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정치/질고지칼럼

43. 통일로 가는 오작교- 개성 시범관광(2005. 9)

질고지놀이마당 2008. 7. 3. 17:52

  관리자 (2005-09-06 11:56:51, Hit : 608, Vote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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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로 가는 오작교 - 마침내 열린 개성관광(1)


머슴골 회원들과 박연폭포 앞에서

벅찬 가슴을 안고 다녀 온 첫 북한방문

지난 9월 2일 벅찬 가슴을 안고 개성 방문을 다녀왔습니다.
한 조국이요, 한 민족임에도 외세에 의해 남과 북으로 분단된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총부리를 겨누며, 금단의 땅이었던 북한을 방문한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이산가족의 상봉과 고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어가던 장면을 방송으로 지켜보면서 느꼈던 감격이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만남인줄만 알았는데 마침내 나에게도 직접 북한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은 커다란 행운입니다.

철의 장막처럼 굳게 막혀있던 휴전선에 평화와 공동 번영을 지향하는 문이 열리고 도로와 철도가 연결되어 마침내 남측의 손님을 맞기 시작한 것은 앞으로의 교류협력을 가속화 시킬 것입니다.
잘 닦여진 도로를 제 속도로 달린다면 휴전선에서 개성까지 불과 10분 남짓이면 닿을 거리인 개성은 그 이름이 의미하듯 앞으로 남과 북을 연결하는 가장 넓고 활짝 열린 관문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저에게 찾아 온 이 행운은 머슴골 회원이었기에 남보다 일찍 찾아 왔습니다.
또한 주민들께서 저를 단체장으로 뽑아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비록 시범관광이기는 하지만 업무의 연장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구민들에게 출장보고서를 쓰는 마음으로 보고 느낀 바를 세 차례로 나누어 소개합니다.

이른 새벽 개성으로 출발준비 중인 경복궁 주차장의 모습

빗장 열리니 이웃동네 가는듯한 개성 길

이른 새벽부터 경복궁 주차장에 모이는 참가자들 표정은 매우 상기되어 보인다.
어스름한 여명아래 윤곽이 드러나는 경복궁 지붕을 보노라니 조선왕조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역사의 현장에 와 있다는 느낌에 마음이 숙연해 진다.
이번 방문은 가을부터의 본격적인 일반관광을 앞두고 3차례 실시하는 시범관광차원이다.
그런데 2차 시범관광단 참가자만 약 500명이 넘는다니 예상했던 것보다 참가단 규모가 매우 크다.

이윽고 6시 조금 넘어 출발.


현대 아산측이 마련한 개성-서울 행 버스

이른 새벽이라 차 막힘도 없는데다 탁 트인 자유로를 거침없이 달려서 임진강 자유의 다리까지 순식간이다.
도라 전망대 옆의 출입국 관리소(CIQ)까지 불과 한 시간 남짓해서 도착했다.
북으로 가는 도로는 4차선으로 시원스레 뚫렸지만 철조망과 이중 삼중의 장애물로 가로막혀 있는 것이 분단 조국의 현실을 말해준다.

임시로 운영중인 출입국 관리소 주변에는 많은 토목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출입국 관리동 신축 및 철도 개통에 대비한 도라산 역사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외국 출국과 똑같은 절차의 출국수속을 거친 다음 다시 탑승하여 남방한계선 철조망을 지나 비무장지대로 들어서니 일순 긴장감이 흐른다.

휴전선 남측(북방한계선)에 있는 임시 출입국 관리사무소.

그러나 창밖에 보이는 풍경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롭기만 하다.
이 장면들도 카메라에 담고 싶지만 아쉽게도 군사시설은 물론, 버스로 이동 중에 연도의 모습도 촬영을 허용하지 않아서 마음에만 담을 수밖에 없었다.

