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정치/질고지칼럼

55. 프레시안 기고문/ 대법원은 지방자치를 말살하려는가?

질고지놀이마당 2008. 7. 11. 14:57

공무원노조 파업사태로 인해 필자가 제기하거나 관련된 헌법소원, 행정심판, 상고심은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헌법재판소에 제기했던 권한쟁의심판 청구

북구청에서 대법원에 접수했던 파업참가 공무원에 대한 울산광역시의 승진임용 직권취소에 대한 취소청구소송

그리고 필자에 대한 직무유기죄 상고심 등.

 

그 결과

헌재에 제출한 권한쟁의심판은 각하(각하는 패소를 의미하는 기각과 달리, 헌재에서 다룰 사안이 아니라는 의미임)

승징임용 직권취소처분 취소청구소송은 패소

직무유기죄 상고심은 파기환송 후 무죄판결로 끝이 났습니다.

 

아래 글은 위 세가지 중에서 두 번째 행정심판 패소판결 소식을 듣고 프레시안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홈지기 (2007-03-26 17:54:56, Hit : 463, Vote : 41
 http://www.leesangbum.net/mai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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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문/ 대법원은 지방자치를 말살하려는가?




[기자회견 사진은 뉴시안에서 다운받음]

<대법원 판결에 대해 인터넷 신문인 '프레시안'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 (원문 일부교정)

지난 2004년 기초지방자치단체장(울산 북구청장)이 전국공무원노조 파업에 참여한 공무원들을 승진시키자 광역자치단체장(울산 광역시장)이 이를 취소한 사건이 있었다. 양측의 갈등은 법원으로 갔다. 2년 4개월을 끌어 온 이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지난 22일 소송을 제기한 기초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해 원고 패소를 판결했다.
  
  7명의 대법관은 "임용권자의 징계의결 지시를 무시한 승진임용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5명의 대법관은 "국가와 지자체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지방자치의 본질상 해당 지역 주민들로부터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지자체의 의사가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관들 내에서도 격론이 오간 셈이다. 핵심 쟁점은 지방자치단체의 자율권과 중앙정부의 통제권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였다.
  
  대법원의 판결은 끝난 일이지만 정치권 일각에선 이와 관련해 지방자치단체의 자율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지방자치법을 개정하자는 여론도 일고 있다. 이번 소송의 당사자인 이상범 전 울산 북구청장이 <프레시안>에 판결에 대한 소회를 보내왔다. 이해당사자의 견해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는 글이기에 소개한다. <편집자>
  
  사건의 발단
  
  지난 3월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담 대법관)는 우리나라 지방자치사(史)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그러나 지방자치권을 매우 심각하게 침해하는 판결을 내렸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재판의 내용은 행정심판으로서 기초자치단체장이 소속 공무원에게 행한 승진임용을 광역단체장이 직권으로 취소 처분한 것에 대한 다툼이었다. 즉 울산 북구청장이 행한 승진 임용에 대해 울산광역시장이 지방자치법 157조 1항을 근거로 직권취소처분을 하였는데 당시 북구청장은 이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울산시장의 직권취소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 하였으나 대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 사건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소 내용이 길더라도 사건의 발단과 전개 과정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사건의 발단은 2004년 이른바 공무원노조 파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국적으로 이루어진 공무원노조 파업에 울산지역은 '노동운동의 메카' 답게 공무원들의 참여도가 높은 편이었다. 당시 필자는 울산 북구청장으로 재직하고 있었으며, 북구청 공무원 213명이 이 파업에 참가했다.
  
  중앙정부와 각 광역자치단체는 공무원노조 파업을 막기 위해 각종 지침을 시달했다. 그러나 끝내 파업이 이루어지자 사후조치로 파업참가자 전원에 대해 배제징계(해임 파면)를 하겠다며 파업에 참가한 사실 확인서만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것을 지시했다.
  
  당시 행정자치부(이하 행자부)가 중심이 된 중앙정부의 각종 지침은 관선 시대를 능가할 정도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처벌 수준이 강화되어 내려 올 정도였다.
  
  파업에 돌입하기 전에는 "절대로 연가를 허용하지 말라", "연가를 허용하거나 파업 참가자가 많은 자치단체는 책임을 묻겠다"는 등의 엄포를 놓았고 그럼에도 파업이 결행되자 관계장관 담화 형태로 "참가자 전원을 배제징계 하라", "지침에 따르지 않는 자치단체는 인사 및 재정상 불이익을 주겠다"는 발표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중앙정부의 부당한 지침 거부로 비롯된 대립과 갈등
  
  과연 우리나라에 지방자치제도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파업 참가 공무원이 있는 자치단체장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행자부 지침대로 따르자니 너무 가혹하고, 거스르자니 인사, 감사, 사법, 예산권 등을 틀어 쥔 중앙정부의 협박과 후환이 두려웠던 것이다.
  
