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정치/질고지칼럼

내일칼럼 5/ 노동계 지각변동 어디로 갈 것인가?

질고지놀이마당 2010. 1. 8. 11:51

(2009년 10월 기고)

 

매우 민감하고 조심스런 화두이기는 하지만 민주노조 운동의 핵심으로 꼽히는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이하 현대차노조)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지난 9월에 치러진 지부장 선거에서 온건노선 후보의 당선은 현장 조합원 대중의 의식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지난 95년 5대 집행부 이후, 강경노선을 걷는 이른바 ‘민주파’의 집권이 15년간 지속됐다. 6대부터 12대까지의 위원장 선거 및 금속노조 통합 이후 지부장 선거 등 8번의 선거에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강경노선 후보의 손을 들어줬던 현대차 조합원들이 선택을 바꾼 것이다.


지난 8번의 선거에서 결선투표마다 강경파가 승리하는 흐름이 지속되면서 온건노선 후보에게는 패배감과 좌절감을, 투쟁노선 후보에게는 2차만 올라가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결선투표에서 강경파 후보가 승리하는 전통은 1차 투표에서 온건노선 후보가 2위와의 표 차이를 크게 벌려 놓아도 마찬가지였다.

 ‘이번만은 뒤집기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한 경우에도 민주파 후보에 대한 표 결집 현상은 더욱 위력을 발휘하여 결과가 뒤집히곤 했다. 이를 두고 ‘늘 2% 부족한 만년 2등’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온건노선 후보의 결선투표 필패 징크스’는 고착화되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앞두고는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변화의 기류가 감지됐다.

첫째 장기집권을 한 강경노선에 대한 실망감, 둘째 금속노조에 대한 불만과 배타적인 정서, 셋째 매번 결선투표에서 석패한 온건노선 후보에 대한 동정론 등 세 가지다. 

현대차 지부장 선거에서 온건파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자 언론의 관심과 반응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워서 같은 시기에 치러진 금속노조 위원장 선거가 관심 밖으로 밀려났을 정도다.

 4팀이 출마한 1차 투표 결과를 강경노선과 온건노선 득표로 단순 합산하면 43% : 57%, 온건노선이 14% 앞질렀다.

단순 합산한 비교는 별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마의 2% 벽’에 늘 막혔던 보수성향의 표가 10% 포인트 이상 앞섰다는 것은 대세의 흐름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결국 2차 투표 결과는 47 : 53, 온건파 후보의 53% 득표, 6% 포인트 차이의 승리로 판가름되었다.

이를 두고 어느 신문은 머리기사 제목을 ‘15년만의 정권교체’라고 달았다.


현대차노조 집행부가 바뀌면 한국 노동운동이 바뀔 것인가?

이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조합원들의 온건노선 선택은 장기간 집권했던 강경노선에 대한 일시적인 반작용이라는 예측과 민주노총의 주력은 금속노조고 금속노조의 핵심은 현대차노조라는 시각에서 이미 변화가 시작됐다는 전망으로 나뉜다.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현대차노조가 바뀌면 그 파급력은 엄청나다. 금속노조 14만7천명 조합원 중에서 현대차노조만 4만5천명이니까 약 1/3을 차지한다. 문제는 현대차 영향력이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완성차 노조 3사가 공동보조를 취한다는 점이다.

현대 기아 대우 3사의 조합원만 약 8만6천명이니까 금속노조원의 60%다.

그리고 이들 완성차 노조 조합원들은 금속노조에 대해 무관심하며 배타적이다. 특히 기업지부 해소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어서 어떤 계기와 여건만 마련되면 반기를 들지도 모른다.


이 같은 이상기류의 근거는 현대차 지부장과 같은 시기에 치러진 금속노조 위원장 선거 결과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낮은 투표율과 낮은 지지율, 완성차 3사 노조원 8만6천명 중에서 직접 투표에 참여하여 결선에 오른 금속노조 위원장 후보에게 찬성표를 던진 비율과 숫자는 약 34%, 3만 명이 채 안된다.

다시말해 완성차 노조원 중에서 1/3만이 금속노조 위원장에게 적극적 지지를 보냈다고 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현대차 지부장 당선자는 제1성으로 기업지부를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금속노조와의 갈등은 불가피하다. 기업지부 해소 및 금속노조통합 완성을 이루어야 할 당선자 입장에서는 출발 전부터 암초를 만난 셈이다.

노동운동의 대의와 명분을 앞세우더라도 막상 현실의 문제에 부딪히면 조직과 재정이 약하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상급단체인 금속노조가 하위 조직인 현대차 지부의 힘을 받지 못하면, 완성차 3사가 받쳐주지 않으면 힘이 실리지 않음은 상식이다.


이처럼 현대차 지부장 선거 결과는 금속노조의 장래, 나아가 민주노조운동이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되었다.

이상 살펴본 것처럼 노동운동에 대한 변화의 바람은 필수가 되었다.

그리고 현대차 지부 신임 집행부가 취할 변화의 방향이 수구 보수로의 회귀일지, 합리적인 상생의 노사관계 정립일지가 중요한 방향타가 될 것이다.

현대차지부에서 불기 시작한 변화 바람은 온건 합리 보수의 깃발을 지켜왔던 당선자 및 그 조직만이 아니라 조합원들의 밑바닥 정서가 함께 만들어 낸 바람이라는 점에서 한번 지나가는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을 것 같다.