'반갑습네다' 미소 띤 여성 판매원들의 손님맞이

마침내 휴전선!
우리 일행을 에스코트 하던 남측 차량이 멈추고 북측에서 대기한 차량과 군인들로 바뀌면서 실내 분위기도 바뀌는 느낌이다.
버스 안으로 군인 두 명이 올라와서 인원수를 확인하는데 그리 생각해서 그런지 눈초리가 매섭게 느껴진다.

마음 같아서는 박수라도 쳐서 환영의 표시를 하면 분위기가 부드럽지 않을까 싶은데 안내를 맡은 현대아산 직원이 그건 아직 시기상조란다.
비무장지대는 각기 2km 씩이니까 천천히 달려도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다.
그 거리를 바로 통과하기까지 얼마나 긴 세월을 기다려 왔으며, 먼 길을 돌아 다녔던가!

북측 지역(남방한계선)에 이르러 역시 가건물인 출입국 관리소에서 입국수속.
출입국 수속은 양측 다 간단한 편이었다.
처음 만나는 북측 사람들이 군인이거나 출입국 관리를 맡은 사람들이어서 다소 딱딱한 느낌을 주었는데 이는 서로가 긴장되어서 더욱 그러했으리라.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가자 우릴 기다리고 있는 것은 기념품 매장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판매원 아가씨들이다.

얼굴도 예쁘지만 얼굴가득 웃음을 짓고 있어서 긴장했던 마음을 확 풀어준다.
매장이래야 임시 천막을 펴고 차린, 말 그대로의 임시매장인 셈인데 나중에 설명을 들으니 규모는 작아도 파는 물건은 품질과 가격을 믿을 수 있는 면세점 개념이라고 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미소 띤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는 북측 판매원

입국 수속을 끝내고 출발하는 버스에는 북측에서 파견된 안내원 두 명씩이 탑승하여 돌아올 때까지 동행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남측 주민들을 자주 접촉한 탓인지 인사를 하면서 농담도 섞는 등 부드러움과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일행은 큰 박수로 환대를 표시했다.

오랜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개성공업지구 개발

입국 수속을 마친 버스가 속도를 낼 짬도 없이 바로 이어지는 곳은 시작과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광활한 공사현장이다.
바로 개성공업단지를 조성중이라고 하는데 전체 부지면적이 무려 2천만평이나 된다고 했다.
그중 1백만평을 시범단지로 조성했는데 이미 입주한 기업에서는 생산 작업을 하고 있다니 우리가 모르는 사이 남북간 교류협력은 여러 분야에서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었다.

게다가 저 광활한 평야지대가 공업지구로 변모하는 것이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현대아산의 기술진과 장비로 진행되고 있는 공사현장은 더 이상 금단의 땅이 아니었다.
조국 근대화의 시발이 되었던 울산공단 조성이 바로 저와 같았으리라!
개성은 이제 기나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북측의 자력갱생을 위한 전초기지이자 남북 교류협력의 상징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한창 개발 중인 개성공업지구 건설 현장

이미 조성을 끝낸 시범단지에는 눈에 익숙한 은행, 병원, 매장과 토지개발공사, 한전 기관과 일부 공장이 입주하여 가동 중에 있다.
매일 서울에서 출퇴근 하거나 북한에 입국하는 남측 기술진이 200~300명 수준에 이른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곳에 상주하는 현대아산 직원들은 방문단 일행이 지나치는 동안 일손을 멈추고 열렬한 환영을 표시해 주었다.
개성 공업지구 건설 현장 견학은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탄 채로 한바퀴 돌아보는 것으로 대신하였으며, 금지됐던 사진촬영이 허용되기는 했지만 달리는 버스 안이라 모습을 제대로 담을 수는 없었다.

공업지구 조성지역이 끝나는 지점이 곧 개성시내 외곽지역이다.
여기서부터 보이는 촌락이며, 건물들, 그리고 주민들이야말로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북한의 모습이라서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무두들 시선을 창밖을 주시한다.

