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글 '설악산 송년 심설산행 4' 에 이어서..>
언제 : 2008. 12. 30(화) 무척 추운날씨, 강풍은 여전하지만 개인날씨여서 전망 좋은 편(강풍에 날리는 눈으로 가끔 시야 흐림)
누가 : 나홀로
코스 : 중청대피소~대청봉~중청~소청~희운각~공룡능선(무너미재-신선봉-1275봉-나한봉-마등령)~금강굴~비선대~설악동 하산(약 9시간)
휴식과 영양을 보충하고 1275봉 고개를 넘어서자 나한봉이 기다리고 있다.
나한봉을 넘어 또하나의 암봉을 넘으면 가파른 오르막 길은 끝나는 것 같다.
거기서 부터는 마등령까지 완만한 내리막으로 연결니까..
아직 하산길을 비선대로 할지, 오세암~백담사 쪽 중에서 어디로 할지는 정하지 못했다.
마등령에 도착해서 등산로 상태에 따라 정하기로 하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아래 사진에 표기한 것처럼 빤히 보일 정도의 길(나한봉을 거쳐 마등령까지)을 가는데 1시간 반 걸렸다.
손오공이 날고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이라고, 아무리 기를 쓰고 걸어도 대청봉-소청봉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
고속도로를 시속 140km 이상으로 달려도 차창 밖으로 달님이 항상 따라 오듯이.. 하지만 한편으로는 든든하기 그지없는 마음의 안식처다.
1275봉을 넘어서 약 1시간만에 나한봉을 지나면서 걸어 온 길을 돌아본다.
반대편 오르막보다는 경사가 덜 급하지만 이쪽 삐알도 눈이 많아서 꽤나 허우적거렸다.
마등령에서 비선대로 내려가는 방향으로 우뚝 솟은 바위(세존봉) 너머로 울산바위가 조망된다.
그 아래 빗살무늬를 이루는 작은 능선과 암릉이 기우는 햇살을 받아 더욱 또력하다.
나한봉을 지난 능선에서 바라보는 범봉
신선봉이나 1275봉에서 본 느낌과는 또 다른 암릉미를 보여준다.
범봉(천화대릿지) 너머로 화채능선, 오른쪽 화채봉에서 왼쪽 칠성봉을 거쳐 집선봉에 이르는 구간이다.
나한봉을 지난 무명봉에서 돌아다 본 공룡능선
눈이 몰아쳐서 발자국을 메워놓은 바람에 새롭게 러셀을 하듯이 약 5시간을 나홀로 걸어 온 구간이다.
가운데가 1275봉이고, 오른쪽이 나한봉. 저 멀리 대청봉과 중청봉은 나한봉에 가려있다.
왼쪽 멀리 뾰족한 봉우리가 화채능선상의 칠성봉.
이만한 조망을 보기가 쉽지 않아서 또 돌아보고, 더 나은 풍경을 담을 욕심에 샷을 또 날린다.
1275봉과 나한봉 너머로 설악의 주봉인 대청봉-중청봉 친근한 쌍둥이 능선이 산뜻하게 조망된다.(실은 소청과 끝청까지)
드디어 마등령 갈림길에 내려섰다.
오세암쪽에서 올라오는 길을 따라 바람골이 형성되어 눈바람이 더 세차다.
시간이 좀 지체되더라도 바람에 눈이 날리는 능선 풍경을 담아 보려고 연습삼아 촬영모드를 바뀌가며 샷을 날렸다.
여기서 하산길을 정해야 하는데 한 눈에 보기에 마등령길은 눈이 쌓여서 길이 안보이고, 오세암은 바람이 눈을 쓸어 버려서 거의 맨살이다.
당근 오세암으로 내려가야 길이 편하다는 판단이 서는데 마음속으로는 또 욕심이 동한다.
오세암 길은 계곡길이어서 편한대신에 멀다. 그리고 백담사에 내려가도 셔틀버스가 운행하지 않으면 용대리까지 정처없이 또 걸어야 한다.
대신 비선대 하산길은 눈이 많고 가파른 대신에 좀 가깝다.
그러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눈덮인 설악의 설경을 어둠내릴 때까지 볼 수 있기에는 비선대 길이라는 판단이었다.
오세암 갈림길에서 비선대로 향하는 방향으로는 길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눈이 쌓여있었다.
분명 누군가가 지나갔을텐데도 발자국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오세암 갈림길에서 3시 40분경에 출발했으니 비선대까지 2시간 걸린다고 치면 많이 어둡기 전에 하산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했다.
만약 미시령으로 향하는 대간길에서 비선대로 내려가는 갈림길까지 가 보아서 여전히 러셀이 안되었다면 되돌아 오세암으로 내려가도 될 일이다.
바람골에 쌓인 눈은 허리까지 빠질 정도였으나 그 관문을 통과하자 혹시나 했던 기대처럼 앞서간 발자국이 찍혀있다.
아마 오세암에서 마등령을 거쳐 비선대로 내려간 발자국인데 2~3명 정도?
그러나 단 한명이 갔을지라도 발자국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크다.
