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정치/질고지칼럼

49. 매봉재 단상 (1)

질고지놀이마당 2008. 7. 9. 14:39

직무정지를 당해 일할 기회는 물론, 목전에 다가 온 지방선거에 출마할 기회까지 빼앗겼지만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잔인한 달'이라 부르는 4월이었으니 손발이 꽁꽁 묶여버린 그 해의 봄은 내게 더더욱 잔인한 봄이었다.

 

 

  홈지기 (2006-04-11 16:37:24, Hit : 339, Vote :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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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봉재 단상(1)/ 2006년 4월 11일 (화) 비


무룡산 헌수운동에 동참한 현자노조의 헌수금 기증식(자료사진)

연 이틀 봄비 치고는 제법 많은 비가 내리는 날씨임에도 매봉재를 거쳐 무룡산을 다녀오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긴 겨울 매서운 추위와 칼바람을 잘 이겨내고 질긴 생명의 뿌리를 내린 헌수목들을 볼 때마다 참으로 대견하다.

지난해 가을, 세찬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잎이 떨어지는 바람에 나무들 다 말라 죽었다는 제보를 받고 방송사 카메라 기자가 헛걸음한 해프닝이 있었는데 봄을 맞아 연초록 잎눈과 꽃눈을 피워내고 있으니 어찌 대견하지 않겠는가!


산불이 휩쓸고 간 매봉재 일대 등산로에 심어진 헌수목

매봉재에서 제3체육시설로 내려가는 임도 주위에 심은 야생화 씨앗은 파릇한 새싹을 뾰족뾰족 내밀고 있다.

어서 자라서 예쁜 꽃들을 피워 주기를 바라는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올 가을 산악마라톤은 작년보다 더욱 풍성해 지리라.


산뜻하게 시공된 무룡산 오르는 나무 계단

공사기간동안 불편을 끼쳐서 원성의 대상이 되었던 무룡산 오르는 경사길 목재 계단공사도 깔끔하게 마무리되어 등산객을 맞는다.

공사로 인해 길은 막히고 흙먼지 풀풀 날릴 때 마주친 주민뿐만 아니라 북구의 모 유력인사로부터도 “나무계단은 예산낭비 아니냐?” “계단 만들면 절대 안된다”고 힐난과 항의를 받았는데 마무리 되고나서 마주치는 등산객들로부터는 거의 다 잘했다는 칭찬이 이어진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빗속을 걷노라니 지난 4년 가까운 세월이 영상처럼 떠오른다.

지난 2004년 태풍이 닥쳐 많은 비가 내렸을 때 무룡산 오르는 길은 허리가 빠질 정도로 깊은 골이 파인 적이 있다.


호우로 인해 골이 깊게 파인 무룡산 등산로

물은 낮은 곳, 저항이 없는 곳을 찾아 흐르게 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상식인데 이 경우 등산로는 빗물이 모여 흐르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제공한다.

경사 길을 흘러내리는 물살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등산로의 맨 흙은 너무나 힘없이 골이 파지기 때문에 자연훼손이 가속화 된다.

국립공원이나 유명한 산에 휴식년제를 실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호우 피해 이후 인력으로 복구했던 등산로

이 당시 골이 너무나 깊이 파이는 바람에 장비도 없이 인력으로 복구하느라 무척 힘들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등산로와 임도의 경우 많은 물이 모이기 전에 길 중간 중간에 대각선으로 배수로를 파주는 것이 아주 효과적이다.

그래서 등산로 복구와 더불어 화동 약수터에서 오르는 임도에 배수로 작업을 시켰더니 이런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 일부 주민들이 멀쩡한 등산로를 파놓았다고 진정 서명을 받아서 항의하는 소동을 겪기도 하였다.


