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정치/질고지칼럼

56. 국가권력에 짓밟힌 지방자치의 싹

질고지놀이마당 2008. 7. 11. 15:13

필자의 직무유기죄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취지의 파기환송에 이은 최종 무죄판결(2007. 11. 2)을 받고 쓴 글이다.

 

사필귀정

지리한 법정투쟁의 승리, 사법적 정치적 명예회복..

그러나 그동안 인고의 세월과 정신적 고통, 박탈당한 기회에 대해서는 아무런 사과도 보상도 없다.

필자를 직무유기죄로 고발하는 선봉에 섰던 행자부와 울산시(시장, 행정부시장), 기소 및 유죄판결로 직무를 정지시켰던 검찰과 법원

이들은 곧 국가권력의 상징이자 대리인이었다.

 

이 글은 국가권력이 한 개인의 양심과 자유, 지방자치에 대한 소신과 신념을 무참히 짓밟고도 반성하거나 사과하지 않는 처사에 대한 고발이다.

 

  홈지기 (2007-11-07 16:57:38, Hit : 242, Vote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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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권력에 짓밟힌 지방자치의 싹





필자는 지난 2002년 6월, 주민들의 직접 선거에 의해 당선되어 민선 지방자치의 꽃이라 불리는 기초단체장(울산 북구청장, 2002.7.1 ~ 2006.6.30)을 지냈다.
하지만 구민들의 환호와 기대 속에 명예롭게 출발한 구청장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국가권력에 의해 구청장직을 박탈당하고 말았다.

이유는 파업에 참가했던 부하 직원들을 전부 해임 또는 파면시키라는 중앙정부의 지침에 따르지 않고, 지방자치시대에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자체징계를 하겠다고 맞서다 ‘직무유기죄’로 사법처리를 받았기 때문이다.

행정자치부(이하 행자부)장관과 울산광역시장의 거듭된 권고와 협박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자, 끝내는 행자부에서 파견된 울산광역시 행정부시장이 ‘직무유기죄’ 고발장을 접수하는 총대를 멨다.

이어진 재판에서 1심과 2심은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형 선고 및 항소를 기각했다.
그러나 지난 7월 10일 대법원 합의부에서 무죄취지의 파기환송에 이어 지난 10월 16일 필자는 마침내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사건발생 후 약 3년, 1심 유죄판결에 따라 직무를 정지당한지 약 2년만의 일이었다.

지난 2년간은 필자에게 있어서 암흑과도 같은 ‘잃어버린 세월’이었다.
유죄판결에 따라 직무정지가 되고 나니까 구청장은 구청장이되, 잔여임기 7개월은 결재나 지시는 고사하고 어떤 업무보고조차 받을 수 없는 기간이었다.
군인이 무장해제를 당한 것과 같고, 살아서 숨은 쉬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뇌사상태 즉 식물인간과도 같은 기간을 보내야 했다.

오로지 희망이 있다면 대법원에서의 무죄판결.
그러나 그 길은 길고도 지루했다.
이번 사건의 발단과 전개과정을 간단히 살펴보고 남긴 교훈과 과제를 살펴보자.


1. 사건 개요 및 일지


- 2004년 11월 15일 전국 공무원노조(이하 전공노) 파업 강행

- 당시 중앙정부는 파업에 참가한 공무원들에 대하여 경중을 가리지 않고 파업에 참가했다는 사실 확인서 한 장으로 전원 해임 파면에 해당하는 배제징계 상신하라는 지침 하달.
- 정부 지침 따르지 않는 자치단체에 대하여는 예산 및 인사 상 불이익 조치 공언.

- 당시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울산 북구청장으로 재직하던 필자는 중앙정부 지침을 거부함.
- 지침을 거부한 사유는
  1) 중앙정부의 과도한 간섭과 월권의 정도가 관선시대를 능가
  2) 지방자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넘어 지방자치권 자체를 부정하는 것
  3) 단순참가자까지 전원 배제징계 요구는 징계절차 및 형평성 위배

- 위와 같은 이유로 중앙정부의 일괄 중징계 요구를 거부하고 북구청장으로서 권한과 의무를 가지고 자체징계를 하겠다는 입장 밝힘.
- 필자가 밝힌 징계방침은 핵심 노조간부는 징계위원회 회부하되, 단순가담자들은 훈계하겠다는 것.

- 끝내 중앙정부 방침을 따르지 않자 행정자치부에서 파견된 울산광역시 행정부시장이 직무유기죄로 검찰에 고발. - 불구속 기소되어 2005년 11월 24일 1심 판결에서 징역4월 집행유예2년형 선고받음.
- 금고이상의 형을 선고 받으면 직무가 정지된다는 지방자치법 조항에 따라 그 즉시부터 구청장직무를 정지당함.