  너나없이 눈치 보기 급급한 상황에서 민주노동당 당원인 울산 동구청장과 북구청장(필자)이 행자부 지침은 지방자치제도 자체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자 지나친 간섭과 월권이므로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필자는 213명 전원을 배제징계에 해당하는 중징계 상신을 울산광역시로 올리라는 지침과 권고를 거부했다. 그리고 주민들에게 부여받은 자치단체장의 인사 및 징계권한을 가지고 적극가담자 8명에 대해서는 자체 징계위 회부를 하되 사안이 경미한 단순가담자(205명)에 대해서는 구두경고 및 훈계처리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로 인해 기초단체(동구청과 북구청)와 광역단체(울산광역시), 자치단체와 중앙정부(행자부) 간에 심각한 갈등이 형성되고 이 사안은 전국적인 관심을 모으며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기초단체장 승진임용에 대한 광역시장의 직권취소 처분
  
  이러한 갈등 속에 해가 바뀌어 2005년 2월 북구청에서 정기 승진인사가 있었다. 행자부 및 울산광역시에서 요구하는 중징계 대상에 포함된 직원 6명이 자체 인사위 심사를 거쳐 승진에 포함됐다. 이에 행자부와 울산광역시는 더욱 발끈하여 지방자치법을 근거로 직권취소 처분을 하기에 이르렀다.
  
  행자부와 울산광역시는 중징계대상 직원을 승진시킨 것을 국법질서 문란(?)으로 규정하여 필자와 동구청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하고, 승진 임용자에 대해서는 직권취소 처분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지극히 상식적인 기준으로 보아 단순 가담자에 불과한 대다수 직원들이 승진을 제한받아야 할 만큼의 중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당시 북구청 직원이 행자부에 질의한 내용에 따르면 인사위원회에 회부되지 않은 직원을 승진에서 제외시킬 근거가 없다는 회신을 받은 상태였다. 따라서 울산시장의 직권취소 처분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하여 이번 판결에 이른 것이다.
  
  대법원 행정소송 제기와 핵심 쟁점
  
  이 사건의 발단이나 과정에서부터 대법원 판결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핵심 쟁점은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인 자율권과 중앙정부의 권한인 통제권의 충돌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중앙정부의 지침을 지방자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자 자치단체장의 고유 권한에 대한 월권 및 부당한 간섭으로 본 반면, 중앙정부는 관선시대와 같은 획일성과 통일성, 일사 분란한 지휘계통에 대한 불복, 나아가 국법질서와 통치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했다. 이는 대법관들이 판결과정에서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으로 갈라진 쟁점이기도 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판결문이 입수되지 않아 언론 보도를 인용할 수밖에 없음) 대법관들의 다수 의견은 "(파업에 참여한) 울산 북구 공무원들의 행위는 임용권자의 징계의결 요구 의무가 인정될 정도의 징계사유에 해당함이 명백한데, 구청장이 울산시장의 징계의결 지시를 무시한 채 오히려 승진 임용한 것은 위법하다"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대한 반론은 잠시 미뤄두자.
  
  이에 대해 소수의견을 낸 5명의 대법관은 "국가와 지자체가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지방자치의 본질상 당해 지역의 주민들로부터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지자체의 의사가 우선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국가나 상급 지자체가 하급 지자체와의 견해 차이를 법령 위반이라고 단정해 자치단체장의 처분을 취소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지방자치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반론과 재반론이 이어졌다고 하는데 언론에 소개된 부분만 보아도 견해차이가 첨예하다. 이 판결의 결과가 우리나라 지방자치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만큼 대법관들의 법리논쟁이 치열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먼저 소수 의견에 대하여 다수 의견 측에 선 양승태 대법관은 "반대의견은 정략에 따른 자치단체장의 개인적인 권한이 법의 상위에 위치해 헌법 질서의 일각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한 견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수의 대법관들이 내린 판결에 대한 반론
  
  대법관들이 벌이는 법리 논쟁에 당사자로서 끼어들기가 난처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참을 수 없는 의문 두 가지만 덧붙이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헌정질서가, '불문경고'로 끝날 공무원에 대해 해임 파면 상신하라는 요구에 따르지 않았다 하여 그 일각이 무너질 만큼 허약한 상태인가?
  
  이 사건은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중앙집권적 사고에서 비롯된 통제와 월권과 간섭에 대항하여 지방자치권을 지키려는 몸부림으로 점철되어 있는데 이것을 오직 항명과 국법질서 문란으로 볼 만큼 대법관들은 수구적인가?
  
  필자는 우리 사회가 지향하면서 발전해 가야 할 바를 양심과 소신에 따라 소수의견으로 낸 대법관들도 5명이나 있다는 사실에 감사와 더불어 이 땅에 정의와 희망이 살아 있음을 발견하고 위안을 삼는다.
  