시민 헌수운동에 참가한 주민들의 나무심기

그 후 매봉재 일대의 울창한 소나무 숲을 잿더미로 만든 산불피해를 당하고 망연자실했던 순간도 떠오른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처럼 폐허로 변한 산불현장은 시민들 헌수운동을 통해 단풍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산딸나무 산벚나무 산수유 등 6가지 수종 1만 그루 가까운 경관조림으로 테마가 있는 등산로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시민헌수운동은 산불지역에 대한 1회성에 그치지 않고, 주민참여 열기를 모아 북구의 남쪽 끝인 염포동에서 북쪽 끝인 신흥사 입구까지 약 25km에 이르는 임도를 숲 터널로 가꾸는 원대한 사업으로 발전하여 절반이상 진행되었다.


현대자동차 노사가 참여한 단풍나무숲터널 가꾸기 식목행사

요즘 무룡산 임도는 주말이면 온 산을 수놓듯이 많은 시민들이 즐겨 찾고 있다.

북구청에서는 주민들에게 보다 나은 여건을 마련하기 위하여 파고라 설치, 숲공원 조성, 산책로 데크 조성, 지하수 개발, 쉼터 및 체육시설을 추가 설치하였으며, 산불피해지역에 대한 시민헌수운동을 기념하는 아담한 소공원을 매봉재에 조성하고 있다.


숲 공원 전경 야외 공연장, 파고라, 쉼터용 맨발 등산로, 체육시설, 야생화 식재, 표고버섯 재배사 등이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매봉재에서 숲 공원으로 이어지는 임도 주위에는 야생화를 심어 꽃길로 조성하기 위해 다양한 종의 씨앗을 파종하였다.

뿐만 아니라 지하수 개발 및 화장실과 가로등 설치 등의 건의가 있었으나 화장실과 가로등은 찬반 의견이 비슷하게 엇갈리기도 하고 제반 여건상  아직 설치하지 못했다.


제 3 체육공원에 지하수 개발로 약수터 설치

그런데 이러한 사업에는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과 견해차이가 존재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집중 호우시에 등산로 유실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길에다 작은 물길을  내는 것에 대한 반대의견도 있고, 매봉재 억새밭에 굳이 데크를 설치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 제3체육시설에서 무룡산으로 오르는 경사가 심한 곳에 목재 계단에 대한 반대 의견도 있었다.

주민들이 제시하는 의견은 각자 취향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하게 표출되는데 찬성이든 반대든 주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의견 개진이야말로 풀뿌리 지방자치를 정착시켜 가는 원동력이라는 점에서 일단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매봉재 억새밭 탐방용 목재 데크와 조성중인 소공원

하지만 자기 스스로 환경주의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인공적인 구조물 설치나 자연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은 무조건 반대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간혹 있다.

북구청에서도 기본적인 인식은 동의하기 때문에 자연환경에 대한 파괴는 최소화 하면서 환경친화적인, 혹은 장기적으로는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억새밭 탐방 데크, 등산로 경사 길의 목재 계단설치) 조치임을 이해하여 주었으면 한다.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한다면 구청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결정을 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 경우 구청에서는 공익에 부합하고 주민들 다수의견을 존중하되, 환경적 측면에서 볼 때 훼손을 최소화 시키는 개발 및 자연환경 보존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사업추진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을 이해하여 주었으면 한다.


비오는 아침 정자고개로 오르는 굽이 길

매번 빈 봉지를 갖고 올라가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는데 오늘은 비가 내리는 탓도 있지만 주어 올 쓰레기가 거의 없는 날이어서 이 또한 작은 기쁨으로 남는다.

잠시 상념에 젖다보니 순식간에 안개가 산허리를 휘감는다.
바람에 날려 숨바꼭질하듯 하는 정자고개 오르막 구비길이 막 깨어나는 새 생명의 색과 어울려서 한 폭의 수채화처럼 눈길을 붙잡는다.
벌써 진달래는 지고 벚꽃은 바람이 불 때마다 꽃비가 되어 흩날린다.


등산로 주변에 수줍게 피어난 철쭉

너무 시간을 지체하여 효문 테니스장으로 내려오는 경사 길을 바쁘게 내닫는데 발걸음을 이끄는 것이 또 있으니 수줍게 피어난 철쭉이다.

비를 잔뜩 머금은 모습이 마치 내 마음에 내리는 비처럼 웃으면서 눈물짓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