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정치/질고지칼럼

54. 하루를 시작하며 / 07. 2. 8

질고지놀이마당 2008. 7. 11. 14:45

개인홈페이지에 올렸던 글을 블로그로 옮긴 것입니다.

 

이 글은 2007년 2월 초순, 너무 일찍 겨울잠에서 튀어나온 개구리

너무 일찍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

이른아침 뒷동산에 올라 동녘하늘을 보며 합장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발견한 소회를 정리했던 글입니다.

 

 

  홈지기 (2007-02-08 09:28:54, Hit : 590, Vote :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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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를 시작하며.../07. 2. 8 목 (비)




[수정/ 사진추가] 아파트 화단에 핀 매실나무꽃과 동백꽃입니다.


[아침 풍경 1]

오랜 겨울 가뭄 끝에 반가운 단비로 열어가는 아침입니다.

비가 내린다고는 하지만 아스팔트가 젖어있을 정도여서 개의치않고 아침운동을 나섰습니다.
등산로에 들어서자 해갈은 고사하고 풀썩거리는 흙먼지를 겨우 적실 정도더군요.
그래도 오늘 하루 산불걱정을 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효문 테니스장으로 오르는 자갈길에 뭔가 움직이는 물체가 불빛에 비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냥 지나치려다 퍼뜩 스치는 생각은 미물일지언정 생명체인데!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두꺼비 아니면 개구리가 벌써 나왔을까?

조건반사적으로 급정거를 하고는 차를 후진시켜서 확인해 보니까 개구리 한 마리가 바퀴에 깔리기 직전에 멈춰서 있었습니다.
아직 행동이 굼뜬 녀석을 들어올려 보니까 분명 겨울잠에 들어갔어야 할 종류의, 제법 큼직한 개구리였습니다.

봄날처럼 포근한 날씨에 비까지 내리니까 겨울잠에서 깨어났나 봅니다.
생명을 잃을 뻔한 위기는 용케 피했지만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으니 몇 차례 더 닥쳐 올 추위와 야생동물들 먹이사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스럽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녀석이 타고난 운명이겠지요.

겨울잠 주무셔야 할 개굴님, 경칩(驚蟄 3.6)은 아직 멀었는데 어이하여 급한 걸음 납시었나요?


[아침풍경 2]

이른 아침 매봉재에 오르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 몇 분을 꼭 만나게 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호칭을 들을 연세이신데 아마도 그 분들은 노인으로 불리기보다는 아주머니 아저씨로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할 것 같습니다.

하여간 내가 시간을 맞추지 못하거나 날씨가 몹시 나쁜 경우가 아니면 늘 만나게 되니까 오늘은 어느 지점에서 만날까 하는 작은 기대를 갖게 되고, 만나지 못하는 날은 혹 무슨일이 생겼나 하는 궁금증을 갖게 됩니다.

오늘 아침은 비가 살짝 뿌린 탓에 갈까 말까 망설이다 조금 늦게 출발한 탓에 매봉재 도착 직전에 두 분의 아주머님을 앞질렀습니다.
파고라 쉼터를 돌아 내려오는 길에 막 정상에 도착한 그 분들과 다시 마주치게 됐지요.
바쁘지 않은 걸음이지만 연세가 있는지라 숨이 차서 정상(?)에 도착한 그 분들이 취하는 행동을 우연찮게 보게 되었습니다.

누구에게 향한 것인지 모를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공손하게 하면서 합장하듯 두 손을 모아서 동쪽을 시작으로,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정중히 머리 숙여 절을 하더군요.
그것을 보는 순간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 저것이 어머니의 마음이구나!

그 분들이 어떤 신앙을 갖고 있기 때문에 취하는 종교적 의식일지도 모르나 매일 새벽 산에 올라 감사와 경건한 기도로 하루를 열어 간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자신보다는 가족들의 안위와 행복을 더 기원했을 것입니다.


[아침풍경 3]

아침 출근시간은 분초를 다툴 정도로 늘 바쁩니다.
10분만 서두르면 여유가 있을 것임을 잘 알면서도 ‘10분 일찍’ 실천은 참 어렵습니다.
하여 아침시간 5분은 낮이나 저녁시간대의 30분과 맞먹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아침도 바쁘게 아파트 현관을 나서는데 매실나무가 꽃을 활짝 피우고 있더군요.
어라, 어제까지도 보질 못했는데 언제 이리 꽃을 피웠을까?
그 매실나무는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으니 며칠 전부터 꽃봉오리를 피우고 있었을텐데 다만 내가 눈여겨 볼 여유가 없었을 따름입니다.

그러고 보니 입춘(立春 2. 4)이 지났습니다.
봄은 마냥 기다리지 않고 저만치 앞질러 제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이상기온으로 나타난 현상일지 모르나 아파트 현관에 피어난 매실 꽃을 보면서 마음에 쌓인 묵은 때와 두꺼운 옷처럼 몸과 마음을 옥죄는 굴레를 벗어 던져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때 이른(?) 개구리의 출현과 매실꽃을 보면서 그러나 상반된 해석을 한 것이지요.
세상 일은 때가 있으므로 기다림의 인내와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가 하면,
다가 올 미래를 남보다 한 발 앞서 가려면 묵은 생각과 굴레를 벗어 버리고 몸도 마음도 일신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열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