- 항소하였으나 2006년 2월 3일 항소심에서 기각되어 임기 내 구청장직에 복귀 못하고 재판 과정에서 치러진 2006년 5.31 지방선거에도 출마하지 못함.(사실상 피선거권 박탈)

- 대법원에 상고하여 1년 5개월여가 지난 7월 10일 파기환송 되었으며, 속개된 항소심에서 10월 16일 최종 무죄확정판결을 받음.


2. 이 사건이 주는 과제와 교훈

이 사건은 한마디로 천박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방자치를 시행한다면서 중앙정부 지침 따르지 않으면 예산도 삭감하고, 인사 상 불이익을 주겠다는 협박을 관계부처 장관들 공동명의 담화문 및 기자회견을 통해 거리낌 없이 발표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

나아가 중앙부처 관료 및 정치인들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노동조합觀은 극에 달한다.
참여정부와 중앙부처 관료들은 공무원들의 노조활동을 반국가적이고, 국법질서를 뒤흔드는 통치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연가를 허용하지 마라, 파업참가자는 전원 배제징계 하라” 는 등 수시로 지침을 내리며 관선시대와 똑같은 획일적 통제와 간섭을 하면서 이에 따르지 않는다 하여 공무원의 파업을 옹호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중앙정부는 당면한 공무원노조 파업을 억누르기 위하여 초법적인 징계절차 및 양형기준을 무시한 지침을 강요했다.
이를테면 한나절도 안돼 복귀한 단순가담자가 대다수였는데도 불구하고 파업에 참가했다는 상급자의 확인서 한 장만 첨부하면 전부 파면 또는 해임에 해당하는 징계를 올리라는 지침을 내렸다.
오전에 내린 지침을 오후에 더 강화해서 또 내리면서 응당 거쳐야 할 징계절차(조서작성 및 본인 진술)를 생략하도록 했다.

이쯤 되면 지방자치를 무시하거나 위협하는 수준이 아니라 부정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중앙정부의 지방자치를 부정하는 간섭과 월권, 그리고 회초리 맞을 정도의 잘못에 대해 목을 자르라는 요구를 따를 수는 없다며 끝내 거부했다.
그러자 행자부장관과 울산광역시장이 협의하여 주민들이 직접 투표로 뽑은 자치단체장을 ‘직무유기죄’로 고발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면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은 지방자치단체장들에 대해서만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법을 만들었다.
즉 자치단체장의 경우 1심에서 금고이상의 형을 받으면 직무가 정지되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입법취지는 일견 공감이 가는 점은 있다. 뇌물수수나 부정부패로 기소된 단체장이 감옥에 있으면서도 결재권과 인사권을 행사함으로써 증거인멸이나 증인도피 등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한 취지는 인정된다.

그러나 필자의 소견으로는 이 제도는 세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형 확정시까지 무죄추정 원칙에 위배된다.
둘째, 같은 선출직임에도 국회의원들은 형 확정시까지 국회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형평성에 위배된다.
셋째, 필자의 경우처럼 중앙정부에서 자치단체장을 통제하는 수단이 되며, 심한 경우는 직무를 일단 정지시키는 독소조항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결론 부분에서 다시 다루기로 한다.

어쨌든 2년이 흐른 지금 모든 결과는 事必歸正으로 정리되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것들이 있다.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 국가권력에 의해서 되풀이 되지 않도록 책임을 지우고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첫째, 제도적 보완이 따라야 한다.
아직도 관선시대로 착각하는 중앙부처 관료들의 인식 변화는 물론, 지방자치권이 제도적으로 보호되도록 법과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중앙정부에서 지방자치단체에 대해서 예산 및 인사권한을 가지고 통제하는 구조를 최소화 시켜야 한다.
대부분 자체 재정이 열악한 지방자치단체나 단체장의 입장에서는 예산 분배권을 갖고 있는 중앙정부가 예산을 주지 않겠다는 협박만큼 두려운 것이 없기 때문이다.
본디 예산이란 지방에서 걷은 것을 분배하는 것인데 마치 제 호주머니 돈을 주기라도 하듯 중앙부처에서 생색을 내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분배의 기준, 분배의 정의를 제도적으로 만들어서 중앙부처 관료들이 예산가지고 지방정부를 좌지우지할 여지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둘째, 불평등하고, 위헌요소를 가진 법을 고쳐야 한다.
자치단체장은 1심 판결만 가지고 직무를 정지하도록 하면서 정작 법을 만든 국회의원 자신들은 파렴치한 범죄로 1심과 항소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고도 대법원 확정까지 차일피일 재판 기일을 늦추며 국회의원직을 수행하는 것을 어떻게 납득할 수 있는가?
자치단체장들에 대하여 1심 판결만 가지고 직무정지를 하는 것이 옳다면 국회의원들도 직무정지를 해야 마땅하다.

