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정치/질고지칼럼

내일칼럼 4/ 마라톤 이야기

질고지놀이마당 2009. 9. 8. 14:39

마라톤 이야기/ 2009. 9

 

 

<원고>

달리기, 곧 뜀박질을 생각하면 초등학교 시절의 운동회가 떠오른다. 동네별로 편을 나누어 경주를 하면서 어른들도 모래가마니 들기나 단축 마라톤을 통해 온 마을사람들이 함께 하는 축제의 장이었다. 그런데 필자는 키도 작고 허약체질이어서 초등 6년 동안에 한 줄에 3등까지 받는 공책이나 연필 선물을 단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다. 아니 빨리 뛰는 것은 아예 소질이 없었는지 등수에 들기는커녕 죽자고 뛰어도 꼴찌를 면하면 다행이었다.

그 뒤 청소년 시절은 더욱 형편없었다. 삶터와 일터 모두가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느라 규칙적인 운동을 할 수도 없었으므로 조금만 뛰어도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심지어는 이러다 젊은 나이에 심장질환으로 죽겠구나 하는 환각에 사로잡힌 적도 있었다.

 

지천명의 나이에 마라톤 풀코스를 뛰어보자고 생각한 계기는 단체장 재직 시에 공무원노조 사건으로 직무정지를 당하고, 피선거권조차 박탈당한 정치적 시련이었다. 무장해제 당하듯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그 시기에 내가 선택한 것은 자신에 대한 담금질이었다. 마라톤과 산행은 그 실천의 하나였는데 몇 년 지나서 보니 인내심과 지구력이 커지고 약골이 강골 체력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러한 필자의 ‘환골탈태’에 모델이 된 것은 주위에서 함께 부대끼며 생활하는 이웃과 동료들이다. 필자가 속한 현자마라톤 클럽은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큼 동급 최강의 기록 보유자가 즐비하다. 마라톤에서 꿈의 기록이라 일컫는 서브-3(풀코스를 3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 -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려진다.) 기록만 50명이 넘는다. 뿐만 아니라 울트라 마라톤 국가대표로 뛰는 선수들도 여럿이다.


사실 필자는 풀코스를 뛰는 것만도 한계에 대한 도전이라 생각했는데 100km를 뛰는 울트라 마라톤대회도 있다는 걸 알고는 깜짝 놀랐다. 그런데 울트라 대회에서 100km는 단거리에 속하고, 해남 땅 끝 마을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622km, 태종대에서 임진각까지 537km, 강화도에서 강릉까지 311km 등 국토를 종단 및 횡단하는 3대 울트라대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놀라 자빠질 뻔 했다. 이 3대 울트라 코스를 제한시간 안에 완주하면 ‘그랜드슬럼’을 달성했다는 영예를 부여받는다. 새로운 기록,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 정신은 끝이 없다는 것을 재확인 하고 필자의 도전목표도 풀코스 완주에서 울트라 100km로 상향 시켰다.


마라토너들이 풀코스 서브-3 기록을 달성하기 위해서, 혹은 울트라코스를 좋은 기록으로 완주하기 위해서 흘리는 땀방울은 상상을 초월한다. 자신의 의지만으로 혹독하리만치 피나는 훈련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들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올림픽이나 세계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만 대단한 것이 아니라, 결과 못지않게 그 과정까지 중요한 것은 마라톤도 마찬가지였다. 몸이 좋지 않아서 마라톤에 입문한 동호인은 첫 서브-3를 달성한 후 7년 동안 피나는 연습을 했던 훈련기록을 공개했다. 매일 10~20km 로드웍을 하고 월 1~2회 풀코스를 뛰면 월간 500km, 연간 6,000km 이상을 뛴다.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다가 회복되어 마라톤을 시작한 동호인은 서브-3 100회 달성이라는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얼마 전 울트라마라톤 신기록을 세우며 국가대표로 발탁된 선수가 공개한 훈련기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들의 훈련 내용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가슴이 뭉클했다.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었다.


다른 운동과 달리 동호인 마라톤 대회는 기록, 입상, 선수 분포도 등에서 40대가 중심을 이룬다. 그 이유가 뭘까 하고 나름대로 생각해 보면 마라톤이 요구하는 것은 체력 못지않게 지구력과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엘리트 선수가 아니고는 젊은이들이 힘든 마라톤을 뛰려하지 않는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새로운 목표를 향해 전력투구하면서 인내와 끈기와 용기를 바탕으로 실패와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도전정신은 살아가는 동안 모든 분야에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마라톤은 가장 어울리는 도전프로젝트라 생각한다. 꼭 마라톤이 아니어도 적당한 달리기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 가장 추천할만한 운동이기도 하다. 체력은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노력 여하에 따라서 후천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약체라고 생각하거나 뱃살이 나오고 체중이 불어서 걱정하는 사람들은 이 가을에 달리기를 시작해 보자. 새로운 도전목표를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