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정치/질고지칼럼

내일칼럼2/ 다시 생각해 보는 장묘문화

질고지놀이마당 2009. 9. 8. 14:04

다시 생각해 보는 장묘문화 / 2009. 7


청탁 받은 원고 숙제를 하려는데 직장 동료의 부친상 소식을 받았다.

하기야 요즘은 그냥 지나치는 한 주가 없을 정도로 경조사가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지만  단순 문상에 그치지 않고, 장례가 끝날 때까지 지원조로 가야하는 상황이 문제였다. 주제도 정하지 않고, 글을 쓸 여건도 안 되는 상황이라서 장례식장에 있는 내내 원고 숙제에 대한 고민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양해를 구하고 마감일을 넘겨야 하나 어쩌나? 시간이 흐를수록 고민을 하다가 영락공원에 가서야 글감을 정했다.


오후 2시 반경에 영락공원 화장장에 도착했을 때 순서를 기다리는 장의버스가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보통은 아침 일찍 발인을 서두르는데 늦게 출발한 이유는 화장장에서 배정받은 시간이 오후 3시였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예정된 시간보다 20여분을 기다려서야 차례가 돌아왔다. 저세상 가는데도 줄서서 번호표 받고 기다려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일주일 전 울산에서 지인의 문상을 갔을 때 고인을 깨끗한 화장시설에 모시기 위해 임종 직전에 주소지를 부산으로 옮겼다는 일화를 유족으로부터 들었다. 불편을 무릅쓰고라도 시설이 열악한 울산의 화장장 대신에 영락공원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산 영락공원의 경우도 15기의 화장로 중에서 시스템 점검 중인 2기를 제외한 13기가 풀가동 하고 있었으나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여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실상은 우리네 장묘 문화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에 영락공원 이모저모를 주의 깊게 둘러보았다.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죽은 자를 마지막으로 보내는, 가장 상징적이고 엄숙해야 할 공간이지만 산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드는 모습 그대로다. 고인에 대해 불경해서가 아니라 이처럼 삶과 죽음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임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부르기 좋고 듣기 좋게 순화된 이름을 부르기 보다는 ‘화장터’ 혹은 ‘화장장’이라 고집하며 대표적인 ‘혐오시설’로 취급하는 사람들도 막상 당사자의 입장이 되면 필수적인 편의시설임을 수긍하지 않을까?


부산 영락공원은 숲 속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입지조건과 시설 면에서 어디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깨끗하고 품격을 갖추고 있다. 아담하게 꾸며놓은 장묘문화 전시장에는 이웃 일본과 미국은 물론,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의 장묘시설에 대해서도 소개해 놓았다. 그네들의 묘지 개념은 산자와 죽은 자가 함께 어울리고 소통하는 피크닉 장소이자 자연학습장, 그리고 축제와 문화공연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동경시내에만 23곳의 화장장이 있는데 요요기 화장장의 경우는 고급 주택가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어서 아파트 베란다에서 화장장 내부가 훤히 내보일 정도로 인접해 있는 현장 사진은 인상적이었다. 이쯤 되면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 임이 분명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셨던 수원 연화장 8호기를 이용하려는 유족들이 많다는 보도를 보면 고인은 장묘문화 의식개혁에도 큰 자취를 남긴 셈이다.


그런데 돌아보면 우리는 화장장 입지선정을 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갈등과 홍역을 치러야 했다. 시설을 지어야 하는 행정 쪽의 입장과 ‘우리 동네만은 안 된다’는 주민들과의 갈등, 행정에 대한 불신, 무책임한 정치권의 개입, 주민끼리의 대립 등 엄청난 후유증을 겪는 것은 전국 어느 지역이나 대동소이한 현실이다.


북구의 경우도 민선 초대 단체장이 장묘시설을 유치하겠다고 나섰다가 주민들의 극력 반대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에 밀려 정치적 상처만 받고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 역시 재임기간에 행정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유치하는 것을 돕는 방법으로 선회하였으나 성사 직전에 또다시 정치권의 개입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반대했던 이유 중에는 객관적으로 보면 장의차가 빈번하게 다니게 되면 아이들 교육상 좋지 않다거나, 거리가 몇 km나 떨어져 있는데도 집값이 폭락할 것이라는 등 억지나 다름없는 주장들이 더 많았다. 물론 어감이나 느낌이 좋지 않고 기왕이면 내 집, 우리 동네에는 없는 것이 있는 것보다 더 낫다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된다. 행정에서도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제도적으로 인근 주민에게는 시설 이용료를 면제 혹은 감면하거나 해당 지역의 숙원사업을 우선 투자하거나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윈윈하는 대안을 충분히 제시 했었다.


그럼에도 한편에서는 주민들을 이해시켜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정치적 이해관계를 바탕에 깔고 주민들에게 그릇된 정보를 제공하거나 반대여론을 부추기는 행동을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처럼 울산광역시에서 추진하는 장묘시설은 우여곡절 끝에 주민들이 유치하는 형식을 빌어 울주군 삼동면이 선정되어 공사 중에 있지만 돌아볼수록 아쉬움이 남는다.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았지만 장묘시설 및 장묘문화에 대한 국민들 인식은 엄청 빠르게 바뀌고 있다. 굳이 선진국 사례가 아니어도 부산 영락공원이나 벽제에 있는 서울시립 승화장, 수원 연화장 등만 보더라도 장묘시설은 산자와 죽은 자가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이러한 시설을 운영하면서 지역 주민의 참여를 보장하여 운영실태를 공개하고 있으며, 시설 수익금의 일부를 지역주민들을 위한 인센티브로 제공한다.


따라서 지금은 장묘시설이 들어오는 것에 극력반대를 했던 것에 대해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주민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솔직히 장묘시설과 더불어 제시됐던 인센티브는 재정이 열악한 북구의 현실에서 낙후된 지역발전을 앞당길 수 있는 기회였다. 시계 바늘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이제라도 님비현상과 집단이기주의를 극복하는 교훈으로 삼았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