전투를 치르듯이 지나 온 공룡능선 너머로 조망되는 대청-중청봉과 화채봉(왼쪽)
하산길로 접어들자 속도가 붙는다.
앞서간 이들이 남긴 발자국이 얼마나 고마운지..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 걸으면서 눈물겹도록 고맙다.
길찾는 수고, 러셀하는 수고를 고스란히 덜어주기 때문이다.
내가 힘들여 찍어 놓은 발자국도 바람이 더 심하게 불지만 않는다면 뒤따라 걷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리라.
이렇게 산행은 여럿이 가도 결국은 혼자이고, 나홀로 걸어도 실은 혼자가 아닌 셈이다.
고도를 달리하면서 대청봉과 중청봉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한다.
산골의 어둠은 빨라서 사진을 찍기에 필요한 빛도 시시각각 줄어든다.
비선대로 하산길 중간에 조망하는 범봉아래 천화대릿지 암릉이 멋진데 그늘이 지면서 윤곽이 뚜렷하지 않아 아쉽다.
마등령에서 하산길로 접어들어 1/3정도되는 지점을 지났을까?
허벅지 뒷편 근육이 뭉치는 것이 쥐가 내리기 직전의 신호였다.
아연 긴장이 된다. 적막강산, 눈은 깊게 쌓이고 인적끊긴 산속에서 쥐가 심하게 내리는 상황이 발생하면?
2006년 여름 물난리가 났을 때, 중청대피소에서 쥐가 심하게 났던 등산객이 겪는 고통이 떠올랐다.
쥐 내리는 것쯤 대수롭지않게 생각했었는데 그 상황을 목격하면서 심한 경우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큰일을 당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마 눈 쌓인 길을 걷느라 걸음을 걸을 때 직각으로 발을 들어올렸다가 전진을 해야 하니까 평소 덜 쓰던 허벅지 뒷편 근육이 피로도가 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갈길이 멀고 마음이 급해도 걸음 속도를 낮추고 수시로 스트레칭을 하면서 조심을 했다.
다행히 근육 뭉침은 그 이상 악화되지 않았다.
금강굴에 가까워지자 이제는 안심이다.
마등령에서 하산을 시작한지 약 1시간 반 걸려서 금강굴 입구에 도착했다.
사위는 벌써 어둠이 깃들기 시작한다.
이제는 굴러내려가도 된다는 안도감과 배짱, 그래서 또 욕심을 내어 금강굴 올라가는 전망대에 들렀다.
어둠 내리는 풍경을 담기 위해서 ISO값을 올리고, 낮은 셔터속도로 찍으니 그런대로 담긴다.(아래 참조)
화채능선 끝자락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집선봉 일대 암릉群이다.
금강굴과 주변 암봉
오후 6시경, 완전히 어둠이 깔리는 비선대로 하산을 마쳤다.
11:00경 무너미재를 출발했으니 꼭 7시간 만이다.
아직, 소공원까지 더 걸어야 하는데 무너미재에서 마등령까지 아무도 가지않은 눈길을 나홀로 걸었다는 성취감과 희열을 느낀다.
몸은 솜처럼 피곤한데도 성취감 때문인지 소공원까지의 하산길을 힘든 줄 모르고 나는듯이 내달았다.
원래는 2박 3일의 일정이었는데 연말을 가족과 보내고자 하루 앞당겨 하산한 것이다.
이후 여정은 생략하고 후기 한 꼭지를 추가 하는 것으로 긴 산행기를 마친다.
(후기)
산행을 다녀 온 뒤에 하루가 지나면서 코 끝의 피부색이 변하더니 이틀이 지나자 검게 죽었다.
3일째 부터 딱지가 앉기 시작해서 마치 루돌프 사슴코처럼 우스꽝스런 모습이 되었다.
추위에 노출된 취약부위가 동상에 걸린 것,
하긴 이른 아침 대청봉에 올랐을 때 너무나 추웠다.
오죽하면 카메라가 작동을 멈췄을까?
어쨋든 내가 봐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니 남들은 더 키득거리는데 부끄럽다기 보다는 훈장이라 생각했다.
신체의 다른 부위는 보온장구가 가능한데 코 끝을 가리지 못한 것은 그럴경우 안경에 서리가 끼고 카메라 뷰파인더도 안보이기 때문에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동상 연고를 바르고 약을 먹은 덕분인지 만 5일이 지나자 딱지가 깨끗하게 떨어졌다.
그래도 나홀로 혹한과 눈길을 헤치며 설알산을 다녀 온 것이 마냥 행복하다.
평생을 살면서 그런 기회는 자주 갖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에서 더욱 그렇다.
실은, 대청봉 강추위에 코끝이 얼어 가면서 눈쌓인 설악산을 왼종일 걸은 30일은 내 생일이었다.
집에서 따뜻한 밥에 미역국 받아 먹는 편안함 대신에 산에서 차디찬 주먹밥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보냈지만 평생 가장 기억에 남는 생일이 될 것이다.
다음 주(1. 17)에는 겨울 추위와 북풍으로 유명한 소백산행을 갈 예정이다.
코가 또 얼지 않도록 단도리를 하겠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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