  양승태 대법관의 반론에 대해 소수의견에 선 이 이홍훈 대법관의 재반론이야말로 이 논쟁에서 압권이리라.
  
  "지자체의 자치권은 주권재민의 원칙에 터 잡아 종래의 중앙집권체제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얻어지게 된 천부적 권리이므로, 국가나 상급 지자체가 함부로 침해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얼마나 멋지고 명쾌한가! 더 이상 무슨 해석이 필요하랴.
  
  필자는 행위 당사자이면서 소송 당사자였던 입장에서 이용훈 대법원장을 비롯하여 주심을 맡은 이용담 대법관 등의 다수 의견은 매우 유감이며 따라서 상식에 기초한 반론을 제기한다.
  
  파업에 참가한 공무원들의 행위가 승진을 제한받아야 할 만큼 무거운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는 당사자들에 대해 확정된 징계 결과를 보면 명쾌하게 입증된다.
  
  행자부 및 울산광역시 지침대로 한다면 전원 해임 파면에 해당하는 중징계를 받았어야 할 213 명에 대한 징계 및 소청심사까지 종결된 결과를 보자. 해임 3명, 감봉 8명, 견책 30명, 나머지 172명은 '불문경고'로 처리됐다.
  
  더욱이 2005년 2월 3일자로 승진 임용되었다가 울산광역시장에 의해 직권취소처분 대상이 되었던 6명은 전원 '불문경고'로 확정됐다. 승진을 제한 받거나 취소처분 되어야 할 대상이 전혀 아니라는 얘기다.
  
  사안이 이처럼 명약관화 하건만 다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이 '단체장의 징계의결 요구가 인정될 정도의 징계사유'를 원고 패소의 이유로 삼은 것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사건에서 승진을 시킨 것이 정당한지 혹은 부당한지에 대해 가장 중요하게 판단해야 할 요소는 '징계의뢰' 대상에 해당되는지 여부가 아니라 승진제한을 당할 만큼의 잘못을 했는지의 여부여야 하지 않는가?
  
  요컨대 이 사건을 판단함에 있어 단체장의 징계의결 요구 의무보다 우선하면서 또한 중요한 것은 파업에 참가한 공무원들의 불법성 정도가 과연 승진에서 제외되는 중징계에 해당되는 사안이냐는 객관적 기준일 게다. 그런데 앞서 지적한 것처럼 중징계는커녕 경징계에도 해당되지 않고, 인사상 불이익 대상에서 제외되는 '불문경고'로 끝났다는 사실을 대법관들이 간과한 것을 이해 할 수 없다.
  
  중앙집권 사고에 젖은 행정-사법 합작에 숨 막히는 지방자치
  
  이 사건의 전말과 대법원의 판결을 보면 보수적인 중앙정부 관료들과 대법관들의 우리나라 지방자치에 대한 천박한 인식수준이 드러난다. 중앙정부와 상급자치단체의 월권과 간섭과 통제가 얼마나 심각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만천하에 보여주는 사례라는 얘기다.
  
  만약 서구 지방자치 선진국이었다면 중앙부처 장관들이 합동으로 "연가 허용 불가" 방침을 밝힌 것을 비롯해 "연가 허용 및 파업 참가자가 많은 자치단체에 불이익을 준다"거나 "파업참가자 전원에 대한 배제징계 지침을 시달하고 따르지 않는 자치단체에게는 문책과 예산상 불이익을 주겠다"는 등의 사항을 관계 장관 담화문으로 발표한다는 것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장관 총리가 나서서 전원 배제징계를 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파업참가 공무원들에 대한 징계 결과, 95% 이상이 '경징계'로 끝난 사실은 어떻게 설명될 것인가. 대한민국의 특수한 지방자치가 아니고서야 이처럼 국민을 상대로 한 공개적인 협박과 사기극이 통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협박을 대동한 중앙정부의 서슬 퍼런 지침에 따라 각 자치단체에서 행한 징계위원회 및 소청심사의 결과는 용두사미로 끝났다. 이러한 결과는 당시 북구청장 이었던 필자가 밝혔던 '적극 가담자 8명 징계 회부, 단순가담자는 구두경고'를 하겠다는 방침이 합리적이었음을 만천하에 입증시켜 준 셈이다.
  
  그러나 필자에게 돌아 온 것은 행정부에 의한 '직무유기죄' 형사고발과 사법부에 의한 유죄판결로 직무정지 및 사실상 피선거권 제한이었다. 대법원에 상고한 지 1년여가 지났지만 언제 판결을 내려 줄지 감감 소식이다.
  
  이번에 내려진 대법원의 판결은 관선시대를 능가할 정도로 기초자치단체의 숨통을 옥죄는 중앙정부와 광역단체로 하여금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고 마음껏 통제하고 간섭하라고 날개를 달아 준 격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격이다.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와 지방자치가 활짝 필 날은 언제일까.

이상범/前울산북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