아, 그런데 보이는 사람들마다 손을 흔들며 환영의 표시를 하고 있지 않은가!
60년 분단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어린시절 자랐던 고향땅을 방문하듯 설렘과 반가움에 가슴이 뭉클하다.
마음 같아서는 차를 세우고 우르르 달려가 얼싸안고 싶지만 감상적인 기분과 현실은 아직 한참 멀리 있었으니 그 이야기는 뒤에 따로 소개해야 하겠다.

첫 방문지 고려 박물관(고려 성균관)

차량이 개성시내로 들어서자 고려의 도읍지였던 역사유적 도시답게 고풍스러움을 풍긴다.
화려함은 아니어도 깨끗한 느낌의 시가지를 오가는 행인들과 어린 학생들의 모습에서 개성시민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었다.

남측에서 온 긴 차량행렬은 평소 구경하기 어려운 구경거리가 되기에 족했으리라.
동네 어귀 골목길에서, 혹은 아파트 창 너머로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거나 우리가 손을 흔들면 같이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에서 더 이상 긴장감은 사라지고 없었다.
처음 방문지는 고려박물관이었는데 주차장에 들어서자 역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성 판매원들이 손을 흔들며 남측 손님들을  반갑게 맞는다.

고려박물관 안내도

금강산 관광을 다녀온 분들의 말에 의하면 이러한 개성시민들의 태도는 매우 대조적이라고 한다.
금강산관광에서는 안내원이나 종사자 외에는 일반 주민들을 접하기도 어렵고, 설사 먼발치로 보더라도 시선을 주지 않거나 무표정했다고 하는데 개성시민들의 밝고 적극적인 표정은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충분했다.

고려박물관은 고려시대 성균관이었던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성균관은 조선시대의 대학인 줄 알았는데 고려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이었음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고려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이던 국자감(992년 창설)이 1089년에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고 1310년에 성균관으로 개칭했다고 하며, 원 건물이 임진왜란 때 불타 1602~1610년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고려박물관 건물은 400년 역사를 간직한 고 건축물인 셈이다.
성균관의 정문격인 외삼문을 들어서자 수령 500년이 넘은 은행나무와 450년 넘은 느티나무 고목이 우람하게 서 있는데 각각 천연기념물 386호와 381호로 지정되어 있었다.
전통 한옥으로 지어진 건물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보존상태는 매우 양호하였으며, 명륜당과 대성전이 중심을 이룬다.

외삼문 안 쪽의 고목들과 명륜당의 모습

이곳 고려성균관은 1988년에 시내에 있던 박물관을 옮겨왔다고 하는데 1,000여점의 고려시대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고려박물관에는 4개의 전시관과 야외전시장이 있는데 청자봉황구름무늬박이대접, 청자학꽃무늬박이접시, 불일사 5층탑내의 5층과 9층짜리 동탑, 청자접시, 청자보시기 등의 국보유물이 있으며,  야외에는 주로 석탑과 비석, 석등이 있다.

하지만 5백명이 넘는 인원이 동시에 한정된 시간에 살펴보려니 유물 하나하나를 제대로 살펴보기는 불가능하고 주마간산 격이라서 설명하는 안내원에 대한 예의가 아니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분단이후 북한 방문길이 또 하나 열리는 역사의 현장에 참가했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감동이 워낙 크기에 전공분야가 아닌 입장에서는 역사유물을 제대로 보고 느끼는 것을 기대하기는 무리이지 싶다.

야외 전시장에는 석탑과 비석, 석등 등이 있었는데 헌화사 7층탑, 헌화사비, 불일사 5층탑 등 국보유적 외에도 흥국사탑, 개국사 돌등 등이 천년 세월을 넘기고도 양호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탑들이 원래의 자리에서 원형대로 보존되지 않고 박물관으로 옮겨와 있다는 점이었다.

헌화사 7층 석탑과 헌화사비

불일사 5층 석탑

흥국사탑과 개국사 석등

경내는 물론 우리 일행이 방문하는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우리나라 꽃인 무궁화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 흐르는 노래는 가수 '김원중씨가 부른 '직녀에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