나아가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취지여야 하는데 직무를 정지하는 것은 형평의 문제뿐만 아니라 위헌적인 요소도 있다.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 될 수 있는 부정부패와 같은 파렴치한 범죄에 대하여 는 단체장이나 국회의원 공히 적용하되, 신념과 확신 등 이른바 ‘양심범’의 경우는 구분해야 한다.
즉, 정부방침대로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치단체장을 통제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끝으로, 오판과 오심의 결과에 대하여 국가권력의 책임과 보상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여 제도화해야 한다.
필자의 경우 무죄로 판명 되었지만 잃어버린 세월, 잃어버린 기회, 잃어버린 꿈, 그간 겪은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적정한 보상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지만 책임을 묻고자 하여도 현재의 법과 제도상으로는 주체도 불분명하고 결과에 대한 전망도 불확실하다.

필자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다.
현직 구청장으로서 7개월간 일할 기회를 박탈당했고, 주민들은 자신이 뽑은 단체장으로부터 응당 제공받아야 할 행정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또한 대법원 확정 판결 전이기 때문에 법적인 피선거권은 있지만, 지방자치법상 ‘직무정지’조항으로 인해 사실상 피선거권을 박탈당함으로써 필자는 재선이 유력한 재출마기회를 잃었다.

물론, 재출마한다고 당선이 보장 되느냐 하는 반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당시 필자의 재출마시 당선 가능성은 각종 지표상으로 매우 높았다.
울산지역 각 언론기관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단체장 평가 압도적으로 1위, 재출마를 하였을 경우 재선 가능성 역시 모든 여론조사에서 1위로 나타난 것은 당시의 객관적 사실이었다.

다른 사건과 달리 정치적인 사건의 경우 흘러간 세월을 되돌릴 수도 없고, 기회를 놓치고 나면 똑같은 환경이 다시 돌아 올 수가 없다. 생물처럼 수시로 변하는 것이 정치적 환경이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겪은 고통도 적지 않다.
정신적으로 겪은 고통을 어찌 말과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옳다는 신념을 지켜 양심껏 살고자 했던 한 개인, 진정한 지방자치를 실현하고 국가권력의 부당한 간섭과 위협으로부터 지방자치권을 지키고자 했던 한 자치단체장이 국가권력에게 빼앗긴 소중한 꿈과 가치, 개인적인 기회와 시간과 정신적 고통에 대해서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3. 이 사건을 통해 제기 하고 싶은 바람

당시 필자를 고발하기로 공모했던 행자부장관과 울산광역시장, 그리고 직책상 어쩔 수 없이(?) 고발장을 접수하는 총대를 멨던 행정부시장도 대법원의 무죄판결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이들 중 당시 울산시장과 행정부시장은 국가권력의 집행자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필자와 친분도 있었던 개인이기도 하다.
국가권력이 개인의 양심과 단체장의 신념과 소신을 함부로 짓밟고 난 뒤에 법정의 판결로서 무죄가 입증됐음에도 어느 한사람 책임진다는 말은커녕, 사과의 말 한마디 없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혹자들은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으니 피해보상을 위한 소송을 하라고 하기도 하고, 만나는 기자들도 그 부분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보상요구는 고민이 따르는 문제로서 신중히 고려하겠지만 보상을 요구하더라도 개인적인 금전 보상보다는 국가권력이 함부로 개인을 짓밟지 못하도록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서 판단하려고 한다.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참으로 외로웠다.
지방자치권을 앞장서 보호하고 확장시키는 것이 가장 큰 존립목적일 ‘전국자치단체장협의회’에 전공노나 파업참가자 징계문제 차원이 아닌, 지방자치권 수호 차원에서 관심과 도움을 요청했지만 외면당했다.

사건 초기 요란스런 관심도 잠깐, 항소심 이후 지난한 재판과정은 당과 노조를 포함하여 관련된 인사들 대부분으로부터도 그렇고, 언론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개인의 문제일 뿐이었다.

글을 마치면서 이 사건을 통해 느꼈던 바램을 다시 한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에게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불평등한 법은 개정되어야 한다.
국회의원들도 자치단체장과 똑같이 금고이상 유죄판결 받으면 직무정지가 된 상태에서 항소심 또는 상고심 진행을 해야 법이 만인에게 공평하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

그리고 1심에서 금고이상 유죄판결을 받더라도 일률적으로 직무를 정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범죄의 유형과 증거 및 증인 인멸이 우려되는 경우 등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원칙과 기준이 있어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1심 판결만 가지고 직무를 정지시킬 경우, 최종판결에서 무죄로 확정되면 국가의 보상 및 배상의무를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다시는 필자와 같은 억울한 경우가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더불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지방자치에 대한 사회저변의 인식전환과 지방자치권의 보호 및 확대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