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정치/질고지칼럼

내일칼럼 6/ 취업난 시대 젊은이들을 보며

질고지놀이마당 2010. 1. 8. 11:55

[2009년 11월 기고]


“선생님, 자동차(현대)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진짜로 없나요?”

“자동차 직영으로 갈 수만 있다면 힘들게 기술 배우는 것보다 사내 협력업체에서 몇 년 참고 일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나이트클럽에 가더라도 자동차 출입증 보여주면 웨이터 태도부터 다른걸요.”

“예비신부들이 선호하는 신랑감 영순위는 자동차 직영입니다. 맞선보러 나가서 현대자동차 다닌다면 키나 외모 이런 거 따지지 않습니다.”

“회사(현대)에 다니시는 아버님이 명퇴하고 대신 다닐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도입한다는데 언제쯤 가능한지요?”


결코 꾸며낸 말이 아니다. 3개월 코스의 직업훈련 양성과정 수료를 앞두고 취업을 고민하는 젊은이들과의 대화시간에 허심탄회한 분위기가 조성되자 물꼬가 터지듯이 쏟아져 나온 이야기 중 일부다.

필자는 외출할 때 조심스러워서 사복으로 갈아입는데 아직도 그런가?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취업을 앞둔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이 이처럼 현실적이고 솔직하다는 것이 그랬고, 그런 시대의 조류를 읽지 못하고 있던 자신의 고루한 생각이 그랬다.

젊은이들의 이러한 사고방식을 어찌 패기 없음과 도전의식 부족으로만 치부할 수 있으랴.

그만큼 취업난, 특히 청년실업문제가 심각하다는 반증이라는 생각에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직업훈련 양성과정을 마쳐도 현대자동차 직영으로 입사하는 길은 없다.

다만 협력업체에 취업알선을 해 준다고 누누이 강조했고, 본인들도 그 점을 인정하고 입교했으면서도 여전히 기대와 미련을 못 버리는 젊은이가 더 많다. 이들에게 “현대자동차가 지금은 최고의 직장일지 모르나 세상은 변한다.

인생 항해를 시작하는 여러분은 당장은 힘들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더 큰 꿈을 가지고 도전하라”는 말이 귀에 제대로 들리겠는가?

수강생과 강사의 입장에서만이 아닌, 비슷한 또래의 자식을 둔 애비의 입장에서 우러나는 진심이었지만 돌아보니 말하는 이와 듣는 이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었다.


경험을 앞세운 인생선배로서 ‘직업교양’이라는 포장으로 들려줬던 이야기들이 듣는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판에 박힌 훈계였을 것이다.

필자가 들려주는 단골 메뉴란 “우리 시대에는 이러저러 했다.

어려움을 참고 한 가지 일에 정진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현실을 긍정적으로 보고, 꿈을 크게 가지며, 그 꿈을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라.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말고 도전하라” 등으로 요약된다.

학생들의 솔직한 속내를 듣고 보니 스스로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현실과 동떨어진 교과서적인 말만 했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됐다.


그러나 냉혹하고 치열한 취업대란 시대를 만난 젊은이들이 듣기 좋아 할 적당한 말이 있기는 한 것인가?

냉정히 따져보면 인생선배로서 후배이자 자식 같은 젊은이들에게 들려 줄 말은 듣기 싫더라도 같은 이야기를 다시 반복할 수밖에 없다.

사내협력업체에 들어가서 몇 년 참으면 직영되는 길이 있다고는 하나 냉정히 따져보면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몇 년째 신규채용이 없어서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선순위 지망생들의 적체를 감안하면 지금 그 길을 택해서 몇 년이 흘러야 자신에게 기회가 올 것인지, 그 때쯤 자신의 나이와 확실한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반대로 규모가 작더라도 중소기업 협력업체라도 자신이 배우는 기능분야에서 일을 하면 숙련기술자로서의 경력과 기능은 축적된다.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르고, 확실성도 보장되지 않는 길을 마냥 기다리는 것과 더디게 보여도 자신의 경쟁력을 쌓아 가는 길 중에서 당신이라면 어느 길을 갈 것인가?


아버지가 명퇴를 신청하고 그 자리를 물려받는다는 발상은 그만큼 절박함의 발로이나 달리 말하면 일자리 세습이다.

당사자만 놓고 본다면 기업주는 고임금 고령인력을 저임금 청년인력으로 바꾸니까 이득이고, 노동자는 취업난 시대에 원하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으므로 상부상조, 유식한 말로 윈윈이다.

하지만 도덕적 규범과 윤리에 대해 모르쇠일 수 있거나, 특별히 예외적인 경우에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이지 사회적 책무와 영향력이 지대한 현대자동차와 같은 ‘국민기업’에서 제도로 시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세상은 지름길이 없는 법,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들은 고지식하고 아득하게 보일지라도 눈높이를 낮추어서 차근차근 한 계단씩 밟아 올라가야 한다. 10년 후, 혹은 20년 후의 자신의 모습을 설계하면서 말이다.

한편,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국가기관이든 기업이든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야말로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데 가치 있고 훌륭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입사 30년을 넘긴 즈음에 돌아보니 마음만 먹으면 일자리가 널려있었던 점만은 옛날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