 수종에 따라 구역과 일련번호를 지정하여 헌수자 이름표를 달아주고, 헌수자에게는 감사 인사장과 함께 소득 공제가 가능한 연말 정산 영수증 및 나무 위치를 통보해 줌으로써 자기 나무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 볼 수 있도록 철저한 사후관리체계를 갖추었다.

헌수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은 나무를 심자는 취지도 공감이 가지만 자신이 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있어서 믿음이 간다고 했다. 그동안 수재의연금이나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내더라도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가 없고 공개한 적도 없어서 항상 불만이었는데 모든 과정을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진행하니까 좋다는 것이었다.
이렇듯 사업의 취지에 대한 공감을 얻을 수 있고, 관 주도가 아닌 민간 중심으로 추진하면서 추진 과정 및 결과까지 투명하게 집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평소 신뢰를 바탕으로 어떤 계기만 제대로 만들어지면 시민들은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더이상 산불은 없어야 한다. 무룡산에서 바라본 북구 일원

헌수운동, 당대로 끝나지 않는다

지난 여름, 폐허나 다름없던 잿더미가 불과 몇 달 만에 파랗게 뒤덮은 싸리나무 군락과 이름 모를 풀꽃들을 보면서 자연 스스로의 치유력에 감탄을 한 적이 있다. 인공적인 복구를 하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더 나은 복구라는 주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일부구간은 인공 조림을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보존하여 자연적으로 복구되는 과정을 관찰하도록 준비하고 있다.

죽은 나무들을 다 베어내지 않고 풍화작용에 따라 소멸될 때까지 놔둠으로써 산불 피해를 증언시키려고 한다. 죽은 나무는 얼마간 지나면 고사목이 되어 또 하나의 장관을 연출할 것이며, 썩어 거름이 되면 자라나는 어린 나무에게 자양분을 공급할 것이다. 이러한 자리바꿈의 과정도 자연의 섭리로서 생생한 자연학습장이 될 것이다.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짧게는 몇 백년에서 길게는 천년을 바라보는 사업이다.
따라서 북구청에서는 인공조림을 하더라도 마구잡이로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 조언을 토대로 진행하였으며, 추가로 심은 나무들도 산수유, 노각나무, 참나무 등 경관 조림용 활엽수로 정했다. 그리고 헌수운동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진행하면서 산불지역뿐만 아니라 공원이나 녹지 공간 및 등산로마다 시민들이 직접 나무를 심고 가꾸도록 할 계획이다.
시민헌수운동은 짧은 기간동안에 흔치않은 성과를 남겼지만 아직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미완이 아닌 완전한 성공사례로 만들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다짐으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