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정치/질고지칼럼

48. 숨막히는 일상으로부터의 자유를 찾아서

질고지놀이마당 2008. 7. 9. 14:27

돌아보면 지금처럼 내가 역마살에 가까울 정도로 산행에 푹 빠지게 된 시점은 이 때부터로 보입니다.

(항소심에서는 구청장 직무정지가 풀려 복귀할 것이라는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 2006년 2월 초순의 항소심 기각판결)

 

물론, 전에부터 등산이 취미생활의 한 영역을 차지하기는 했었지만 고작해야 1년에 서너번 갈까 말까 했을 정도로 시간을 내기 어려웠으니까요.

이후로는 주말이면 거의 예외없이 산으로 향했습니다.

야간산행, 눈쌓인 심설산행을 가리지 않고... 그리고 마라톤 풀코스에도 도전할 목표를 세웠던 시기입니다.

한참 의욕적으로 일을 해야 할 열정을 쏟을 곳을 찾아서..

 

 

 

 

  관리자 (2006-02-17 13:49:23, Hit : 440, Vote :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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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꽉 짜여진, 숨 막히는 일상으로부터의 자유를 찾아서



바쁜 일정에 매여 사는 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쯤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으로 그칠 뿐,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 여건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 ‘자유로운 나만의 시간’에 대한 갈망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특히, 공인으로 생활하면서 단 하루도 편히 쉴 수 없을 만큼 꽉 짜여진 일정을 소화하며 살아 온 3년 반의 세월동안은 더욱 그러했다.
5일간의 자유산행은 이처럼 의식 혹은 무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던 갈망이 현실조건과 맞아 떨어진 결과인 셈이다.



항소심 재판 결과는 남은 임기동안 직무정지는 물론, 이후 재출마에 대한 꿈도 접어야 하는 것이 누가 보더라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마음 각오를 단단히 한다고 했지만 한편으로 항소심에 대한 희망도 컸던만큼 눈앞에 닥친 현실을 감내하기는 쉽지 않았다.

왜 내 앞길에는 이다지도 장애가 많은 것인지?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단 한번도 순탄한 길을 걸어오지 못했는데 아직도 계속되는 시련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전생의 업인가, 내 자신 저지른 인과응보인가.
아니면 더 긴히 쓰고자 하는 연단의 과정인가...



어쨌든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운명 혹은 숙명이라면 담담히 받아 들여야 할 일이다.
당내 경선도 미련 없이 던져야 하는데 그 마저도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조건, 그러다보니 한편에서는 사퇴하지 않음을 욕심과 집착이라고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항소심 결과만으로도 가슴 아픈데
각박하고 몰인정한 세상인심은 마음의 상처를 들쑤시는 것 같았다.
내 마음의 욕심과 집착 다 던지고 깃털처럼 가볍게 비워야지 생각하면서도 그리 쉽지가 않았다.

아직 당내 경선 후보로 남아 있었던 지난 7일은 그러니까 불출마 및 경선후보 사퇴발표 하루 전날로서 후보자 정견발표 및 토론회가 있던 날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정견발표나 토론회를 준비하지 않고 무작정 산으로 떠났다.



마침 눈을 하얗게 뒤집어 쓴 ‘영남알프스’는 멀리 가는 수고를 하지 않고도 대 자연의 품에 흠씬 빠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기 충분했다.

[혼자 떠나는 홀가분함의 자유]

대개는 혼자 떠남을 걱정하지만 떠나 본 사람은 안다.
그 홀가분함과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는 해방감의 자유로움을.

혼자임으로 인한 불편과 혹시라도 있을 만약의 경우에 대한 위험부담이 없지 않지만
그보다는 혼자이기에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이 훨씬 크기에 주저 없이 나설 수 있었다.

어디로 가든
가다가 쉬고 싶으면 쉬고 뛰고 싶으면 뛰어도 된다.
이 방향이 아니다 싶으면 즉석에서 코스를 바꾸어도 그만인
그야말로 모든 것을 내맘대로 결정해도 되는 그 자유로움을 어디다 비길 것인가!

산을 낮에만 걸으라는 법도 없다.
마음 내키는 대로 휘영청 밝은 달빛을 받으며 높고 험한 산길을 걸어 본적이 있는가?
그것도 아직 겨울이 채 가시지 않아 춥고 눈 쌓인 암릉 길을 오롯이 홀로...
위험하고 무섭다는 생각부터 가지면 갈 수 없는 길이다.



도전하지 않는다면 실패 할 일이 없지만 성취도 없지 않은가!.
며칠 뒤 정월 대보름 바로 다음 날 다시 찾은 영축산에서 시살등으로의 능선길 야간 산행은 나 자신도 좀 걱정되었으나 막상 걸어보니 그 기분은 겪어보지 않고는 느끼지 못할 희열이었다.

그렇게 며칠간의 일탈은 대 자연 속에서 마음껏 자유를 느끼는 그러한 시간이었다.
대 자연은 넓고도 넉넉함으로 언제 어디서든 나를 품어 주었고
나 또한 대 자연에 나를 의탁하여 위로와 안식,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대 자연에서 얻는 위로와 안식 그리고 교훈]

왜 산에 오르는가?
땀 흘려 힘들게 정상에 오르지만 오른 뒤에는 반드시 내려와야 한다.
힘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평지도 있다.
다른 산을 다시 오르려면 대개는 내려왔다가 다시 준비해서 올라야 한다.

예외적으로 종주개념의 능선길은 편하지만 그 역시 언제까지 내려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더 많은 준비와 힘을 비축해서 나서야 하는 길이다.
온갖 상념으로 가득차서 머리가 복잡하다가도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하는 힘들고 가파른 길, 위험한 길에 다다르면 어느새 모든 잡념은 사라져 버린다.



그 여정에서 스쳐가는 사람과 자연
이름모를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바람에 나뒹구는 낙엽
발길에 채이는 돌멩이 하나도 의미없는 존재는 없다고 했거늘...
나의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며 내 앞에 주어진 시련도 그만한 원인과 의미가 있을 것임을 생각한다.

눈덮인 하얀세상이 보기에는 깨끗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저 속까지 깨끗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인간이 버린 쓰레기도 있고 더러움도 있다.
또한 저 속에는 무수한 생명들이 새 싹을 틔우고 꽃 피워 열매 맺을 '그 날'을 기다리며 춥고도 긴 겨울을 인내하고 있을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우리네 삶의 축소판이 아닌 것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유명 정치인들은 어려운 고비를 맞거나 구상 혹은 결단이 필요할 때서 산을 찾는 것인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까 괜히 그런 흉내로 비쳐질까봐 싫다.
난 아니야, 그래서 누구의 눈도 피해서 이렇게 혼자 다니는 것이라고 자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