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정치/질고지칼럼

45. 통일로가는 오작교 - 마침내 열린 개성관광(2)

질고지놀이마당 2008. 7. 3. 18:00

머슴골 회원님들과 함께 다녀 온 개성관광은 개인적으로는 커다란 행운이었습니다.

언젠가는 만나서 합쳐야 할 민족으로서 분단으로 인한 아픔을 직접 목격하는 기회이기도 했구요.

 

 

  

 

 

  관리자 (2005-09-10 11:54:26, Hit : 479, Vote : 52
 sunjuk_2.jpg (534.2 KB), Download : 12
 통일로 가는 오작교 - 마침내 열린 개성관광(2)


충절의 상징, 선죽교

앞에 첫글을 올리고 나서 태풍 '나비' 때문에 두번째 글이 좀 늦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북측이 자랑(?)하는 역사 유적지 사진과 이를 돌아 본 소감입니다.

고려박물관을 둘러 본 다음 방문지는 충절의 상징으로 추앙받는 포은 정몽주 선생께서 피살당한 역사인 현장인 선죽교였다.
설렘과 흥분, 직감적으로 사진을 제대로 찍으려면 일행이 쏟아져 내리기 전에 먼저 현장에 도착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차가 서자마자 체면불구 카메라를 들고 서둘렀다.

예측한 대로 잠시 후에는 그야말로 역사의 현장을 담으려는 인파로 인해 서로가 서로에게 방해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위의 조용한 선죽교 사진을 담을 수 있었던 것은 먼저 서둘러 달려간 덕분이다.

그러나 선죽교의 규모나 형태는 기대했던 것보다 작았고, 밑으로 흐르는 물도 탁하기 그지 없어 조금은 실망(?)이다.
그러나 역사적 의의는 규모의 크고 작음에 있지 않는 법,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세심히 살피고 카메라에 담고 또 담았다.

혹자들이 궁금해 하는 붉은 핏자국이 아직도 남아있는가 하는 점도 유념해 보았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6백년 동안 핏자국이 보존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세월의 이끼를 덮어 쓴 돌다리에는 붉은 빛이 감도는 듯 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철분이 있어서 산화작용에 의한 것으로 짐작된다.

선죽교 옆에는 당대의 명필 한석봉이 직접 썼다는 선죽교(善竹橋)라는 비문이 선명한 비석과 하마비, 성인비 등이 서 있는데 모두 포은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한 비석이라 한다.

조선 국왕이 세운 표충비

선죽교 맞은편에 큰 길을 사이에 두고 비각이 세워져 있는데 이 건물 안에 거북 잔등위에 세워진 두개의 큰 비석이 있는데 왼편 것은 영조(1740년), 오른편 것은 고종(1892년)이 세운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비석을 보호하기 위한 비각이 날렵하게 지어져 있다.
고려를 쓰러뜨리고 세워진 조선의 국왕이 고려조 충신을 기리는 비석을 세웠다는 것이 조금은 의아하지만 내용인즉 백성들에게 '충성'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해석된다.

두개의 비석은 132년의 시차를 두고 세워졌지만 건축양식은 흡사한데 지금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거북이 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어서 거북이 코끝이 반질반질 때가 묻어 있었다.
체제와 이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뿌리 깊은 남아선호 사상과 비과학적인 민간신앙과 같은 풍습은 같구나 싶어 웃음을 자아낸다.


아니 어쩌면 유구한 역사를 지닌 배달민족으로서 긴 역사의 눈으로 본다면 60년 분단의 세월은 찰나에 불과할 것이기에 훨씬 더 많은 동질성이 유지되고 있을 것이다.

정몽주선생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숭양서원

숭양서원 역시 정몽주 선생의 충절을 기리는 곳으로서 선죽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선죽동이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정몽주 선생이 살았던 유서 깊은 곳으로서 1573년에 서원으로 고쳐 세웠으며, 문충당이라 부르다가 1575년에 '숭양서원'이란 이름을 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서원에 들어서는 초입 우측 바위에 몇 개의 비석이 서 있어서 서원에 들어서는 방문객의 마음을 가다듬게 한다.
서원은 아담한 규모인데 맨 뒤쪽 높은 건물에 제사를 모시는 위패와 정몽주선생의 영정이 모셔있다.

자남산 여관에서의 오찬

오전 관광일정을 마치고 점심식사는 일행이 많은 관계로 세 팀으로 나뉘었다.
우리 머슴골 일행이 간 곳은 자남산 여관이었다.
이곳에서도 직원들의 반가운 손님맞이 인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넓은 연회장에 원탁으로 마련된 식탁에 차려진 음식은 풍성한 메뉴에 길들여진 남측 손님들 눈으로 보면 소박할 정도의 메뉴다.
하지만 먹는 것에 그다지 신경 쓸 입장도 아니고, 정갈한 음식을 맛나게 먹었다.

무엇보다도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식사를 도와주는 여직원들(접대원이라 부름)의 친절함과 상냥한 미소에 만족할 따름이다.

확실히 개성시민들의 남측 손님맞이는 나무랄 데가 없다.
어느 테이블에서는 식사를 마치고 접대원에게 노래를 청하니까 사양하지 않고 '반갑습니다'노래를 불러준다.

내친김에 우리 부부와 함께 사진 찍기를 청하자 아내 손을 꼬옥 잡고 흔쾌하게 응해준다.
박수와 환호가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이렇게 식사시간은 즐거움과 기쁨으로 민족이 하나 됨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 다음 글에서 박연폭포 탐방 및 북한을 다녀온 소감을 마무리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